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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발

[도서] 고발

반디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 반디     북한에 살고 있는 작가. '반딧불이'를 뜻하는 '반디'는 작가의 필명이다. 전체주의 체제 아래에서 삶에 대한 일련의 이야기를 써서 「고발」이라는 제목으로 탈북자, 브로커 등 여러 사람을 통해 남한으로 원고를 반출시켰다. 일곱 편의 이야기가 실린 이 책으로 '북한의 솔제니친'이라 불리며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문학 전문지 <더밀리언즈>가 선정한 '2017년 3월초 영국, 미국, 캐나다, 독일, 스웨덴, 노르웨이, 대만 등 세계 20개국 18개 연어권에서 출간된다. 같은 해 3월 말에는 「고발」 출간을 기념하여 세계의 편집자들이 모여 '북한 인권'을 주제로 이야기하는 전 세계적인 국제컨퍼런스가 서울에서 개최된다.                        - 「고발」 책 날개 중에서 -


 

이 책은 몇 년 전 방문했던 곳에서 우연히 알게 되었던 책이다. 평소에 읽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아도 온·오프라인 서점에 수시로 드나들며 화제의 책 제목 정도는 항상 파악하고 있엇는데 왜 이책을 몰랐을까 싶었다. 2017년 초에 국내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꽤 이슈가 되었었던 모양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 책을 읽은 이들의 리뷰는 140건이 훌쩍 넘을 정도로 많은 이들에게 읽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직도 북한에 살고 있다고 하는 작가 그 자체만으로도 흥미롭지만, 소설이라 하더라도 탈북민이 방송을 통해 들려주는 그곳의 상황 만큼이나 좀 더 생생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을거라는 생각 등 여러모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책이었다.

 

그렇지만 일단은 읽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어둡고 무서운 아니 무거운 전개가 뻔히 예상이 되었던 것이고 각주를 달아 단어의 풀이를 표시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구어체로 전개되어 있어서 해당 글의 전체 분위기에 따라 의미를 유추해야 되는 문장이 많았기 때문이다. 방송을 통해 우리가 잘 아는 우리 말의 '괜찮습니다'에 해당하는 '일 없습니다'는 아주 아주 쉬운 말에 해당했다.

 

총 7편의 소설이 실려 있는데, 처음 2건 '탈북기'와 '유령의 도시'는 생각 외로 몰입이 잘 되어(심지어는 음성지원되는 듯한 느낌까지~) 쉽게 읽었지만, 나머니 5섯편은 쉽게 몰입이 되지 않았다. 이 5편의 공통점은(적어도 내가 느낀) 중반까지 내용 파악이 안 되다가 갑자기 클라이막스 같은 부분이 나오면서 눈이 오른쪽 하단에 있는 페이지 옆 소설의 '제목'으로 향하게 한다는 점이다. 그 제목을 확인 함으로써 드디어 중반까지 보이지 않던 퍼즐의 완성된 그림을 보게 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제목만 보면 처음에는 대체 무엇을 말하고 싶은건지 전혀 유추가 되지 않았지만, 해당 글을 끝까지 읽고나면 상황을 이렇게 한 단어로도 함축해서 비유하고, 표현이 가능한거구나.. 하는 생각에 놀라움과 감탄을 5편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때마다 하고 있었다.

 

특히 '준마의 일생' 편에서 전영일의 설용수에 대한 내심을 해석(?)하는 부분에서 더욱 그랬다. 이 걸 반어법이라고 표현을 해야 되는건가? 설용수라는 인물의 인생을 대변해주는 듯한 느티나무에 대한 그의 감정.. 그리고 그 느티나무의 토막이 아궁이 앞에서 '실실거리며 타고 있었다'는 그 표현이 정말 소름끼치도록 생생했다.

 

책 뒷표지 앞 살구색의 종이에는 이 책을 읽은 전 세계의 독자들이 남긴 후기(겸 찬사)가 실려 있다. 아직 '세계 3대 디스토피아 소설'을 모두 읽지는 못했지만, 그 책들이 하고자 하는 말의 대강은 알기에 반디의 소설을 읽으면서 왜 그들이 1984나 디스토피아, 솔체니친과 비교해도 절대 과찬이 아니라고 해는지 아주 아주 조금을 알 것 같았다.

 

책을 읽으면서 배경이 사회주의, 공산주의인 북한 이라는 것을 제외하면 우리내 40~50년대의 수필가나 소설가가 쓴 글을 보는 듯한 느낌이 종 종 들었다. 그리고 때로는 자신의 실적이나 책임을 회피하거나 윗선의 압력에 못이긴 억지 수사나 쿠데타를 그려낸 '택시 운전사'나 '1987' 같은 영화도 종 종 떠올라 화가 나기도 했다. 그럴때마다 각 소설 마지막 장에 쓰인 날짜들을 확인하곤 했다. 이게 대체 언제쩍 얘기인지 하고 말이다.

 

1950년 생이라는 소설가는 탈북하는 사촌 여동생을 통해 이 소설을 세상에 알렸다고 한다. 반디 작가는 이 소설이 전 세계 곳 곳에서 읽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그리고 이제 70대가 되었을 텐데 무사한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남북 분단이 된 상황이 아니라면 남한 말, 북한 말이 아닌 사투리 혹은 ㅇㅇ 방언 등이란 말을 쓰고 있을 것이다. 책 초중반까지는 매체를 통해 자주 접하던 어투라 때로는 음성지원이 되는 듯한 느낌도 있었지만, 마지막 2편에서는 이 소설처럼 책이 아니면 접하기 힘든 처음 보는 사투리 혹은 말투가 많이 등장에 다음 내용이 궁금한데 넘어가지가 않아 답답하기도 했다. 이 책을 출판하기 위해 원고를 받아들고 북한말 사전 같은 것을 부지런치 찾아보며 그대로 쓸지 이해하기 쉽게 고쳐서 쓸지 많은 토의들을 했을 편집진들이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작업을 하는 동안, 그리고 마친 후 어떤 기분이었을지 참 궁금해진다.

 

마지막으로 정말 쌩뚱맞게 엉뚱한 질문을 하고 싶어진다. 물론 이 책 내용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내용이다. '준마의 일생' 편에서 혀 짧은 소리를 하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외국어로는 이거 어떻게 번역하고 있는지도 궁금하다. 책을 읽으면서 내 내 작가의 필력이 정말 대단하는 생각을 했지만, 그 대단함 만큼 또다른 호기심도 많이 불러일으켰던 책이다. 그래서 그의 또 다른 소설을 만나볼 수 있는 날을 기다려도 될까하는 생각도 조심스럽게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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