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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 http://m.ch.yes24.com/Article/View/45147


“시발 시발 시발 비용으로 시골에 폐가를 충동 구매했다.” PD라는 꿈도 이뤘고, 일도 잘 풀렸지만, 세상과 나 자신에게 화가 났다. 돌아보건대, 온전히 나를 위해 쓸 시간도 여력도 없는 날들이었다. ‘약간 미친 짓’을 하지 않고는 견디기 힘들 것 같았고, 덜컥 집을 사버렸다. 최별 MBC PD의 이야기다. 4500만 원에 대지가 300평이라더니, 등기를 떼어 보니 115년 전에 지어진 집이었다. 가계약을 하고 회사에 제안서를 냈다. 폐가를 고쳐서 사는 과정을 담아 콘텐츠를 만들겠다고. 큰 기대 하지 않았는데, 회사가 제안을 받아버렸다. 유튜브 채널 <오느른>의 시작이었다. 

마당 앞으로 너른 김제평야를 품은 오래된 집. 그곳의 자연과 풍광과 사람은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오느른>을 본 사람들은 ‘힐링’을 말했다. 최별 PD는 그들과 함께, 때로는 홀로 머물며, 1년을 보냈다. 그 시간동안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삶의 태도가 달라졌고, 해방감을 맛봤고, 새로운 고민도 생겨났다. “이 집을 몰랐다면 어쩌면 꽤 오래 몰랐을 것들”이다. 그 모두가 책 『오느른』에 담겼다. 



미친 척하고 사볼까?

프롤로그에 “이게 참, 괜찮은 인생인 걸까?”라는 문장이 있어요. 폐가를 사기 전에, 그 즈음에 가장 많이 했던 생각이었나요?

지나고 나니까 그래 보였는데, 그때는 제가 그렇게 화가 나있는 줄 못 느꼈어요. 그때 쓴 글이나 기억나는 저의 표정들, 순간들이 엄청 화가 나있었던 것 같아요. 세상에 대한 화도 있지만 저에 대한 화가 너무 큰 거예요. 거의 맹목적으로 PD가 되고 싶어서, 또는 잘하고 싶어서, 열심히 살았는데 막상 손에 쥔 게 하나도 없는 기분이었어요. 그런데 꿈을 이루는 순간이 지나고 나니까 제 인생에는 이 직업밖에 없는 거예요. 직업 외의 다른 것들은 아무것도 없이 비어있는 느낌이었어요. 노력한 만큼 보상을 못 받은 느낌이었는데, 보상을 안 해준 건 구조적인 문제나 사회적인 문제도 있겠지만, 스스로가 너무 맹목적이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조금 돌아보게 됐던 것 같아요. 생각해 보면, 저는 지상파 방송국 PD니까 52시간 근무제란 말이에요. 그런데 그 외의 시간은 어디 간 거죠, 도대체? 그렇다고 집이 회사에서 먼 것도 아니었어요. 

5분 컷이었죠. (웃음)

네, 그런데 그때는 왜 그랬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어요. 약간 어디에 정신 놓고 사는 사람처럼, 지금 생각해도 그때는 다 공허했던 것 같아요. 약간 비어 있었던 것 같은 느낌. 그때는 기어코 나는 도망치는 게 아니라고 말했지만, 1년이 지난 지금에는 ‘그때 내가 거의 자포자기 심정으로 도망쳤구나, 쉬고 싶다는 말이 그 뜻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걸 인정하고 나니까 삶의 태도가 많이 달라지기도 했어요. 

‘다 때려치우고 시골 가서 카페나 할까’라는 생각을 하는 직장인은 많을지 몰라요. 하지만 그 생각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다 다르겠죠. PD님은 어떠셨어요?

