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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천둥 번개가 치는 구름 사이를 가로지르던 거대한 용이 다영과 남자와 노인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다영이 남자를 향해 다급히 외쳤다.

 

-뭐 해요? 안 싸우고.

 

-뭐야? 지금 날 더러 저 괴물이랑 싸우라고? 너 도대체 날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당신은 수퍼히어로잖아요? 그럼 내가 저 용과 싸우겠어요? 아니면 이 영감님이 싸우라는 거예요?

 

-야! 나 미치겠네. 

 

그렇게 말하는 남자의 몸이 마치 저절로 떠오르듯 하늘로 날아오르고 있었다. 남자는 무엇에 이끌려 오르는지 모르겠어서 자기 양팔을 두리번거리며 쳐다봤다. 그러다가 체념한듯이 용을 향해 날아갔다. 용은 너무 거대했다. 하지만 다영은 남자가 이번에도 깔끔하게 이기리라 확신했다. 

 

하늘 위에서 남자는 용의 기다란 몸통의 한 부위를 쳐보기도 했고 용의 뿔을 두 손으로 잡고 꺾어보기도 했지만 용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사실 용은 그와 싸우고 있다기보다는 그저 용 자신의 자태를 뽐내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치얼 업이에요 꼭 이겨요.

 

다영이 그렇게 말하는 순간 용이 거대한 입을 벌리며 남자에게 날아들었다. 

 

-이런 제길.

 

피할 새도 없이 용이 남자를 집어삼켰다.

 

-어. 어. 

 

남자가 용에게 먹히자 다영은 이게 아닌데 하며 놀라 달아날 생각도 못했다. 옆의 터번을 쓴 노인은 멀찍이 날아가 버렸다. 다영은 남자가 다시 나타나기를 기다렸지만 그러는 사이 용이 날아들어 당황하며 돌아서 도망 가려는 다영마저 삼켜버렸다.

 

 

15

 

-환영한다. 아주.

 

남자가 온몸으로 빛을 발하면서 비꼬는 투로 이야기했다. 

 

-아니. 이기랬더니 먹히면 어떡해요?

 

-이 정도 규모의 괴물을 어떻게 이기라는 거야. 넌 내가 정말 무슨 수퍼맨이라도 되는 줄 아는 거야.

 

다소 성난 투로 말했지만 다영은 그런 남자에게 화가 나기보다 그저 지금 이 상황에서 어떻게 벗어나나 당황스러웠다. 

 

-이제 어떻게 벗어나죠?

 

-그걸 나한테 묻는다고 해결될 것 같지는 않은데. 이 벽을 계속 쳐봤는데 꿈쩍도 하지 않아.

 

남자가 용의 위벽이랄 수 있을 벽을 턱턱 치면서 말했다. 남자의 광채로 용의 뱃속이 환하게 빛났는데 용의 뱃속은 무슨 빛을 반사하는 타일처럼 매끄러웠다. 

 

-이제 우리는 여기서 소화되고 마는 건가요?

 

다영이 그렇게 말하자 바닥에서 천천히 물기가 스며 올라오기 시작했다. 

 

-진정해. 진정하라구. 용은 알다시피 상상 속의 동물이야. 용이 무얼 소화시키고 위액이 나오고 그럴 리가 없잖아.

 

-그건 그렇네요.

 

다영이 수긍하자 물기가 스미던 바닥이 다시 뽀송하고 매끄러워졌다. 

 

-우리 이제 어떡해요? 지금쯤이면 집에 돌아가야 할 시간일 텐데. 늦으면 엄마가 걱정하실 거예요.

 

다영은 두려운 마음에 눈물이 그렁해졌다.

 

-지금 상황에 엄마가 걱정하는 게 문제야? 울기보단 우선 현실을 보자고 우리는 상상 속의 동물 뱃속에 있는 거야. 이게 가당키나 해?

 

-상상 속의 동물이라도 당신 세계에서 뭐가 불가능하겠어요?

 

-햐! 미쳐버리겠네. 

 

-내가 더 미치겠어요. 당신이 용한테 질지 누가 알았겠어요?

 

-넌 도대체 날 어디까지 믿는 거야?

 

남자가 다영이 보여주는 자신에 대한 신뢰에 뭔가 감동한 것 같은 어조로 물었다.

 

-당신 같은 수퍼히어로라면 못할게 없을 줄 알았죠.

 

-자꾸 무슨 근거로 내가 수퍼히어로라는 거야? 

 

-당신이 보여준 모든 게 근거죠? 의상이 마음대로 바뀌고 괴물들을 처치하고 하늘을 날고 차원을 이동하는데... 지금 봐요. 몸에서 빛까지 나고 있잖아요. 그런데 수퍼히어로가 아니면 뭐예요?

 

-난 그저 평범한 사람이야. 니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대단하지 않아. 다영아.

 

남자가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불렀다. 다영은 까칠한 이 남자가 부르는 자신의 이름이 너무 부드럽게 느껴졌지만 한 편으로는 화가 났다.

