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블로그 전체검색
무엇이 우주를 삼키고 있는가

[도서] 무엇이 우주를 삼키고 있는가

폴 데이비스 저/박초월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동전을 던지고 앞면만 연달아 100만 번 나올 확률은? 이에 대한 올바른 대답은 '0'일지도 모른다. 다만 우주를 기준으로 수학적 확률은 0이 아니다. 수학에서 일정한 규칙에 따라 값이 한없이 가까워지는 상황을 '극한'이라고 한다. 연산을 진행할수록 값이 무한대로 가까워질 뿐 절대로 닿지 않다. 이런 상황을 보고 '수렴한다'고 한다. 100만 번이나 동전앞면이 연속적으로 나올 확률은 완전한 '0'이 아니다. 0으로 한없이 가까워지는 것은 무수하게 작지만 '존재'와 '무존재'에서 '존재'로 분류된다. 그 시행횟수를 무한대로 넓히면 확률은 반드시 늘어난다. 동전 던지기의 횟수를 무한대에 가깝게 한다고 해보자. 시행횟수를 수 조 번, 수 천 조 번 이상 시행한다고 해보자. 이것은 시간을 넘어 공간도 넓힌다는 의미다. 수 조, 수 천 조가 넘어가는 시간의 값과 공간의 값은 서로 곱해지고 그 확률은 '존재'에 가까워진다. 무한에 비해 비하면 100만이라는 숫자는 1과 다름없다. 우주의 크기는 관측가능한 수준을 기준으로 465억 광년이다. 빛의 속도로는 930억 광년이다. '무한'이나 다름없는 '빛'의 속도로 날아도 930억 년을 날아가야 한다. 이 또한 관측가능한 범위다. 우주의 나이는 130억 년은 된다. 시간과 공간을 곱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다. 문과적 상상력은 더이상 과학적인 물음에 대해 답하지 못하고 멈춘다. 다만 의문점이 있다. '확률'에 따르면 우리와 같은 존재가 분명 어딘가에 있을 수 있다. 확률은 '0'이 아니다. 그런 이유로 과학자들은 우리 밖 누군가를 찾아다니기 위해 노력한다. 어린시절에는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우리만 존재할 가능성도 '0'에 수렴하지만, '0'은 아니지 않을까. 마치 무엇으로도 뚫리지 않는 방패와 무엇이든 뚫을 수 있는 창을 팔던 '모순'의 모습 또한 '우주'라는 무한의 앞에서 둘 다 일리가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0이기도 하고 1이기도 한 것은 '무한'이 만들어낸 착각이자, 진실이다. 0이기도 하고 1이기도 하다라는 말은 다시 말해서 '양자역학'이다.

