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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머 씨 이야기

[도서] 좀머 씨 이야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저/장 자끄 상뻬 그림/유혜자 역

내용 평점 3점

구성 평점 3점

한 소년이 자살을 결심한다. 피아노 선생님에게 크게 꾸지람을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를 그렇게 혼란스럽게 만들고, 오한이 날 정도로 몹시 흥분하게 만들었던 것은 미스 풍켈 선생님의 난리 법석이 아니었다. 매맞을 것과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감금이 무서워서 그랬던 것도 아니었다. 뭔가를 두려워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런 것들보다는 이 세상 전체가 불공정하고 포악스럽고 비열한 덩어리일 뿐 다른 아무것도 아니라는 분노에 찬 자각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못된 개의 잘못은 또 다른 문제였다. 모든 것이 다 문제였다. 어떤 것에 대한 예외도 없이 모든 것이 다 그랬다. 우선 제일 먼저 내게 맞는 자전거를 사 주지 않은 우리 어머니가 원망스러웠고, 어머니를 그렇게 하도록 만든 아버지가 그랬으며, 선 자세로 자전거를 타야 되는 내 모습을 보면서 몰래 나를 비웃었던 누나와 형들도 마찬가지였다. 나를 구역질나게 만들었던 하르트라움 박사님 댁 개의 똥도 그랬고, 호숫가 길을 꽉 메워 나를 늦게 도착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던 산보객들도 그랬다. 푸가 형식으로 나를 괴롭히고 모욕스럽게 만든 작곡자 헤쓸러도 그랬다. 말도 안되는 억지로 내게 누명을 뒤집어씌우고, 올림 바음 건반 위에 구역질 나는 코딱지를 붙여 놓은 미스 풍켈 선생님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내가 딱 한번 필요로 하였을 때 도와줄 것을 간청하였건만 비겁하게 침묵을 지키고 있다가, 어긋난 운명의 수레바퀴가 돌아가는 모양만 지켜 보았을 뿐 다른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세상 사람들이 자비롭다고 하는 하나님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잘못되기를 바라는 그런 모든 것들에게 의리를 지킬 필요가 무엇이란 말인가? 이런 세상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그토록 비열한 세상에서 노력하며 살 필요가 없지 않겠는가? 나말고 다른 사람들이나 그런 못된 악에 질식해 버리도록 두는 편이 더 낫지 않겠는가? 그런 사람들이나 잘 먹고 잘해 보라지! 나를 포함시키지는 말고 말이다! 나는 앞으로는 결코 그 사람들이랑 같이 어울리지 않으리라! 이 세상에 작별을 고하리라! 내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버리고 말겠다! 그것도 지금 당장!』

 