 

-너무 불공평하지 않아요? 내 이름을 당신은 아는데 나는 당신에 대해서 아는 게 없어요.

 

남자가 다영을 잠시 바라보다가 바닥에 천천히 앉았다. 다영도 남자를 따라 앉았다. 

 

-내 이름은 차지현이야.

 

-훗. 지현이요? 저 고딩 때 선배이름도 지현이었어요. 참고로 말하자면 나 여고나왔어요.

 

-이름 갖고 웃고 그러지마. 안그래도 어릴 때부터 놀림 많이 당했으니까. 

 

-몇 살인지 물어봐도 돼죠? 

 

-22살이었지.

 

-나이를 과거형으로 말하는 사람이 어딨어요?

 

-하긴 그렇긴 하네. 그냥 22살이야.

 

-학생이에요.

 

-아니, 난 모델이었어.

 

-그것도 과거형이에요? 지금은요?

 

-보시다시피 이러고 있는 백수지.

 

다영은 뭔가 시원치 않은 남자의 대답이 조금 불만스러웠지만 오늘에야 이 남자 그러니까 지현 씨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되는 듯해 마음이 포근해지는 것만 같았다. 

 

-가족은...

 

-뭐 취조하는 것도 아니니까. 이쯤만 해.

 

-나한테 궁금한 것도 물어봐도 돼요.

 

-너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어. 이름은 다영이고 갓 입학한 여대생이고 나이는 20살, 현재는 엄마랑 둘이 살고 있고, 그리고 페미니스트야. 꼴페미 기질도 좀 있어 보이고.

 

-뭐예요. 그거 여혐이예요. 여혐. 

 

다영은 남자가 처음으로 다영에 대해 알고 있는 것들을 말하자 뭔가 '그린라이트인가?' 하는 생각이 들려는 중이었다. 그런데 꼴페미라니? 꼴페미란 표현을 듣고는 발끈하고 말았다.

 

-나는 꼴페미를 싫어하는 거지 전체 여성을 다 싫어하지는 않아. 그리고 너 자신이 언젠가 돌아보면 알겠지만 니가 하고 있는 게 남혐이야.

 

-무슨 소리예요. 저는 여권을 신장 시키자는 마음은 있지만 남혐을 하지는 않는다구요. 

 

-정말 그럴까? 너는 같은 또래 남자들과 술을 마시면 남자들이 여자들 술에 약이나 탄다고 생각하는 부류잖아.

 

-아니, 걔네들이 정말 술에 약을 탔으니까 그렇게 아는 거지. 내가 그런 현실을 만들어라도 냈다는 거예요?

 

-맞아. 니가 만들어낸 현실.

 

-끌어당김의 법칙. 뭐 그런 거 말하는 거예요? 내가 그런 현실을 의도해서 끌어당겼다구요?

 

-현실을 의도해서 끌어당겼다는 것과는 차이가 있겠지만 거의 비슷한 의미야. 니가 완전히 창조한 현실이라 말이니까. 지금의 이 용처럼.

 

-네? 내가 이 용을 만들어냈다구요? 

 

-그래. 니가 만든 거야. 넌 지금 현실을 불러오는 정도가 아니라 완벽히 창조할 수 있는 차원에서 살고 있는 거야. 수긍하기 어렵다면 아까 그 영감의 말을 떠올려도 돼. 크게 다르진 않으니까.

 

다영이 생각에 잠겼다. 

 

=시뮬레이션 세계 속에서 프로그래밍 할 수 있는 힘을 내가 갖게 된 거라는 말이잖아? 이 용도 내가 창조했다니 믿어지지는 않았지만 무턱대고 부정할 수만은 없을 것 같아.

 

-이 용과 싸워서 이겨내야 할 건 내가 아니라 너야. 원더우먼님.

 

다영이 문득 그렇구나 나도 수퍼히어로일 수 있구나 생각하자 그녀의 몸에서도 지현과 같이 광채가 빛나기 시작했다. 그것도 지현보다 더더욱 환하게 말이다. 

 

-그래, 용과 싸워 이겨야 하는 건 나였어!

 

다영은 눈에서도 붉은 오렌지빛 광채를 뿜어내면서 바닥에서 일어났다.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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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타블로거 추억책방

    지현이 용을 멋지게 무찌를 줄 알았는데 힘 한 번 못 쓰고 배 속으로 들어가서 웃겼습니다. 이번 용이 나온 에피소드를 볼 때 다영이의 능력으로 앞으로의 시련(?)들을 헤쳐나갈 것 같네요. 맞죠? 이하라님?^^

    2021.11.22 20:46 댓글쓰기
    • 스타블로거 이하라

      이제 대미가 얼마남지 않았습니다. 시련은 있겠지만 그리 길지는 않을 거예요. 이번 이야기에선 성장도 그렇지만 로맨스에도 무게를 두려했는데 짧은 이야기이다보니 그리 인상에 남을 장면이 없는 것 같아요. 제가 썼지만 아쉽네요.^^;

      2021.11.22 21:38

PRID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