성과는 엄청 이뤘던 것 같아요. 겉으로 보이는 모습으로는 장관상도 받고 대한민국 100주년 기념 프로그램도 하고, 잘 나간다면 잘 나가는 시기였는데... 뭔가 여러 가지 문제들이 같이 있었던 것 같아요. 이대로 쭉 잘 나가려면 내가 포기해야 될 것들이 처음으로 보이기 시작했어요. 그 전에는 뭘 모르고 어리니까, 너무나 당연하게 ‘나는 다 지킬 수 있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나는 이것도 하면서 저것도 할 수 있고, 나는 변하지 않고 순수한 마음으로도 성공할 수 있고... 그러다가 ‘아, 내가 여기에서 더 나가려면 하나씩 포기하게 되겠구나, 그리고 언젠가는 내가 원하지 않는 모습으로 나이 들어서 스스로 합리화하면서 살아가게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되고 싶지는 않으셨군요. 

그랬던 것 같아요. 나이 들어서도 조금 더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었고, 리셋하려면 약간 충격 요법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렇지 않은 줄 알았는데, 저도 어쩔 수 없이 되게 경쟁하면서 살았더라고요. 사실 일적으로는 불만족이 크게 없었어요. 그런데 언젠가 터질 법한 어떤 것들이 계속 쌓이다가 코로나가 터지니까 불가능이 생기더라고요. 저는 일을 할 때 열심히 해서 불가능이 없게 하는 스타일이었거든요. 그런데 제가 극복하지 못할 무언가가 생기고, 그때 약간 허무한 느낌을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조금 되돌아보고 싶었어요. 막연히 너무 답답해서 속으로는 ‘약간 미친 짓을 해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아무도 안 나타나더라고요. (웃음)

그게 내가 됐던 건가요? (웃음)

마지막에는 ‘그래, 내가 해줄게’ 하는 마음이 있었어요. 회사와의 관계에서도 그때는 계속 억울한 거예요. 제가 10만큼 하면 회사는 1을 주는 것 같고, 이 관계가 너무 불공평하다는 생각에 갇혀 있었어요. 그러다가, 그때 잠깐 헤까닥 했던 순간인 것 같은데, ‘그렇다면 내가 회사를 이용하는 사람이 돼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웃음) 그런데 그 마음은 없어졌어요. (웃음)  

당시에는 그런 마음으로 집을 사신 거군요. (웃음)

회사를 그만둬도 굶어 죽지는 않아야겠다, 그런 마음이었다고 할까요. (웃음) 그래서 집을 산 거죠. 선배들한테 집 계약했다고 얘기할 때도, 그때만큼 아무런 고민이 없던 때가 없었던 것 같아요. ‘(폐가를) 샀는데, 안 하실 거면 저 혼자 고치고요’ 약간 이런 느낌이었어요. 그런데 너무 이상하게, 회사에서 덜컥 제안을 받은 거예요. 약간 아차 싶었죠. (웃음) 

그 전에 두 달 동안 기획하신 게 있었죠? 연예인이 출연해 구옥을 리모델링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엎어졌죠. 그 일이 폐가를 사는 데 영향을 미쳤나요?

그랬던 것 같아요. 그때 여러 모로 화가 나있던 이유 중에 그것도 있었어요. 협찬도 들어와 있었고, 첫 촬영 같은 것도 했었거든요. 그런데 순식간에 없어지니까... 그런데 그때 제가 막연하게 그런 걸 너무 보고 싶었어요. 

구옥이 다시 태어나는 모습이요?

그것도 그렇지만, 무계획으로 되는 그런 것들을 보고 싶었어요. 약간 좀 편한 것. 제가 원래 시끄러운 걸 별로 안 좋아해서 그런 걸 되게 보고 싶었는데 엎어진 거예요. 그리고 그 후의 상황이 너무 불편했어요. 제가 부서를 옮겼는데, 코로나 때문에 난리니까 스튜디오물, 제작비 거의 안 드는 간단한 걸 하라고 했는데, 그걸 받아들이기가 그렇게 힘들었나 봐요. 지금은 가서 할 것 같은데, (웃음) 그때는 ‘그러면 내가 PD를 왜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PD를 하는 이유는 저의 일상적인 것들을 포기하더라도 제가 하고 싶은 콘텐츠나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서인데, 코로나로 인해서 모든 상황이 바뀌어서 그게 제한되니까 벽에 가로막힌 기분이 들었어요.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나요?

