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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초콜릿 가게

[도서] 수상한 초콜릿 가게

김예은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갑자기 왜 이렇게 생각나지 않을까. 책 표지에서 보이는 쌓인 눈을 표현하는 말이 도무지 떠오르질 않는다. 마치 가벼운 솜뭉치를 곳 곳에 얹어 놓은 듯 눈이 쌓인 배경을 한 표지 사진을 한참 동안 바라보면서 이런 눈을 뭐라고 표현했지? 하며 눈동자를 요리조리 굴리며 한참을 생각하다 표지를 넘긴다. 그랬더니 이번엔 '로소득자' 라는 재밌는 표현의 저자 소개가 맞이한다.

 

'Sarang de Chocolate'.  이 곳은 상호명에 표기된 것처럼 수제 초콜릿을 파는 초콜릿 가게이다. 한옥 건물이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7~80년대를 연상시키는 스윙 댄스나 재즈 선율이 흐르고 저자에 따르면 보는 시각에 따라 유럽풍 티 댄스 공간처럼 보이기도 한다고 한다. 서울 한 복판에 위치했다는 표현이 있지만, 책을 읽으면서 보이는 전체적인 분위기는 북촌마을이나 삼청동의 조용한 골목 한 귀퉁이 어딘가에 있을법한 느낌이다. 이 곳에는 중성적인 이름의 소유자이자 사랑의 초콜릿 가게 주인인 '한주호(女)'와 직원 '재현'이 있다. 초콜릿을 판매하는 메인 공간을 지나 가게 뒷편에는 소담한 장소가 마련되어 있고, 이 곳엔 '내 사랑 전문 초콜릿 상담소'라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안내문에는 첫사랑과 짝사랑 고민 상담소라고 되어 있지만.. 메인은 단연 '짝사랑'에 대한 고민이다.

 

 


조울증이다.

그 사람 때문에 내 기분은 슬펐다가 기뻤다가 한다.

그 사람은 지금 내가 좋을까 안 좋을까

그 사람은 지금 나를 좋아해서 좋.을.중이었으면 좋겠다. (p.108)


 

 

진짜 재미있는 건 이 초콜릿 가게의 상호명이 가게 안 상담소와 관련이 있다는 점이다. 그냥 보기엔 Sarang de Chocolate과 상담소가 대체 무슨 관련이 있나 싶은데, 여기엔 주호만의 위트 아닌 위트가 있다. 'de'는 프랑스어로 '~의'라는 조사지만, 영어로 발음하면 '데'가 되니까 이것을 '조사'인 '~의'의 의미가 아닌 영어의 발음을 주호 멋대로 바꿔서 '데인'으로 해석을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랑에 데인 사람들에게 초콜릿 주는 가게'라는 의미가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따지고 보면 짝사랑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기엔 정말 딱인 곳인 것 같다. 게다가 사람은 경험해 본 만큼 안다는 말처럼 주호가 숨은 의미가 담긴 초콜릿 가게를 운영하게 된 데는 2가지 이유가 있다. 자신 역시 학창시절 장장 5년간의 짝사랑 경험과 그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수차례 선도 보고 사귀어 보기도, 깨지기도, 또 다시 붙잡으며 또 짝사랑을 하는 온갖 사랑의 종류를 해보다 결국 '사랑'이란 것을 그만두게(?) 된다. 그 경험으로부터 내가 누군가의 짝사랑의 대상이 되는(즉, 짝사랑을 받는)게 정말 어려운 사실 또한 깨닫는다. 결국 내가 받지 못한 짝사랑이지만 누군가의 짝사랑 이야기를 들으며 스스로를 위로받고 싶은 마음 또한 초콜릿 가게 속 상담소를 운영하게 된 것이다.

 

그러고 보니 올해 읽은 수 많은 소설 속 배경은 모두 무언가를 파는 곳이었던 것 같다. 책을 파는 서점, 사진을 찍어 주는 사진관, 도시락을 파는 가게, 사랑의 묘약(?)을 판다는 약국 등) 그래서인지 이야기 전개 구조도 모두 비슷하다. 딱히 대상을 정하진 않았지만 무언가를 사기 위해 그 곳에 들른 이들이 가게 구성원(그것은 주인이 될 수도, 그 안에 있던 다른 누구일 수도 있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사연이 전개되고 특별한 비법 없이 그 과정에서 문제가 해결이 된다. 이번 전개 또한 비슷하다. 딱히 정해진 초콜릿을 사러 온 것은 아니었지만, 가게에 들렀다 한쪽 구석에 붙여진 안내문을 보고 자연스럽게 상담과정으로 이어지고 사연을 풀게 된다는 것. 소설 속 많은 사연들은 형태를 모두 달리 했지만, 그것이 혼자만의 일방적 사랑이든, 교재 중 일방의 이야기든 결국은 '짝사랑'에 대한 상담이었다. 수 많은 사연 중 2가지 사연이 기억에 남는다. 하나는 80대 노신사의 이야기 또 하나는 이 소설의 주인공 주호의 사연이다.

