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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툴지만 푸른 빛

[도서] 서툴지만 푸른 빛

안수향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여행자가 여행자에게 전하고 싶은 말 
<서툴지만 푸른 빛>을 읽고

 

 


[사진 출처 : 2ndsummer.portfolio.com]

 


태어나 가장 긴 여행, 차창 밖에는 빙하였던 것들이 이제 막 '유빙'이라는 이름을 획득하여 호수에 파동을 일으키고 있다. 깨진 조각 사이로 오래되고 불안정하나 싱싱하고 선명한 푸른 빛들이 새어나와 퍼지며 풍경을 장악한다. 몇 번이고 나를 기절시킬 것만 같았던 그 서툴고 푸른 빛, 문득 나는 그 빛들이 오래전 우리가 메몰시켰던, 허공에 던져진 우리들의 눈빛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18쪽)

 

 

  〈아무튼 서핑〉의 파도를 타고 안수향 작가의 첫 에세이 <서툴지만 푸른 빛>에 다다랐다. 겨울의 아이슬란드를 시작으로 가을의 노르웨이, 여름의 모로코와 필리핀을 거쳐 다시 봄의 미국과 부산까지 각기 다른 시공간을 여행하면서 사진과 글로 남긴 기록을 담은 책이다. '여행이란 무엇이고 왜 떠나는가'라는 물음에 대하여 저자만의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기도 하다. 특히 이국에서 겨울과 여름에 혼자 또 여럿이 지내며 여행과 닮은 삶에 대하여 그가 길어올린 단상과 깨달음이 인상적으로 남았다.
  아티스트 레지던시, 즉 예술가들이 기업들로부터 다양한 형태의 후원을 받아 세계 곳곳에서 거주하며 예술활동을 할 수 있는 사업을 통해 저자도 아이슬란드의 어느 작은 시골 마을에서  겨울 한 철을 보내게 된다. 그곳에 머물며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불안과 고민으로 자신을 몰아세우기도 하지만, '서툴지만 푸른 빛'을 향해 계속 나아가보기로 마음을 다잡는다. 숙소의 호스트를 아이슬란드에서 가장 다정한 사람이라 부르고, 바다를 산책하며 아이슬란드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을 짓는 아이들도 만나는 등 되도록 더 많은 장면과 마음을 마주치고 싶어한다.

 

[사진 출처 : 2ndsummer.portfolio.com]



  여름에 찾은 필리핀 세부섬에서 저자는 '아가미를 짊어진' 인간을 떠올린다. 자기를 비롯한 스쿠버다이빙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말이다.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수심 40미터 지점에서 물 아래의 생을 체험한 뒤 서서히 뭍으로 올라온 그에게, 트이는 숨은 삶이 아니라 죽음으로 이어지는 것임에도 또 다음 생을 기다릴 수 있게 만든다. 또한 그는 모로코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찬사를 보내며 추천한, 서사하라에 자리한 다클라로 향한다. 버스로 꼬박 하루를 달려 도착한 날에 폭우가 쏟아지는 광경을 보며 도시가 엉망진창으로 보였던 그의 곁으로 마냥 즐거운 표정의 현지인들이 스쳐 지난다. 가까스로 숙소에 도착한 후 숙소 주인 부부가 건넨 한 마디는 온통 비에 젖어 불편했던 마음을, 그의 저녁을 한순간에 바꿔놓는다. "일 년 만에 내린 축복 같은 비와 함께 고마운 손님이 우리 집에 왔네요. 좋은 저녁 보내요." 그리고 그는 광장에서 굉장한 사치품 세 가지를 발견하게 된다. 바로 '우산, 우비, 장화'가 그것들이다.

  책에 놓여진 글과 사진을 따라 저자가 걸었던 길을 눈으로 좇다가 불현듯 그가 '이름'이라는 낱말을 각별히 여기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슬란드에서 빙하 트래킹 가이드로서 흔한 북유럽 남자 이름을 가진 '토르'가 돌멩이 위에 자란 이끼가 자리 잡는 데 수십년이 걸렸을 거라고 얘기하고, 모로코의 어느 골목에서 잔뜩 화가 난 엄마가 '모하메드'를 외치는 소리에 열 한 명의 모하메드 중 단 한 명은 집으로 전력 질주하고 남은 열 명의 모하메드들은 안심하며 하던 일을 계속했다는 장면을 통해서 말이다. 태어날 때부터 '보통'과 '고유'라는 두 가지 의미를 모두 지닌 이름을 부여받지만 개인이라는 주체로서 그 이름이 제대로 뿌리내려 온전한 정체성을 갖게 되기까지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인생에서 또 하나의 여행을 마친 저자는 새로운 여행을 준비하며 여행자들에게 이렇게 전한다. 여행이란 때로는 목적지보다 그곳에 가기까지의 길 그 자체일지도 모르겠다고. 아울러 지금까지의 삶이라는 여행을 되돌아보니 자신이 걸어온 만큼이 딱 자신만의 세계가 되어 있었다고. 비록 실패와 좌절의 순간에도 그 한계를 넘어서면서 조금씩 그 세계를 넓혀가고 있는 것이라고. 혹시라도 지금 여행을 가지 못하는 걸 불행으로 여기지 말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삶을 살면서 진정한 여행을 떠나게 될 때를 기다리라고.

 

[사진 출처 : 2ndsummer.portfolio.com]

 

당신만의 파도를 타고, 당신만의 사색을 하고, 당신만의 호흡을 하고, 당신만의 인생을 살기를. 그리고 내면의 모험을 즐기기를. 그런 다음에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여행을 떠나기를. 당신만의 눈빛으로 배낭을 멜 수 있을 때, 삶이 당신의 것이 되었을 때.(191, 1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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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타블로거 이하라

    아가미를 짊어진 인간이라니 인간이 자신의 십자가를 짊어질 때와는 다른 인상이 드네요.
    나만의 인생을 산다는 건 무엇일지 잠시 생각해 봅니다.

    이제는 손가락이 다 나으셨나봐요. 다행이에요. 흙바람님^^

    2022.08.11 22:46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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