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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횡무진 한국사 (상)

[도서] 종횡무진 한국사 (상)

남경태 저

내용 평점 1점

구성 평점 3점

종횡무진 한국사 상 - 남경태의 이상한 역사인식

남경태 / 그린비 / 487

 

나는 남경태라는 사람을 잘 알지 못한다. 그가 대중적 철학서를 썼다는 정도 외에는.

표지설명에 보면 여러 가지 책을 썼고 대중활동을 했으며 동양사, 서양에 대한 개설서 외에 한국사에 대한 개설서까지 펴낸 사람이다. 다재다능한 사람이다. 그러나 최소한 이 책, 종횡무진 한국사를 읽어보니 실망이 너무 크다.

다만 스토리텔링식으로 역사의 흐름을 설명하는 체제는 좋았다. 그러나 사관이 너무 이상하고 부여를 역사서술에서 제외시킨 점은 이해되지 않는다. 저자에 의하면 어차피 고구려나 신라, 발해도 중국 지방정권중 하나인데 부여는 왜 뺐을까?

 

저자는 한국사의 큰 그림을 먼저 본다고 하고 민족에 중점을 두지 않았다고 한다. 민족에 중점을 두지 않는다는 것에는 나도 동의한다. 그러나 그것은 현재와 미래의 가치이지 과거역사를 서술할 때는 민족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아니면 세계사가 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우리나라 역사에서는 민족이 포인트가 될 수밖에 없다.

방향에서 먼저 크나큰 차이점을 발견하고 보니 전체 보다는 부분적으로 저자의 기술에 대한 의문 몇가지를 들어보고자 한다.

 

단군신화의 기록이 전해지지 않은 이유를 후대의 창작이기 때문으로 보았다.

이는 사료에 대한 이해부족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대개 비전공자가 역사서를 쓸 때 보이는 공통적인 단점인데 사료비판이라는 부분을 전혀 모르는 것 같다. 역사서는 사료에서부터 출발한다. 사료의 취사선택과 내용 등 모든 부분에 대한 점검이 먼저다. 우리역사에서는 전해지지 않는 시대와 사료가 많은데 그것도 모두 후대의 창작이라고 보는건지. 일제의 집요한 사료말살 정책에 대해 들어본 적은 있는지.

산동반도의 한나라대 화상석의 내용과 북한 각저총,장천1호분의 그림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고 있는 듯 하다. 단군을 한반도 외부에서 온 지도자로 비정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런데 웅녀 역시 토착족이 아닌 외래족이라 보는 근거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단군이 서자이며 미작농경을 전해주었다는 이야기는 곧 단군의 뿌리가 중국이었다는 증거라고 하는데 이 또한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요녕과 한반도에 걸친 청동기문화의 특징을 완전히 무시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런 주장을 할수 있나. 학계에서는 인정하지 않는 기자동래설 역시 완전한 사실로 보고 있다. 증거는? 미작농경문화의 특성상 조상숭배가 당연하다고 주장한다. 미작 농경의 출발지인 동남아 인도도 역시 그러한가?

 

한사군에 대해서는 낙랑의 위치를 평양으로 못박고 우리 역사의 전개과정에서 중국문명을 전해주는 전초기지 역할을 한 것이므로 발전의 계기로 보아야한다고 주장한다. 한사군의 위치가 아직 분명하지 않다는 사실은 무시하고, 또 그렇다 하더라도 중국문명을 전해주었으니 발전의 계기라고 일방적으로 단정한다면 일제시기 수량적 경제적 발전을 이루었으니 근대화를 이루었다고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이는 저자의 독특한 문명관인데 한사군 식민지의 설치는 곧 문명의 확산과정으로서 독자적 소문명권이 중국의 대문명권에 통합된 것이라 한다. 그러나 저자의 기본적인 생각은 고조선 자체가 중국에서 온 외래문명으로서 중국문명과 같은 뿌리의 동질성을 갖고 중국문명의 변방 역할을 해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이후 고조선을 계승한 국가들에서 고조선의 위상이 낮았다는 것이다.

 

대체 저자는 한국사를 쓰려는 것인지 동북공정사를 쓰려는 것인지 헷갈리지 않을수 없다. 게다가 중화문명과 북방문명을 같은 것으로 취급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발굴된지 오래지 않은 홍산문화는 중국의 문명인가? 중국의 북방청동기문화와 중원의 청동기문화가 전혀 다르다는 고고학의 연구성과는 알고있는지 무시하는건지 모르겠다.

