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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소설 읽는 노인

[도서] 연애 소설 읽는 노인

루이스 세풀베다 저/정창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연애 소설 읽는 노인(1989/정창 옮김/열린책들/2001』은 루이스 세풀베다(1949~2020)의 첫 작품으로 베스트셀러가 됨과 동시에 ‘티그레 후안상’을 수상했다. 그는 작가 최고의 환경소설로 일컬어지는 『연애 소설 읽는 노인』 권두에 열대우림을 지키고 브라질 소작농과 토착민의 인권보호를 위해 활동하다가 암살당한 환경운동가 치코 멘데스를 기린다. 태어난 곳 칠레로부터 망명 이후 작가는 여러 나라와 직업을 거치는데 “지칠 줄 모르는 여행가”이자 “행동하는 지성”(p.172)으로 역할한다. 역자는 그의 문학이 “기존의 라틴 아메리카 소설 문학이 추구해 온, 적어도 그들이 보여 주었던 모습에서 탈피하거나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p.173)고 전한다. 루이스 세풀베다는 특히 유럽에서 라틴 아메리카 작가들 중 가르시아 마르케스 이후 가장 많이 읽힌다(p.173)고 하는데, 그를 읽고 난 독자는 아마도 쉽게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동화부터 소설까지 뛰어난 가독성은 그의 문학에 편안히 다가서게 한다. 또한 깊은 울림으로 잊혀 지지 않는 여운을 남긴다는 점에서 다시 찾게 만드는 힘을 간직한다.

 

“하늘에는 당나귀 배처럼 불룩한 먹장구름이 무겁게 드리워 있고, 밀림을 휩싸고 도는 끈끈하고 칙칙한 공기가 금방이라도 들이닥칠 폭풍우를 예고하고 있었다. 이미 우기에 접어든 날씨였다.”(p.11) 소설의 첫문장은 앞으로 있을 불안한 여정을 암시한다. 마을 부락민들은 엘 이딜리오를 찾는 외지인이 거의 없음에도 1년에 두 번씩 들르는 치과의사를 기다린다.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 프로아뇨 노인은 생리적 이유보다는 정신적으로 그의 방문이 더 각별하다. 육개월마다 한 번씩 노인의 독서취향에 맞는 두 권의 연애소설을 전달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들은 나중에 노인이 난가리트사 강 앞에 있는 그의 오두막에서 고독을 달래며 읽고 또 읽게 될 텍스트였다.”(p.41) 하지만 노인의 소망은 잔혹하게 훼손된 시신이 카누에 실려 떠내려 오며 저지당한다. 누가 왜 이런 일을 벌였을까, 공격당한 자와 공격한 자의 실체를 밝히게 되면 처참한 번복을 막을 수 있을까, 엘 이딜리오의 유일한 공무원인 뚱보 읍장은 암살쾡이 추적단을 꾸리고 노인은 실질적인 리더가 되어 미지의 밀림을 향한다.

 

이기적이고 무분별한 인간은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환경파괴를 자행한다. 밀림의 주인인 동물도 원주민도 더 깊은 곳으로 끝없이 쫓기고 ‘양키’로 상징되는 권력은 폭력의 흔적을 남기고 돌이키기 어려운 상처를 입힌다. 노인이 밀림 생활을 배워가던 시절에도 지식과 경험이 쌓여갈지언정 “수아르족은 될 수 없었다”(p.60)고 고백한다. 수아르족의 특별한 의식들을 포함해서 밀림의 생태는 생생하면서도 놀라워서 작가가 어떻게 자료수집을 했을까 궁금할 정도다. 열린 감각, 깨어있는 의식으로 다가갔던 작가의 모든 여행과 정착의 흔적은 온전히 문학으로 구체화되었다. 암살쾡이로 인한 숨은 위협과 쫓는 과정은 읽는 내내 긴장을 늦추지 못하게 만든다. 해결해야 할 위협적인 존재, 적과의 결투가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수긍하면서도 본연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생명이 죽어가는 장면은 독자의 마음을 아프게 할 것이다.

 

소설의 특별한 매력은 제목이기도 한 “연애 소설 읽는 노인”에게 있다. 유창하지 않기에 노인의 “읽기”는 더 정성과 애정이 깃든다. 노인이 책을 매개로 의사와, 신부와, 여선생과 만나게 되는 장면, 책을 구하기 위해 궁리하고 원숭이 포획이라든지 댓가를 지불하는 방식도 간절함의 크기를 짐작케 한다. 작년 이맘때였다. 2020년 4월 세풀베다의 사망소식을 기사로 접하고 처음에는 믿어지지 않았다. 꾸준히 신간소식을 들을 수 있었던 귀한 동시대 작가와의 돌연한 이별이 코로나 때문이라는 사실이 더 아이러니했다. 환경과 자연을 지키고 돌이키지 않으면 공멸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작가는 마지막까지 웅변한 것 같다. 하나의 작품으로 다채로운 질문과 즐거움, 경각심을 일깨우는 『연애 소설 읽는 노인』을 청소년과 성인 모두에게 권하고 싶다.

 

노인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책을 읽었다. 그의 독서 방식은 간단치 않았다. 먼저 그는 한 음절 한 음절을 음식 맛보듯 음미한 뒤에 그것들을 모아서 자연스러운 목소리로 읽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단어가 만들어지면 그것을 반복해서 읽었고, 역시 그런 식으로 문장이 만들어지면 그것을 반복해서 읽고 또 읽었다. 이렇듯 그는 반복과 반복을 통해서 그 글에 형상화된 생각과 감정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음절과 단어와 문장을 차례대로 반복하는 노인의 책읽기 방식은 특히 자신의 마음에 드는 구절이나 장면이 나올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도대체 인간의 언어가 어떻게 해서 그렇게 아름다울 수 있는가를 깨달을때까지 마침내 그 구절의 필요성이 스스로 존중될 때까지 읽고 또 읽었다. 그러기에 그에게 책을 읽을 때 사용하는 돋보기나 틀니 다음으로 아끼는 물건이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p.45)

그는 인디오들과 함께 생활하는 동안 자신이 가톨릭을 믿는 농부라는 사실을 훌훌 떨쳐 버렸다. 새로 이주해 온 개간자들이 정신 나간 사람으로 쳐다보았지만 원주민인 인디오들처럼 거의 벌거벗은 몸으로 돌아다녔다. 자유라는 말은 한번도 생각한 적이 없었지만 밀림에서 자신의 자유를 마음껏 누렸다. 그사이 차츰 밀림의 세계에 눈을 뜬 그는 주인 없는 푸른 세계에 매료되어 마음속에 간직해 오던 증오심을 잊었다.(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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