 

새해가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멋드러진 코트 안에 깔끔한 양복을 차려입은 노신사가 증손주와 함께 찾아온다. 센스 있게 다양한 초콜릿을 손주와 함께 고른다. 아내에게 줄 초콜릿과 함께. 조금 늦어지겠다는 자녀(증손주의 부모)의 연락을 받고는 가게 안에서 기다리다 발견한 안내문을 통해 자신도 상담이 가능하냐는 말과 함께 노신사의 사연이 풀어진다. 그 나이대 분들의 결혼은 흔히 알려져 있다는 듯이 결혼 상대를 결혼 당일에 처음 본다는 이야기는 그리 놀랍지도 않다. 그 노신사 역시 그랬다. 연애는 물론 '사랑'이란 것을 알지도 못한 채 함께 가정을 꾸리게 된 후 오히려 아내를 진짜 사랑하게 되었다고 했다. 아내 역시 야무지게 살림을 꾸리며 내조를 해주며 잘 지내는 듯 하지만 50대를 넘어서 자신이 암에 걸리는 바람에 고생하지만, 운 좋게 완치가 된다.

 

이 노신사는 젊은 시절 자신의 아내에게 늘 하던 말이 있다고 했다. "너와 짧게 젊고 오래 늙고 싶어"라고. 그런데 오래 늙고 싶다는 말 앞에 '건강하게'라는 말을 안 붙여서 말한 탓인지라며 아내가 치매라는 고백을 한다. 처음엔 자신이 곁에서 보살폈지만, 나이가 나이인지라 체력 감당이 안되어 요양원에 있는데, 아내가 젊었을 적 자신만 기억하고 찾아갈 때마다 젊었을 때의 자신만 찾는고 했다. 그럼에도 아직도 그런 자신의 아내가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고. 오늘 아내러 만나러 간다며 초콜릿을 사러 온 것이었다. 그가 80대의 나이에도 말끔하게 차려 입은 이유는 치매로 순간만 간신히 기억하는 할머니에겐 매 순간이 마지막일테니까 만약 그것이 마지막이라면 아내의 기억 속에 가장 멋진 모습으로 남고 싶어서라고 했다. 이 사연을 보면서 이런 유형의 사랑도 짝사랑에 해당 되는건가? 하는 생각을 한참 했던 것 같다. 사연이 펼쳐지는 내내 할아버지의 표정이 보이는 것 같았지만, 그 속에서 할머니의 치매 때문에 힘들었다거나 슬프다거나 하는 표정은 읽을 수가 없었던 것 같다. 그저 젊은 시절 자신 밖에는 기억 못하지만 초콜릿을 좋아하며 여전히 젊은 시절이기는 하나 자신을 찾는 아내가 좋다는 온화한 표정만 보이는 듯 했다. 그럼에도 상담소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으려고 했다는 것은 자신은 미쳐 알지 못했던 외로움이 있었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짝사랑이라고 말해도 될 것 같기는 한 데 말이다.

 

그리고 특이한 상황이 전개된다. 그러고 보니 주호가 상담소를 운영하게 된 목표를 이루었다고 해야 될 것 같다. 그녀가 5년간 짝사랑 했던 상대가 상담소에 자신에게 고민을 털어놓기 위한 손님으로 나타난다. 시기가 한창 지났지만 5년간의 짝사랑 상대를 한 번에 알아볼 수 있는 것은 절대 무리가 아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상대는 나를 알지 못한다. 그런데, 그런 상대의 짝사랑 이야기를 듣는 기분은 어떨까? 음.. 생각만 해도 끔찍(?)까지는 아니어도 감당하기 정말 힘들 것 같다. 손발이 떨리는 것을 들키지 않을 수 있을까? 떨리는 목소리를 다 잡을 수 있을까? 이것이 실제 상황이라면 백만번을 생각해도 감당이 안 될 것 같다. 하지만 주호는 간신히 그런 기분을 조금씩 눌러가며 그렇지만, 자신의 진짜 감정을 애써 누르지 않으며 상대의 고민을 듣고 그에 맞는 초콜릿을 선물해준다.(이 곳에선 상담 받으면 판매되는 초콜릿과 달리 그 사연에 걸맞는 초콜릿을 손님에게 선물해준다.) 그리고 자신의 명함을 건네며, 언제든 다시 찾아오라며 그를 다시 만날 구실을 만들어주는 앙큼한 센스도 발휘한다. 주호의 짝사랑 속 사연의 두 주인공 결말은 어떻게 되었을까? 이 부분은 책을 읽고 궁금증을 푸시기를 바란다.

 

얼마 전 읽은 '사랑'을 주제로 한 소설 때문에 사실 궁금해 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이 소설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저 이전에 읽은 다른 소설들처럼 잔잔한 사연들이 펼쳐지기를 하고 생각하며 읽었던 것 같다. 오랜만이다. 소설 속 이야기들과 책 표지의 분위기가 참 많이 닮았다고 생각되는 책. 처음에 바랬던 데로 딱히 튀거나 눈살 찌푸리는 사연 없이 잔잔한 사연들을 만났던 시간이다. 자신의 짝사랑 상대로 부터 듣는 그의 사연이 풀어지는 상황이 조금 특별하다면 특별할까? 오히려 그런 부분 때문에 더 재미있게 읽혔던 것도 같다. 곧 겨울이 다가오는 데 따뜻한 실내에서 달달한 초콜릿 라떼를 옆에 두고 읽으면 딱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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