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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대의 한국, 예전보다 권위주의가 사라지고 활력이 넘친다. 개인의 자유는 더 많아지고 한국문화는 세계로 확장되었다. 어쨌든 겉으로는 그렇게 변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적응이 힘들다. 개인 각자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니 다채롭고 솔직한 감정 표현은 억제되고 상황에 맞는 표준형, 맞춤형 감정 표현이 필요하다. 흔히 살기 어려워 그렇다고 식자들이 말하는데, 경제적 고충이 진짜 이유는 아닌 것 같다. 지금보다 훨씬 어려운 적도 많았고, 돈과 지위가 있는 자가 더 그렇다. 생각해보니 그 사회 변화는 거역할 수 없는 신자유주의의 도도한 흐름인 것 같다. 나, 당신, 한국인 모두는 어리둥절해하지 말고 이 흐름을 익혀야 한다. 이것은 인간에 대한 냉소도 찬양도 아닌 그 자체에 관한 이야기이다. 우리가 사는 시간 그 자체이다. 사회라는 괴물은 입을 떡 벌리고 우리에게 미소 짓는다. (-16-)

어제 만난 사람이 오늘은 나와 어떤 관계에 있는 것인지. 어제처럼 친하게 다가가야 하는 것인지, 복도에서 그냥 지나쳐야 하는 것인지, 다가가서 인사를 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뻔히 대화를 나누었지만, 오늘은 모르는 사람처럼 지나치는 것이 배워야 하는 예의인지. 적당한 선이 도대체 뭘까? 우리 고민을 대신하는 주인공 현규는 그것이 난해하다. 어렵다. 많이 빗나간다. 자기 혼자 친한 바보가 되기도 하고,조직의 요구를 읽지 못하는 이물질이 되기도 한다. 그는 다른 사람은 안 그런데, 자기만 그런 것처럼 느낀다고 말한다. (-41-)

"그걸 배워야 하는 거야.'돈이 많으니까 그러겠지.''보험이 되니까 그러겠지.' 이거 아니야. 보험도 결국 자기 돈이고, 돈이 많아도 감정은 상해. 또는 '주차장이 너무 좁네. 개선해야지.' 이런 해결책도 아냐. '긁은 년놈 양심도 없다.'이것도 아니야.이미 싸가지 없으니까 도망쳤겠지. 그냥 '긁혔네.' 하는 거야. 누가 너를 감정으로 긁잖아.'긁혔네' 하고가는 거야. 그냥 받아들이는 거야. 언짢니?" (-61-)

"아저씨가 한 말 중에 생각나는 것이 있어요.'나는 혼자서 착할 수 있지만 사회에서 착할 수는 없다.' 이제 그 말씀이 뭔지 알 것 같아요.'혼자서 착한 것은 내 자유지만,사회에서 착한 것은 자유에 대한 회피다.' 그 말씀도 어렴풋이 알 것 같아요. 나쁜 것이 나니라 ,그렇게 될수 밖에 없는 것이다 말씀도 나쁜 것으로 생각되지 않아요. 그래서 착한 것은 혼자 착하고, 사회에서는 사회의 매뉴얼을 익혀야 한다는 생가틀 했어요.'사회라는 생명체는 내 맘대로 할 수 있는게 아니다' 라는 무서운 말씀이 뭔지 알겠어요.그래서 더 배우고 싶어요."

나는 다시 한번 새삼 놀랐다. 이렇게 내가 했던 한국말을 잘 이해하는데, 역설과 반어,은유,비유, 모든 것을 이렇게나 잘 이해하는데,얘는 왜 한국 애 같지 않을까. (-91-)

