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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름다운 할머니

[도서] 나의 아름다운 할머니

심윤경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할머니 마음 사전

<나의 아름다운 할머니>를 읽고

 


 

  자라면서 나는 할머니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런 적이 없다고 확신한다. '사랑한다'는 할머니의 소박한 어휘 사전에 등재되지 못한 낯선 단어였다.(3쪽)

 

  책에 쓰여진 첫 문장을 읽는 순간, 내게도 그러한 ('친' 혹은 '외' 구분 없이) 할머니가 있다는 생각이 불현듯 스쳐 지났다. 항상 말이 아닌 온몸으로 사랑을 보여줬음에도 그것이 할머니의 사랑인지도 모른채 살아왔음을 고백해야겠다. 책을 쓴 심윤경 작가도 할머니와 함께 지내던 스무살 때까지는 할머니의 존재감을 잘 느끼지 못하다가 세월이 흘러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한 아이의 엄마가 되고서야 할머니의 사랑에 대해 곰곰 생각해보게 되었다고 한다. 육아의 고비마다 자신에게 위로와 평화를 가져다준 할머니, 그에 대한 기억들을 되돌아보며 그의 마음을 헤아려보고 그가 남긴 것들을 독자들과 나누기 위해 쓴 첫 에세이가 바로 <나의 아름다운 할머니>다.

  작가는 할머니를 어떤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을까? 책제목을 보면서 장르는 다르지만 저자가 어린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 『나의 아름다운 정원』에서 악역을 담당한 동구 할머니의 이미지는 결코 아닐 것이라 짐작했다. 책에서 밝힌 것처럼 실제 할머니는 거의 말이 없는, 극도로 말수가 적은 사람이었다. 한지붕 아래 살면서 거의 성취 지향적인 엄마와 의견 충돌이 있을 때면 "에미 별나서"라고만 말할 뿐, 저자와 엄마 그 누구도 비난하거나 야단치지 않았던 할머니의 모습에서 언어의 미니멀리스트로서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할머니는 어린아이가 자라는 온갖 비뚤빼뚤한 모습을 모두 '예쁘다'고 요약했고 분투하는 모습은 '장하다'고 했다. 어른이건 아이건 하는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는 입술을 삐죽이며 '별나다'고 했다. 더 나쁘면 '고약하다'였다. 할머니가 사용했던 어휘들이 수적으로 적은 반면 매우 정확하고 강력한 일관성이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78~79쪽)

 

  할머니가 보여준 관용의 미덕은 저자가 직접 아이를 양육하는 과정에서 그 빛을 발하게 된다. 낯가림과 편식이 심한 아이가 흡사 어릴 적 자신과 같아 보여 흠칫 놀라는 한편, 늘 자신의 곁에서 할머니가 무심한 듯 건넨 말들을 곱씹으며 믿어 의심치 않았다. 아이의 예민한 기질이 훗날 섬세한 감각으로 발전하여 아이의 인생을 풍요롭게 해줄 것이라고 말이다. 그 가운데 "그려(그래)", "안 뒤야(안 돼)", "뒤얐어(됐어)", "몰러(몰라)", "워쩌(어떡해)"는 짧지만 손주를 향한 할머니의 깊고도 넉넉한 애정이 담긴 말들로서 저자가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딸과의 소통에서 공감과 이해를 이끌어내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퍽 흥미로웠다.

  요즘 호기심 반 기대 반으로 아이와 대화를 나눌 때 작가의 할머니가 알려준 표현을 써보려고 한다. 특히 책속 저자와 심리상담가인 친구의 일화를 읽은 뒤 아이가 속상해서 울 때, "괜찮아"보다 "저런"이라고 운을 뗀 뒤 얼마간 아이의 상태를 지켜보는 편이다. 아직까지 극적인 효과를 보진 못했으나 당장 괜찮아질 수 없는 아이를 그저 안심시키기 위한 괜찮다는 말보다, 간결하면서도 많은 의미를 함축한, 이른 바 '버티기의 단어'가 머지않아 아이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리라 기대해본다.

  말과 행동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음에도 말과 행동이 일치되는 삶을 살기가 녹록지 않다. 육아는 물론 작가로서 힘든 시기를 보낼 때에도 할머니의 무관심이 아닌 무심함에서 위안을 찾을 수 있었다고 저자는 회상한다. 역설적이게도 주위의 관심과 기대가 오히려 창작에 대한 걱정과 고통을 가중시키는 상황 속에서 무심한 듯 무덤덤하게 말없이 기다려준 남편과 딸의 모습에서 할머니의 마음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엄마이자 할머니가 되어야 한다고, 아이를 믿어주고 기특하게 여겨주는 할머니 같은 엄마가 되어야 한다고 다짐하는 저자를 응원하게 되고 나 또한 할머니의 사랑법을 실천해보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우리 곁에 혹은 마음 속 한 편에 늘 자리하고 있지만 때로는 쉬이 찾기 어려운 사람들이 있다. 책을 읽고 나서 가족과 다양한 결을 가진 친구들이 떠올랐다. 그들이 내게 해준 말과 행동이 책을 읽기 전과는 좀 다르게 느껴졌는데, 어쩌면 책속 할머니처럼 저마다의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싶기도 했다. 말수가 많든 적든, 행동이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그 모든 것들에는 한결같은 사람의 마음이 담겨 있다고 믿는다. 그 마음을 잘 헤아려서 받아들이고 다시 거기에 사랑을 담아 다른 사람들과 주고 받는 삶의 의미를 다시금 일깨워준 <나의 아름다운 할머니>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오늘날의 사랑법에는 지나친 에너지 소모와 번잡함이 있어 주는 쪽이나 받는 쪽이나 힘들고 지치고 오히려 부작용을 낳고 마는데, 할머니가 가르쳐주신 그 단순하고 맵시 있는 사랑법은 부모나 자식이나 크게 애쓸 것이 없다.(8쪽)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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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타블로거 Joy

    앗, 이 책은 김영하 작가 북클럽 10월 도서에 선정된 바로 그 책이군요!!ㅎㅎ
    어제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열심히 읽고 다시 말순님의 글을 읽어 보겠습니다!

    2022.10.03 08:54 댓글쓰기

PRID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