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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앞에서

[도서] 법 앞에서

프란츠 카프카 저/전영애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프란츠 카프카(1896~1943)의 『법앞에서(전영애 옮김/민음사)』는 열 네 편의 작품을 담은 단편집으로 “카프카적인”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이해하게 한다. 현대 실존주의 문학의 선구자로 일컬어지는 카프카는 질병으로 고통받고 때이른 죽음을 맞기까지 장편과 단편, 일기 등을 합해 총 3400여 쪽에 달하는 많은 작품을 남겼다. 죽기 전 평생의 벗이었던 막스 브로트에게 자신의 미완성 작품을 모두 없애달라고 부탁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브로트가 이를 실행하지 않은 덕분에 현대의 독자가 카프카를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이 다행스러운 일이다. 책은 한 손에 쥐어지는 문고본으로 분량도 165쪽으로 가볍다. 들어가는 말, 역자해설, 편집후기 등도 없고 작품에만 최대한 페이지를 할애했다. 하지만 예상대로 결코 가볍게 읽을 수 없는 작품들이 막강하게 행진해온다.

 

“법(法) 앞에 문지기 한 사람이 서 있다.”(p.7)로 시작하는 표제작 <법 앞에서>는 카프카 자신이 일기에서 “전설”이라 불렀다 한다. 카프카 전기를 쓴 클라우스 바겐바하에 의하면 카프카 스스로 가장 소중하게 여겼던 것이지만 확고한 정설로 인정받을 만한 해석이 없을 만큼 수수께끼로 남아있다.(p.168,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 은행나무)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우리 모두이기도 한 “시골 사람 하나”와 삶의 목표이자 유일한 가치, 의미일 수 있는 “법”, 그 사이 통과해야만 하는 단계, 또는 과정인 “문지기”의 단순한 구도로 인생 전체를 조망한다. 시골사람은 카프카, 문지기는 아버지라고 단선적으로 읽히지는 않았다. “법”의 수많은 다른 이름, 꿈이나 목표, 의미에 닿는 진정한 길은 있을까, 있다면 어떨까 하고 생각의 방향을 틀어본다면 다음 단편 <죄와 고통, 희망 그리고 진정한 길에 대한 성찰>중 첫 번째 잠언이 이를 정리해준다. “진정한 길은 드높이 팽팽하게 쳐진 줄이 아니라 땅바닥 위로 바싹 쳐진 줄처럼 나 있다. 진정 디디고 간다기보다는, 오히려 걸려 넘어지게끔 되어 있는 듯이 보인다.”(p.11) 이 통찰과 비유에 놀라울 따름이다. <굴>에 이르면 또 다른 세계다. 법에 닿기 위해 애쓴 압축 여정에 비해 설명과 묘사를 채워 넣음으로 굴과 나, 굴을 파고 예측하고 아끼고 사유하고 갈등하고 손을 놓는 일련의 과정, 어느덧 백발이 지름길로 오는 인생 행로를 그려낸다.

 

<황제의 전갈>은 불가능이란 무엇인가를 시전한다. 절대 절망과 깊은 무력감, 그럼에도 이어질 반복을 떠올린다. 이 짧은 단편은 다음 이야기 <만리장성을 축조할 때>의 부속 장면으로 삽입되는데 영리한 전개다. 작가는 무한히 큰 그림을 그리면서도 가장 작은 씨앗의 미세함이라든지 언뜻 스치는 바람결을 놓치지 않는다. <만리장성을 축조할 때>가 가장 마음을 끄는 작품이었다. “압도적 거대함 앞에 몰아세워지다, 그 사실조차 잊은 채 전락하는 인간”이 이 작품에 대한 한줄 정리 중 한 예다. 본 적도 없고 결코 보지 못할 북방인들을 대비해 축조하는 장성이라니. 이를 위해 감수하는 희생 또한 끝 간데를 모르고 요청받고 지불하는 희생이다. 만리장성 축조는 작가의 미완성 장편 <성>을 떠올린다. 그 외에도 미지의 것에 사로잡혀 무모하게 작동하는 인간의 초상은 또 다른 작품들을 소환한다. 가장 먼저 알바로 무티스의 <마크롤 가비에로의 모험(문학동네)>, 이어서 디노 부차티의 <타타르인의 사막(문학동네)>이다. 카프카가 거듭 변주하는 인물들은 환상적인 배경을 무대로 터무니없이 성실하다. <굶는 광대>는 또 어떤가. 단편 하나 하나 마다 “놀라워라”를 연발하며 읽는 이유는 극도의 환상이 환상에 머물지 않고 지극히 현실적이라는 발견 때문이다. 불통인 채로 이해에 이르지 못하고 맞는 결말들이 가슴을 서늘케 하지만 “지금, 여기, 여전히”는 모든 작품에 들어맞는다. 우아하고 시적인 문장으로 비극적 인간 조건을 말할 때 감정이 실릴 공간은 없다. 건조하고 객관적인 시선은 기록할 뿐이다. 그럼으로 여전히 웅변한다.

 

그러나 내 쪽에서는 모든 것이 도리어 그 당시보다 덜 준비되어 있으니, 커다란 굴은 여기 무방비 상태로 덩그러니 서 있다. 나는 이제 꼬마 수습공이 아니라 노장 건축사이지만 아직 남아 있는 힘을 결단의 시기가 오면 정작 쓰지 못할 터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늙었더라도, 지금보다 한결 더 늙는다면, 정말이지 좋겠다. 이끼 아래의 나의 휴식처로부터 더 이상 몸을 전혀 일으킬 수 없을 정도로 늙었으면. 그러나 실제로 나는 이 곳을 견디지 못해 몸을 일으키고, 이곳에서 포만한 평화와 새로운 근심으로 나를 가득 채우기라도 한 듯이 다시 질주해 내려간다, 집 안으로(p.84, 굴)

그가 사는 건 자신의 개인적 삶 때문이 아니고, 그가 생각하는 건 자기의 개인적 사고 때문이 아니다. 그는 한 가족의 강박에 의해 자기가 살고, 또 생각하고 있다고 느낀다. 그 자체로 생명력과 사고력이 지나치리만큼 풍부하기는 하지만, 그가 모르는 어떤 법칙에 따라 일종의 형식적 필연성을 지니는 가족 말이다. 이 알지 못하는 가족과 이 알지 못하는 법칙들 때문에 그는 풀려날 수가 없다.(p.160, 그-1920년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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