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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 인코그니타

[도서] 테라 인코그니타

강인욱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제목: 테라 인코그니타 

지은이: 강인욱 

출판사: 창비 

출판일: 2021년 1월 15일 초판 1쇄 발행 

가볼 곳 
박물관 3층 :
 최초의 서양인 흔적인 샤오허의 유물은 우리나라의 국립중앙박물관 3층에도 있다. (p.86) 

인스타에서 서평 이벤트를 보고 신청해 받은 책. 

원래는 몇 주 전에 서평까지 다 써서 올려야 했지만... 그간 좀 많이 아팠기 때문에 늦어지고 말았다ㅠㅠ 

아무튼, 서평단을 신청한 이유는 '강대국 문명 중심의 역사관에서 배제된 미지의 땅'에 대한 책이라는 소개에 관심이 갔기 때문이다. 특히 얼마 전 중동 쪽의 역사, 특히 서구 유럽이 '암흑시대'를 겪던 중세에 찬란하게 발달했던 과학과 의학, 예술과 문화에 관심을 갖고 책을 찾아보고자 했으나 현대 이슬람의 문제에 대한 책만 잔뜩 있을 뿐 중동의 역사에 대한 책은 매우 적고, 있다고 해도 단편적인 서술이 스치듯 나오거나 거의 오스만 제국 이후에 치우친 역사서들 뿐이라 실망했던 기억이 있는 나에게, '강대국 중심의 역사에서 배제된 미지의 땅'이란 소재는 매우 흥미로울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이유로 신청한 서평단에 고맙게도 당첨되어 받아본 책은, 목차부터 재미있었다. 

거기다 유익하고 생각할 거리도 많은 책이었고. 

흉노의 후예를 자처했던 신라에서 통일신라를 거쳐 고려시대에 이르면서 국제화는 더욱 심화되었다. 고려는 적극적으로 서역인들의 귀화를 장려했고, 그들은 고려에 와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며 우리의 삶에 함께했다. 
p. 85 

그랬던 게 조선시대에 오면서 소중화를 자처하며 외국인을 배척하고 단일민족을 주창하기 시작했고 점차 한반도에서 서양인 계통이 사라졌다고 한다. 그리고 그렇게 외국인을 배척하는 습관은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는데, 거기에 문화 사대주의 사상까지 겹치며 인종차별로 진화했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약 3000년 전의 유적인 정선 아우라지의 석관묘와 2500년 전의 유적인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에 위치한 황석리 고인돌에서 발굴된 인골에 서양인 계통의 흔적이 있다는 주장도 있다. 아직은 믿을 만한 증거는 없다. 하지만 유럽인 계통의 일파가 한반도에 흘러들어왔을 가능성은 열려 있다. 
p.87 

이 부분을 읽고 이 책에 대한 신뢰도가 매우 올라갔는데, 왜냐면 내겐 고대사에 대한 아픈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고대사에 대한 책을 읽고 정보를 찾아봤는데 그게 환단고기에 심취한 사학자의 책이었던 것. 중학교 무렵의 어린 나이였지만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설마 역사학자가 쓰고 출판까지 된 책인데...' 라며 권위에 호도되었던 나는 나중에 그 기반이 환단고기이고 환단고기 자체가 매우 믿음직스럽지 못한(솔직하게 말하자면 사기인) 출처라는 걸 알고 깊고 진한 배신감을 느꼈던 것이다. 그 후 나는 사실 고대사 관련 책을 읽을 땐 항상 경계하게 되는데, 이 책의 저 부분을 읽는 순간 매우 마음이 놓였다. 

 누군가의 '주장'을 소개하지만 그게 사실임을 입증하는 건 '증거'이기 때문에 증거로 뒷받침되지 않는 주장은 섣불리 믿어서는 안 되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그 주장이 나름 합당한 것이라면 언제나 '가능성'을 열어두는 태도. 나는 이게 진짜 학자의 자세라고 생각한다. 

 

물론 진시황의 일족이 서양인이라는 주장은 아직 호사가들의 추정에 불과하다. 다만 진나라 그리고 그 이전의 주나라가 건립된 지역의 사람들은 서양 계통의 유목민인 융적이 주류를 이루었음은 고고학으로 확실하게 증명되었다. 
(중략) 
아마도 흉노 집단에서 중앙아시아 유럽인 계통의 실제 비율은 그리 높지 않았으며, 그들은 주로 종교를 담당하던 사제나 사절단의 역할을 했던 것 같다. 더불어 흉노가 당시 만리장성 일대의 다양한 유목민들을 차별 없이 통합하여 거대한 유목제국을 이루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p.89-90 

융적이나 진시황, 흉노 등은 엄청 익숙한 이름들인데 이런 정보들은 매우 새롭다. 진시황도 진나라와 주나라도 당연히 동북아 계열의 동양인들로만 이루어진 나라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하지만 생각해보면 유럽과 아시아는 같은 대륙에 공존하는데, 피가 전혀 섞이지 않은 쪽이 더 이상한 것 같기도 하고.  

