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채널’이란 잡지에 ‘연인 장사’를 주제로 한 인터뷰 기사가 실린다.
제목은 ‘이런 저런 유혹으로 돈을 번다. 연인 장사를 하는 여자들의 본심 좌담회’.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인터뷰에 응했던 여자들이 하나씩 사망하기 시작한다.
‘연인 장사’는 요즘의 ‘로맨스 스캠’과 비슷하다. 작가의 입을 그대로 빌리자면 이런 형태다.
“당신 친구한테서 소개를 받았는데, 한번 뵐 수 없을까요? 여자 쪽에서 이런 말을 하는 건 뻔뻔스럽다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지만, 아주 좋은 분이라고 들어서요. 지금 특별히 사귀는 분이 안 계시다면 친구가 되어 주실 수 없을까요?”
“너도 처음에는 경계하지. 친구 누구한테 소개를 받았냐고 물을 거야. 여자의 목소리는 웃으며, 비밀로 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고 하는 거야. 그리고 몇 번이나, 몇 번이나 전화가 와. 네가 피곤하고, 이야기 상대가 필요하고, 혼자서 차갑게 식은 저녁을 먹고 있을 때에. 어느 날 드디어, 넌 꺾이게 되지. 여자와 만날 약속을 해. 한 번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어차피 한가하고, 상대방은 여자니까, 하고.”
“생각도 못했는데, 나온 여자는 멋진 미인이었어. 처음 만난 사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허물없이 굴고, 밝고, 이야기도 잘해. 널 만나서 정말 기쁜 것 같아 보여. 너도 기뻐지겠지. 그녀와 사귀기 시작해. 처음에는 영화를 보러 가거나 산책을 하거나, 도시락을 들고 드라이브를 하지. 물론 돈은 전부 네가 내. 상대방은 숙녀니까. 그리고 넌 그녀를 좋아하게 돼. 무리도 아니지. 미인이고 밝고, 무엇보다도 정말로 너한테 반해 있는 것처럼 보이니까.”
“어느 날, 그녀는 초대권 두 장을 들고 데이트를 하러 와. 이런 걸 받았는데 가 보지 않을래요? 그건 모피와 의류의 특별 전시회일 수도 있고, 보석점의 할인 우대권일 수도 있어. 넌 그녀와 팔짱을 끼고 나가겠지. 행사장에는 똑 같은 커플이 많이 와 있고, 진열장을 들여다보거나 판매원과 웃으며 이야기를 하고 있어. 그녀는 여러 가지 것들을 갖고 싶어 해. 하지만 비싸네, 하며 한탄하지. 카드를 쓰지 그러십니까? 판매원이 이렇게 권해. 그녀는 그렇게 하고, 그리고 너한테 부탁하는 거야. 내 것만으로는 한도가 모자라는데 이름이라도 좋으니까 빌려 주지 않을래요? 아니면, 제가 그럴 마음이 들어서 그녀에게 선물하려고 할지도 몰라. 왜냐하면 그녀는, 네게 있어서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여자니까.”
“그녀가 말해. 전 금융 회사에서 일하는데, 할당량이 너무 많아서 곤란해요. 특히 지금은 캠페인 기간 중이라서, 성적이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면 감봉되거든요. 절 돕는다고 생각하고 명의 좀 빌려 주지 않을래요? 절대로 폐는 끼치지 않을게요. 아니면 이런 걸까? 증권 회사에 제가 아는 사람이 있는데, 두 번 다시 없는 좋은 정보를 얻었다면서 투자를 권하고 있어요. 당신도 해 볼래요? 절대로 손해 보지는 않을 거래요. 돈이 생기면 둘이서 해외여행 가요. 아니면, 리조트 클럽의 회원권을 파격적인 가격으로 살 수 있다고 하는 거야. 전매하면 당장 수십만 엔의 이익이 나온다면서. 넌 달콤한 꿈을 꾸며, 저금을 털어 그녀에게 건네지. 그녀는 몹시 감사하고 기뻐하며, 네게 키스 정도는 해 줄지도 몰라.”
“그리고 그게 끝이야.”
“전화가 갑자기 걸려 오지 않게 돼. 전화를 해도 받지 않고. 가끔 받을 때가 있어도, 그녀는 쌀쌀맞아. 데이트를 하자고 해도 거절하지. 심할 때는 그녀의 전화를 다른 남자가 받아. 목소리만 들어도 네가 얼어서 팬티에 오줌을 지릴 것 같은 남자의 목소리야. 넌 고민하지. 그녀와 알게 되기 전보다 더 고독해져. 그리고 그 무렵, 우편함에 첫 번째 독촉장이 날아드는 거야.”
“그녀에게 사준 보석, 모피 코트, 명의만 빌려 준 줄 알았던 회원권. 네 월급이 반년 치는 충분히 날아갈 숫자가 씌여 있지, 그제야 간신히 깨닫는 거야. 그녀는 장사를 하고 있었다고 말이야.”
“넌 바보였어. 세상 물정 모르고 무방비했어. 흑심을 품은 대가를 치러야 했지. 그리고 그녀는, 너와 동시에 다른 몇 사람이나 되는 너 같은 남자들을 조종하고 있었어. 바보짓을 한 건 너 한 사람이 아니지. 그 말이 맞아. 하지만 아무리 바보고 무지하고 사람 좋아도, 꿈을 꿀 권리는 있어. 그리고 꿈은 돈으로 사는 게 아니야. 하물며 억지로 팔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알겠니? 너한테 기대어 온 여자는 그 최소한의 원칙조차 무시하고 있었던 거야. 그녀의 머리에 있었던 건 네가 바보고, 사람 좋고, 쓸쓸하다는 것뿐이었어. 어느 정도까지는 그녀를 만족시켜 줄 수 있을 만한 돈은 가지고 있다는 것뿐이었다고.”
그녀들의 사기에 당한 한 순진한 남자가 자살을 한다. 여기까지는 으레 일어날 법한 사건이다. 그런데, 그녀들의 사업에 문제가 발생한다. 자살한 남자는 최면 요법의 전문가의 수제자였던 것이다. 스승은 복수를 결심한다. 최면을 통한 자살 유도로 완전 범죄를 계획하고, 실행한다.
최면을 통한 자살 유도라…
꽤 흥미로울 수 있는 소재이긴 하다.
하지만, 어린 시절에 보았던 그 드라마와 비교하면 새 발에 피라는 속담이 딱 들어 맞는다.
죽어서 관 속에 누워있는 사람도 최면으로 불러내는 판국에, 살아있는 사람을 최면으로 관 속으로 보내버리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이랴.
기억을 더듬어 인터넷을 찾아보니, 1980년에 지금은 없어진 TBC에서 방영했던 ‘형사’라는 드라마의 납량특집 에피소드였다고 한다.
친구의 아내를 짝사랑하게 된 한 남자가 그녀를 차지하기 위해 일주일에 한 번씩 자기를 찾아오게 최면을 건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교통사고로 죽는다. 문제는 최면이 풀리지 않은 채 죽었고, 죽은 뒤에도 그녀가 여전히 그 남자를 찾아온다는 것이다. 서서히 썩어가는 육신을 질질 끌면서…
그런데, 1980년에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나는, 그것도 TBC 방송은 잡히지도 않던 대전에서 살던 나는 어떻게 그 드라마를 기억하고 있는 것일까?
(BOOK : 2022-002-0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