진짜 회사를 그만두고 싶었어요. 그런데 빚이 있었고 회사를 그만둘 수는 없었고요. (웃음) 

화가 나서 집을 사셨군요. (웃음)

그렇죠. (웃음) 친구랑 유튜브에서 4500만 원짜리 집이 있다는 걸 봤는데, 제가 <PD수첩>에서 일했었기 때문에 위성사진 같은 걸 잘 찾거든요, (웃음) 그런데 진짜 집이 논 위에 있는 거예요. ‘너무 궁금하다, 한 번 가볼까?’ 해서 친구랑 휴가 아닌 휴가를 가게 됐어요. 집에 찾아갔을 때 날씨가 너무 좋았어요. 그래도 저는 ‘어떻게 이걸 사?’ 하는 생각이 컸는데, 같이 간 친구가 ‘나라면 산다’ 이러는 거예요. (웃음) ‘이 여사님’도 이 집을 사라고 하고요.

그때 이미 ‘이 여사님’을 만나셨네요.

네, 옆집 할아버지도 그날 만났어요. 저는 원래 평소의 우연한 만남을 그냥 스쳐 지나가게 두는 편이에요. 그런데 제 친구는 이웃이 너무 좋다면서 (집을) 사라고 하는 거예요. ‘그럴까? 미친 척하고 사볼까?’ 이렇게 해서 사게 된 거예요.

 


좋은 어른

유튜브 영상에서는 집 상태가 이 정도인 줄은 모르셨어요? 115년이나 된 집이고, 쓰레기가 쌓여 있고.

네. (웃음) 115년 된 건 나중에 등기를 떼고 나서 알았어요. 그런데 보통 115년 된 집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하잖아요? 115년 된 건 진짜 촬영하는 날 (등기 보고) 알았을 걸요. 솔직히 잘못 본 줄 알았어요. (웃음) 그리고 집을 사기 전에는 디딤돌대출이 되는 줄 알았는데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사원 대출을 끌어다 쓰게 됐고, 저는 온전히 MBC에 묶인 몸이 된 거죠. (웃음) 우리 아빠는 이런 상황을 몰라요. 제가 착실하게 돈을 모아서 산 줄 아세요. (웃음)

유튜브 영상과 책에 담긴 내용을 보면, 폐가를 사서 고치는 과정만 있는 게 아니에요. 처음에 기획안을 쓰실 때는 어디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어요? 

집을 뜯어고치는 거에 맞춰져 있었어요. 왜냐하면 저는 (이웃들과) 친해질 거라고 진짜 생각을 못 했어요. 친해지고 싶지 않았어요. 처음의 의도는 동떨어지고 싶은 거였기 때문에 ‘아무도 나한테 말 걸지 마, 나 혼자 있고 싶어’ 약간 그런 거였어요. (웃음) 그때 되게 상처 받고 화가 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런 거 있잖아요, 삐쳐서 울고 있는 아이가 누가 말 걸어주면 고마워하는. 약간 그런 느낌이었어요. (웃음) 

결국 처음의 기획과는 달라졌네요. 

처음에는 리모델링이 끝나면 거기에서 요리 브이로그를 해야겠다는 생각이었어요. 제가 그런 걸 좋아하니까 잘하는 줄 알았는데, 쉬운 게 하나도 없더라고요. (웃음) 지금도 가끔 요리하는 걸 찍는데, 스토리가 전개되다 보니까 넣을 구석이 잘 없어요. 매주 바뀌는 무언가를 보여줄 수밖에 없거든요. 어떤 스토리를 정해 놓아서가 아니라, 찍다 보면 그날그날 바뀌어요. 

채널 이름이 <오느른(오늘을 사는 어른들)>이고, 책에는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간절히 좋은 어른이 되고 싶었어요.” 어른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셨어요?

