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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에 관한 온갖 헛소리

[도서] 임금에 관한 온갖 헛소리

고병권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철학자 고병권과 함께 공부하는 북클럽 자본 시리즈 아홉 번째 책 [임금에 관한 온갖 헛소리]는 마르크스 [자본] 제1권의 제5편 ‘절대적,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과 제6편 ‘임금’에 관한 읽기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잉여가치율과 임금을 둘러싼 고전 정치경제학의 온갖 횡설수설과 착시, 기만, 술책 등에 대한 마르크스의 비판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마르크스는 [자본] 제3편에서 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방식을 다루었고, 제4편에서는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방식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절대적 잉여가치는 노동일 연장을 통해서, 그리고 상대적 잉여가치는 노동생산력 증대를 통해서 얻는다. 자본은 잉여가치를 얻기 위해 노동자들을 더 오래, 더 효과적으로, 더 강도 높게 일하는 유능한 노동자로 만들었다. 제5편에서는 그렇게 잉여가치를 생산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고 있다.

 

일반적으로 노동과정이란 노동자가 노동수단을 가지고 노동대상에 변형을 가하는 과정이다. 자본주의적 생산과정이란 현물을 생산하는 노동과정인 동시에 가치를 생산하는 가치증식과정이다. 여기서 노동과정은 자본이 구매한 노동력을 소비하는 과정이고, 가치증식과정은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노동을 말한다. 따라서 자본주의에서 말하는 생산적 노동이란 자본의 가치증식에 봉사하는 노동, 즉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노동을 일컫는다. 그러면 노동자는 왜 노동력의 가치를 넘어서는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노동을 하는 걸까? 그것은 노동이 자본에 포섭되었기 때문이라고 마르크스는 말한다. 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은 노동의 형식적 포섭이고,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은 노동의 실질적 포섭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노동자의 노동이 가치증식의 요소로 계속해서 기능하는 것은 노동이 자율성을 잃고 자본의 하위요소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자본이 주권자인 사회에서 노동자는 노동력의 판매자 즉, 상품으로써 살아가야 한다. 우리 눈에는 자유롭고 평등한 교환으로 보이지만 포섭은 억압과 구속이 곧바로 드러나지 않는 형태의 예속이라고 저자는 마르크스의 비판을 통해 이야기한다. 또 마르크스는 노동력의 가치와 잉여가치의 상대적 크기가 노동일, 노동의 강도, 노동생산력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살펴본다. 각각의 요인이 증가, 감소, 불변인 경우 중 주요한 조합에 대해서 고찰해보지만, 어떤 경우에도 잉여가치의 비율은 상대적으로 늘어나며 따라서 계급 간 격차는 더욱 확대됨을 보여준다. 결국 [자본] 제5편에서 마르크스가 강조한 것은 때때로 노동력의 가격이 그 가치 이상으로 상승한다 해도 잉여가치가 커질 수 있으며, 노동력의 가격과 잉여가치 크기의 상대적 격차는 더 벌어질 수 있음을 지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이처럼 마르크스가 얘기한 잉여가치 생산의 의미를 살펴보는 한편, 노동의 가치와 관련한 애덤 스미스의 오류, 잉여가치에 대한 리카도의 오류를 교정하는 마르크스의 비판내용을 상세하게 분석하여 소개하기도 한다. 또한 노동해방을 위한 중요한 전제인 ‘노동의 일반성’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자본주의에서 노동일 단축의 절대적 한계는 잉여노동이 생겨날 수 있느냐에 달려있지만, 자본주의가 아니라면 얼마나 많은 구성원들이 노동에 참여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한다. 다시 말해 특정계급(자본)이 자유를 얻기 위해 다른 계급에게 노동을 강요하는 게 아니라 모두가 함께 일함으로써 전체의 자유 시간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노동의 일반성은 요즘 우리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주52시간 노동시간과 관련해서도 많은 생각을 해보게 만든다.

 

이어 마르크스는 임금과 관련한 정치경제학의 오류를 살펴본다. 정치경제학에서 임금은 분배의 문제로 보고 있다. 자본주의는 자본가가 이윤을 얻기 위해 자본을 투자하여 상품을 생산하는 체제이다. 따라서 자본, 토지, 노동에 대해 각각 이윤, 지대, 임금으로 분배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이윤과 지대와 이자는 모두 잉여가치의 특수한 형태로 노동력을 통해 생산된 잉여가치를 분배한 것이라 단언한다. 임금은 노동력의 가치로써 노동력을 생산하는데 필요한 사회적 노동량이기 때문이다. 잉여가치율을 따질 때 살펴본 정식 w=c+v+m에서 생산물의 가치(w)에 담긴 생산수단의 가치(c)는 과거에 생산된 가치를 이전한 것이고, 노동력의 가치(v)와 잉여가치(m)는 노동자가 새로 생산한 가치이다. 따라서 가치의 생산과정에서 생산수단의 가치는 재현되지만 노동력의 가치는 재생산된다. 즉, 노동자는 생산과정에서 노동력의 가치를 재생산하여 노동력의 대가로 받은 임금을 자본가에게 돌려준다. 그럼에도 임금은 나중에 받기 때문에 노동에 대한 대가로 분배받는 것이라 착각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저자는 노동과 노동력에 대한 의미를 분명히 한다. 임금은 노동력의 가격으로 노동력의 가치를 화폐와의 교환비율로 나타낸 것이다. 그러나 이데올로기는 노동의 가격을 임금이라고 한다. 이는 고전파 경제학자들이 노동력(거래상품)과 노동(가치)을 구분하지 못해서이고, 그래서 말도 안되는 노동의 가격이라 부름으로써 잉여노동의 존재를 은폐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처럼 임금을 노동의 가격이라고 규정함으로써 임금에 관한 온갖 헛소리들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리고 노동자들이 이런 헛소리를 믿는 까닭은 자본과 노동의 교환이 일반적으로 상품매매처럼 지각되고, 교환가치와 사용가치가 그 자체로는 비교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마르크스는 제6편에서 임금형태를 검토하고 있다. 자본주의에서 어떻게 하여 시간급제와 성과급제 같은 임금형태가 나타나게 되었는지, 자본가들이 성과급제를 선호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고찰한다. 그를 통해 임금이 ‘일한 만큼 받는 것’이라는 말이 거짓임을 깨닫게 된다. 즉 자본은 노동력의 가치를 모두 제대로 지불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눈속임에 불과하다는 것을 마르크스는 분석을 통해 보여준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마르크스의 [자본]에서 개념의 핵심은 잉여가치이고, 이는 노동과 노동력을 엄격히 구분함으로써 알 수 있음을 역설한다.

 

‘북클럽 자본 시리즈’를 통해 마르크스의 [자본] 제1권에 대한 독법을 배우고 있다. 총 열두 권의 책 중 이제 아홉 권을 읽었다. 남은 세 권은 또 어떤 이야기들을 들려줄지, 시리즈를 다 읽고 난 후 막상 [자본]을 읽게 되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지 궁금해진다. 그런 궁금증을 뒤로 하고 우선은 남은 세권을 마저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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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블로그 아자아자

    '일한 만큼 받는 것'이라는 말이 거짓이고 눈속임에 불과하다면/
    일할 맛이 안 나지요.

    2022.03.13 22:14 댓글쓰기

PRID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