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솔직한 사람이라도 감추고 싶은 건 있지 않을까? 말하는 것도 그렇지만 글은 더더욱 골라내고 가려내어 쓸 것이다. 헌데 이토록 진솔한 글로 모두의 마음에 훅- 다가오는 이는 흔치 않을 듯하다. 저 밑바닥에 자리한 마음까지 툭- 꺼내어놓으며 속깊은 곳에 감춰진 마음까지 이끌어내는, 강단이 느껴지면서도 늘 따스함이 깃든 그 분의 글을 만날 때면 소름이 돋으면서 엄청난 전율을 느낀다.
2011년 01월 22일.
이제 곧 10주기, 그 분의 글을 다시 만났다...!
오래 행복하고 싶다.
오래 너무 수다스럽지 않은, 너무 과묵하지 않은 이야기꾼이고 싶다. p221
한국문학의 가장 크고 따뜻한 이름, 박완서
그가 남긴 산문 660여 편 중 가장 글맛 나는 대표작 35, 베스트 에세이 결정판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박완서 님의 글은 소설보다 에세이를 더 많이 접한 편인데 만날 때마다 오래된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갑고 그러면서도 항상 새로운 기분이 든다. 배우고 또 배워도 항상 배울만한 것들이 넘쳐나는 느낌이랄까? 이 책 역시 마치 처음 만난 것처럼 집중해서 읽게 되었다. 이야기 하나 하나, 한 문장 한 문장 결코 허투루 지나칠 수 없었는데 읽고 또 읽어도 기억해두고 싶은 이야기와 문장이 무척 많았기 때문이다. 실은 제목에 대한 궁금증도 있었는데 제목이 나오는 대목을 읽고 거기에 담긴 뜻을 음미하며 박완서 님의 진실된 글을 향한 올곧은 다짐을 마음에 새기고 싶어졌다.
잡문 하나를 쓰더라도, 허튼소리 안 하길, 정직하길, 조그만 진실이라도,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진실을 말하길, 매질하듯 다짐하며 쓰고 있지만, 열심히라는 것만으로 재능 부족을 은폐하지는 못할 것 같다. 작가가 될까 말까 하던 4년 전의 고민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채다. p216
이 글을 쓸 당시에는 아니었다할지라도 이렇게 엄청난 매력을 지닌 방대한 이야기를 짓고 솔직담백한 글을 쓰셨던 박완서 님 역시 글에 대한 고민은 꽤 많았던 듯하다. 하지만 이러한 다짐이 있었기에 마침내 모두의 마음에 가닿는 진솔한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일 테다. 이밖에도 너무나 좋았던, 다시 봐도 마음깊이 공감할 수 밖에 없었던 몇몇 문장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이 세상 사람들이 다 나보다는 착해 보이는 날이 있다.
그날도 그런 날이었고, 그런 날은 살맛이 난다. p20
우리가 아직은 악보다는 선을 믿고, 우리를 싣고 가는 역사의 흐름이 결국은 옳은 방향으로 흐를 것을 믿을 수 있는 것도 이 세상 악을 한꺼번에 처치할 것 같은 소리 높은 목청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소리 없는 수많은 사람들의 무의식적인 선, 무의식적인 믿음의 교감이 있기 때문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p26
올겨울도 많이 추웠지만 가끔 따스했고, 자주 우울했지만 어쩌다 행복하기도 했다. p27
다시 꿈을 꾸고 싶다.
절박한 현실 감각에서 놓여나 꿈을 꿀 수 있었으면 좋겠다. p69
아무리 많아도, 없는 사람에게 나누어줄 생각은 커녕 더 빼앗아다가 보탤 생각만 굴뚝같다면 가난뱅이와 무엇이 다를까. p92
인생이란 과정의 연속일 뿐, 이만하면 됐다 싶은 목적지가 있는 건 아닙니다.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사는 게 곧 성공한 인생입니다. p139~140
아이들은 예쁘다. 특히 내 애들은.
아이들에게 과도한 욕심을 안 내고 바라볼수록 예쁘다. p151
다 옮겨두고 늘 들여다보고 싶은 넘 좋은 문장들이 많았지만 다 옮기기엔 이것 역시 박완서 님의 글에서 느낄 수 있었던 욕심인 듯해 천천히 오래 만나보기로 했다. 그리하여 마음에 새겨두면 좋을, 진솔한 문장들을 가득 담고 있는 이 책으로 언젠가 '필사'를 한번 해보면 어떨까 하는 것이다. 추리고 또 추려 기록을 해둔다해도 어쩐지 기억하고 싶은 게 넘 많은 문장과 글이요, 책인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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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의 '꿈엔들 잊힐리야(미망)'라는 소설로 처음 접했던 박완서 님의 글을 이번 10주기를 맞아 세계사에서 나온 베스트 에세이 결정판으로 만나볼 수 있어 넘 기쁘고 많이 행복한 시간이었다. 이 책을 통해 아직 읽지 못한 에세이집이 있다는 걸 알게 되고 에세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이 읽어주지 못한 소설 역시 올해에는 꼬옥 차근차근 만나줘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립고 넘 그리운 마음을 가득 담아... 부드러운 느낌의 고운 색감을 지닌 일러스트와 절묘하게 어우러진 이야기, 지나간 시간들을 깊이 반성하고 또 앞으로 살아갈 시간들에 대해 많은 생각과 깨달음을 전해주는 오래도록 간직하고픈 이야기, 꼬옥 한번 만나보길...!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