나이가 드는데 저는 어른스럽지 못하다는 생각을 서른이 넘어서도 계속하니까 약간 답답하더라고요. ‘도대체 어른이 뭔가’에 대한 고민들이 있었어요. 다들 어렸을 때 배운 어른의 이미지는 있잖아요. 좋은 어른이라면 이래야 돼, 라는. 그런데 그게 모델로만 남아있고 실상에 잘 없는 느낌이었어요. 그냥 그렇구나 하고 말았는데, 어느 순간 갑자기 ‘나도 그럴 수 있겠는데?’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진짜 아찔하더라고요. 그래서 ‘어떻게 사는 게 좋은 거지?’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아요. 그리고 선택의 문제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됐는데,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이 쌓여서 나를 만드는 느낌이 있었어요. 그러니까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사소한 결정부터도 ‘이런 선택을 하다 보면 이런 사람이 되는구나’라는 게 어느 순간 실감이 났어요. 서울에서는 ‘도대체 왜 이렇게 어려운 거지? 다들 이러고 산다고?’ 하는 생각이 조금 들었는데, 제가 보고 싶었던 어른의 원형들을 그 동네에 가서 봤던 것 같아요. 

‘동네친구 1호’는 아흔다섯의 할아버지세요. ‘이 여사님’도 중년이시고요. 어른들 사이에서 깨닫거나, 위안을 얻거나, 표본으로 삼은 모습들이 있었을 것 같아요.

생각해 보면 제가 본 어른들은 다 업계에서 일로 부딪히는 분들이었어요. 그런 어른들이 아니고서는 굳이 만날 일이 없었어요.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제 인생에서 처음으로 일로 부딪히지 않는 어른들을 그 동네에서 만난 거예요. 그래서 그런지, 그냥 인간 대 인간으로 대해주신다고 할까요. 이건 저의 피해의식일 수도 있는데, 그 분들은 제가 일을 잘하는지 못하는지가 상관이 없어요. 그냥 정말 친구 대하듯이 대해주신다고 해야 될까요. 그게 너무 낯설었어요. 다른 집도 그럴 것 같은데, 저는 아빠한테도 ‘더 잘해야지’라는 식의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계속 들으면서 컸는데, 그러면서 그냥 대화를 단절시키고 살았는데, 거기에서는 어른들이 굳이 그러지 않는 거예요. 

마음이 편해지기도 했겠어요.

너무 편했어요. 그리고 저는 일을 조금 일찍 시작한 편이어서 스물네 살부터 뭔가 어른이어야만 하는 입장이었는데, 그 동네에 가서는 제가 굳이 어른으로서 어떤 역할을 할 필요가 없는 거예요. 동네에서 제일 막내고, 그냥 애처럼 돌아다녀도 되고, 그게 처음에 너무 신났던 것 같아요. 뭔가 해방된 느낌이었어요. ‘내가 애로 있어도 되는구나.’ 뭔가 긴장감도 확 풀어지고, 그래서 작년에는 신나서 헤집고 다녔던 것 같아요. (웃음) 

마을 어르신들은 자연의 리듬에 맞춰서 사시는 분들이잖아요. 자연하고 어우러져 살아가는 삶의 태도에서 배우는 것도 많지 않나요?

와서 살아보니까, 자연에 맞추고 순응해서 살아간다는 건 그냥 ‘쿨함’인 것 같아요. 집착이 딱히 없어요. ‘내가 해서 그런 게 아닌데, 뭐’ 이런 태도가 그냥 프로그래밍 되어 있으시더라고요. 예전에 어떤 책에서 ‘농촌만큼 자기주도적인 삶을 살 수 있는 곳은 없다’는 이야기를 봤는데,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했어요. 그런데 가서 보니까, 날씨가 바뀌면 오늘 예정했던 일도 그냥 바꾸세요. 내가 자연에 맞춰야 한다는 걸 너무 잘 아세요. 열심히 1년 동안 농사를 지었는데 태풍을 맞아서 벼가 쓰러졌어도 ‘어쩔 수 없지, 하늘이 그런 걸 내가 어떡해?’라고 생각하세요. 저는 어땠는지 생각해보게 되더라고요. 직업적으로 저도 그런 순간들이 있었고, 열심히 했는데 위에서 알아주지 않거나 시청률이 안 나오면 억울했는데, 그 분들이 그렇게 사시는 걸 보니까 ‘그렇게까지 억울해할 일이 아니었네’ 싶은 거예요. 괜히 나한테 스트레스 주고 살았다는 느낌이 들고, 그래서 ‘그러네~’ 이렇게 받아들이게 됐어요. 

