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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서 야근은 일상이다. 서울 야경이 아름다운 이유는 꺼지지 않는 사무실의 불빛이라고 한다. 4~50년전 지금은 환갑 연배되시분들이 한참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 고도성장과 하면된다라는 정신력으로 일궈오던 문화의 잔재라는 생각도 한다. 그 때에는 인력을 투입한 만큼 성과물이 도출되는 산업이 주류를 이루었다. 


 하지만 지금의 성장은 무작정 인력을 투입하는 것이 아니라 인력의 수준이 업무를 감당할 수준이 되었을때 투입에 비례한다. 그 만큼 우리 사회의 산업이 고도화되었다. 그런데 산업의 고도화만큼 이를 운영하는 지식과 변화의 본질을 이해하는 속도는 매우 더디다. 이런 전환점에서 요구하는 사고와 과거의 경험을 무작정 현재에 도입하는 근거없는 용기가 많은 사람들을 소모적으로 활용하게 한다고 생각한다.


 나도 해외영업의 특성상 야근이 많다. 중동, 유럽등과의 시차는 오후시간부터 바쁜 이유가 되고, 미주와 이야기를 하려면 늦은 밤이나 이른 아침시간대에 시간을 바쁘게 쓸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업무환경의 특수성을 빼고, 야근을 하는 경우란 별로 없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야근에서 자유롭지 않다. 


 근로기준법에 따라서 야근, 특근, 철야에 따른 수당이나 추가적인 교통비의 지급도 일상과 먼 경우가 많다. 중소기업, 중견기업, 대기업, 외국인회사나 비슷하다. 이런건 어찌나 Koreanize가 잘 되는지 모르겠다. 제도와 일상의 차이만큼 우리 사회의 수준이 구시대적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극복해가는 과정이 현재가 아닐까? 우리나라에서 사람들의 인식과 의식수준이 얼마나 높아지는가가 결국 물질문명의 발달과 함께 균형잡힌 선진국이 되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왜 우리는 야근을 하는가? 

 이런 질문을 던지면 수 많은 하소연과 이런 저런 부당한 놈들에 대한 뒷담화가 만발한다. Work & Life의 균형이란 딴나라의 이야기다. 외국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수당의 지급은 조금 다르겠지만, 외국기업들의 팀장급들의 업무량을 보면 그들도 야근을 하는 것이 틀림없다. 어째던 왜 야근을 하는가? 나는 좀더 근본적인 이유를 생각해 보려고 한다.


 1) 야근을 하는 이유의 상당 부분은 리더의 무능때문이다.

   관리자란 하위 관리자를 부려먹는 것이 아니라 해당 조직이 해야할 일을 위해서 인력의 장단점을 배치하고 그 과정에서 그들이 잘 할 수 있는 업무를 통해서 보다 높은 성과와 성취, 동기부여를 이끌어야 한다. 그 속에서 조율과 균형을 맞추는 끊임없는 작업이 필요하기에 리더에게 좀더 높은 보상을 하고, 리더는 자신의 역량과 리더와 함께 하는 사람들의 역량에 기대어 상생한다. 이런 이상적인 말은 현실에서 깊은 빡침을 유도할 수도 있다. '이거 어느 나라 이야기인가요?'와 같이 말이다.


  현실에서 야근은 그 사람의 능력과 발전 단계를 넘어서는 일을 시키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게다가 그가 할 수 있도록 적절하게 지원을 하지 못하는 리더의 탓이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말해서 하는 놈이 무슨 잘못인가? 시킨놈이 잘못인가? 


 야근의 원인은 시킨놈의 판단이 직급상 더 큰 영향을 주고, 그 지시에 대한 책임은 당연히 상위 직급자의 몫이다. 쉽게 이야기해서 시킨데로 안하고 지맘데로 해서 망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그것까지 감안해서 시켜야한다. 그게 리더의 안목이다. 폼나게 상사는 한가하고 직원은 바빠야한다고들 한다. 하지만 해외 기업들의 팀장, 임원, 대기업의 임원들의 생활을 보면 한가하지 않다. 사실 그래야한다. 그들의 손에 몇 명의 삶이 달려있는데 노닥거리는가? 업무파악을 하지 못하는 상사에게 보고서를 쓰느라 자기 일을 늦게 남아서 하는 경험이 다들 있지 않을까한다. 업무숙련도를 위해서 일부러 시키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이런 상사는 많지 않다.  야근을 가장 많이 하는 리더의 등신력이 가장 큰 이유다.


