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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번 날게 하소서

[도서] 다시 한번 날게 하소서

이어령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생각에 날개를 달자

<다시 한번 날게 하소서>를 읽고

 

 


 

 

  새해가 오면 떠오르는 새 해를 향해 새들이 난다. 그 풍경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하늘에 기도를 올리는 한 사람이 보인다. 마치 지난해 풀었던 방정식의 해를 한편에 놓아두고, 새롭게 마주한 문제에 맞는 해를 궁리하는 것처럼. 수사법을 즐겨 사용하는 그를 볼 때마다 종종 선지자의 뜻을 전하는 전령의 신 헤르메스가 떠오른다. '날개' 달린 모자를 쓰고, '날개' 달린 신발을 신고 독수리 '날개'가 달린 지팡이를 들고 있는 모습, 그래서인지 그와 날개라는 낱말이 더 각별한 관계로 느껴진다. 그랬던 그가 이번 새해에 한 마리의 새처럼 우리 곁을 떠나 머나먼 세계로 영영 날아가버렸다.

  그는 바로 故이어령 선생이다. 살아생전 그의 바람을 담아 쓴 시 「날게 하소서」와 시에 대한 해설로 쓰여진 서문과 함께, 특유의 발상(發想)을 엿볼 수 있는 '생각'에 관한 13편의 글을 모아 엮은 <다시 한번 날게 하소서>를 집어든다. 저자는 벼랑 끝에 서 있으면서 벼랑인지도 모르는 우리에게, 사람마다 얼굴이 다르듯 제각각인 낭떠러지에서 날아오를 수 있는 맞춤형 날개가 절실하다고 외친다. 독기 서린 정치인들에게는 비둘기의 그것을, 살기 지친 서민들에게는 독수리의 그것을, 뒤처진 자에게는 제비의 그것을, 남남처럼 되어가는 가족에게는 원앙새의 그것을 달라고 소원한다.

 

(······)

갈등과 무질서로 더 이상 이 사회가 찢기기 전에

기러기처럼 나는 법을 가르쳐주소서.

소리를 내어 서로 격려하고

선두 자리를 바꾸어가며 대열을 이끌어간다는

저 신비하고 오묘한 기러기처럼

우리 모두를 날게 하소서.

(······)

이어령作, 「날게 하소서」 중에서


  새들마다 지닌 고유의 이미지를 가져와 단독자로서의 개인이 처한 상황에 맞게 각기 다른 날개를 그린 그가 궁극적으로 바라던 날개는 기러기의 그것이며, 그들의 날갯짓에서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한 가치 중 하나인 연대를 찾아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구한 날개가 비상(非常) 사태 속에서 비상(悲傷)을 느끼고 있는 주인에게 잘 달라붙어 비상(飛翔)하는 데에 접착제와 같은 역할을 해줄 저자의 여러 생각들 중에서 인상적인 '생각' 몇 가지를 옮겨본다.

 

무엇인가가 내 몸을 흔들어주지 않고는, 누가 밖에서 공이로 때려주지 않고는 내 안에 고여 있는 생각의 소리를 울릴 수 없다.(51쪽)

 

  책장 한구석에서 먼지를 뒤집어 쓰며 침묵중인 종 안에 수많은 소리가 담겨 있음을 저자는 발견한다. 소설을 다 써놓고도 제목을 달지 못했던 헤밍웨이가 우연한 기회로 존 던이 쓴 기도서의 한 구절인 '누구를 위하여 좋은 울리나'를 만나게 된다. 소설 속 인물과 이야기 그리고 모든 배경의 풍경을 종소리로 울리게 한 것처럼, 그 역시 무엇인가가가 자신을 흔들어주고 때려줘서 생각의 종소리가 날 수 있길 바란다.

 

우리도 아이처럼 매일 자란다. 그러니 조금 전까지 통했던 상식과 지식들이 쓸모없는 것으로 변한다. 그렇게 우리를 괴롭히던 고정관념들, 집념이나 원한도 모두 버려야 한다. 지식도 영양분처럼 넘쳐날 때가 더 위험한 법이다. 샘물은 퍼 써야만 새 물이 고인다. 고여 있는 지식도 퍼내야 새로운 생각이 새 살처럼 돋는다.(54~55쪽)

 

  쓸모없는 우물에 빠진 늙은 당나귀를 파묻기 위해 던져진 '비방과 모함과 굴욕의 흙'(56쪽)이 오히려 당나귀 자신을 살렸다는 이야기를 통해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주는 생각뒤집기, 즉 역발상의 힘을 배울 수 있다. 고정관념은 생각하고 상상하는 힘의 적이라고 저자는 힘주어 말한다. 깊은 굴에서 광석을 캐는 광부의 마음으로 머리와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생각을 발견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그 생각에 날개를 달 수 있다면 더 넓고 다양한 세계를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살아생전 '떳다 떳다 비행기' 동요를 부르면서 종이 비행기를 통해 뜨는 것과 나는 것의 차이를 짚어주던 그의 생각을 이어붙여 보자면, 묻혀 있거나 가라앉아 있던 생각이 떠오르기만 해서는 안되며 스스로의 힘으로 날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생각의 결실인 창조를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

