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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고대사의 성문을 열다

[도서] 우리 고대사의 성문을 열다

최광식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우리 고대사의 성문을 열다

최광식의 역사탐험

한길사 256

 

억세게 관운이 좋은 학자. 뭔가 어울리지 않는 수식이지만 사실이다. 고려대 교수에서 문화재청장으로 갔다가 금세 문화부 장관까지 지낸 분이다. 전공이 고대사였으니 고대사에 관한 책을 낸 것인데 학술서가 아니고 일반인이 볼수 있게 쉬운 내용으로 우리고대사에 관한 몇가지 의문점을 푸어쓴 책이다.

 

한국고대사는 사료가 별로 없다. 고대사에 관한 사료라고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둘밖에 없다. 대부분은 중국이나 일본측 사료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여러 가지 추측과 주장이 난무한다. 몇 년전에 김대문이 썼다는 화랑세기 필사본이 발견되었는데 위작논란은 여전하다. 서강대 이종욱교수가 화랑세기필사본이 사료로 거치가있다는 주장을 편 이후 고대사학자중에 이를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한다. 이책은 현전하는 화랑세기가 가짜는 아니라는 주장을 담고있기도 한다. 그래서 학술서에서는 말할수 없는 주장, 즉 심증은 가지만 물증이 없는 몇가지 생각들을 정리했다고 한다.

 

단군신화는 교과서에는 나와있지만 대부분의 연구자는 이를 믿지 않고 단순히 단군족과 웅족의 결합으로 정치체가 존속했다는 정도로 받아들이고 있다. 책에서는 제정일치 사회에서 단군은 할아버지가 아닌 여성 즉 단군할머니였을 것이라 보고 있다. 고대의 무격은 대개 여성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동명신화는 주몽과 동일시 되는 천신신화지만 주몽의 아버지에 대한 제사기록이 없는데 비해 동명의 어머니인 하백녀에 대한 제사가 남아있다는 사실을 주목했다. 신라사회에는 세가지 시조신화가 전승되는데 기존 천강신화가 북방형 난생신화가 남방형이라는 지적에는 의문을 표한다. 천강신화는 새로운 세력의 출현을 의미하고 난생신화는 남다른 특이성을 의미하는 신화라고 한다. 이 신화에서도 여성사제가 주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가락국의 김수로에 대해서는 벼농사를 전래해준 신세력으로 본다. 허황옥의 출자는 인도 아요디아 출신이라는 점이 신빙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가야의 문장인 쌍어문이 아요디아 지역의 신성한 문장과 같기 때문인데 그렇다면 한반도의 불교전래는 중국이 아닌 인도에서 직접 전해졌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1988년 발견된 울진 봉평신라비는 524년 건립된 비인데 율령반포기사가 있는 법흥왕의 순행비라고 한다. 이듬해에 발견된 영일 냉수리비는 503년 건립으로 학계에서 보고있지만 자가 분명치 않으므로 자로 본다면 483년 건립이 가장 타당하다고 주장한다. 내용은 지방세력의 재산권을 인정하고 국왕의 명을 집행한 제사관련내용으로 해석한다.

 

화랑의 성격은 준군사집단이 아니고 제사집단으로 본다. 신채호 역시 소도를 지키는 무사단으로 보았다고 한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화랑은 종교집단인데 일제와 군사정권의 영향으로 전사단으로 변형되었다고 한다. 포석정도 화랑세기에는 포석사로 표기되어 있으므로 경애왕이 포석정에서 놀다 후백제군에 죽은 것이 아니라 포석사에서 제사를 지내다 당했다고 봐야 옳다는 것이다. 김유신의 천관녀 역시 기녀가 아니고 이름이 말해주듯 제사지내는 무녀로 본다. 즉 가야계와 천신제사관의 결합이 경주귀족과 불교계의 견제로 무산된 것으로 본다.

 

그 외에 신궁과 제사, 불교의 수용에 관한 이야기들이 실려있다. 매우 흥미있게 읽었다. 우리 고대사는 백인백설이지만 주류 학계는 고조선이나 백제의 흥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사료의 절대부족으로 인한 탓이지만 아직도 삼국사기 초기기록을 믿지 않는 일제 식민사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적극적인 해석과 주체적 연구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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