고고학자도 역사학자도 아닌 일반 대중인 내가 갖고 있는 과거에 대한 인식은 대체로 역사서 몇 권과 옛 회화 작품에 더해 막연한 짐작과 알게 모르게 접하게 되는 영화나 드라마, 소설, 만화 등에서 나오는 이미지를 덧씌운 산물이기에 실제와는 많이 다른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돌아보면 한국 역사에도 소외되고 무시된 '테라 인코그니타'가 너무나 많다. 우리 역사의 시작인 고조선만 해도 당장 머릿속에 떠오르는 테마가 기자조선이 실제 존재했는지, 공자가 정말로 동이족 사람인지 등 상당히 자극적이고 자의적인 것들 뿐이다. 삼국시대도 그렇다. 지금의 강원도 지역이 삼국시대에는 어느 나라의 땅이었는지 알고 있는가? 
(중략) 
북녘의 역사 또한 사정은 마찬가지다. 고구려의 수도인 평양과 고려의 수도인 개경만 간신히 기억할 뿐, 그밖의 지역은 알려진 것도, 관심도 많지 않다. 예를 들어 함경도는 어떤가? 
p.107 

이 부분을 보고 나는 조금 충격을 받았다. 나름대로 한국사는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학창시절부터 역사는 자신있는 과목이었는데. 심지어 (몇 년 전이긴 하지만) 한국사능력검정시험에서 1급을 따기도 했는데! 대체 역사에서의 테라 인코그니타는 얼마나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으며, 템푸스 인코그니투스는 또 얼마나 오랜 시간을 차지하고 있을지. 새삼 깨달은 나의 무지함에 정신이 어찔할 지경이었다. 

 

이는 서양 학계에서 주장하던 중국 문명의 서방전래설을 반박하기 위한 것이었다. 19세기 말부터 서양학자들은 미개한 중국인들이 스스로 문명을 만들 리 없으며 중국 문명은 근동 지역 문명의 수혜를 받아 탄생했다는 극단적 전파론을 주장했다.  
p.108 

동북공정 제창과 함께 다시 등장해 만주 일대를 중화민족의 역사로 재편하려는 중국의 팽창주의 사관에 이용되고 있다. 
P.110 

근대의 제국주의 및 식민주의에서 벗어나 주체성과 자주성을 찾으려는 시도가 현대 많은 비판과 비난을 받고 있는 중국 팽창주의의 기반이 되었다. 자신의 역사와 영토를 회복한다는 명분 하에 실제로는 다른 국가와 민족을 침범하고 훼손하며 강탈하는 중국의 팽창주의는 제국주의와도 맞닿아 있다. 역사의 아이러니. 

 

공자는 군자들의 모임에 동이족의 음악을 연주한다고 분개하며 칼을 뽑아 들고 단상으로 올라가 춤을 추는 광대들의 손발을 그 자리에서 베어버렸다. 
p.113 

제노포비아는 고대부터 유구했구나. 그런데 이 일화가 사실이라면 공자는 4대 성인 명단에서 제외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 혐성 대체 무슨 일이야. 

 

초나라나 오월 지역의 청동기 제작 기술은 같은 시기 중원보다 훨씬 우수했다. 무덤의 규모나 유물로 보아도 결코 중원에 뒤처지지 않았다. 더 거슬러 올라가 고대 장강 일대의 경우 중원이나 네이멍구의 훙산문화보다 더 발달한 성터를 만들고 옥기를 사용한 신석기시대 량주문화가 등장했다.  
p.114 

중원의 자존심이란 얼마나 사상누각인지. 사상누각조차 아니고 허상누각 같다. 우리가 그동안 몰랐던, 역사에서 밀려난 지역과 민족은 그동안 얼마나 폄하당하고 무시당해온 걸까. 그들이 미개한 것이 아니라 내가 무지한 것이다. 

 

이렇게 새롭게 밝혀진 문명들은 역사에 전혀 기록된 바가 없거나 미개한 오랑캐로 치부되던 것이다. 고고학 자료를 통해 역사 기록의 한계를 돌파한 좋은 예들이라 할 수 있다. 
p.115 

예전에 어떤 고고학 관련 책을 읽었을 때도 느꼈지만, 고고학자는 마치 탐정같다. 증거를 수집해 진실을 밝히는.  

