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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담형 인간

[도서] 민담형 인간

신동흔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제목: 민담형 인간
지은이: 신동흔
출판사: 한겨레출판
출판년: 2020년 5월 8일 초판 1쇄 발행


Yes24 리뷰어 블로그를 보던 중 발견하고 신청한 책.
처음에는 제목만 보고 요즘(이라기엔 좀 됐지만) 많이 발행되는 아침형 인간, 뭐뭐형 인간 하는 식의 자기계발서 류인 줄 알고 무심코 넘겼다.
하지만 두 번째 봤을 때는 아무래도 '민담형'이라는 게 흥미를 끌었고, 다시 자세히 살펴보니 저자가 신동흔 교수님이었다!

신동흔 교수님은 내가 대학 시절 처음 알게 되었다.
당시에는 '그러고보니 그리스로마신화나 북유럽 신화(그때도 난 북유럽 신화를 매우 좋아했다), 이집트 신화 같은 건 내용도 풍부하고 재밌는 게 많은데 한국 신화는 끽해야 단군신화나 건국신화 밖에 없는 건가?' 하고 알못의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무렵 서점에서 마침 <살아있는 우리 신화>라는 책을 발견해 처음으로 우리 신화를 접하고 우리 신화 또한 다른 나라의 것 못지 않게 다채롭고 매력적이라는 걸 처음으로 알게 되었던 것이다.

아무튼, 그 후로 난 다른 대학으로 관련 수업을 청강할 정도로 우리 신화에 푹 빠져 있었다.
하지만 민담은 영 내 관심분야가 아니었다. 당시 신화를 '덕질'하며 만난 친구는 신화 보다는 민담이나 전설을 훨씬 흥미로워 했지만, 난 신화가 더 좋았던 것이다.
비장하고 장엄한 신과 영웅들의 이야기!
그에 비해 민담은 뭔가 어이없고 생뚱맞고, 바보같은 이야기들이 많다고 느껴왔다.
아니면 터무니없이 잔혹하거나.

하지만 이 책은 예전에 <살아있는 우리 신화>가 내 한국 신화에 대한 세계를 넓혀 주었던 것처럼, 내가 민담을 보는 방식을 바꿔 주었다.
그냥 동화같고 신기하고 우스운 이야기 혹은 이유를 알 수 없는 야만적이고 잔인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민담이 자유를 추구하고 용기를 불어넣는, 삶의 지혜를 담은 이야기가 된 것이다.

<살아있는 우리 신화>도 굉장히 다정하고 친근한 문장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이 <민담형 인간>의 문장은 그야말로 민담처럼, 바로 옆에서 누군가 이야기해 주는 것을 듣는 것마냥 생생한, 거의 구어체에 가까운 문장으로 된 책이다.
그 덕분에 더 술술 읽히기도 하고, 작가와의 거리도 한층 가까워진 느낌이다.
이 교수님 책을 읽을 때마다 내적 친밀감이 수북하게 쌓이는 건 아마 그 때문이겠지?

책은 다양한 사례나 이야기를 소개하고 그에 대한 설명(주로 작가의 해석으로 이루어진)을 덧붙이는 형식인데,
초반에는 요즘 유행하는 펭수나 내가 좋아하는 디즈니(에서 각색한 동화들)을 언급해 순식간에 책에 훅 몰입하게 된다.


신화와 전설 등을 좋아하는 입장에서 디즈니 등의 장편 애니메이션을 볼 때는 역시 그런 쪽을 대입해 생각하게 되는데,
디즈니는 대체로 기존의 동화를 재해석한 혹은 재현한 작품을 많이 내는 탓인지 굉장히 민담에 가까운 작품들을 낸다.
하지만 개중에 신화와 전설에 가깝다고 느낀 작품이 셋 있다고 여겨지는데,(애초에 신화를 소재로 한 헤라클레스와 전설을 소재로 한 뮬란을 제외한다면)
메리다와 마법의 숲, 모아나, 겨울왕국2가 그것이다.
메리다의 이야기는 전설이라는 느낌이 크다면, 모아나는 신화(마우이, 테 피티 등의 서사)와 전설(모아나)이 뒤섞인 것 같다.
한편, 겨울왕국2는 조금 더 색다른데, 디즈니가 처음으로 창조해 낸 신화이기 때문이다.
메리다와 모아나는 전설적인 왕과 족장들의 이야기로, 신화적인 요소는 기존에 존재하던 지역 신화를 차용했다.
하지만 겨울왕국2는 어떻게 봐도 전설적인 왕이 된 안나와 인간 혹은 반신에서 완전한 신으로 탈바꿈한 엘사의 이야기로, 디즈니가 만들어 낸 신화적 서사인 것이다.

여담으로 , 이제까지 내가 본 것 중 가장 신화적인 애니메이션은 드래곤 길들이기 1이었다.
내용은 전설적 서사이지만, 용들이 구름 뒤에서 싸우는 모습을 비롯한 자잘한 요소요소가 마치 자연 현상을 어떻게든 해석해보려던 고대인들의 신화적 사고, 신화적 상상력과 가장 닯았다고 느껴졌던 것이다.


아무튼 이 책의 초반부터 디즈니가 언급되어서인지, 이 책을 읽으며 내내 '민담형 인간'에 내가 아는 캐릭터들을 대입해보게 되었는데,
역시나 디즈니의 주인공 캐릭터들은 대체로 민담형 인간인 것 같다. 거의 예외 없이.
거침없이 자신의 길을 가는 당당한 캐릭터들.


