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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마등 임종 연구소

[도서] 주마등 임종 연구소

박문영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창작과 비평 문학초점 파트와 관련해서는, 문학 작품을 평할 만한 초점과 고찰이 부족한 지라 대신 감상문에 가까운 리뷰글을 쓰기로 한다. 마침 좋아하는 장르이고 다루는 소재와 주제 모두가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작년에 출간 소식을 듣고 관심을 가졌으나, 늘 비슷한 이유로 읽기가 유예되거나 최초의 관심을 망각한 작품들 중 하나이기도 하다.

 

‘안락사’나 ‘존엄사’ 형태의 죽음이 법적으로 허용된 세계가 배경이다. 현실에서도 국가 별로 시행되기도 하고 딱히 미래의 세계 모습이라고 할 바가 있나 싶지만, 이 소설의 인물들은 ‘시공간을 넘어 원하는 장면에서 원하는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 이 책의 제목인 <주마등* 임종 연구소>이다.

 

주마등走馬燈 :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류의 표현을 통해 비유적 뜻은 알고 있는데, 아무리 애써도 나는 ‘등불’로서의 주마등을 본 적이 없다. 기억도 없다. 찾아봐도 형태를 잘 모르겠다. 안 다고 착각한 것들이 끝이 없다. 실재라고 믿는 허상이 수없이 많다.

 

주마등이란 명칭은 남았지만 실물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에 진심으로 놀랐다. 나만 못 본게 아니라 아무도 못 봤다?! 그림도 없고 등잔박물관에도 없고 양주의 조명박물관에 개념도를 기초로 재현해 놓은 작품이 하나 있다. 충격적이다. 명칭이 남았다고 해서 유물도 그림도 없는 등이 실제로 존재했다고 믿어도 되는 걸까.

 

 

덕분에 소설의 본 주제에 집중하지 못하고 한참 겉돌았다. 어쨌든 주마등이란 실물이 없다는 점에서 오히려 삶과 죽음 모두와 연계된 참으로 적절한 소재이고 표현이란 생각이 든다.

 

자신의 죽음을 ‘지원’하는 이들은 그 이유로 무언가를 잃은 이들이다. 자연스런 노화와 질병도 있고, 극심한 우울과 가난도 해당된다. 이들은 지원을 통해 연구소에 들어오면서 품격 있는 숙식과 간병 서비스를 받고, 시신 수습과 장례에 대한 일체의 책임과 비용도 부담하지 않는다. 일견 무조건 무료 서비스처럼 보이지만 대신 지원자들은 자신의 행복한 기억을 보여주어야 하며, 그 기억을 토대로 만든 가상현실 속에서 마지막으로 머물다, 멈추고 싶은 곳에서 암호를 말하고 임종을 맞는다.

 

완벽하기만 하다면 모두가 만족스런 죽음을 맞고 행복할 것이지만, 피하지 못한 부작용, 오류가 발생하며 소설적 갈등이 펼쳐진다.

 

행복한 기억을 토대로 만들어진 가상 세계에서 맞는 죽음은 아름답고 화려하기만 할까.

 

“다른 곳에서라면 달아났겠지만 여기라면 상관없지 않나. 노력하지 않기 위해 온 곳이니 극복할 것도 없다. 될 대로 되겠지.”

 

“의식을 열어 가상현실에 들어간다? 근데 거기서 누굴 만날 것 같아? 그냥 또 자기 자신이야. (...) 죽을 때까지 자기한테 파묻히고 싶어?”

 

“모르는 것까지 상상할 순 없잖아요? 그것까지 슬퍼하면 감당이 안 되니까요.”

 

“선택하라니까 되게 대접받는 것 같고? (...) 이게 열심히 기도하면 천국 간다는 말이랑 뭐가 달라?”

 

SF미스터리가 아닐까 했던 짐작은 빗나갔다. 죽음을 주제로 두고 철학적으로 의심하고 고찰하고 의미를 재구성해보자는 그런 메시지가 읽혔다. 상대적으로 젊은 지원자들은 죽음을 ‘선택’하는 대신 가상의 현실에서 보고 싶었던 모습대로 살아 보자는 삶을 선택했다. 장편에 익숙해져서 친해질 시간이 부족했는지, 젊은이들의 분위기가 어색한 나이가 된 탓인지, 주요 캐릭터들이 살짝 거칠고 입체감이 덜하고 친밀감이 차곡하게 쌓이진 않았다.

 

이야기 속에서 연구소는 이런저런 이유로 비난을 받고 폐쇄되었지만 나는 완화 가능성이 전혀 없는 질병에 시달리는 이들, 노화로 더 이상 육체적 기능이 어려운 이들을 위한 의료서비스가 미래에 마련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층 더 바라게 되었다. ‘선택’을 할 수 없는 뇌질환을 앓는 이들, 다른 이유로 지원을 할 수 없는 이들에 대한 세심한 서비스가 보충되어야하겠지만.

 

나는 장기기증과 연명치료에 관한 입장을 밝혀 두었다. 언제나 뭔가 준비가 덜 된 기분이어서일까, 시기 자체를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건 섣부른 감상일까.

 

“허이경이 문제 삼은 것은 안락사 자체의 윤리성이 아닌, 안락사를 위한 기억 편집술의 허구성과 허위성이에요. 즉 우리가 삶에서 행복한 장면들만 편집한다고 할 때, 그 행복이 얼마나 보편성과 일반화라는 틀에 갇힌 것인지 파고듭니다.”

 

박새와 황조롱이의 출연은 책을 읽으면 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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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는 창작과 비평 191호 문학초점 중 일부입니다.

 

신철규: ‘작가의 말’을 보면 (...) 버스를 타고 가다가 소설 아이디어를 착상했다고 하더군요. 노을 지는 장면을 보면서 이게 저승으로 가는 버스는 아닌가, 지금 내가 살아 있는지 죽어 있는지 모르겠다 생각했다고요.

 

신철규: 사회적인 안정을 얻지 못하거나 체제에 편입되지 못하면서 고통을 겪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임종 연구소로 들어옵니다. 상황이 이러한바 ‘안락사’라는 말은 모순에 불과하겠지요.

 

김해자: 무엇이든 밝게만 보려고 하는 사람은 다른 차원의 진실을 보지 못한다는 점 (...) 실제 우리 사회는 행복과 소유라는 프레임으로만 삶을 평가하려 하잖아요. (...) 조각난 것들을 한데 뭉쳐 놓고 정작 분리하지 말아야 할 것들은 억지로 떼어놓는 식입니다.

 

정홍수: 우리가 왜 같이 있게? 다들 세상이 안 바뀌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니까 여기까지 온 거야. (...) 사실은 안 변하는 게 좋으니까”(118면) 죽음의 순간을 감싸는 위로가 문제가 아니라, 불행을 만드는 삶의 조건을 바꾸는 게 문제라는 걸 통렬하게 이야기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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