 

미키마우스의 커다란 신발에는 자신의 작은 발로는 결코 다 채울 수 없는 헐렁한 공백이 있다. 이 공백이야말로 땅의 현실로는 다 채울 수 없는 하늘의 공간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107쪽)

 

  생각은 창조의 근원으로 불린다. 두 낱말의 관계와 힘에 대해 항상 강조했던 저자답게 '신발'을 두고 이리저리 보면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를테면, 유리구두를 신고 궁전으로 간 신데델라와 외짝 신발을 신고 서천으로 향한 달마와 신발을 벗어놓고 바다 건너로 사라진 연오랑과 세오녀는 각자의 정체성으로 서로 다른 꿈을 꿨다고 말한다. 이어서 저자는 지금껏 우리가 보지 못했던 새로운 신발의 모형으로 미키마우스의 그것을 소환한다. 자기 발보다 훨씬 큰 신발을 신고 있는 그를 보면, 어린 시절 부모님의 큰 신발에 자기 발을 넣어 보고 이리저리 걸으며 까르르 거리던 우리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느냐고 묻는다. 그는 신발의 그 공백 속에 숨겨둔 미래의 꿈과 창조적 사고를 찾아낸 것이다.

  마지막 장을 덮으려니 (얼마 전 세상을 떠난 그처럼 느껴지는) 비익조(比翼鳥)가 내 머릿속으로 날아온 듯하다. 암수의 날개가 '하나씩'이어서 짝을 짓지 않으면 날지 못한다는 전설의 새처럼, 혼자보다 '여럿이' 함께 날 수 있는 세상을 바라 마지않았던 이어령 선생이 쓴 <다시 한번 날게 하소서>에 담긴 그의 생각이 독자들의 생각과 연결되어 각양각색의 날개로 돋아나는 상상을 해본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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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타블로거 삶의미소

    저마다 필요한 날개를 달아야 한다는 말씀에 저는 어떤 날개를 달아야 할지 생각해보게 되네요. (일단 몸무게를 줄이는 것부터 해야겠습니다 ㅎㅎㅎ)
    신발로도 우리의 삶을 풀어내시는 이 분을 어찌 존경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
    매번 흙바람님 덕분에 이어령 선생을 차곡차곡 알아가게 됩니다 ^^

    2022.04.02 23:58 댓글쓰기
    • 스타블로거 흙속에저바람속에

      날개 파는 상점에서 어떤 날개를 고를까 둘러보시는 삶의미소님을 상상해봅니다.ㅎㅎㅎ
      문득 누구에게나 보이진 않지만 (꼬리뼈가 있듯이?) 숨겨진 날개가 있고, 언젠가 어떤 계기로 돋아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2022.04.07 21:29
  • 스타블로거 Joy

    우리도 아이처럼 매일 자란다. 그러니 조금 전까지 통했던 상식과 지식들이 쓸모없는 것으로 변한다. 그렇게 우리를 괴롭히던 고정관념들, 집념이나 원한도 모두 버려야 한다.

    마음에 와닿는 글이네요. 자신의 생각 속에 갇혀 (갇힌 줄도 모르고) 그저 나의 기준이라고만 생각했던 제게 필요한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어령 선생님 앞에 고(故) 라는 글이 적힌 것을 보고 울컥해졌습니다.

    2022.04.03 09:15 댓글쓰기
    • 스타블로거 흙속에저바람속에

      선생님의 저서들을 하나씩 읽고 생각에 날개를 달아보는 일, 그러한 애도의 시간을 충분히 갖는다면 고(故)가 '그럼에도 go' 로 생각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2022.04.07 21:32
  • 스타블로거 이하라

    우물에 빠진 당나귀를 파묻으려던 비방과 모함과 굴욕의 흙이 오히려 당나귀를 살렸다는 이야기의 인상이 깊고 진합니다. 자신의 십자가를 감당하다 죽어갈 사람들에게 그런 호기로운 역설이 일어났으면 하고 바라게 됩니다. 故 이어령님의 가르침을 전혀 모르지만 흙바람님의 리뷰들을 통해 조금씩 인상을 갖게 될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오늘도 멋진 4월의 하루되세요^^

    2022.04.03 10:45 댓글쓰기
    • 스타블로거 흙속에저바람속에

      저도 이하라님처럼 이 대목이 참 인상깊게 남아있습니다.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생각의 전환, 역발상 같은 걸 새삼 생각해볼 수 있었다고나 할까요. 늘 부족한 제 리뷰가 조금이나마 선생님의 80년 생각을 이웃님들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랄 뿐입니다. 이하라님께서도 여유로운 4월의 시간 이어가시길요.^^

      2022.04.07 21:35

PRID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