큰 깨달음인 것 같아요.

처음에는 약간 허탈하기도 했어요. ‘뭘 그렇게 열심히 살았나, 왜 그렇게 속 끓이면서 살았나, 어차피 다 갈 데로 갈 텐데’ 싶은 거예요. 제 PD 인생을 봐도 항상 일을 열심히 했는데, 그렇게 했던 것보다 <오느른>이 훨씬 잘 됐잖아요. 그것도 너무 웃긴 거예요. (웃음) 자포자기 심정으로 ‘에라이, 모르겠다’ 하고 시작했는데. (웃음) 그리고 저도 9년 동안 일한 게 남아있으니까 갑자기 잘하고 싶어져요. ‘잘하고 싶은데? 좀 멋있게 해보고 싶은데?’ 하는 마음이 드는데, 그러면 여지없이 잘 안돼요. (웃음) 그래서 ‘힘 좀 빼고 살아야겠다, 보는 사람이 편해야 되는구나’ 생각해요. 그런 걸 배우고 있는 거죠. 



‘아무 이유 없음’이 주는 힐링

집에서 보는 평야, 일출과 일몰... 그런 풍경들의 영향도 있을까요?

상암동으로 처음 출근하게 됐을 때 제일 충격적이었던 장면이, 점심시간에 직장인들이 다 지하로 가는 거였어요. 그런데 입사하고 나니까 어쩔 수 없이 저도 그러고 있잖아요. 솔직히 그게 약간 행복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돈을 버는 이유는 내가 행복하게 잘 살려고 하는 건데, 대부분의 시간을 회사에서 지내잖아요. 특히 삼십대가 넘어가면 회사 일을 하려고 병원 다니는 사람 진짜 많잖아요. 플러스 마이너스를 제대로 따져봐야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엄청 들었어요. 그러다가 4500만 원짜리 폐가를 사면서, 우선은 급한 불을 끈 느낌이었다고 할까요. 솔직히 재테크나 투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서울 근처도 아닌데, 그런 ‘아무 이유 없음’이 저한테 조금 힐링이 된 거예요. ‘아무 이유도 없는데 나를 위해 여기까지 해줬다’ 이런 느낌이었어요. 

진짜 플렉스한 거죠. (웃음)

그렇죠. (웃음) 그리고 시야가 확 트인 게 너무 좋아요. 어떤 분이 인터뷰하러 오셨다가 그런 얘기를 하셨어요. 쉼의 밀도가 높아지는 것 같다고. 되게 와 닿는 말이더라고요. 거기에서는 바쁘게 일하다가 10분만 쉬어도 ‘나 쉬었다’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거든요. 서울에서는 그게 안 됐어요. 제가 주변의 사람들이나 일에 신경을 많이 쓰는 타입이라 쉴 수가 없었던 것 같기도 해요. 그런데 거기는 진짜 아무것도 없거든요. 그 ‘아무것도 없음’이 저를 쉬게 만들었던 거죠. 

<오느른>이라는 콘텐츠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 계속 고민하고 계실 텐데요.

처음에는 시골살이 하고, 소소하게 텃밭 가꾸고, 그게 좋아서 오신 분들(구독자들)이 대부분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분들을 모아놓고 굳이 다른 일을 하는 게 맞나, 라는 고민을 되게 많이 했었어요. 그런데 제가 개인 유튜버가 아니다 보니까 ‘그러면 그냥 유튜버를 하지, PD라고 말할 수 있나?’라는 생각이 저를 되게 힘들게 했던 것 같아요. 어떻게 해결할까 고민을 하다가, 처음에도 오래된 것들과 버려진 것들에 대한 아쉬움 때문에 시작했으니 그냥 일을 벌여보자고 생각했어요. 이제 개인의 힐링에서는 넘어가야 된다는 생각을 해요. 왜 안 쉬냐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시기는 한데, (웃음) 팀장님한테도 그런 이야기를 했던 것 같아요. ‘제가 여기에서 계속 힐링만 하면 나중에 거짓말하고 있을 것 같아요.’ 