 그렇지만 일시적인 업무의 증가, 사건사고의 대응, 교육적 차원의 단기간 숙련도 훈련은 존재하고 감수해야 한다. 일시성을 넘어 이를 방치하는 것 또한 리더의 무능을 증명하는 방법이다. 제일 재수없는 리더란 저는 땡돌이하면서 하위직급자들이 burn out되던 말던 살아가는 파렴치한 자들이다. 이들은 리더라기 보다는 기생하는 것일 뿐이다.


 이보다 좀더 그럴싸한 리더같지만 피곤한 형태가 있다. 자신도 할 줄 모르고, 하위직원들의 교육 프로그램을 지원하지도 않는다. 그러면서 남의 회사이 부러운 사항을 바라는 것이다. 쉽게 말해 내가 올림픽 금메달이 갖고 싶은데, 이걸 할 수는 없고, 하고는 싶으니 애꿎은 하위 직급자들에게 요구한다. 이 과정속에서 수 많은 사람들이 야근을 벗삼아 달빛보고 퇴근을 하게 된다. 


2) 야근을 초래하는 시스템, 이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대책

 야근이 일상화되면 발생하는 현상 중 하나다. 어차피 일찍 업무를 마감하면 다른 일을 더 시켜서 야근하고, 늦게하면 마무리를 하느라 야근하는게 일상이 되면 그렇다. 이때 황당한 리더(사실 리더 아니다)들의 코멘트중 정신나간 소리가 "우리는 불꺼지지 않는 열정있는 회사를 만듭시다"라는 말이다. 자발적인 열정이 솓아나 자신의 계발과 도전을 위해서 밤새일하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만연된 비효율의 시스템에 대응하는 직원들의 대책은 이렇게 발현된다.


 어차피 야근이니 정상근무시간의 업무집중도가 떨어진다. 야근은 다시 신체적 피로감을 양산하고 좀비와 같이 살짝 맛이간 생활이 연속된다. Work & Life는 구분이 없어진다. 국가가 백성을 이기지 못하는 것은 정부는 정책을 통해서 진행방향을 잘 설명한다. 국민들은 취사선택을 통해서 자신에게 이익이 되지 않으면 다른 대책을 만든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패를 다 보았는데, 이에 적절한 대응책을 만들어 가는 것은 인간에겐 생존본능이다. 리더가 정신을 못차리고 시스템의 효율과 비효율을 분별하지 못하고 방치할때 발생한다. 그러면 리더를 보면서 사람들은 "해도 지랄 안해도 지랄 하면 더지랄"이란 말을 서슴치않고 한다.


3) 리더는 분수를 모르고, 손금없는 자는 리더의 흥을 맞추다보니.....

 산업이 고도화 되면서 발생하는 일이다. 나사 돌리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작업은 아무나 할 수는 없지만 가능한 인력들이 존재한다. 아주 기가막힌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은 가능한 인력중에 없거나 극소수이다. 다르게 표현하면 초등학생 수준에서 풀 수 있는 문제가 있고, 박사급정도는 되야 풀 수 있는 문제가 있다. 사람의 잠재력을 폄하하지는 않지만, 당장 현안 문제의 수준과 이를 감당할 능력이 되는 인력을 배치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의사결정이다. 공짜 좋아하는 우리나라 문화가 인력문제에도 들어간다. 초등학생 수준인력에게 술한잔 사주고, 칭찬좀하고 동력학, 유체역학 시험문제를 주고 잘 해결해 보라고 한다. 잘 될일이 없다. 이런걸 폭탄돌리기나 차도살인의 계라고 해야한다. 어쩌다 신문기사에 나온 불굴의 의지를 갖은 인력이 항상 발생하지 않는다. 그래서 신문에 나는데 리더가 분수를 모르면 뜬금없이 근거없는 용기를 갖는다. 아무생각없이 손금없는 자들이 덥썩 이것을 물고 몇날 몇일 답안나오는 과정을 반복한다. 그러고 야근을 몇일을 했네, 일을 너무 많이 했네 하는 헛소리를 한다. 그런데 이걸 야근이라고 해야하는지 모르겠다. 하여튼 근로기준법으로 사무실에 늦게까지 앉아서 전기를 열심히 쓰면 야근이라고 하긴 해야겠다. 흠이라면 결과가 없어서 그렇지...


