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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中) 은 천하의 커다란 근본이다"는 말은 희노애락이 발현하지 않은 것으로 이 이치가 혼연하게 치우치거나 기운 것이 없음을 말한 것입니다.태극은 실로 치우치거나 기운 것이 없이 모든 조화의 근본이 됩니다. (-51-)


'의와 이가 함께 시행되고 ,왕도와 패도가 어울러 행해질 수 있다'는 학설을 물리쳐 버리시고 분노를 억제하고 사욕을 막으며 허물을 고쳐 선으로 옮기는 일에 종사하여 순수하게 깨끗한 도로 스스로를 규율하시면 ,유독 인간 세상의 화(禍)만을 면하겠습니까? 그 본래의 뿌리를 붇돋아 키우며, 바른 근본을 맑게 하는 이유는 훗날의 사업에서 발휘하는 것이 더욱 크게 빛나고 고명해지기 위함입니다. 서로 함께한다는 것이 더욱 크게 빛나고 고명해지기 위한 것입니다. (-81-)


천하의 선비에 대해서는 막연하게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또한 인재를 구하면서는 어떤 경우에는 가까운 데서만 찾으면서 먼데 사람을 빠뜨린 것을 알지 못합니다.적은 것에 만족하여 많은 것은 잃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다 갖춘 사람을 구하다가 너무 상세하게 따지고 드는 바람에 도리어 잃어버린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197-)


"이치는 삼재(三才)에서 나오고 ,분(分)은 인도(人道)에서 나왔다.'서명'은 이치로만 말하고, 분에 대해서는 베풀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246-)


다시 바라건데, 당신은 저의 설명이라 하여 소홀히 여기지 말고 우선 마음을 비우고 겸손한ㅇ 자세로 완전히 이해하기를 구해야지,고상한 것을 좋아하고 특이한 이론을 내세워 함부로 문제점을 찾으려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래도록 음미하여 마음에 푹 젖게 되면 천자의 변화하는 신비로움과 음양이 사라지고 자라는 오묘한 이치가 저절로 마음속에 환하게 되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놀랍고 기쁘고 웃음이 나고 즐거운 일이 있을 것입니다. (-327-)


글을 읽다보면 절로 의심이 생긴다고 하신 말씀은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과거에는 경전을 해석하는데 정설이 없었으므로 여러 선생들의 말씀이 더러 같지 않았습니다.그 결과 독서를 하는데 의심이 없을 수 없었던 것이나,근래에는 여러 학설이 다 나오고 강론하는 자들도 많아 의심할 곳이 없게 된 것입니다. (-461-)


'도덕에 화순(和順)한다'는 것은 본원에 묵묵히 계합함이요,'의(義)에 맞게 한다'는 것은 변화에 대응함이 마땅함을 얻는 곳입니다.물건마다 모두 이치를 지니고 있으니 반드시 하나하나 미루어 연구해 나가야 합니다. 본성(性)은 이치가 지극한 곳입니다.이때문에 .'다한다(盡) 라고 말합니다,명은 본성이 그로부터 유래한 바의 처소입니다.이런 식으로 미루어 나아가면 저절로 중복되지 않을 것이니 반드시 이전에 말한 것처럼 할 필요는 없습니다. (-541-)


평소에 일이 없을 때에는 시비를 가리는 일에 대해 의혹이 없을 듯하지만, 일이 생겨 대응해 나가다 보면 잘못에 빠지는 것이 열에 일곱 여덟이나 됩니다.비록 곧 바로 후회하지만 뒷날의 실수가 또 지난 번과 같습니다.지금 일에 임했을 때 '기뻐할 만 하고 ,괴이히 여길 만하며,두려워할 만하고, 막힐만한 일들'에 대처해 나갈 때, 평상시의 마음을 바꾸지 않고자 하지만 그 방법을 어떻게 강구해야만 하겠습니까? (-610-)


제가 세상에 서 머뭇머뭇하는 까닭은 인(仁)을 이루는데 도움이 될 만한 친구를 구하려는 것이었지만, 얻은 것은 한두 사람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 사이 가만히 들으니, 당신은 가학의 연원이 바르고 재주와 자질이 민첩하고 예리하여 뮈에서 아주 뛰어났고,그 깊은 조예와 침착한 식견은 초연한 바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724-)


