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은 프랑스령 알제리의 오랑이라는 도시에서 1940년대 4월의 어느 날 창궐하여, 다음 해 2월의 어느 날 종식된 페스트에 대항한 시민들의 연대기이다.
페스트가 발병한 도시에서는 커다란 사건들이 발생했을 것이다. 하지만, 개별의 사건들을 극적으로 조명하기 보다는 페스트에 대응하는 각 집단의 반응들을 매우 차분한 어조로 기술하고 있다. 소설 속에 기술된 내용을 그대로 발췌하여 정부, 의료진, 일반 시민으로 나누어 늘어놓고 보면, 마치 소설이 아닌 예언서처럼 정확히 현재의 COVID-19 시국을 꿰뚫어 보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정부
병이 저절로 멈추지 않을 경우 병을 멈추게 하려면 법률에 규정된 대로 엄격한 예방 조치를 취해야 하고, 그러려면 그 병이 페스트라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인정해야 하는데, 그 점을 절대적으로 확신하지 못하는 이상 결과적으로 신중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상황을 정리하려고 했다.
벽보에서 당국이 사태를 직시하고 있다는 증거를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엄격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여론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생각에 많은 것을 포기한 것 같았다. 실제로 포고문의 머리말은 다음과 같이 알리고 있었다. 전염된다고는 아직 말할 수 없지만 오랑 시에 악성 열병이 몇 건 발생했다. 그 사례들이 실제로 우려할 만한 특징적 증상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당국은 시민들이 냉정을 잃지 않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중을 기하기 위해, 그리고 모든 시민들이 이해해주리라 생각하고, 도에서는 몇 가지 예방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시민들이 이해하고 협조해준다면, 이 조치들로 전염병의 위협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도에서 쏟는 이러한 노력에 시민들이 적극 협조해주리라는 것을 도지사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도지사는 자기 말대로 모든 책임을 지기로 하고 그다음날부터 이미 공표한 조치들을 강화하기로 결정했다. 환자를 의무적으로 신고하고 격리하는 조치는 여전히 계속되었다. 환자가 발생한 집은 폐쇄하고 소독했으며, 가족들은 안전 격리 조치에 따라야 했다. 매장은 향후 결정될 조건에 따라 시 당국이 맡아 하기로 했다.
어쨌든 불만은 계속 늘어갔으며 당국은 최악의 사태를 우려하고 재앙 때문에 억류된 시민들이 폭동을 일으킬 경우에 대비하여 대응조치를 신중하게 검토한 것도 사실이었다. 신문에 포고문이 공표되어, 외출금지령을 거듭 강조하면서 위반하면 징역형에 처한다고 위협하고 있었다.
의료진
동정심이 아무 소용이 없게 되면 동정하는 것도 피곤해지는 법이다. 몹시 힘들게 보낸 날들을 유일하게 위로해주는 것은 그의 마음이 서서히 닫히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그러면 임무가 수월해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기뻤다.
그는 자신의 감정을 통제할 수 없었다. 대개의 경우 긴장된 채 딱딱하게 메말라 있던 감성이 이따금 풀어지면서 그는 더 이상 통제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이곤 했다. 대비책이라고는 그 딱딱한 상태 속으로 피신해 자기 안에 형성되어 있던 매듭을 더욱 조이는 것뿐이었다. 그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계속 견딜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게다가 그는 환상도 많지 않았고, 또 여태까지 품고 있던 환상마저 피곤해서 다 잃어버리고 말았다.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그런 시기에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은 더 이상 병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역할은 진단하는 것이었다. 그의 일은 발견하고, 보고, 기록하고, 등록하고, 그런 후에 선고를 내리는 것이었다. 환자들의 아내들이 그의 손목을 붙잡고 울부짖었다. “선생님, 좀 살려주세요!” 그러나 그는 살리기 위해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격리 명령을 내리기 위해 있었다. 그때 사람들의 얼굴에서 증오심을 읽었다고 한들 그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어느 날 누군가 그에게 “인정이 없군요”라고 말했다. 천만에, 그는 인정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그 인정 때문에, 살기 위해 태어난 사람들이 죽는 광경을 매일 스무 시간씩 참아낼 수 있었다. 그 인정 때문에 매일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 그에게는 다시 시작할 수 있을 만큼의 인정밖에 남지 않았다. 그 정도의 인정을 가지고 어떻게 사람의 생명을 살리겠는가?
일반 시민
재앙은 인간의 척도로 이해되지 않는다. 그래서 인간들은 재앙을 비현실적이고 곧 지나가버릴 악몽에 불과한 것으로 여긴다. 재앙이 지나가버릴 때도 있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악몽에서 악몽으로 이어지는 가운데 사라지는 쪽은 사람들, 누구보다도 인본주의자들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미리 대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시민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잘못한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겸손해야 한다는 것을 잊고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자기들에게는 여전히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생각은 재앙이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었다. 그들은 계속 사업을 했고, 여행 준비를 했고, 제각기 의견을 갖고 있었다. 미래와 여행, 토론을 금지하는 페스트를 그들이 어떻게 상상할 수 있었겠는가? 그들은 자유롭다고 믿었지만, 재앙이 존재하는 한 그 누구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그 순간부터 페스트는 우리 모두의 문제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때까지 시민들은 이 이상한 사건 때문에 놀라고 불안해하기는 했지만 평소 하던 대로 자기 자리에서 맡은 일을 그대로 했고, 아마 계속해서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시의 출입문이 봉쇄되자, 서술자를 포함해 모든 시민들이 똑같은 난관에 봉착했으며 알아서 적응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해서 예컨대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같은 개인적인 감정이 초반 몇 주부터 갑자기 모든 사람들이 공유하는 감정이 되었고, 그 오랜 유배 기간 동안 공포심과 더불어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주된 감정이 되었다.
시내에서도 피해가 극심한 구역의 출입을 통제하고 직무상 불가피한 사람 외에는 구역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는 조치가 내려졌다. 그때까지 그 지역에 살던 사람들로서는 그것이 자기들을 골탕 먹이려고 내린 가혹한 조치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자기들과 비교해 다른 지역 주민들은 모든 면에서 자유민이라도 되는 것처럼 여겼다. 반면에 다른 지역 주민들은 힘든 순간에도 자기들보다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에 위안을 얻었다. 당시에 희망을 하나 품을 수 있다면, 그것은 ‘언제나 나보다 자유롭지 못한 사람이 있다’는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었다.
시민들은 자기들을 친밀하게 만들어주는 따뜻함을 절실히 필요로 하면서도 서로에 대한 불신 때문에 그 따뜻함을 마음껏 누리지 못하고 멀어지고 있다. 이웃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이웃 사람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페스트를 옮길 수도 있고 방심한 틈을 타 감염시킬 수도 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더 기다려야 했다. 그러나 너무 오래 기다리면 기다리는 것을 포기하듯이, 시민들은 하나같이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고 살아가고 있었다.
(BOOK : 2021-049-02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