어린 시절 한때 고고학자를 꿈꿨는데 제일 걱정했던 건 바로 '나도 인디아나 존스처럼 온갖 사건에 휘말리고 무너지는 무덤을 탈출하고 나쁜 놈들이랑 싸워야 되면 어떡하지?'였다(심지어 나는 인디아나 존스를 제대로 본 적도 없는데). 몸 쓰는 일에는 어릴 때부터 영 자신이 없던 나였기에, 그런 걱정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그도 그럴게, 가장 유명한(혹은 유일하게 알고 있는) 고고학자라면 인디아나 존스 밖에 없었으니, 고고학자의 이미지는 어린시절의 내 안에서 대충 그렇게 굳어진 거였다. 그와중에도 '한국에서만 발굴하면 그런 불상사는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잔꾀(?)를 쓰며 안전하고 모험따위 없는 고고학자의 삶을 꿈꾸던 나였지만, 결국엔 꿈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두 살 차이나는 사촌오빠한테 고고학자가 되려면 해골을 만져야 한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유독 겁이 많던 어린이였던 나는 그 말을 듣고선 오빠를 의심하며(오빠는 이미 갈매기살이 사실은 인육이라고 나를 속인 전적이 있었다) 아빠에게 그게 진짜냐고 물었고, 진짜라는 말을 듣고는 미련없이 그 자리에서 고고학자의 꿈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했다. 

갑자기 웬 어린시절 추억이냐면, 그만큼 고고학자에 대한 내 개념은 왜곡되어 있었다는 걸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인디아나 존스가 픽션일 뿐이라는 걸 알게 된 후에도 내 안의 고고학자는 발굴가와 복원가를 적당히 섞어 놓은 막연한 이미지였다. 하지만 이 책을 보고 나니 고고학자는 탐정이랑 무척 비슷하다고 느꼈다(이것도 왜곡된 이미지인가?). 증거를 통해 추리하고 검증해 진실을 밝히는 일련의 과정은 마치 추리소설의 탐정같고, 하나하나 퍼즐을 맞추듯 과거의 실체를 밝혀나가는 작업을 지켜보는 건 무척이나 짜릿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네 마네 하던 어린 시절에 잠시 스쳐갔던 꿈이지만, 이제와서 생각하길 어쩌면 나는 고고학자가 되었으면 제법 내 일을 즐겼을지도 모른다. 

  

고고학자의 관점에서 보자면 기자조선을 증명할 궁궐, 무덤 등 객관적인 고고학 자료가 나오지 않는 한 기자조선을 학문적으로 인정할 근거가 부족하다. 중국과 조선의 사대주의가 만들어놓은 상상의 나라 기자조선에 대한 실증적이고 체계적인 이해 없이 '기족의 제후'라는 글자만으로 한국사에 대한 확증편향을 잇는 것은 우리 역사에 대한 바른 이해를 저해할 뿐이다. 
p.131 

기자조선은 학창시절 내내 역사 고조선 파트에서 배워왔던 내용인데 그게 사실은 증빙조차 안 된 내용이었다니! 배신감이 몰려온다. 대체 왜 교과서에 사실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내용을 사실처럼 실어 놓는 걸까? 

 

그럼에도 위만의 복장과 머리를 증명할 수 있는 고조선 얼굴에 대한 실물 자료가 발견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추측만 난무하던 차에 드디어 상투머리를 튼 고조선 얼굴이 등장했다. 
p.149 

'드디어 상투머리를 튼 고조선 얼굴이 등장했다' 이 부분을 읽으며 괜히 내가 벅차올랐다. 대학에 다니던 시절, <우리말의 어제와 오늘>이라는, 중세국어를 배우는 수업을 들었었다. 무척 재밌었고 교수님이 무척 좋았던 강의였는데, 사실 그 강의를 들으며 가장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것은 교수님의 한마디였다. "나는 아직도 어딘가에서 삼대목이 발견될 그 날을 꿈꾸고 있습니다." 정말로 꿈꾸는 듯한 얼굴과 목소리로 말씀하시던 그 광경을 아직까지도 나는 잊지 못한다. 그 순간 아, 학자란 저런 거구나, 하고 깨달았던 것이다. 고조선 얼굴이 등장했다는 문장을 읽는 순간 나는 그 교수님이 떠올랐다. 위만조선을 연구하던 학자들에겐 그 고조선 얼굴이 등장하던 순간이 얼마나 꿈같고 황홀한 순간이었을까. 상상만 해도 설레게 된다. 