거짓말이요? 

반복되는 똑같은 일상을 살면서 오늘도 쉬고 힐링했다고 거짓말하는 콘텐츠를 만들 것 같았어요. 그래서 초반의 콘텐츠가 가진 느낌이 좋아서 찾아오셨던 분들이 다른 콘텐츠로 떠나가더라도, 그냥 제가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맞는 것 같다는 말씀을 드렸어요. 한 달 전까지 제 내부의 이슈였던 게 ‘<오느른>스러운’ 게 도대체 뭐냐는 거였어요. 제가 <오느른>을 만들었는데, 오느른스러운 게 저를 이겨버렸더라고요. 

사람들이 생각하는 ‘오느른스러운 것’은 뭘까요?

뭔가 느리고, 실수해도 괜찮고, 이런 걸 오느른스러운 걸로 받아들여주시는 것 같은데, 그게 약간 저의 행동을 가두는 느낌이 드는 순간이 있었어요. 약간 자연주의를 원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거기에서 1년 산다고 갑자기 자연주의가 되지 않거든요. 기대하시는 콘텐츠의 방향이 그렇다는 건 너무 잘 알지만, 이제는 편하게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오느른스럽게 살고 싶지도 않고요. 사람이 나이가 들면서 고민과 방향이 달라지는 게 당연하고, 계획대로 되는 게 인생이 아니라는 걸 (<오느른>을 통해서) 말하고 있는데, 제가 거기에 맞춰서 살 필요도 없는 것 같아요. 그냥 그날그날 생각이 달라지면 달라지는 대로 표현해드리는 게 제가 할 수 있는 나름의 성실함일 것 같아요. 



제 또래가 많이 봤으면 좋겠어요

‘잘 팔리는 글’이라는 꼭지가 있어요. 어떤 책을 만들지, 고민을 많이 하신 것 같더라고요.

창피한 고민도 솔직하게 말해야지, 라는 게 <오느른> 영상의 코드라면 코드였는데요. 책은 지면으로 남는 거니까 그렇게 쓰면 너무 창피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저도 에세이를 많이 읽는데, 서점에서는 마음에 와 닿아서 사는데 집에 가면 안 보게 되더라고요. 분명히 저의 고민의 깊이가 그 정도로 깊지 않은 것 같은데, 글로 보여지는 제 모습이 너무 얕으면 어떻게 하나 조금 걱정됐던 것 같아요. 

글 쓰실 때 솔직해지려고 애쓰셨어요?

네, 그게 너무 힘들었던 것 같아요. 솔직해지기가. 영상에서보다 조금 더 솔직해야 된다는 생각은 했던 것 같아요. 영상은 편집해서 들어가는 그림이 있으니까요. 글은 한 꼭지 안에서 주제에 맞게 최대한 솔직해야 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래서 저의 사적인 고민이나 개인적인 경험이 조금 더 들어간 것 같아요. 가장 다행이었던 건 ‘읽히다 말면 어떡하지?’ 걱정했는데, 교정볼 때 읽어 보니까 계속 읽히더라고요. 그리고 제 나이에 맞게, 저답게 한 것 같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책 『오느른』을 보고 좋았던 부분은 어떤 거였어요? 

가장 좋았던 건, 1년 동안 제가 달라진 게 한눈에 보여서, 스스로 계속 고민하고 있었던 게 설득이 되더라고요. ‘아, 이런 일이 있었지?’ 하면서 1년을 축약해서 보니까 ‘이렇게 달라졌구나’ 하는 기분이 들었어요. 

1년 동안의 변화를 보신 소감은 어떠신가요?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되게 막연했고 그렇게 갈 수 있는 방향도 잘 몰랐거든요. 그런데 ‘다행이다, 방향이 틀리지는 않았던 것 같아’ 그런 느낌이에요.

좋은 어른이 될 수 있을 것 같나요?

