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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의 개

[도서] 바벨의 개

캐롤린 파크허스트 저/공경희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본격추리물로서는 아니지만 미스터리가 가미가 된 부분이 매우 구미를 끌었기 때문에 예전에 사뒀던 책이었다. 그닥 땡기는 추리물이 없지만, 약간 활자중독기가 있는터라 손에 책을 잡지않고 있으면 다소 불안한 증상을 이중책장의  뒤쪽칸의 맨오른쪽 아래의 책부터 부터 읽어가는 것으로 달래고 있다. 근데, 이런!!!! 이렇게 끝내주는 작품을 그동안 모르고 있었다니. 그동안 아무리 재미있다고는 하나 매번 어디선가 들어본 비슷한 이야기들의 홍수였는데, 작가는 자신만의 독특한, 그래서 이제까지 처음들어보는 이야기와 여러가지 상징과 부분을 아기자기 짜임새있고도 아름답게 늘어놓는터라, 찡한 감동의 엔딩이 압도될 정도였다. 리뷰 쓰면서 여기저기 찾아보았더니, 역시나. 이 아름다운 이야기를 그냥 내버려두고 신간의 마케팅 홍수 속에 잊혀지는게 그 어떤 누구도 싫었는지 [오피스]에서 최근 짤린 스티브 카렐을 주연으로 영화를 만들고 있었다.


(음, 큰 개들은 저런 큰 머리의 무게를 감당하는 걸까나???)

대학에서 언어학을 강의하며 이를 연구하는 폴 아이버슨은 어느날 아내 알렉산드라 랜섬 (애칭은 렉시)이뒷마당의 사과나무에서 떨어져 죽은 것을 직장에서 집으로 전화를 하다 경찰로부터 알게된다. 떨어진 그녀를 보고 내내 짖은 개 로렐라이의 소리가 심상치않아 이웃집이 경찰에 신고한 것이다. 그는 역시나 이성적이고 분석적인 학자인지라, 죽은 그녀의 신체에서 보여지는 뼈의 골절 등을 통해 그녀가 살인이 아닌 사고사라고 생각하지만, 당최 그녀가 왜 나무위에 올라갔는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게다가 어떤 체계는 없지만 어떤 책이 어디에 꽂혀있는지 아는 (하~ 이거 되게 어려운 수준인데...체계적으로 꽂는것도 어렵지만, 어디에 꽂혀있는지를 다 안다구?????) 가운데, 그녀가 바로 죽은 그날 그의 서재 책장을 새로 정리한 것을 발견한다. 또한,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날 그녀가 요리해 저녁에 먹겠다 말했던 최고급 스테이크는 식기세척기를 보건데 그녀가 먹지않은 가운데 개 로렐라이에게 주어진 것 같고...그는 경찰이 사고사로 결론내린 것과 달리 그녀의 자살임을 직감하지만, 당최 그 연유를 모르는 것이다.


(영화의 개와 달리 원서표지 속 개가 실제 작품속의 로데시안 리지백종이다)

매사가 분석적인 전처 모라와 달리 야드세일에서 만난 마스크예술가 렉시는 즉흥적인 몽상가인터라, 그는 그녀와의 삶이 날마다 새로웠고 행복했으므로 그녀를 갑자기 놔줄 수 없는데다 그녀가 아무것도 남긴 (아니 사실 남겼지만) 것이 없는 가운데, 모든 실마리를 그가 보지못했던 그녀를 만나기전, 그리고 그녀를 두고 출근하면서 내버려둔 그녀의 일생과, 결정적으로 그녀의 죽음을 목격한 개 로렐라이에게 모든 것을 찾는 추적을 시작하게된다.

제목에서의 바벨은 구약성서 창세기에 나오는, 고대 바빌로니아인들이 세우려던 탑의 이름이다. 하늘까지 올라갈 것 같은 두려움에 야훼는 탑을 세우는 사람들의 언어를 다 다르게 바꾸어버린다. 그리하여 바벨은 '혼돈'의 이름이며 원래는 서로 통하였으나 이제는 통하지못하게된 서로다른 언어소통의 상징으로, 한때 사랑하였으나 남주가 깨닫지못한 가운데 어긋나버린 죽은 아내의 이야기가 되어버린다. 또한, 개와 사람과의 소통 또한 의미하게 된다.



