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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피아노

[도서] 아무튼, 피아노

김겨울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피아노를 치고 보고 읽고 듣고 추는 일에 대하여

<아무튼, 피아노>를 읽고

 

 

  한 사람이 많은 관객들의 박수를 받으며 무대 위에 마련된 피아노 앞에 앉는다.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나서 피아노 건반을 누르기 시작하자 그의 달뜬 마음을 실은 소리가 울려 퍼진다. 어쩌면 그를 클래식 공연장의 연주자로 상상해볼 수도 있겠으나 내가 그린 사람은 바로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프레디 머큐리다. 2018년 개봉한 영화는 국내에서만 천 만 명에 육박하는 관객 수를 기록하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그동안 생소했던 '싱 어롱(sing along)'이라는 관람문화를 선보이기도 했다.

  당시 N차 관람을 통해 소심한 싱어롱에 참여하면서도 한 가지 풀리지 않는, '플레이 어롱(play along)'에 대한 욕구가 있었음을 고백한다.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피아노를 배워본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영화 속 라이브 에이드 공연에서 프레디가 피아노로 연주한 「보헤미안 랩소디」의 멜로디를 직접 연주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무작정 유튜브에서 피아노 연주 영상들을 보며 (곡을 섭렵했으면 더할 나위 없었겠으나) 악보 위에 계이름만 달달 외우고 아이의 장난감 피아노로 연습을 거듭 한 끝에 내 나름대로의 만족을 얻었다.

 

향유하는 사람보다 참여하는 사람이 그것을 더 사랑할 수밖에 없다. 사랑하지 않고서는 온몸으로 참여할 수가 없다. 혹은 온몸으로 참여하면 더 사랑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것을 속속들이 싫어하고 낱낱이 사랑하게 된다. 글을 읽을 때보다 쓸 때, 춤을 볼 때보다 출 때, 피아노를 들을 때보다 칠 때 나는 구석구석 사랑하고 티끌까지 고심하느라 최선을 다해 살아 있게 된다. 글이 어려운 만큼 글을 사랑하게 된다. 춤이 힘든 만큼 춤을 사랑하게 된다. 피아노가 두려운 만큼 피아노를 사랑하게 된다. 나는 피아노를 사랑하기 때문에 피아노가 두려운 것이다.(13쪽)

 

  그때의 추억을 다시 소환시켜준 책 한 권이 드디어 나왔다. 몇 년간 출간 소식만 무성해서 하마터면 <아마도, 피아노>가 될 뻔한 '아무튼 시리즈'의 마흔 여덟 번째 책인 <아무튼, 피아노>는 북튜버로 잘 알려진 김겨울 작가의 '오래된' 신작이다. 책날개에 쓰여진 저자 소개를 보면 '(피아노를 치고) 글을 쓰고 영상을 만들고 라디오를 진행하는' 그야말로 N잡러의 삶을 사는 작가임을 알 수 있다. 이밖에 발레와 K-POP 댄스에도 능한 춤꾼으로서의 모습이 작가가 만든 책이나 유튜브 영상에서 목격되곤 한다.

  이토록 다양한 활동을 선보이는 저자가 아무튼 시리즈의 슬로건인 '나에게 기쁨이자 즐거움이 되는, 생각만 해도 좋은 한 가지'로 '피아노'를 선택했다는 건 그만큼 피아노에 대해 진심이고, 그것과 관련해 하고 싶은 얘기가 많다는 것이리라. 물론 혹자는 북튜버답게 '책'에 관한 책을 써야하는 게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다. 감히 유추해보자면, 이미 출간된 『책의 말들(2021년작, 유유출판사)』이라는 책과 현재 운영중인 유튜브 채널 '겨울서점'을 통해 그 답을 대신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현대의 어느 쪽방에서, 중세의 수도원에서, 고대의 왕실에서 책을 읽던 사람의 등과 우리의 등이 겹쳐지므로 우리는 조금 덜 외로워진다.

(205쪽, 『책의 말들』 중에서)

 

  <아무튼, 피아노>의 차례를 훑어보던 가운데 유독 「나와 너의 등이 겹칠 때」라는 챕터 제목에서 눈길을 거둘 수 없었다. 앞서 언급한 『책의 말들』의 한 문장이 떠오르면서 말이다. 책의 물성 중 하나인 책등의 '등'과 과거의 누군가가 현재 혹은 미래의 다른 누군가와 서로 '등'을 맞댄 채 고전을 비롯한 수많은 책들을 함께 읽는 모습이 상상된다. 이번 책에서도 저자는 같은 결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비록 피아노 의자에는 등받이가 없지만, 일단 앉아서 연습하고 연주하는 과정 전체가 원곡자, 또 다른 연주자, 청중이 소통하고 교감하는 시간과 다르지 않음을 일깨워준다.