 

주몽과 혁거세의 난생신화는 아버지의 평범한 혈통을 삭제하려는 의도라고 한다. 이도 이상하다. 최광식의 책에 보면 난생신화는 신분의 특이성이나 능력을 강조하는 것이고 부계의 강조는 천강신화로 나타난다.

신라의 박혁거세가 6부에 이최손정배설 여섯 성씨를 내려주었다는 고사에서 당시에 한자도 전래되지 않았는데 성씨를 내렸는지 의심스럽다하고 신라에 한자가 널리 사용되는 것은 6세기초 지증왕때부터로 추측한다.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저자의 주장처럼 한사군이 중국문명을 전래해주었다면 이미 기원전 2세기에 한자가 본격적으로 들어왔을 것이다. 삼한시대에 이미 변한은 낙랑과 왜에 철을 수출했다고 하는데 문자를 모르고 가능했을까? 창원 다호리 출토 붓과 소도는 기원전 1세기에 이미 남부지방에 한자가 사용되었음을 의미하는 증거라 볼수 있다. 그리고 대개는 성씨를 내려주었다는 고사로 미루어 한자가 이미 전래되었다고 추측하는게 정상적이지 않은가?

 

백제와 신라의 초기 역사가 불분명한 이유도 중화문명권에서 멀고 고구려와 낙랑이 길목을 차단하고 있었기 때문이라 한다. 저자는 해상활동이나 해상세력의 존재를 부정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동예와 옥저는 말갈족으로 보고 있다.

 

탈해는 일본 관동출신으로 본다. 삼국시대라는 용어에 대해서는 이국시대나 사국시대가 어울린다 하고 삼국이란 6세기 이후 삼국쟁패기의 상태를 말한다고 한다.

초기 고구려사는 중국사의 일부라고 말한다. 낙랑이 있으므로 한나라의 강역 안에 고구려가 들어가있는 셈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인식이 가능한지 정말 의아하다. 정말 저자가 중국인이 아닌지 의심되기도 한다. 언어와 문화의 동질성을 깡그리 무시하고 정치적인 측면만 본다해도 무리가 있다. 낙랑은 한의 영역이 아니다. 적국 안에 설치한 점령 거점일 뿐이다. 저자 스스로도 고대엔 국경선 따위가 없다고 했다. 더구나 낙랑의 위치는 아직 확실치 않다. 한사군이 요동에 있었다는 설이 완전한 허위로 밝혀져야 이런식의 가정을 쓸 수 있다. 고대문명사를 이렇게 비틀면 안된다. 역사해석이 아니라 역사조작이 된다. 설마 저자는 알래스카와 본토사이에 껴있으므로 캐나다는 미국 역사의 일부라고 주장하는지.

 

고대 정치사회조직의 성격을 확정하는 것이 고대국가라는 체제다. 어느정도 규모와 조직이 있어야 나라라고 불리는지는 여러 가지 이론이 있지만 삼국시대를 사국이 아닌 삼국이라 부르는 이유중 하나가 고대국가 단계에 진입했다는 것인데 저자는 그런 것은 아무 의미도 없고 쓸모도 없는 역사학자들의 소일거리라고 말한다. 네가하는 것은 쓸데없는 짓이고 내가 하는 것은 쓸모있는 짓이다 라는 논리니 여기에 무슨 논쟁이 가능한가. 대체 이사람의 역사의식이나 수준은 뭐란 말인가.

 

조공책봉 체제에 대한 이해가 학자들의 그것과 너무 다르다. 저자는 조공을 신복으로 이해한다. 무역이나 문화의 통로이고 외교의 방편이라는 점은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 조공하면 당연히 속국이다. 그래서 고구려의 천하관을 중국의 요동지배 인정으로 축소시킨다. 영역만 확보되면 중국에 조공을 바치겠다는 것이 광개토왕과 고구려의 생존전략이라고 본다. 백제의 중국 동부해안 진출설은 백제가 산동에 무역기지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한다.

 

저자는 서양은 분열지향적이며 중국은 통일지향적이라 하고 그 이유는 중국에는 확고한 지리적 중심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역사를 근본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지리라고 했는데 말로 표현만 안했을뿐 완벽한 환경결정론이다. 아마추어 역사가의 한계인 사료비판 결여와 이론의 미약함이 여지없이 드러난다. 게다가 조공책봉체제에 대한 이해도 태부족하여 정치일변도니 이건 초등수준이거나 식민사학자 둘중 하나다.