위에 언급한 것처럼, 이 책은 작가의 해석과 주관이 굉장히 많이 녹아있는 책이다.
작가는 민담형 인간을 굉장히 좋아해서, 책에 소개한 민담형 인간들을 열심히 옹호하고 변호하고 응원한다.
그 중에서도 내게 특히 감동을 줬던 건 다음이었다.
다들 알 만한 주인공을 잠깐 훑어본다. 먼저 백설공주. 그는 완연한 행동파다. 숲속에서 사냥꾼에게 간을 뺏기고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온 힘을 다해서 살려달라고 간청하며, 혼자 남겨진 거친 숲속을 뛰고 또 뛰어서 난쟁이 집을 찾아낸다. 난쟁이 집에 들어가 음식을 맛보고 침대에 누워서 잠을 자며, 이후 그 집의 살림을 맡아서 챙긴다. 노파로 변장한 왕비가 찾아오자 그는 문을 열고, 열고, 또 연다. 회피하지 않고 직면하는 사람. 그가 백설공주였다. 그 결과로 거듭 쓰러져서 목숨을 잃는 지경에 이르지만, 그는 그렇게 자기 삶을 산 것이었다. 설령 되살아나지 못했다 하더라도.
또 다른 유명한 주인공인 신데렐라(아센푸텔) 또한 행동파였다. 사람들은 신데렐라가 가만히 앉아서 왕자님을 기다린 것으로 생각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신데렐라는 늘 움직이며 일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나아가 길을 찾는 사람이었다. 주변 사람들이 모두 가당치 않게 생각했음에도 그녀는 기필코 무도회에 간다. 그리고 왕자와 춤을 춘다. 그녀가 화려한 인생 역전을 이룬 일은 8할이 그녀 자신의 덕분이었다고 봐야 한다.
<p.62-63>
이제껏 수동적이고 온건하고 어리고 나약한, 순수한 게 아니라 나이브하고 세상 경험이 없는.
장점이라곤 예쁜 얼굴과 혈통, 할 줄 아는 거라곤 집안일과 노래(이건 디즈니의 탓이 100%다) 뿐인
유순하고 참고 또 참고 답답할 정도로 참는 여성.
이게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백설공주와 신데렐라의 이미지인데, 이들을 이렇게 생명력 넘치고 자신의 삶에 충실한 이들로 해석하다니!

사실 내게는 요즘 많이들 나오는 '동화 비틀어 보기', 혹은 '주체적인 여주인공으로 동화 속 공주 재해석하기'보다 훨씬 더 와갛고 감동적이었다.
공주들이 딱히 기존에 없던 모험을 하고 빌런을 무찌르고 대단하게 똑똑하고 목소리가 큰 캐릭터로 급격한 변신을 하는 걸로 그들의 주체성과 생명력을 증명해야 하는 게 아니라,
그 존재 자체를 온 몸으로 삶을 살아가는 존재들로 본 것이다.



책에서는 다양한 민담형 인간에 대해 고찰하고, 소설형 인간과 계속해 비교하고 있다.
이 민담형 인간, 소설형 인간과 비슷한 또 다른 비유로는, 좀 더 익숙하게 '돈키호테형 인간'과 '햄릿형 인간'이 있을텐데, 아마 이 햄릿형 인간은 소설형 인간 중에서도 극단에 치우친 타입일 것이다. 돈키호테형 인간이 민담형 인간의 극단인지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해 보아야 하겠지만. (저자에 따르면 민담형 인간은 (트릭스터가 아닌 이상) 그보다 더
필요한 '행동'을 할 줄 모른 채 생각에 갇혀 고뇌하고 통곡하는 사람, 나는 이런 사람을 '소설형 인간'이라고 부른다. 소설 속에 이런 인간형이 전형적으로 많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세상의 크나큰 부조리와 폭력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 이미 정해진 절망 앞에서 움직여보지도 않고 주저앉는 사람. 갖은 논리와 변설로 그 부조리를 너무나 생생하게 설파하는 사람. 루카치George Lukacs와 골드만Lucien Goldman은 그런 소설적 주인공을 일컬어 '문제적 개인'이라고 했거니와, 이거 진짜로 문제적인 것은 아닐까?
<p.48>
나는 과연 어떤 유형의 사람일까? 사실 고민할 것도 없다. 난 극단적 소설형 인간이기 때문이다.
사실 요즘 내가 너무 겁쟁이가 된 건 아닐까, 생각만 많고(그나마도 지레 겁에 질린 걱정들이나 일어나지 않은 불행한 상황에 대한 생각들 뿐 쓸모 있는 생각은 거의 없다) 행동하지 않게 된 건 아닐까, 이렇게 인생을 허비만 하다 끝나는 건 아닐까 싶어 고민이던 차였는데(이것 마저 '고민'을 하고 있단 면에서 난 정말로 빼도박도 못 할 소설형 인간이다!) 이 책을 읽고 왠지 용기가 좀 생겼다.
트릭스터처럼 자유분방하게 세상을 휘젓진 못해도(사실 그 정도까지 가고 싶은 생각도 없다), 적어도 장화신은 고양이처럼 내 삶을 용맹하고 거침없이 뚫고 나갈 수는 있지 않을까!
내 마음속의 고양이에게 장화를! 이왕이면 튼튼한 가죽 장화로!
<p.153>



**책에 슬쩍 지나가는 부분인데, 내겐 더할 나위 없이 흥미롭고 감탄스러웠던 부분.
그렇다! 해외에서 온 이주민들을 대상으로 설화 구술 채록을 하다니! 정말 여러모로 효율적이고 현명한 방법이다!
이 자료의 공개가 매우 기다려진다.
나는 제자들과 함께 해외에서 온 이주민들을 대상으로 모국 설화 구술 채록을 진행해서 천 편 이상의 설화 자료를 모았으며, 최종 보고와 자료 공개를 앞두고 있다.
<p.178>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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