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丹楓)이 단품(斷品) 되기 전에
낙엽수집가의 계절이 왔음에도, 올해 가을은 이런저런 이유로 계절의 정취를 느끼지 못해 아쉬웠습니다. 다행히 이번 휴일은 여유가 생겨서 방구석 단풍구경만 하던 아이와 함께 근교에 자리한 수목원을 다녀왔습니다.
자기만의 기준에 따라 낙엽을 줍고 또 줍는 아이의 뒤를 좇아갔습니다. 애기동백나무 잎들 사이에서 때이른 감이 있지만, 그래서 더 귀하고 예뻐 보이는 빨간 동백꽃 한송이를 만나는 행운을 만났습니다. 떨어진 것 외에는 일부러 따지 않기로 했던 약속을 기억하고 눈으로만 바라봐준 아이가 기특하게 느껴졌습니다.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치지 못하듯이 작은 숲속도서관에 들러 책구경을 하던 아이가 집어든 책은 무엇이었을까요? 초등학생들의 베스트셀러로 인기만점인 <이상한 과자 가게 전천당> 입니다. 동네 도서관에서는 늘 대출불가로 인터넷 검색창에서만 봐오던 것을 직접 실물로 만난 아이의 기분이 어땠을지 짐작이 갔습니다. 연신 책을 빌려갈 수 없느냐는 물음에 여기서 보고 제자리에 두고 가야한다고 타이르느라 애를 조금 먹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걷고 뛰기를 반복하면서 낙엽들은 아이의 바지와 점퍼 주머니로도 모자라 어느새 저의 주머니까지 차지할 정도로 가득찼습니다. 이 많은 것들을 대체 어떻게 할 작정이냐고 물었더니 "메이플 시럽 만들거야"라는 아이의 즉답에 잠시 할 말을 잃었지만, 이내 "봉(뻥)이야!"라는 말에 그저 웃고 말았습니다. 아무튼 원없이 낙엽은 물론, 이따금 도토리도 주우면서 가을의 한나절을 보냈습니다. 모쪼록 이웃님들께서도 단풍(丹楓)이 단품(斷品) 되기 전에 올 가을의 기운을 몸과 마음에 책갈피처럼 담아두셨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