 

당시 흉노는 유라시아의 전역에서 일종의 롤모델 같은 강국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p.175 

흉노라고 하면 거칠고 난폭한 기마민족이자 뮬란에 나온 악당 정도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그리고 유럽까지 처들어가 게르만족의 대이동을 일으킨 장본인 정도? 그게 흉노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의 끝이다. 그리고 이런 정보에서 도출할 수 있는 흉노에 대한 이미지는 상당히 부정적이고 단편적이다. 문명과는 거리가 멀고 난폭함만 남아있다. 하지만 그런 흉노 또한 게누스 인코그니툼, 미지의 민족이었던 것이다.  

내가 알고 있던 지식과 상식은 대체 얼마나 왜곡된 것인지. 

 

아르카임 사람들은 3800년 전쯤 갑자기 자신의 도시를 버리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기후의 변화로 시베리아에서 목축을 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일 것읻다. 
p.194 

'갑자기'라고 나와 있지만 사실 오랜 기간 고민하고 논의한 끝에 내린 결정이었을 것이다. 조상 대대로 살아온 터전, 심지어 거대 계획도시까지 건설해 대대로 살아온 터전을 버리고 뿔뿔히 흩어져 살아가기로 결정한 아르카임 사람들의 심정과 그 과정은 어땠을까. 

 

서양 문화에서 겨울왕국에 대한 믿음은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된다. 그리스인들은 북쪽 끝에 히페르보레이(Hyperborei, 상춘국)라 불리는, 질병도 없고 늙지도 않는 유토피아가 있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태양의 신 아폴론이 그곳에서 태어났다고 할 정도니, 겨울왕국에 대한 그리스인들의 환상이 실로 대단했던 모양이다. 애니메이션 <겨울왕국>도 그 시작을 거슬러 올라가면 서양 문화에서 꾸준히 이어진 히페르보레이 환상과도 무관하지 않다. 
p.202 

이 책에서 말하는 <겨울왕국>이 1편인지 2편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2편이 히페르보레이 환상에 더 가까운 것 같다. 겨울왕국1편에서 주 무대가 됐던 아렌델의 북쪽에 존재하는 노덜드라 족의 마법의 숲은 물론, 거기서 더욱더 북쪽으로 올라가 '세상의 끝'에 있는 아토할란까지. 그야말로 히페르보레이 그 자체다. 

 

어릴 때부터 권력을 세습하기로 약정되어 편두머리를 한 사람들만 금관을 쓸 수 있었기에 편두를 권력 세습의 상징으로 볼 수 있다. 
p.223 

권력자라는 걸 드러내기 위해 두개골까지 성형하다니. 사람의 권력욕은 끝이 없는 것 같다. 

 

타티아나는 미국으로 건너와 건축학과를 졸업했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직업을 얻을 수 없었다. 대신에 건축과 그림의 탁월한 재능을 발휘하여 마야 탐험대의 보조 역할을 하며 수많은 발굴 조사를 하고 말년에는 하버드대학 피바디 박물관에서 근무하며 크노로조프의 방법을 계승하여 수많은 마야 문자를 해독해냈다. 
p.272 

찾아보니 1909년에 태어나 1985년에 돌아가신 분이다. 재능이 있는데도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거절당했던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심지어 자기한테 재능이 있는지조차 모르고 평생을 살다 간 사람도 많을 것이다. 아직도 갈 길이 먼 것 같다. 

 

도리이의 생각에는 당시 일본 제국주의가 갖고 있던 모순이 잘 드러난다. 원래 서구에서 식민지는 머나먼 아프리카나 근동 지역의, 문명개화가 아주 늦은 지역을 차지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한국은 일본과 역사를 함께한 이웃이었고, 무엇보다 일본은 전통적으로 대륙의 선진문화가 한국을 통해 일본으로 들어왔다고 여겼다. 게다가 일본인들은 스스로를 본토의 원주민들과는 다르며 대륙에서 건너온 우월한 도래인들의 후손이라고 생각했으니, 곧 한반도는 일본인의 기원지이기도 했다. 그런 한반도를 식민지로 만들어버린 것은 피부 색깔이나 외모가 아예 다른 사람들이 사는, 멀리 떨어진 대륙을 식민지로 만들었던 서양의 식민지 정책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p.293 