4) 그냥 일하기 싫어서 낮에 좀 놀았다

 자발적 태업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은 감성적 동물이다. 출근길에 맘에 드는 지나가는 사람을 보고 그냥 기분이 좋을 수도 있고, 누군가 내 발을 밟아 하루종일 기분이 나쁠 수도 있다. 기계는 전기꼽고 돌리면 평타를 한다. 그렇게 돌아가게 되어 있다고 설명서에도 써있다. 하지만 사람은 기분좋으면 한달할 일도 한번에 해결하는 확률(매우 낮긴하다)도 있고, 하루에 할 일도 한달, 일년이 되도록 안하기도 한다. 그렇게 기분이 나쁘거나, 그냥 오늘 좀 일하기 싫으면 대충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그러다 나의 일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독촉때문에 후회속에 야근을 하거나 마지못해 하면서 대충 발로비벼서 문제를 타인에게 던지기도 한다. 


5) 대충이란 결과가 낳은 나비효과

 장문의 보고서를 만들어왔다. 산만한 문장과 보고 내용을 줄여서 다시 보고하라니 대학생때 사용하던 기술이 들어왔다. 글씨 폰트를 줄이고, 줄간격을 줄여서 페이지를 반으로 만들어 왔다. 이렇게 리더를 빡치게 하는 기술은 결국 재앙으로 다가와 한참을 갈구는 사유가 된다. 


 모두들 시스템이란 개념을 담아낸 조직에서 생활한다. 이는 쉽게 말해서 이어달리기를 함으로 지속적인 속도를 유지하려는 인간의 지혜가 담긴 발명품이다. 그런데 시스템엔 흐름이 있다. 바통대신 다이너마이트를 건내주기 시작하면 시스템 전체에 문제가 발생한다. 


 대충해서 영업한 결과가 대충 연구개발하는 이유가 되고, 대충 연구개발한 결과가 제품이 아니라 한땀한땀 재작업을 해야하는 작품으로 공장에서 거듭난다. 다시 이거 어떤 녀석이 일거리를 갖고 왔는지 수소문을 하게 되고, 일거리를 갖고온자는 안된다고 말리지 해준다고 해서 열심히 판거 아니냐는 볼멘소리를 한다. 불똥튄 연구개발은 해야될 일인지 안되는 일인지 분별도 못하냐는 잔소리를 듣고, 영업이 잘 판단고 해달라고 아우성이니 안할 수가 없다고 변명한다. 생산하는 제조는 앞에서 똑바로 안하고 죄다 말도안되는 것을 공장에 갖고와서 시간과 인력을 낭비한다고 불평하지만,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잔소리를 면하기 어렵다. 이 과정속에서 문제점을 찾아서 해결하느라 누군가 야근을 한다. 


 무엇인가 성취감을 느끼는 과정속의 야근은 자신의 계발과 발전에 필요하다. 문제는 시간을 낭비하고, 사람을 불태워 재만 남기는 야근이다. 미래를 점치고 뛰어난 리더같은 제갈량 밑에서 일하는 것은 나도싫다. 쉴틈이 없기 때문이다. 농담으로 세종대왕 밑에서 일하던 집현전 학자의 태반이 과로사다. 이름이라도 오래 기억되는 야근과 과로속에 성취라도 있으니 다행이지 이도저도 없는 현대의 직장인들의이삶과 일의 균형을 찾는 것은 당연하다.


 나도 팀장이란 직책을 갖고 있으니, 늦게까지 일하는 팀원들을 보면 죄인임에 틀림없다. 늦게까지 일하라고 말한 적은 없다. 얼른 집에가서 쉬라고 말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렇다고 요즘 법꾸라지처럼 나는 면책이다라는 면죄부를 말하고자 하는 바는 아니다. 주어진 환경과 여건에서 합심해서 도전해 보는 과정에서 종종 야근이 발생한다. 그렇다고 그들의 개인생활에 영향이 가는 것은 최대한 지양하려고 노력은 한다. 해석의 팀원들의 몫이지 나의 노력이 꼭 그러한 결과가 일치한다고 할 수 없다. 


 대신 내가 야근이 발생하는 것에 대해서 보답할 수 있는 것은 이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아는 바를 그들에게 모두 전달함으로 내가 없어도 그들이 잘 운영할 수 있는 실력배양을 도와주는 것이다. 당장 수당, 인센티브도 중요할 수 있지만 이는 내 권한밖의 의사결정일 때가 많다. 물고기를 잡는 법, 내가 아는 것이 비록 부족할 수도 있지만, 그들의 방법과 나에게서 갖고 간것을 합쳐서 더 나은 사람들이 되길 바란다. 좋은 리더가 되려면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 예전에 공부해서 남주냐면 공부하라던 어른들이 말이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공부해서 남줘야한다. 많이 줄 수도록 많이 남는게 삶의 영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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