무한의 확률은 '존재'와 '무존재'를 동시에 가능하게 만든다. 지끈지끈 골치가 아파지는 이런 질문들 또한 의미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것일까. 어떻게 우리는 현재를 살 수 있는가. 이 무한대에 가까운 우주에서 하필 이 공간에, 이 시간에 존재하게 되는 것은 기적에 가깝지 않을까. 단군 할아버지가 사시던 기원전 2333년과 오늘 2022년은 우주의 무한대 앞에 한 점에 가깝기도 하다. 우주적 관점에서 보자면 우리는 13,775,245,658년에 살고 있다. 공간적으로 말하자면 930,015,684,236,258,461,035,150km 중 어딘가에 위치하고 있다.(뒷자리는 무의미하여 임의적으로 만듬) 여기에 오늘 존재하는 기적은 엄청나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우주는 팽창하고 있단다. 우주가 팽창한다는 것은 아직 완성이 되지 않은 성장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즉 이미 무한이라고 생각되는 시간과 공간도 언젠가 완성할지도 모를 우주의 입장에서 '도입'일지도 모른다. 우주가 팽창하고 확대하면 할수록 단군 할아버지와 나의 간격은 더 줄어든다. 의미는 의미기기도 하고 무의미이기도 하다. 실제로 한없이 0에 가까워진다는 것은 가장 작은 입자 최소 입자를 분자라고 한단다. 분자는 원자로 이뤄져 있다. 원자는 원자핵과 전자로 이뤄졌고 원자핵은 양성자와 중성자로 이뤄진다. 쪼개고 쪼개고 쪼개고 들어가기를 반복하다 '쿼크'라는 기본 입자를 만난다. '쿼크'는 자세하게는 모르겠지만 내가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데 알고 모르고 크게 중요한 건 아닌 것 같다. 다만 '쿼크'라는 놈들이 무수하게 만들어서 원자가 되고 그것들이 결합하여 분자가 되고 그것들이 또 결합하여 어떤 결합체가 되도, 그것들은 한낱 '부스러기' 정도 역할이겠지 싶다. 이것이 내 인생에 커다란 영향력으로 다가오기 위해서는 '쿼크'라는 놈의 기준으로 무한대로 확장해서 '몽둥이' 정도까지는 커져야 하지 않을까. 사실상 무한대로 크거나 무한대로 작다는 것은 '무존재'나 다름 없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다만 그것은 그것이 없다는 것을 말하진 않는다. 과학이라는 것도 결국 무수히 하는 것과 거의 모르는 것도 따지고보면 한점의 반지름도 되지 않는 차이일지도 모른다.

무엇이 우주를 삼키고 있는가. 얼마나 많은 우주가 존재한는가. 우주는 어떤 모양인가. 밤은 왜 어두운가. 시간 여행은 가능한가. 꽤 그럴싸한 정답을 내린 사람들을 동경하는 세계에서 사실상 그들의 존재를 다시 살펴보자니 모두가 질문하는 사람이다. 내가 어린시절, 사촌의 집은 '비디오가게'를 했었다. 망할 수 없는 사업이라고 하셨다. 대한민국 문화수준이 높아지면서 가정마다 모두 비디오기기 한 대 씩, 혹은 DVD 기기 한대씩 가지고 올 날이 머지 않았다고 하셨다. 그말은 꽤 그럴듯 했다. 다만 모두가 비디오 기기를 가지고 있자, 인간들은 '포화'된 시장을 뚫을 다른 대안을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장의 판도가 완전하게 달라지고 결국은 '비디오 대여점'이 뭐하는 곳인지 모르는 세대가 태어나는 지경에 이르렀다. 너무 많은 해답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포화에 이르면 누군가는 새로운 질문을 제시해야 한다. 결국 새롭게 제시된 질문이 새 시대를 열어간다. '아마구치 슈'는 현대를 이르러 '문제는 적고 해결 능력이 과잉인 시대'라고 정의했다. 결국 우주는 '철학'을 만나게 되는지 국적과 언어 시대와 장르를 불문하고 '무엇이 우주를 삼키고 있는가'의 저자 '폴 데이비스'와 '뉴타입의 시대'의 저자 '아마구치 슈'가 만난다. 무한대로 확장을 하면 결국 모든게 0이거나 1이다. 단군 할아버지와 '나' 따위도 한 점으로 뭉쳐지는데 철학과 과학이 만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우주를 구성하는 모든 물질은 '무(無)'에서 탄생했다. +1과 -1은 모두 0에서 탄생했다. 고로 이 둘은 만나면 0이 된다. 물질이 생겨남과 동시에 반물질도 생겨난다. 이 둘은 서로 상쇄하며 우주 전체의 값은 여전히 0이다. +1000이라도 결국 -1000의 값으로 상쇄되고 +25억도 -25억으로 상쇄한다. 우주가 이러한데 질문과 해답은 따로 존재하는가.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취소

댓글쓰기

저장
덧글 작성
0/1,000

댓글 수 0

댓글쓰기
첫 댓글을 작성해주세요.

PRID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