우리보다 '미개한' 다른 민족, 다른 인종을 지배하고 통치한다는 제국주의의 민낯이 여기서 드러난다. 유럽 열강이야 사실 자기들끼리 싸워봐야 피해가 더 크고 서로를 섣불리 건드릴 수 없으니 쉽게 점령할 수 있고 점령해도 비교적 국제사회(=당시 유럽)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는 아프리카나 근동을 식민지화 하면서 그들은 우리랑 달리 열등한 민족이기에 정복을 당해도 된다는 논리를 세운 게 아닐까. 하지만 실상은 노예와 플랜테이션, 다른 국가의 자원에서 나오는 부가 목적이었을 뿐일 것이다. 거기에 제노포비아와 (당시 유럽인들에게는) 그럴 듯한 명분이 섞여 자신들이 정복한 민족과 국가를 열등하고 미개하다고 규정했을 뿐.  

때문에 내 생각에는, 일본과 서양의 식민지 정책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서양은 지리에 따른 정치적 특성상 옆나라를 식민지로 만들기 쉽지 않았고 일본은 비교적 수월했다는 게 다를 뿐. 

 

최근까지도 한국인의 생김새를 설명할 때 북방계와 남방계라는 용어를 쓰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는 일제 이후 관습적으로 쓰이는 용어일 뿐 형질인류학계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은 아니다. 
p.307 

난 이제까지 북방계 남방계가 학술적으로도 당당한 용어인 줄 알았는데! 이 용어가 그저 관습적으로 사용된, 명확한 근거 없는 용어일 뿐 아니라 일제강점기 때 일본의 한국 식민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변명거리를 만들기 위해 날조된 사학관에서 나온 용어였다니. 나는 앞으로 뭘 믿고 살면 좋단 말인가. 

 

터키가 극동의 나라에 형제애를 느끼게 된 동기는 엉뚱하게도 한국이 아니고 일본이었다. 오스만튀르크가 위기에 처해 있던 1904년에 일어난 러일전쟁은 동양의 작은 나라인 일본이 유럽의 열강 러시아를 꺾어버린 대단한 사건이었다. 유럽의 변방에 위치했지만 머나먼 동방인 알타이에서 기원한 토키로서는 극동에 있는 일본의 약진이 큰 위로가 되었다. 이 일은 터키가 자신들이 유라시아의 초원에서 기원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계기가 되었다. 실제로 형제국가라는 표현은 터키가 건국된 직후 일본이 세운 괴뢰국 '만주국'과 친선관계를 수립하면서 등장했다. 
p.337 

보통은 6.25때 터키가 참전한 것을 계기로 그들이 우리를 형제의 나라라고 부른다고 알고 있고, 나도 그렇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책에서 앞에 서술한 것처럼, 그때 참전한 국가가 한두 나라도 아닌데 왜 터키만? 싶었는데 그보다 더 오래된 이런 사정이 있었을 줄이야.  

 

배경이나 맥락을 무시한 채 타인의 문화를 왜곡하여 소비하는 현상을 인류학에서는 문화도용(cultural appropriation)이라고 한다.  예컨대 정글에 가서 현지인처럼 살아보는 서바이벌 TV 프로그램이나 아시아를 표현할 때에 국적불문하고 기모노가 등장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 문화 도용에 대해서는 할로윈 코스튬 논란이 대표적이지 않을까 싶다. 코스튬으로 다른 나라의 전통의상을 입는 것에 대해 몇 년 전부터 굉장히 말이 많았던 걸로 아는데. 그나저나 여기서 말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정글의 법칙인가? 

 

 

이 책을 읽는 내내 내가 알고 있던 지식들이 실은 사실이 아니었던 경험도 많이 했고,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가 얼마나 왜곡되고 아전인수 격으로 곡해되었는지, 얼마나 승자를 뒷받침해주기 위해 변형되고 굴절되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됐다. 고고학 마저도 그 왜곡된 역사관을 뒷받침해주는 자료로 사용 되었고. 

그렇게 역사에 대한 믿음을 잃어가는 순간 이 책은 마지막으로 말한다. 

 

그렇다고 고고학이 필요 없다는 말은 아니다. 우리가 과거의 역사와 유물을 바라볼 때 편견은 없는지, 현대의 관점으로 곡해하는 것은 없는지 끊임없이 경계해야 한다는 뜻이다. 
p.358 

이는 비단 역사와 고고학에만 해당하는 말은 아닌 것 같다. 과거가 아닌 현재를 바라볼 때 우리는 얼마나 많은 편견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내가 처한 상황과 내가 아는 지식의 관점으로 세상을 왜곡해 보고 있을까. 항상 그 점을 생각하며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보고자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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