이렇게 가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분명히 한켠에는 편하게 살고 싶은 마음이 있거든요. 쉬고 싶다는 마음이랑 또 다른 건데.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편안하게 살고 싶다는 마음이 있어요. 그 마음하고는 계속 싸워야 되는 것 같아요. 

PD로서 <오느른>을 통해서 이루고 싶은 목표도 있겠죠. 한 인터뷰에서 ‘겉으로 보기에는 그냥 브이로그이지만 일종의 주거 실험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도 하셨어요. 

사실 브이로그는 요즘 사람들이 좋아하는 콘텐츠의 형식을 따온 거라고 생각해요. 그 안의 주제의식은, 아마 앞으로 계속 반복해나가게 된다면, 실험적인 거라고 생각해요. 처음에는 저라는 개인이었지만 이미 저 때문에 그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6~7명 정도 되거든요. 이미 모든 것들이 달라지고 있죠. 그리고 회사의 시스템도 달라지고 있어요. 올 초에 팀장님이랑 ‘거점 오피스처럼 할 수도 있겠다’는 얘기를 했었거든요. <오느른>이 콘텐츠의 형식을 띠고 있기 때문에 시스템의 대단한 변화는 아니지만, 경험을 콘텐츠로 나눈다는 것은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많은 회사나 개인들에게 학습 효과가 있을 거라고 생각돼요. 그러면 새로운 삶의 형태에 도전할 때 훨씬 두려움이 덜할 거라고 생각하고요. 굳이 의미 부여를 하자면, 조금은 의미 있는 시도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집은 어떤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작년이었다면 ‘섬 같은 공간’이라고 얘기했을 것 같아요. 어느 정도 독립적이어야 된다고 말했을 것 같고요. 지금은 적당한 거리감을 가지고 연결되어 있는 이미지가 떠올라요. 그래서 앞으로 관계성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하게 될 것 같고요. 그 관계에는 나와 나의 관계도 있고, 아빠와 나의 가족 간의 관계도 있고, 이웃과 나 또는 친구와 나, 그리고 회사와 나의 수평적이고 건강한 관계도 있어요. 지금 제가 거기에 대한 고민과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 중에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될 것 같아요. 거의 매일 (관계에서) 실패와 성공을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아요. 그러다 어느 순간 보면 ‘이만큼 달라져있구나’ 하고 느끼게 되고요. 집은 그런 관계성을 나답게 표현해줄 수 있는 공간이 아닐까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제 책이나 영상 콘텐츠를 제 또래가 많이 봤으면 좋겠어요. 저는 시골에 가서 이런 방식으로 살아도 된다는 걸 알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여전히 많이 있다는 걸 알고 있어요. 많은 사람들의 일상이 그런 고민을 할 여유가 없다는 걸 알고 있고요. 그렇기 때문에 제 또래가 많이 봤으면 좋겠어요. 




*최별

한국외국어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뒤, 외주 제작사 조연출로 방송 PD를 시작하여 2013년 SBS 〈SBS 스페셜-물 한잔의 기적〉으로 얼떨결에 다큐멘터리 제작자로 데뷔하였다. 콘텐츠 기획 제작 1인 프로덕션 〈눈길〉을 차렸으나, 2016년 MBC 경력직 공채에 합격하며 창업 3개월 만에 폐업 신고하고 MBC 시사 교양 PD가 된, 태어나니까 사는, 이왕 태어났으니까 열심히 살아보는 여자 사람 PD이다. 지금은 MBC 공식 라이프스타일 유튜브 채널 〈오느른〉을 제작, 운영하며 MBC D.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 PD로 재직 중이다. 인생은 ‘경험의 총량’이라는 데 동의하며 최대, 최선의 경험을 수집하는 데 골몰하는 편이다. 수상 경력으로는, MBC 〈기억록, 100년을 탐험하다〉로 ‘2019년 차세대 미디어대전’ 방송콘텐츠 대상 부문 대상, ‘양성평등 미디어상’ 최우수상(여성가족부 장관상), 〈오늘을 사는 어른들, 오느른〉으로 2021년 제33회 한국PD 대상 디지털 부문 대상 등을 수상했다.



오느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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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별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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