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블로그 전체검색
아무튼, 장국영

[도서] 아무튼, 장국영

오유정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노영미와 후영미, 그리고 안영미

<아무튼, 장국영>을 읽고

 

 

  2003년 봄과 여름 사이, 군대에서 짧은 휴가를 나왔을 때 두 가지 소식을 들었다. 하나는 중국에 교환학생으로 갔던 중문과 동문들이 사스 때문에 돌연 귀국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장국영(張國榮)이 죽었다는 사실이다. 4월 1일 만우절은 중국어로 위런제(愚人節), '어리석은 이의 날'이라고 부른다. 그해 그날 '꺼거(장국영의 애칭, '오빠' 또는 '형'이라는 뜻)'는 거짓말처럼 우리 곁을 떠났던 것이다.

  <아무튼, 장국영>의 저자도 그해 만우절 다음날 어학연수중이던 베이징에서 이 소식을 접하고 하염없이 울었다. 고교시절 친구들 사이에서 양조위 부인, 금성무 부인 등 여러 부인을 제치고 자타공인 장국영 부인으로 불리며, 1998년과 1999년 장국영이 앨범과 영화를 홍보하기 위해 내한했을 때 직접 만나기까지 했다. 그때 그의 곁에서 동행하던 통역사를 보고 그의 통역사가 되겠다고 마음먹고, 대학을 거쳐 통번역 대학원까지 갈 정도로 저자의 장국영 사랑은 진심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장국영 20주기를 앞두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20주기를 기념하고 그를 기리기 위해 쓴 에세이가 바로 <아무튼, 장국영>이다.

 

  '『영웅본색』에서는 주윤발이 멋졌고, 『천녀유혼』에서는 왕조현이 선녀같이 예뻤고,  『백발마녀전』에서는 임청하의 카리스마가 압도적이었고, 『해피 투게더』에서는 양조위가 당하고 만 있는 게 안타까웠다. 그런데 장국영의 소식을 듣고 깨달았다. 내가 좋아한 이 모든 영화에 장국영이 있었다는 사실을. 그는 가장 눈에 띄는 배우는 아니었지만 스스로보다 상대를 더 빛나게 해주는 배우였다. 내가 좋아한 모든 홍콩 영화는 다름 아닌 장국영의 영화였다.'

(73쪽, 「어리석은 이의 날」 中)

 

  나 역시 장국영과 그가 출현한 영화들을 좋아한다. 대학시절 공강 때면 학교 비디오감상실에서 『영웅본색』, 『천녀유혼』, 『아비정전』, 『동사서독』, 『야반가성』, 『춘광사설(해피 투게더)』 등을 빌려 보면서 그의 필모그래피를 하나씩 섭렵해나갔는데, 그 중에서도 단연 『패왕별희』는 몇 번을 봐도 질리기는커녕 또 보고 싶을 만큼 최애하는 작품이다. 그야말로 영화처럼 살다간 장국영을 영화인으로만 기억해온 나는 이 책을 통해 가인(歌人), 노래하는 사람으로서의 장국영을 새롭게 만날 수 있었다.

  1977년 한 경연 프로그램에서 준우승을 하고 연예계에 입문한 그지만 의외로 꽤 긴 무명 시절을 겪었다고 한다. 데뷔한 지 6~7년이 지난 후 발라드와 댄스곡을 넘나들며 홍콩 음악계를 평정했는데, 특히 당시 최고 인기가수였던 알란탐(譚詠麟)과의 라이벌 구도는 심지어 팬들 사이에서 '담장쟁패(譚張爭覇)'라는 말을 만들어낼 정도로 그 갈등의 수위가 높아지다가 끝내 이를 견디다 못한 장국영은 1989년 은퇴를 선언했다는 것이다. 훗날 다시 무대로 돌아온 그가 알란탐과 함께 음원을 녹음하는 등 한결 더 여유롭고 자유롭게 음악을 즐기는 모습을 보여줬다니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마지막으로, 나의 영원한 우상 장국영 님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처음 그의 영화를 본 중학교 1학년의 어느 날부터 박사를 졸업하는 지금 이 순간까지, 지난 20여 년의 시간 동안 나는 줄곧 그의 충실한 팬이었다. 그를 좋아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나는 중국어를 배울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랬다면 당연히 오늘의 이 영광도 없었을 것이다.

