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한강 리뷰 대회
채식주의자

[도서] 채식주의자

한강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채식주의자...자기파괴를 통한 죄의식 탈피 몸부림?

 

50평생을 넘게 살아오는 동안 특별한 거부감없이 타인과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 그저 순응하면서, 때로는 분위기를 맞춰가며 배려?라는 차원에서 혹은 왕따? 당하기 싫어 마음이 내키지 않아도 대세를 따르며 그렇게 보낸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하지만 한강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그렇게 산다는 게 얼마나 허무한 삶인지 깨닫는다. 내 몸이 시키는 바에 충실하게 사는 것이 또한 얼마나 어려운 건지도 알게된다. 제도적 굴레와 관습, 정형화된 생활패턴에서 벗어나려는 영혜의 몸부림과 이를 지키려는 인혜의 처절한 삶, 그리고 또다른 영혜 남편의 쳇바퀴 삶을 유지할려는 의지와 자신의 삶을 뒤늦게나마 발견하고 몸부림치며 벗어나려는 인혜 남편. 이들 4명의 삶을 돌아보는 채식주의자는 쉽게 다가와서 무겁게 막을 내린다.

 

우선, 주인공 영혜를 중심축에 두고 주변 환경을 돌아보는 순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3편의 단편이 모여 하나의 그림을 완성하고 있는 데, 그중 ‘채식주의자’는 전체 그림을 제공하면서 또한 영혜를 둘러싼 영혜 남편의 입장에서 ‘나’란 일인칭 관점으로, 내가 생각하는 삶의 방식과 아내와 처가 식구들의 행태를 다룬다.

 

소시민으로서의 평범한 삶을 원하는 나는 대다수가 원하는 아주 일반적인 삶의 형태일 수도 있다. 그저 조용하고 평탄한 삶에 무게를 둔다. 하지만 아내의 브래지어를 답답해하는 행동이나 채식주의가 한 점의 불안 요소다. 도화선이 된, 부부동반 회사 모임에서 아내의 돌출 행동은 그의 삶에 오점?을 남긴 이벤트였다. 물론 그 역시 일상을 벗어날 기회?로 아내보다 여성스럽고 다정다감한 처형에 대한 감정을 품었으나 그뿐이었다. 결국 아내의 손목 자해와 함께 그의 일상은 무너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을 지켜내기 위해 그만의 길을 간다. 타인의 시선 따윈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자신의 틀을 지켜내기 위해 사랑과 희생, 봉사 같은 윤리의식은 던져버리고 ‘이혼’이라는 방식을 통해 그의 삶을 이어간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그가 원하던 평범한 삶인지는 모르겠다. 제3자의 관점에서 보면 지극히 이기적인 취향의 본성이 그대로 드러난 삶의 형태이기에. 정답은 없어도 그가 원하던 제도적 굴레 속에서 지켜낸 것이 무얼까 하는 의문이 든다. 언급된 건 없으나 그의 삶 역시 더 이상 안정위주의 평온한 삶은 이상향에 그친 게 아닐까 싶다.

 

‘몽고반점’이란 목차로 다뤄진 인혜 남편이야기는 극적이다. 아내의 뒷바라지? 덕분에 일반적인 예술가들의 삶처럼 찌든 생활고를 겪거나 아내와의 불화로 위태위태한 삶 대신, 하고 싶은 것 다해가며 살아가는 비디오아트 작가이자 화가로 명맥을 유지한다. 그 역시 평범한 일상에서 무미건조한 평상심을 유지하고 있던 중 처제의 돌발적인 자해와 그녀를 업고 병원으로 가면서 그의 일상은 변하기 시작한다. 아무런 미동없이 무심하게 보낸 세월 속에서 아내가 던진 ‘20살까지 영혜가 몽고반점을 간직하고 있다’는 기억이 새롭게 예술가적 본능을 깨우고, 갈등의 골 역시 깊어진다. 예술이냐 불륜이냐를 두고 심각한 내면의 고민 끝에 본능과 예술 둘을 거머쥐기 위해 몰입한다. 처제를 향한 적극적인 구애와 의외로 영혜는 그런 형부의 접근을 거부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남편에게서 발견하지 못한 열정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녀의 본능 또한 그동안 육식으로 인해 몸에 켜켜히 쌓인 찌꺼기를 제거하기 위한 식물로 탄생?하는 과정을 경험하고자 하는 강한 욕망이자 열정이 샘솟아 자연스럽게 형부에게 온몸을 맡긴다. 이미 그녀에겐 제도의 속박 같은 건 문제되지 않았다. 남편과 이혼한 상태였고, 책임질 아이도 없었으며, 아니 제도권에 안주하려는 모순덩어리? 남편으로부터 버림받았으니 믿음 같은 건 저버린 지 오래였다는 표현이 맞다. 꽃을 통해 고스란히 부활을 꿈꾼 그녀에겐 몸뚱이 같은 건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또한 기존 질서(형부와의 불륜)에 반하는 윤리의식 따윈 개나 줘버리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결국 남은 껍데기를 지키기 위해 몸부림치기 보다는 철저히 제도권의 모순에 대항할 수 있는 최대의 무기인 몸을 통해 저항하고 있다. 어떻든 화가는 삶의 평화가 한순간 무너질 거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본능에 충실해 마음이 내키는 바를 따르고 결과적으로 처참한? 삶의 바닥을 경험하게 된다.