"그러나 너는 내가 방금 말한 이런 분석적 시선을 경계해야 한다. 언제나 관찰자적 관점으로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평가만 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너는 지적 만족이라는 기생충에 갉아 먹히는 삐딱하고, 언어를 즐기는 ,냉소적인 인간이 될 것이다. 축구를 보자. 경기장에서 뛰고 있는 손흥민에게 축구는 항상, 가장 어려운 일이다. 상대에게 막혀 패스할 곳이 없거나, 골을 넣을 수 있는 공간이 비었어도 패스가 제때 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가 축구를 잘하는 방법은 수만번 연습한 슈팅, 패스, 드리블, 헤딩이 몸에 배어 경기 중에 자동으로 나오는 도리 밖에 없다. 분석하고 생각한 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만약, 네가 살았던 그 나라들이 잠시 머무는 곳이 아니라, 그 나라 여권을 갖고 영원히 살아야 하는 곳이었다면, 너는 그 사회에서의 생활을 분명히 난해해 했을 것이다. 너는 그 사회 속에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그 사회 사람들은 자기 사회를 가장 불가사의한 괴물로 마주한다. 우리는 절대로 객관적으로 자기가 속한 곳을 응시할 수 없다. 이미 그 안에 있기 때문이다. 손흥민과 마찬가지로,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여, 사회의 물결 속에 자동으로 들어가는 도리밖에 없다. 비판적으로 분석한다고 성취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 비평적 위치에 있을 수도 없다. 베스트셀러 『사회를 나 중심으로 유혹하는 방법』 을 아무리 읽어도, 그것이 성취되지 않는 이유는, 사회 안에 있는 한, 불가능한 위치에서 사회를 보는 초연한 실수를 즐기기 때문이다. 그 책 또한 사회가 너를 속이는 방편의 하나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너를 무식하게 연습시킨다. 이 매뉴얼을, 창의적이지 못하고, 초등학생도 다 아는 것 같은, 단순 무식한 것을 ,몸이 기억하도록 암기시킨다. 2x1 = 2, 2x 2 = 4.암기하면 나중에 이해된다. 왜 2x1=2 이지? 창의적으로 생각하면, 점점 더 복잡한 상황이 되면서 결국 미쳐버리게 된다." (-123-)

지금 우리가 이해하고, 보편적으로 써 먹히는 법과 제도,정치는 좋은 교육에 근거한다. 그 좋은 교육이란 아무 문제가 없을 땐, 조용히 지나가고,사람들은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상식이 가치관이 되는 상황이 되고, 어떤 상황과 조건이 발생하면, 즉각적인 반응으로 나타날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이 항상 좋은 교육으로 이어지지 않고, 좋은 판단, 좋은 선택, 좋은 결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항상 삐걱거리고, 모순된 상황이 펼쳐지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저자가 의도한 『나쁜 교육』의 실체,본질을 곰곰이 생각한다. 어떤 문제가 있을 때,그 문제의 원인을 밝히고,시정하는 것,바꿔가고, 개선하고, 논리적으로 따지는 것을 통상적으로, 좋은 교육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생각의 관점을 바꿔 버렸다. 그것이 좋은 교육이 아닌 역설적으로 나쁜 교육이 될 수 있다. 즉 이 책의 책 제목인 나쁜 교육이 좋은 교육으로 전환되는 역설적인 상황은 펼쳐질 수 있다. 어떤 문제가 생겨날 때,그 문제를 그대로 보고 관찰하고, 쿨하게 넘길 수 있다면, 내가 스스로 스트레스를 만들지 않으며, 눈앞에 펼쳐지는 상황에서, 쿨하게 넘길 수 있다. 즉 불안과 걱정, 고민과 스트레스는 외부에서 시작되지만, 내부에서 들불처럼 커지고 있다. 이 책을 읽는다면, 얼마든지 나를 바꿔 나갈 수 있다. 쪼잔했던 내가, 쿨한 나로 바뀌는 것은 큰 행동이나 큰 결심이 아닌, 내 앞에 놓인 단순한 행동과 선택과 결과에 대해서, 생각의 전환을 통해 나를 스스로 바꿔 나가는 데 있으며 그것이 『나쁜 교육』에서 저자가 의도한 우리에게 요구하는 소소한 삶의 방정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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