한 남자가 아무도 없는 호수에 걸어 들어가 자살을 한다. 그 남자의 이름은 좀머…

『호수를 중심으로 사방으로 적어도 60킬러미터 내에서는 남자든 여자든 아이든 심지어 개까지도 늘 걸어다니기만 했던 좀머 아저씨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이른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좀머 아저씨는 그 근방을 걸어다녔다. 걸어다니지 않고 지나는 날이 일년에 단 하루도 없었다. 눈이 오거나, 진눈깨비가 내리거나, 폭풍이 휘몰아치거나, 비가 억수로 오거나, 햇빛이 너무 뜨겁거나, 태풍이 휘몰아치더라도 좀머 아저씨는 줄기차게 걸어다녔다. 바다에 쳐 놓은 그물을 거두려고 새벽 4시에 배를 타고 일을 나가던 어부들이 해가 뜨기도 전에 집을 나서던 그를 만나기가 일쑤였다고 한다. 그렇게 나간 그는 달이 하늘 높이 떠 있는 늦은 밤에야 집으로 돌아오곤 하였다. 그가 돌아올 때쯤 그가 하루 종일 걸어다닌 길은 엄청난 거리가 되었다. 호수의 주변을 한바퀴 돌면 약 40킬로미터쯤 되었는데 그 거리를 하루에 걷는 것은 그에게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루에 두세 번 군청 소재지까지 갔다 오기도 하였는데 그러면 갈 때 10킬로미터, 올 때 10킬로미터나 되는 거리가 좀머 아저씨에게는 아무 문젯거리도 되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가 아침 8시에 여전히 잠에서 덜 깬 모습으로 학교에 갈 때면 벌써 몇 시간 전부터 걸어다니고 있는 기운찬 모습의 그와 종종 마주칠 수 있었다. 점심 때쯤 지친 발걸음으로 집을 향해 갈 때면 어느새 그가 나타나 활발한 걸음으로 우리들을 앞서서 걸어가곤 하였다. 그리고 저녁에 잠자리에 들기 전에 창문 밖을 쳐다보면 호숫가에 그의 깡마른 모습이 그림자처럼 나타나 서둘러 앞으로 걸어가고 있는 것을 나는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정작 그가 어디를 그렇게 다니는 것인지? 그러한 끝없는 방랑의 목적지가 어디인지? 그리고 무엇 때문에 그가 그렇게 잰 걸음으로 하루에 열 둘, 열 넷 혹은 열 여섯 시간까지 근방을 헤매고 다니는지,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이상한 일은 그에게 아무런 볼일이 없다는 것이었다.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않았으며, 아무것도 사지 않았다. 배낭은 버터 빵과 우비를 빼고는 늘 비어 있었다. 우체국에 가는 일도 없고, 군청에 가는 일도 없이, 모든 일은 자기 부인에게 다 일임하였다. 누구를 방문하는 적도 없고, 어디로 가서 잠시라도 머무는 일도 없었다. 시내로 가면 무엇으로 요기한다거나, 최소한 목이라도 축이려고 어디든 들어가는 일도 없었고, 정말로 그는 벤치에 단 몇 분이라도 앉아서 쉬지도 않은 채 그대로 선 자세로 돌아서서 집이나 어디 다른 곳을 향해 다시 걸었다. 사람들이 그에게 어디에서 오는 중인지를 묻는다거나 어디를 가느냐고 물으면 그는 마치 콧잔등에 파리라도 앉아 있는 것처럼 마지못해 고개를 가로지으며 뭐라고 혼자말을 중얼거리곤 하였는데, 그 말은 불과 몇 마디를 제외하고는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이었다. 예를 들자면, <…아주바빠서이제학교 뒤산을 올라갔다가… 호수를빨리빨리지나서… 오늘아직시내에도꼭가보아야하고… 너무바빠서지금당장너무바빠시간이없어…>, 그렇게 말해 놓고는, 사람들이 그게 무슨 말이냐고 어디를 간다고 했느냐고 반문이라도 할라치면 그는 어느새 지팡이의 직직 끌리는 소리를 앞세우며 그 자리에서 멀리 사라져 버리곤 하였다.』

 

좀머 아저씨의 죽음을 소년은 숨을 죽이고 지켜 보았다. 하지만, 그의 죽음에 대해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내가 어째서 그렇게 오랫동안 또 그렇게 철저하게 침묵을 지칠 수 있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은 두려움이나 죄책감 혹은 양심의 가책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나무 위에서 들었던 그 신음 소리와 빗속을 걸어갈 때 떨리던 입술과 간청하는 듯하던 아저씨의 말에 대한 기억 때문이었다.

그러니 나른 좀 제발 그냥 놔두시오!”

나를 침묵하게 만들었던 또 다른 기억은 좀머 아저씨가 물 속에 가라앉던 모습이었다.』

 

한 작가가 있다.

누구에게도 자신의 사생활을 언급하지 않는다. 그의 사생활을 언급하는 지인은 그로부터 절교 선언을 듣게 된다. 인터뷰와 사진 촬영을 기피하며 심지어 문학상 수상자에 지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공개석상에 나타나는 것을 꺼려 수상을 거부하기도 한다. 하지만, 친구나 지인들 앞에서만큼은 어느 정도의 공개 행동을 하기도 한다.

 

한 독자가 있다.

작가의 까탈스러운 성격 때문에 책이 아무리 어려워도 그 흔한 해설 하나 구해서 읽어 보기가 어렵다. 하지만, 그럭저럭 읽은 소설의 내용을 자기 맘대로 해석하고 이해해 보려고 노력해 보는 것만으로 만족스럽다. 작가가 맘에 들지 않으면 더 이상 읽지 않으면 그만일 뿐, 책 몇 권 읽었다고 알량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애독자가 할 일은 아니니까.

 

(BOOK : 2022-004-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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