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블로그 전체검색
모든 삶은 PK로 이루어져 있지

[도서] 모든 삶은 PK로 이루어져 있지

최진영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바다를 들여다 본다. 부숴지며 파도 하얀 거품이 해얀가로 몰려 들다가 사라진다. 다시 파도가 몰아온다. 크고 때로는 작게 파도가 왔다가 가다. 모래장난을 하는 아이 옆에 엉덩이를 묻히고 앉아서 바다를 바라봤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사람이 꽤 많다. 누군가는 멍하니 사색에 잠기고, 누군가는 친구와 장난치고 있다. 누군가는 해결되지 않는 고민을 해결해 보려는 듯 인상을 쓰고 있다. 같은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데 바다는 각자에게 다른 이야기를 해준다. 아마 집으로 돌아가 생각해 볼 때, 그들은 모두 같은 바다를 기억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나 또한 그렇다. 내가 바라 본 바다는 마냥 즐거운 바다는 아니였다. 아주 구체적이고 상세할수록 우리는 그것으로 받는 위로나 즐거움, 슬픔이 줄어든다. '슬프다'하고 작정하고 달려드는 긴 문장보다, 이별 후 먹먹한 가슴으로 바라보는 달이 더 많은 걸 말해 줄 때가 있다. 긴 글을 읽는 것이 그 것만으로 충분히 매력이 있다면, 추상적이고 짧은 글은 다시 그것만으로 매력이 있다. 누군가는 단풍놀이에서 낭만을 느끼고 누군가는 흘러가는 세월을 탓한다. 누군가는 쓸쓸한 감정을 느끼고 누군가는 삶과 자연의 아름다움에 감탄하기도 한다. 하지만 단풍은 말이 없다. 우리가 낭만을 느끼거나, 쓸쓸함을 느끼거나, 아름다움에 감탄하는 것은 '단풍'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마음 속'에 있을 뿐이다.

우리는 거울을 통해 많은 것을 바라본다. 얼굴에 묻은 주름살을 찾아보기도 하고, 뒤에서 쫒아오는 트럭을 차에 달린 사이드미러로 보기도 한다. 손 거울로 화장을 고치기도 하고, 화장실에서는 옷매무새를 가지런히 한다. 하지만 우리가 바라보는 것이라곤 평평한 면 위에 발라져 있는 수은일 뿐이다. 우리는 빛을 반사하는 수은을 통해 돌이어 반사되는 피사체를 바라본다. 단풍이 그렇고, 바다가 그렇다. 달이 그렇고 모든 것들이 그렇다. '시'라는 것의 매력은 거기에 있다. 프랑스의 시인 '쥘 르나르(Jules Renard)'는 '뱀'이라는 시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그의 아름다운 시를 소개하겠다.

'너무 길다'

단 두단어로 이루어진 시. 여기에 누군가는 인간의 본성과 유혹에 관한 해석을 내놨고, 누군가는 히틀러와 나치에 대한 해석을 하며 누군가는 기독교 관점에서 해석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죽음에 대한 예찬으로 보기도 했다. 무엇이 정답이었을까. 내가 바라 본 바다는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가. 시는 그렇다. 무언가를 말하고자 하지 않는다. 거울은 무언가를 보여주고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무엇이든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아름다운 노래도 이별 후에는 슬프게 들릴때가 있고 슬픈 노래도 즐거운 일에는 신나게 들릴 때가 있다. 시가 하는 역할이란 기본에 충실하여 읽는 이들에게 충분한 거울이 되어주는 것이다.

무척이나 얇고 얇은 책을 왜 읽어야 하는지, 의문을 가진 적이 있다. 그저 평평한 판대기에 수은이나 발라 놓은 것을 왜 구매해야 하냐고 묻는다면 수은이 필요하기 때문이라도 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것이 투영하는 무엇을 보고 싶은 것이다. 시가 투영하고 있는 것은 이미 내 안에 존재한다. 시인에게 만물은 '시'가 된다. 이처럼 시인이 스치고간 흔적들이 주변에 쌓이고 흔한 것들이라는 것에서 시인이 시도했던 투영들이, '시'가 없어도 보이곤 한다. 가끔은 거울도 없이 나의 표정이 느껴지거나 인기척을 알아차릴 때가 있다. 그런 기민한 감성을 만들도록 '시인'은 독자의 감성을 꾸준히 건든다.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상황과 일기들로 시인은 독자에게 꾸준한 거울을 들이민다. 거울은 동그라미도 있고 별모양도 있고 달모양도 있지만 그것이 담고 있는 것은 독자의 마음에 이미 존재한다. 거울의 모양과는 상관없다. 세상의 모든 것은 곧, 시이고 시는 곧 세상의 모든 것이며 이것은 밖이 아닌 안에 이미 존재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취소

댓글쓰기

저장
덧글 작성
0/1,000

댓글 수 0

댓글쓰기
첫 댓글을 작성해주세요.

PRID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