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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통감 3

[도서] 자치통감 3

사마광 저/신동준 역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자치통감]은 북송대의 역사학자 사마광이 송 영종의 지지와 당대 최고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쓴 역사서이다. 그는 주나라 위열왕이 3진(晉)을 각각 제후로 임명한 기원전 403년부터 송 건국 이전인 서기 960년 후주(後周) 세종에 이르기까지 열여섯 나라 1362년간의 역사를 1년씩 묶어 편년체로 총 294권에 담았다. 이 책의 역자인 신동준 선생은 완역을 하지 못하고 유명을 달리했지만, 전국시대부터 진(晋)나라 초기까지, 즉 주기(周紀) 권1에서 진기(晋紀) 권3까지 81권을 역했다. 동양고전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 [열국지]와 [초한지], [삼국지]가 다루는 시기가 전부 들어있다. 그중 이 책 [자치통감 3]권은 한기(漢紀) 21권부터 33권까지 13권을, 기간은 기원전 41년부터 서기 29년까지 70년간을 역(譯)한 내용이다. 이 시기를 사마광은 전부 한기(漢紀)로 표기했지만 전한(前漢)시대, 왕망시대, 후한(後漢)시대로 나눌 수 있다. 전한시대는 [자치통감 2]권에 이어 한기 21권에서 26권까지, 왕망시대는 한기 27권부터 32권까지, 그리고 후한시대는 한기 33권에서 49권까지이지만 이 책에서는 한기 33권, 한권만을 다루고 있다.

 

전한시대는 한 원제부터 성제, 애제에 이르기까지 3대, 39년간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원제가 죽고 난 후 보위에 오른 성제는 모친인 왕태후 왕정군의 의중에서 벗어나지를 못한다. 그래서 여러 왕씨 외숙을 제후에 봉하고 조정의 대신들 또한 외가의 인물들로 채워졌다. 매복이 상서를 올려 한나라 건국 이래 사직이 세 번 위태로운 적이 있었는데, 여씨, 곽씨, 상관씨의 위기가 바로 그것이라며 모두 황제의 어머니 집안 때문에 빚어진 일이라 간했다. 그러나 한 성제는 외면했고, 왕태후는 조카인 왕망을 대사마로 임명하여 보정을 하게 했다. 왕망은 속마음을 감추고 예의를 행하는 등 극도로 절제하며 명성을 꾸미니 많은 사람이 칭송했다. 한 성제가 죽고 조카인 유흔이 13대 황제로 즉위하니 그가 한 애제이다. 애제 역시 조모인 부태후의 일가들과 외가인 정씨들을 대거 제후에 봉했다.

 

왕망시대는 한 애제부터 평제, 왕망, 회양왕, 광무제에 이르기까지 5대 28년간의 기록이다. 한 애제가 황제로 있을 때 왕씨가 극도로 몸을 사렸다. 그러다 애제가 재위 6년 만에 후사 없이 죽자 태왕태후 왕정군이 왕망을 불러들여 수습하게 했다. 중산왕 유기자를 애제의 후사로 삼아 제위에 오르게 하니 그가 한 평제이다. 그때 평제 나이 9세였다. 왕망은 이때부터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을 모두 몰아냈고 자신의 딸을 황후로 삼도록 했다. 한 평제 5년, 왕망은 평제를 독살하고 섭정을 한다. 한 선제의 현손인 2살짜리 유영을 황태자로 삼고 자신은 주공의 흉내를 냈다. 동군태수 척의가 거병하자 이를 진압하고, 자신이 황제의 자리에 올라 나라이름을 신(新)으로 바꿨다. 왕망은 황제(黃帝)와 순임금의 후예를 자처하며, 고대제도를 흉내 내고 시의를 헤아리지 않아 백성들이 괴로워한다. 흉노와 서역이 반기를 들고 백성들은 도적이 되어 곳곳에서 노략질을 한다. 번승이 거병하여 왕망의 군사와 섞이지 않도록 눈썹을 붉게한데서 유래한 적미단이 횡행했다.