이런 비극적인 가운데, 폴이 택한 것은 언어학자로서 그가 사이드로 보았던 정보들. 웬델 홀리스란 인물은 개의 구강구조를 외과적수술을 통해 바꾸어놓고, 동물학대 등의 죄목으로 체포된다. 많은 동료들의 비웃음과 연민속에 그는 개 로렐라이에게 언어를 가르치고, 타로, 여행, 추억, 꿈일기 등을 통한 많은 시도들의 좌절끝에 웬델 홀리스에게 편지를 쓰게된다.

글쎄, 폴과 그의 상심에 점점 몰입이 되면서, 그의 온갖시도들 - 음, 직접 관련은 없지만 이름 속에 들어있는 단어들이 그 사람을 말해주는 부분은 정말 멋졌다. 난 내 영문이름으로 한번 해볼까? - 을 따라간 뒤에 그가 얻은 깨달음은, 솔직히 맨처음과 다를바 없었다. 아니, 온통 대답은 그의 주변에 있었다. 매처음, 심지어 이 번역판의 표지에 적힌 노래 가사에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로렐라이 때문에 폴의 추억이야기가 후반부에 약간 짜증스럽기까지했다. 왜 사람들은 자신들의 상실만 생각할까? 로렐라이도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는데? 사람의 말로 말해달라고 말해달라고 하는 폴과 살아생전 말을 했지만 주인이 죽는 순간에 '당신이 들어주지않으면 나는 말을 할 수 없어요'라고 말했다는 개의 이야기가 겹쳐 답답했다. 언어가 서로 소통하지 않는다고 한쪽의 언어방식을 가르치는게 아니라, 우선 다른 언어지만 얼만큼이나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지 입다물고 귀기울여야하는거 아닐까?

그리고, 엔딩의 폴을 보다가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다. 중간에 렉시가 생전에 죽은이들의 데스마스크를 떠주는 일을 하는 에피소드가 나온다. 인물의 얼굴뿐만 아니라 그 마스크위에 그들의 정체성과 꿈을 나타내주는 그림을 그렸던 렉시가 단 한번 거절당한 일이 나온다. 십대의 나이에 자살한 소녀의 부모는 딸에 대해 다른 의뢰인들처럼 렉시에게 해줄 것이 없다. 딸을 잘 알지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딸의 일기장을 렉시에게 준다. 그리고 렉시는 겉으론 웃으나 속으론 우는 마스크를 만들어주고 부모들의 거절을 받는다. 글쎄, 그냥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여준다는 것은 얼마만큼을 의미하는 것일까? 일기장읽기를 거부한 그 부모들과, 죽은 아내가 남긴 모든 것을 찾아다니며 일년여를 방황한 폴의 중간 어디쯤일까?

난 언제나 인생은 하나의 큰 미스테리 (Life is a Mystery는 한때 내 블로그의 이름이기도 했다) 라고 생각해왔다. 근데, 폴의 미스테리 찾기를 물끄러미 보면서 느낀건, 글쎄 미스테리로 보고싶은건 바로 그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생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뭔가 의미심장한 것들이 많이 있긴 하다. 하지만, 의미심장한 것들이라 생각하는 가운데 정작 아주 소박한 일상의 것들과 의미없이 단순 반복되더라도 그 어떤 의미있는 것을 다 대체할만한 행복이 있는거 아닐까. 뭐, 예를 들면 감자칩이 무지 먹고싶었는데, 귀가한 누군가의 손에 들린 비닐봉투안에 우연히 감자칩이 들어있다거나. 침대위에서 추적놀이를 하는 강아지가 지딴에는 한바퀴 돈답시고 뛰었는데 나에게 꼬리와 귀여운 똥꼬를 보여주는 자태를 하고 있다던가...등등 ^^


p.s: ..한 사람이 바에 자신의 개를 데리고 갔다. 바텐더는 개는 들어올 수 없다고 말하지만, 그는 '우리 개는 말을 해요'라고 하면서 우긴다. 바텐더는 '그럼 한번 말을 시켜보라'고 하고 그는 개에게 '우리집 꼭대기에있는 것은?' 'roof roof' '사포의 거친면은?' 'rough rough'라고 대답을 해석해준다. 바텐더의 마지막 질문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야구선수는?'이었고 주인이 해석해준 개의 대답은 'Ruth Ruth' 화가 난 바텐더는 이 둘을 내좇는데 그때 개가 뒤돌아 보며 이렇게 말한다 'DiMaggio?'....p.20~21

(하하하하, 매우 귀여운 농담이었다. 개가 말한다는 것을 가지고 한 여러가지 농담과 다를바 없는듯 하지만, 은근 사람들의 '그럼그렇지'란 한계를 인식못하는 천진한 개의 품성이 느껴지는듯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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