(115쪽, 「이 모든 영광을 꺼거에게」中)

 

  <아무튼, 장국영>은 장국영에 관한 이야기이자 저자의 지난 30여 년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책이기도 하다. 수년간 중국 영업을 하던 회사를 그만두고 중국 상하이에서 박사 과정을 밟으면서 썼던 '치사[(致謝), 박사학위 논문 마지막에 후기 형식을 빌려 논문 작성에 도움을 준 사람들에게 감사의 말을 남기는 중국 대학의 관행 중 하나]'에서도 저자가 장국영의 찐팬임을 엿볼 수 있다. 또한 그동안 수차례 출장과 유학생활을 하면서 중국에 남아 있는 꺼거의 흔적을 찾아다니며 그를 추억해왔는데, 특히 꺼거가 가장 좋아한 대륙의 도시인 상하이 곳곳에 베어 있는 그의 향기를 맡아내는 저자의 이야기가 퍽 흥미로웠다. 교환학생 시절과 출장 때 여러 번 방문했던 상하이의 길거리와 건물들, 그리고 야경들이 떠오르면서 문득 나 역시 꺼거가 거닐었던 공간을 오갔다는 생각에 묘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나도 꽤 오래된 팬이라 할 수 있지만 엄밀히 말해서 1세대 팬은 아니다. 조금 거칠게 구분해 1989년 은퇴 이전의 팬들을 1세대 팬이라고 한다면, 그 후 세대는 2세대 팬이라 할 수 있다. (중략) 반면 꺼거의 활동 시기에는 태어나지 않았거나 너무 어려서 그를 알지 못하다가 그가 세상을 떠난 후 비로소 팬이 된 이들이 있다. 바로 3세대 팬이다.

(123쪽, 「후영미」中)

 

  현재 중국어를 연구하며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저자가 넘어야할 큰 산 중 하나가 바로 논문쓰기인데, 고민과 연구를 거듭한 끝에 써낸 논문의 제목이 다름 아닌 「후(後) 장국영 시대 팬덤의 정체성과 사회문화적 함의」라고 한다. 성덕(성공한 덕후)의 좋은 예가 아닐 수 없으며, 그의 장국영 사랑에 대한 화룡점정이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장국영의 '영(榮)'과 중국어로 팬(fan)을 뜻하는 '미(迷)'를 합치면 '영미(榮迷)', 즉 장국영의 팬을 의미하며, 장국영이 사망한 후에 그를 좋아하게 된 팬을 지칭하여 중국에서는 '후영미(後榮迷)'라고 부른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디지털 미디어를 통해 그의 영화와 노래를 접한 그들은 장국영의 팬카페나 위챗 채팅방 등 온라인에서 활발히 활동하면서 그를 단순히 '스타'가 아닌 '예술가'로 바라본다. 무엇보다 후영미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인간' 장국영이며, 그가 노래와 연기, 그리고 삶으로 몸소 보여줬던 스스로를 사랑하라는 메시지를 '장국영 정신'이라 부르며 계승하고 전파해나가는 역할을 그들이 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 장을 읽고 나니 꺼거가 여전히 노영미와 후영미의 마음 속에 살아있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되었다. <아무튼, 장국영>은 저자와 같은 노영미[(老榮迷), 후영미와 상대적인 개념으로 기존의 장국영 팬을 뜻함)들에게는 꺼거에 대한 추억을 함께 회상하고, 꺼거를 몰랐던 사람들에게는 후영미로 이끌어주는 책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장국영으로부터 위안(慰安)을 얻었던 노영미와 위안을 얻게 될 후영미 사이에는, 어쩌면 그가 있을 그곳에서 영원히 평안하길 바라는 나와 같은 '안영미(安榮迷)'가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엉뚱한 생각도 가져본다. 끝으로 책을 내려놓다가 소리없이 화들짝 두 번 놀라게 된다. 앞표지에는 그의 노래 「춘하추동(春夏秋冬):들어보기(클릭)」의 노랫말과 그의 싸인 CD가, 뒷표지에는 그가 가장 좋아했다는 백합 한 송이가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의 영전에 바치는 책이라는 의미를 담아낸 디자인에 한 번 놀라고, 불현듯 설마 하는 마음에 초판 발행일을 찾아보고 또 한 번 놀란다. 그렇다. 2021년 4월 1일이다.