심(心)은 몸에서 주인이 되는데 그것이 체(體)가 되는 까닭은 성(性)때문이며, 따라서 정(情)은 용(用)이 됩니다.그러므로 심은 동정(動靜)을 관통하여 있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이것으로 말하면 이미 지나치게 거칠게 드러난 것 같으니, 어찌 다시 밝음과 어두움이 없게 되겠습니까? (-847-)


주자대전 이제 8권이다.이번 권은 주자대전의 핵심을 다루고 있으며, 단하나로 요약하자면 '이치'였다.책에는 노자와 맹자, 공자 이야기를 주로 다루고 있으며, 이치를 구하는데 매진하라고 말하였다.여기서 이치란 내가 생각해 왔던 그 이치의 범주를 훨씬 뛰어 넘고 있었다.모든 이치의 근간은 하늘에 있으며, 그 시대의 사상의 특징을 파악할 수 있었다.지금의 기준으로 보자면 ,이치는 자연과 우주 만물에 있었으며, 그 시대의 이치와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중요한 것은 이치의 범주이다. 각 사물마다,사람마다, 상황이나 장소마다 이치는 다르다는 점이다.그것은 이치의 본질이면서, 근본이다. 돌이켜 보면 우리는 이치에 대해서 쉽게 생각하고 가볍게 생각한다.그러나 이치의 깊이는 오묘하면서,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었다.나와 타인,그 둘의 이치는 서로 다르다.내가 사용하는 물건들의 이치도 다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그런데 우리는 그 이치를 하나의 범부로 파악하고 있으며, 자기 중심적인 사고를 가진다는 것은 나의 이치에 따라서 타인의 이치를 파악한다는 것이다.그건 필연적으로 충돌할 수 밖에 없다.가족간에 부부 싸움이 일어나는 이유도 사로가 추구하는 이치가 다르기 때문이다.우리가 매일 쓰는 스마트폰이 가지고 있는 이치도 다른 것은 두말할 이유가 없었다.즉 우리는 그것을 이치라 말하지 않고, 다양한 단어나 개념으로 파악할 뿐이었다.즉 지금 우리는 과학이 발달하고, 변화가 당연한 세상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서,서로 공통된 이치를 파악하고, 서로 다른 이치들에 대해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여기서 우리가 말하는 '포용력'이란 내가 추구하는 이치와 타인이 추구하는 이치가 다름을 인정하라고 존중하는 것이다. '배려','존중','겸손' ,'나눔','이해' 는 모든 것들의 공통된 이치이며, 서로와의 관계를 돈독하게 만들 수 있는 매개체가 된다.



또한 이치는 다른 용도로 쓰여질 수 있고,출세의 길이 열릴 수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충돌이 많아지는 이유는 서로의 이치가 맞붙이치기 때문이다.그것은 나를 당황스럽게 하고, 곤란하게 만들 때가 있다.때로는 어떤 상황이 안개처럼 흐려진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우리 스스로 그 상황에 대한 이치를 모르고 잇어서였다.책에는 바로 그런 부분들을 놓치지 않고 있었다.공자의 논어에도 나오고 있다.배움에 매진하되 의심하는 것은 곁에 두고 확실한 것만 취하라고 말이다.그것은 바로 우리 스스로 이치를 구하고,본질을 찾는데 소홀히 하지 말라는 뜻이었다.더군다가 공자가 살았던 그 시대에는 지금처럼 지식이 부족한 시대였다.모든 것에 대한 의심이 배움의 시작이었고,가설을 정설로 바꿔 나가는 과정이다. 또한 나의 삶 속에서 인간관계에 잇어서 문제가 발생한다면,내 주변 사람들을 두루 살펴볼 필요가 있다.그 과정에서 서로가 추구하는 이치가 충돌한다면, 그것을 서로 조율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바로 나를 살릴 수 있는 길이며,나 자신이 성공할 수 있는 길이기도 그리고 이치를 알고,나를 살핀다면, 사람과 사물과 상황에 대한 원망이 사라지게 된다.즉 내 앞에 어떤 불행한 일이 일어나더라도,그것이 나의 이치에 반해서,이치에 어긋나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면,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고, 더 나은 방향으로 대안을 찾을 수 있고,나를 바꿀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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