 

제도를 벗어난 결과가 얼마나 참혹한 가를 처절하게 보여준다. 이또한 그가 원한 삶 이었는 지 의문스럽다. 지극히 평범하게 비록 무심한 세월을 보내온 그였지만 강렬한 열정이 고개를 쳐든 순간 모든 걸 거부할 수 밖에 없었고, 아내보단 처제와의 코드가 맞았다는 생각도 든다. 일상이란 게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마음까지 어쩌지는 못한다. 아들 지우를 보고싶다는 울부짖음은 오래도록 그를 기억하게 만들지만 한 번의 열정은 하나의 작품이자 그의 삶 자체로 귀결된다.

 

영혜와 인혜의 뒷이야기를 다룬 ‘나무불꽃’. 우선 채식주의자 및 몽고반점의 결과를 통해 마지막 불꽃을 태우는 영혜의 이야기는 죽음으로 치닫는 그녀의 불꽃인생이자 해탈을 위한 몸부림이다. 모순된 기성 제도권을 향한 죽음불사는 장엄하기 보단 애처롭고 넘을 수 없는 장벽 같은 것으로 느껴진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같다는 인상도 받는다. 서서히, 그러나 죽음마져 두려워하지 않으며 자신의 찌꺼기를 완전하게 도려내지만 거대한 사회의 굴레는 미동조차 않는다. 오히려 마지막까지 제도에 순응시키려 안간힘을 쓴다. 그것이 의사의 책무이든 병원의 존재감이든 간에. 음식을 거부하는 그녀를 향해 흡혈귀처럼 달려들어 강제로 주입시키려 하는 건 흡사 권위적인 아버지가 그녀 입에 강제로 고기를 넣으려다 자해소동의 원인이 된 것을 상기시킨다. 결과적으로 자연스러운 죽음이 아닌 좀더 빨리 죽음을 재촉하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출발은 아주 단순하게, 단지 육식위주의 식단을 채식으로 바꾸는 행위에서 비롯되었으나 이를 둘러싼 기성질서는 채식주의자로 한층 높여 구석으로 몰아가고 전쟁이라도 벌이듯이 강제로 제도의 권위 속으로 끌어들이려 안간힘?을 쓴다. 심지어 왕따는 기본이고 형제라는, 자식이라는, 가족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자행되는 질서유지를 위한 그들의 단합된? 모습은 비열해 보이기까지 하다. 결코 영혜를 위한 게 아니란 생각이 들 정도로. 오히려 거부감만 더 키운 결과로 나타나고 그렇게 득달같이 달려들던 가족이란 구성원들이 정작 정신병원에 입원하자 외면과 이탈의 조짐을 보인다. 이것이 인간 본성이 아닌가 싶다. 하는 척, 도와주는 척, 의무감 내지 상대를 배려하기 보단 자신들의 울타리 지키기의 일환으로 밀어내기 작전에 동원된? 쇼를 보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인혜의 이야기는 고통이란 틀에서 보면, 흔히 당사자가 가장 고통스럽다고 표현한다. 그러나 이것이 결코 진실이 아니란 걸 보여준다. 모두 떠난 자리를 끝까지 함께 하며 이꼴저꼴 다 지켜봐야 했던 인혜의 삶이 과연 평범한 삶인가. 우리 자화상을 돌이켜 본다. 보통 바둥바둥하면서도 삶을 지켜내기 위해 애쓰는 게 인지상정. 그러나 그건 차라리 평범함이 아니다. 생활에서 살짝 비껴있는 화가 남편, 채식을 고집하다 자해 및 정신병원, 더 나아가 죽음으로 치닫는 여동생, 그런 동생을 지켜주기 보다는 자신의 길을 가는 제부, 그리고 친정 식구들의 인혜에게 떠맡긴 행동들. 남의 얘기가 아닌 절절하게 다가오는 아픔이 교차된다.

 

올 봄 돌아가신 장인이 치매로 병원을 전전했던 지난 몇 년, 처형과 아내, 그 가운데서도 처형의 역할이 그대로 인혜의 삶 자체다. 맏이라는 이유로 병원비, 병문안, 형제 돌보기, 장모조차 나몰라라 하던 장인에 대한 일거수 일투족을 외면하지 못하고 때로는 지치고 고통스러운 자신의 몸(축농증 수술등)조차 돌보지 않으면서 지낸 몇 년, 고스란히 인혜의 삶과 괘를 같이한다.