 

 

(153쪽, 「열일곱번의 춘하추동」中 /  128~129쪽, 「후영미」中)

 

 

 
취소

댓글쓰기

저장
덧글 작성
0/1,000

댓글 수 11

댓글쓰기
  • 스타블로거 부자의우주

    아무튼 장국영, 다른 리뷰에서 만나고 흙속에저바람속에님 리뷰를 만나니 감회가 새롭네요.
    장국영 이 죽었다는 사실이 이상하면서도
    많은 영화를 통해 장국영이 안타깝게 사라질 것 같은 느낌은 많이들 느끼고 있었지 싶습니다.
    우엣든 장국영을 다시 소환해주심에 감사 표합니다!

    2021.10.24 20:59 댓글쓰기
    • 스타블로거 흙속에저바람속에

      부자의우주님께서도 장국영을 좋아하시는군요! 여러 세대에 걸쳐 팬들의 사랑을 받는다는 게 참 대단한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이 책을 통해 그를 추억해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바쁘신 와중에도 잠시 휴식 취하시면서 좋은 가을날 보내시길 바라겠습니다, 부자의우주님.^^

      2021.10.25 17:08
  • 스타블로거 추억책방

    [아무튼 OOO] 시리즈는 저도 즐겨보는 시리즈라 반갑게 리뷰를 읽었습니다.
    한창 홍콩영화가 인기가 있을 때 좋아했던 배우라 그의 죽음이 정말 충격이었던 기억이 납니다. 더구나 장국영이 죽은 날이 만우절이라 더 믿기 어려웠구요.
    정말 다재다능한 배우였죠... 저는 노영미 같은데... 안영미도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의 어린 시절을 함께한 배우였으니깐요....
    흙속에저바람속에님 덕분에 장국영이 나왔던 영화 비디오테이프가 다 닳도록 돌려 봤던 추억을 회상하게 되네요. 감사합니다. 추억 소환해 주셔서...
    편안한 일요일 밤 보내세요. 흙속에저바람속에님.^^

    2021.10.24 21:07 댓글쓰기
    • 스타블로거 흙속에저바람속에

      추억책방님의 <아무튼, 클래식> 리뷰를 보고 저도 단숨에 책을 구입해서 읽었더랬죠.^^ 요즘 아무튼 시리즈를 한 권씩 재독 혹은 일독하고 있는데, 마침 장국영을 주제로 한 책이 눈에 들어오더라구요. 저자가 그를 추억하는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저 역시 공감이 많이 가서 더욱더 즐거운 독서가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추억책방님과 함께 노영미로서, (제가 마음대로 지었지만) 안영미로서 그를 기억하고 추억해나가도 좋을 듯하구요. 새로운 한 주도 평온한 시간들 보내시길 바라겠습니다, 추억책방님.^^

      2021.10.25 17:08
  • 파워블로그 march

    노영미,후영미,안영미가 이런 의미였군요. 무슨 뜻일까 제목 보고 궁금했거든요. 저자는 정말 찐팬이네요. 삶의 방향이 결정되었다고도 할 수 있으니까요.살면서 이런 사람을 만나게 되고,이런 삶을 사는 것도 참 멋지네요.^^

    2021.10.24 21:37 댓글쓰기
    • 스타블로거 흙속에저바람속에

      저도 장국영에 대해 조금 아는 편이었는데, 이 책을 통해 좀 더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유익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안영미'는 제 사견을 담아 만든 용어라 참고 정도만 해주시면 될 듯합니다.ㅎㅎ;; march님 말씀처럼 인생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다는 게 참 신기하고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2021.10.25 17:08

PRID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