  "모든 것은 건반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책의 부제이자 첫 번째 챕터의 제목이기도 하다. 처음 피아노를 배우고 대회에서 잇따른 수상을 하며 자신감이 충만했던 어린 시절부터 입시라는 현실과 피아니스트라는 이상의 괴리에서 일찌감치 피아노와 거리 두기를 했던 학창 시절을 거쳐 여러 시행착오 끝에 현재에 이르기까지, 인생의 결정적 순간마다 늘 피아노와 함께 했던 것이다. 피아노 건반에서부터 모든 것을 시작한 저자는 먼훗날 피아노 잘 치는 할머니를 꿈꾸며 건반 위의 인생을 살고 있다.

  지금까지 그가 피아노와 지내며 쌓은 다양한 경험과 지식을 유감없이, 또 유려하게 풀어낸 흔적들이 책 곳곳에서 발견된다. 단순히 피아노를 치는 것으로만 그치지 않고, '피아노 (연주에 임하는 사람)를 보고, 피아노 (연주를 위한 악보)를 읽고, 피아노 (완곡을 향한 연습 과정에서의 소리)를 듣고, 심지어 피아노 (연주에 맞춰 발레)를 추는' 일에 대해 많은 생각과 더불어 자신만의 지론을 펼치는 저자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몇 대목을 옮겨본다.

 

공연에 가서는 피아노 소리를 유심히 듣고, 피아니스트의 손과 팔, 페달 밟는 발을 집중해서 본다. 어떤 소리를 내기 위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보는 즐거움이 있다.(62쪽)

 

연습은 이런 식으로 계속된다. 일단 치고 싶은 곡의 악보를 천천히 연습하며 손에 붙이고,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곡이 어떻게 들리길 원하는지 고민한다.(124쪽)

 

피아노를 연주하려면 들어야 한다. 내가 만드는 소리를 내가 들을 수 있어야 한다. 그 소리가 정확히 어떤 소리인지 알아야 한다. 흘러나오는 소리가 마치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듣는 동시에, 완전히 내 것이라는 생각으로 들어야 한다. 전자는 흘러가고 있는 음악을 듣는 것이고 후자는 내가 만들고 있는 연주를 듣는 것이다.(159쪽)

 

피아노곡에 맞춰 몸을 움직이는 일도 즐겁다. 몸을 움직이는 걸 좋아해 운동도 춤도 좋아하는 나에게 발레는 꼭 맞춤한 취미다. 피아노와 발레만큼 붙어 있는 음악과 춤이 있을까. 발레 클래스에서 사용하는 음악은 거의가 피아노곡이다. 원하는 모양대로 몸을 움직이는데 심지어 피아노 소리에 맞출 수 있다니.(135쪽)

 

  읽는 내내 책속에 음악의 리듬과 선율을 활자로 묶어내고 피아노에 대한 얽히고설킨 기억의 실타래를 글로 풀어내는 작가의 손가락이 그 무대를 옮겨 피아노 건반 위를 종횡무진하기도 한다는 사실이 퍽 흥미롭다. 어느 때는 피아노 교습소를 열어 건반 하나하나를 어떻게 쳐야하는지 짚어주고, 또 어느 때는 공연장으로 데려가 손과 더불어 온몸을 던져 피아노와 대화를 주고받는 연주자를 보여주면서 음악 소리 너머에 그의 숨소리와 허밍까지 듣는 법을 알려주기도 한다.

  저자는 바란다. 글을 통해 자신의 리듬을 온전히 독자에게 실어 나를 수 있기를. <아무튼, 피아노>의 건반 뚜껑 아니, 책장을 덮으며 적어도 내게는 그 리듬이 충분히 전해졌다는 생각이 든다. 나처럼 피아노가 낯선 사람에게는 피아노의 이모저모를 소개하며 조금씩 낯이 익도록 해주고, 피아노와 친숙한 사람에게도 피아노를 낯설게 하여 또 다른 새로움을 찾아보게끔 만들어주는 책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나는 바란다. 연주자가 피아노 악보를 보고 무수한 변주를 만들어내듯이 이 책을 통해 독자마다의 방식으로 피아노와 관계를 맺어 삶의 희노애락을 표현하고 공유하는 시간을 누려보기를!

 

"그 소리를 내기 전에 먼저 머릿속에서 들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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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타블로거 이하라

    책을 통해 예술 세계를 체험하면서 새로운 배움과 성장도 이룰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리뷰입니다. 흙바람님께서 뭔가 신세계를 다루는 책들을 근래에 연달아 읽으시던 의의를 새삼 저도 느껴봅니다. 편안하고 상쾌한 밤 되세요.^^

    2022.05.19 22:52 댓글쓰기
    • 스타블로거 흙속에저바람속에

      그것이 바로 책의 매력 중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새로운 것에 대한 기대와 어느 정도 아는 것에 대해 더 알고자 하는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게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평소 제가 어려워하는 분야의 책들을 섭렵하시고 리뷰를 올려주시는 이하라님의 모습에 많은 자극을 받고 있답니다.^^

      2022.06.03 22:00

PRID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