 

왕망의 폭정이 계속되자 남양의 호걸들과 거병한 신시병, 평림병 모두가 연합하여 서기 23년 유현을 황제로 추대했는데 그가 경시제이다. 유연, 유수형제의 위명이 높아지자 경시제의 측근들이 유현에게 이들 형제를 제거토록 종용했다. 유연이 죽임을 당하자 유수는 사죄하며 자신의 허물만을 거론했다. 연합군 병사들이 장안성을 공격하여 왕망을 죽이고, 유현은 낙양에 도읍을 정한다. 경시제와 측근들은 유수를 멀리하고 재폐를 얻는 데만 관심이 있었다. 유수는 임시직인 행대사마사가 되어 북쪽의 여러 주군을 진위하며 백성을 위무했다. 서기 25년 유수가 제장들의 간청을 받아들여 황제의 자리에 오르고 건무로 개원했다. 그가 바로 후한을 여는 광무제이다.

 

사마광은 경시제를 회양왕이라 칭했다. 당시 왕이란 제후를 이르는 말로 이는 사마광이 유수를 적통으로 보았음을 의미한다. 왕망의 폭정 말기부터 거병하기 시작한 군벌들이 곳곳에서 침략과 노략질을 하고 있는데 경시제는 국정을 장인에게 맡기고 재폐에만 관심을 보였지만, 광무제는 반군들을 토벌하며 백성들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힘을 쏟았으니 당연하지 싶다. 왕망시대에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고구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서기 12년 왕망은 고구려 병사를 발동해 흉노를 치고자 했으나 고구려가 말을 듣지 않았다. 요서군이 출병을 강박하자 고구려는 요서를 침범해 대윤 전담을 죽였다. 이에 왕망의 장수가 고구려후 추를 유인해 죽이고 왕망은 고구려를 하구려라 부르자, 이때부터 부여와 예맥 모두가 반기를 들기 시작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자치통감]을 읽다보면 다른 사서와 달리 저자인 사마광이 역사적 사실에 대해 곳곳에서 자신의 관점에서 평한 내용이 들어있다. [자치통감 3]권에서도 네 군데에 사마광의 평이 들어있는데 그중 두 군데가 광무제에 관한 내용이다. 하나는 광무제 유수가 칭제한 후 백성들을 위해 애민한 탁무를 찾아내어 태부로 삼자, 이를 두고 ‘먼저 힘써야할 선무를 깊이 알아 그 본원을 얻은 덕분에 옛 한나라 왕실인 구물을 광복해 장구하게 왕조를 유지하도록 만’들었다고 평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광무제가 편장군 풍이를 파견하여 반란군을 토벌하게 하면서, 정벌은 평정하여 안전이 모이도록 하는 안집에 있다며 군현의 백성들을 고통스럽게 하지 말라고 당부한 것을 두고 ‘군주가 용병하는 뜻은 오직 위덕으로 안민을 이루는데 있다며 이 어찌 아름답지 않는가’라고 논한 부분이다. 사마광이 유현을 회양왕이라 칭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그럼에도 사마광은 왕망에 대해서만큼은 한마디 평도 하지 않았다. 아마 왕망을 황제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역자의 [자치통감 3]권까지에는 주기(周紀), 진기(秦紀), 한기(漢紀) 등 41권이 수록되어 있다. 역자가 역한 81권의 기록 중 딱 절반이다. 다음 4권에서는 아마 후한(後漢)시대 모두가 들어가지 않을까 싶다. 후한시대 역시 외척이 발호가 심심찮게 등장할 것이다. 또한 삼국시대로 가는 길목이기도 하다. 후한의 역사에는 어떤 기록들이 흥미를 느끼게 할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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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블로그 하우애

    인간사랑에 대한 사랑은 여전하시네요!

    2022.03.25 08:33 댓글쓰기
  • 역사에서 저는 외우기만 했던 [자치통감]을 읽으시는 분을 보다니...ㅋㅋ
    웬지 존경심이 드네요^^

    2022.03.25 08:57 댓글쓰기

PRID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