 

어떻든 인혜의 삶은 결코 평범을 가장했지만 평범할 수 없었다. 생활비 한 푼 주지않는 남편, 내조의 끝은 보이지 않고, 영혜와 남편의 불륜을 지켜봐야 했던 아픔, 그리고 나무불꽃으로 마지막 삶을 불사르던 영혜를 지켜봐야 했던 인혜의 삶은 어떻게 봐야할까. 자신의 이름으로 살기 보단 언니로, 아내로, 처형으로, 딸로 살아야 했던 그녀의 삶이 다들 그렇게 산다고 말들은 하지만 결코 쉽지않다. 이 한마디로 귀결된다. '그녀의 담담한 목소리는 얼마나 많은 담즙을 세계의 이면에 방울방울 떨어뜨리고 있는가'(P.223).

 

마지막으로 영혜의 삶을 돌이켜보자. 영혜가 채식주의 삶을 시작한 건 트라우마에서 비롯된다. 어린 시절 개가 물었다는 이유로 아버지에 의해 잔인하게 죽어간 개가 현몽하고, 무책임하고 무덤덤한 남편의 몰인정과 야수성을 지닌 모든 인간의 잔혹함을 떠올린다. 자신이 살기 위해 다른 생명을 희생시킨 것에 대한 죄의식이 발동한다. 이를 벗어나려는 일환으로 채식만의 식단을 꾸미기 시작한다. 냉장고로부터 육식을 퇴출시키고 심지어 육식국물조차도 거부한다. 자신에게 남아있는 동물의 살을 도려내는 행위를 통해 살아있는 화석의 삶을 지향하면서(P.232). 어린아이의 순수함에 가까워지지만 어느새 죽음의 끝에 다다른다. 식탁에서 고기를 치우면서 시작된 제도권에 대한 항변(육식거부)이 사람들의 불편한 시선을 초래하고 채식주의자로 낙인찍고 정신병원으로 가두는 등 갖은 횡포 끝에 죽음을 협박?하지만 오히려 죽음을 불사하면서 맞선다.

 

그녀의 외침에 세상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여전히 쳇바퀴를 돌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리없이 식탁 혁명을 가져오고 있다. 웰빙, 직거래, 도시농업등을 통해 육식 위주의 삶에서 채식을 곁들인 자연순응 체제로 변화의 조짐이 감지된다. 지구온난화 같은 대명제 앞에서 대안을 모색하려는 다양한 모습도 펼쳐진다.

 

짧은 소설 속에서 긴 서평이 되었지만 자명하다. 우리 삶 속에서 퇴출시켜야 할 찌꺼기는 무엇인가에 대한 철저한 의문을 제기하게 만든 수작이다. -주의자로 비록 낙인찍었지만 우리 스스로 -주의자를 향한 발걸음을 재촉하는 촉매제가 된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주홍글씨가 각자의 삶 속으로 깊이 스며들어 건강한 삶, 회복하는 삶이 되는 극적반전이 펼쳐지길 소망해 본다.

 
취소

댓글쓰기

저장
덧글 작성
0/1,000

댓글 수 10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march

    서유당님, 이주의 우수 리뷰 축하드려요^^

    2016.06.29 15:21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서유당

      고맙습니다. 이런 것도 뽑힐 수 있네요...ㅎㅎ

      2016.06.29 18:50
  • 파워블로그 waterelf

    서유당님, 이주의 우수리뷰로 선정된 것을 축하합니다.

    2016.06.29 19:24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서유당

      감사합니다. 채식주의자 띄우기 전략?에 말려든 느낌이네요...ㅎㅎㅎ

      2016.06.29 22:32
    • 파워블로그 waterelf

      1. 지난 번과 이 번 우수리뷰에 <채식주의자>가 5개, <회복하는 인간>이 1개 선정된 것을 보면, 서유당님의 말씀처럼 <채식주의자> 띄우기 전략일 수도 있겠네요.^^
      2. 한강 작가의 책이 대중적인 취향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아카데미 수상작에 관객이 몰리는 것처럼 갑자기 구매하고 읽는 모습이 조금 씁쓸하더군요.^^;;

      2016.07.01 07:26
    • 파워블로그 서유당

      편집증 같은 내용이어서 공감하기가 어려운 측면이 있고, 한강 작가의 연륜으로 볼때 인생의 심오한 깊이까지 느끼기엔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이거든요. 워낙 맨부커의 위용 탓에 무임 승차하는 듯한 출판사들의 아전인수격 행사에 매몰된 느낌이 들었거든요.

      2016.07.01 12:04
  • 스타블로거 문학소녀

    우수 리뷰 선정, 축하 드립니다.
    오랜만에 들어왔더니 좋은 소식들이 있네요.
    전 읽은 지가 오래돼서 가물가물 합니다.
    왠지 다시 읽고 싶어지게 만드는 출판사들의 전략인거죠??ㅋㅋ
    맨부커상 소식 듣고 책장 귀퉁이에 꽂힌 책을 꺼내놓고는 그냥 뒀네요.^^

    2016.07.03 16:55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서유당

      감사합니다. 다시 읽으면 또다른 감동이 찾아올 거예요...^^

      2016.07.04 05:50

PRID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