 

신라의 국호가 지증왕때 정해졌다는 것을 근거로 신라가 지증왕때 가서야 본격적으로 한자를 사용했을 것으로 추측한다. 그럼 봉평비 냉수리비는 한자가 들어오자마자 새겨진 것일까? 광개토왕의 군대가 상당기간 주둔해있었는데 문서도 없이 구두로 연락했다는 뜻이고 눌지왕때 불교가 들어왔지만 불경은 안들어왔다는 뜻이다.

 

676년 당군을 물리치고 안동도호부를 요동으로 밀어내며 신라가 한반도를 통일했다. 이에 대해 저자는 완전이건 불완전이건 통일자체에 전혀 의미를 두지 않는다. 대신에 신라가 중국의 한 군현으로 들어갔다고 본다. 이를 정식 사대관계의 시작이라 하여 19세기까지 한반도와 중국간 기본관계라고 한다. 당의 입장에서 신라는 중국의 한 지방이자 지방정권이라고 한다. 따라서 완충지대에 건국된 발해역시 우리역사로 보는 것은 위험하다고 한다. 이것은 전형적인 지역사의 이해구조다. 국가나 민족이 역사의 주체가 되는 것이 아니고 현재의 지리적 위치가 역사의 중심이 되는 것이다. 서두에서 이미 저자가 한국의 역사가 아닌 한반도의 역사라고 밝혔으니 당연한 서술이겠지만 저자에게 역사의 의미란 무엇인지 묻고싶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사람들을 탄압해도 되겠다. 러시아는 크림반도 뿐 아니라 우크라이나까지 집어삼켜도 되겠다. 이런식의 역사인식이라면 누구든 힘센놈이 법이고 정의다.

남경태에게는 역사의 목적이란 단지 어제를 살펴 내일을 대비하는 매우 실용적인 학문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역사를 구성하는 한 축인 정신이나 문화, 공동체 의식 따위는 아무 필요도 없다. 역사란 한 국가의 이력서에 지나지 않는다. 인문학이라는 개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아무튼 신라가 통일 이후에도 수도를 내륙으로 옮기지 않은 이유도 신라 스스로가 중국의 지방정권이라는 본분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으며 중국의 정식 군으로 편입되었기에 굳이 행정소재지를 옮길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동북공정이니 식민사학이니 말이 많은데 다 남의 나라에서 하는 말인줄 알았지 우리 내부에 이렇게 적극적인 중화주의자 식민주의자가 판치고 있는줄은 몰랐다. 이것은 내나라에 대한 건전한 비판의식을 훨씬 넘어서고 자조를 능가한 중국인의 역사다.

 

이사람의 역사인식이 이러하므로 더 이상의 책에 대한 감상이나 비판이 무의미하다. 이후로는 그냥 내용을 읽기만 했다. 무지와 견강부회와 소설이 뒤섞여있다.

한예로 신라통일후 일본에서도 큰 변화가 일어 독자적인 발전을 거치고 고대국가 일본이 성립한다고 한다. 7세기 이후의 일본은 한반도의 문명에 뒤쳐지지 않은 나라가 되었다고 적고있다. 동의한다. 고대 일본을 우습게 여기는건 우리가 일본의 역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반증의 예가 어이없다. 일본은 쇼토쿠태자 등의 생몰연대까지도 정확하게 전해지는데 신라의 경우 마지막 왕인 경순왕까지도 생몰연대를 모른다고 한다. 그래서 신라는 후진 나라고 일본은 문명화된 나라라는 것이다. 삼국 모두에 각각의 역사서가 있었다는 사실을 깜빡 잊었나보다. 수차례의 전란으로 대부분의 문화재나 전적이 망실되었다는 사실도 잊었나보다. 일제시기 수차례의 사서류 조사로 역사서가 씨가 말랐다는 사실은 몰랐나보다.

 

나도 역사책을 쓸수 있다. 누구든 책을 낼 자유와 권리가 있다. 그러나 남경태는 우리 사회에 적지 않은 이름의 무게를 가진 사람이다. 내가 책을 써서 헛소리를 지껄일수 있다. 그래도 괜찮다. 볼사람이 얼마없을테니. 그러나 남경태는 그렇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봤고 앞으로도 볼 것이다. 이름이 나있는 사회적 저술가는 책에 대한 책임이 가볍지 않다. 확인되지 않은 잡설과 공상을 마구 쏟아내는건 도리가 아니다. 차라리 학자라면 그럴수 있다. 비판과 검증과정이 혹독하기 때문에. 그러나 대중은 이런 책에 무방비상태다. 행여 고등학생들이 이책을 읽고 안그래도 어지러운 이 나라에 또다시 조국을 비하하는 혐한감정이 들까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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