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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테면 에필로그의 방식으로

[도서] 이를테면 에필로그의 방식으로

송지현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4점

  작가의 책 《동해 생활》에 바로 이 소설집이 되는 원고가 등장한다. 차일피일 검토를 미루던 작가는 이 소설집이 될 원고를 들고 동해로 향했다. 소설에 등장하는 존 브라운, 은 《동해 생활》에도 등장한다. 소설에 바다 풍경이 나올 때는 동해가 떠올랐다. 소설 속 등장  인물과 동해에서 뒹굴거리면서 잠만 자던 작가가 자꾸 겹쳐져서 웃음이 났다. 책에 실린 소설들은 평균 이상으로 재미있고, 등장 인물들은 나른하다. 


  ‘탐정과 오소리’가 주인공인 소설은 다른 책에서 한 편 읽었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지금만큼 인상적이지 않았나보다. 어쨌든 이번에는 인상 깊게 읽었다. ‘탐정과 오소리’ 연작 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하루키 소설을 닮은 것도 같다. 오소리는 보다 현실적인 여자 주인공 같고, 탐정은 좀더 희미한 남자 주인공 같기도 하다. ‘밤을 무서워하지 않는 아이, 가울’이라는 부제가 붙은 소설이 제일 좋았다. 다른 사람들도 책이 재미있었는지 내가 읽은 것은 초판 4쇄 째의 책이다.


  「선인장이 자라는 일요일들」
  “빨래를 다 걷은 뒤 옥상을 한번 둘러바도 구석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다. 
  놀랍게도 그것은 선인장들이었다.
  너무 젖으면 죽지 않을까,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대로 두고 내려왔다. 집엔 아무도 없었다. 옷을 갈아입고 따뜻한 바람에 머리를 말리며 나는 점점 건조되어갔다. 세탁의 운명처럼, 혹은 축축한 반죽이 비스킷이 되는 운명처럼. 나는 J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어쩌면 이것을 성장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바삭하고 건조해지는 것 말이야.” (pp.53~54) 브라운 베이커리에서 비스킷을 사먹고 J와 배드민턴을 치고 부모님은 운동 삼아 아파트를 돌며 세탁물을 걷고, 나의 언니는 다른 사람이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희미한 자해의 상처를 지니고 있다, 라고 우긴다. 그 와중의 성장...


  「이를테면 에필로그의 방식으로」
  “얼마만큼의 돈을 받으면 불법을 저지를 수 있을까? 그 최소 기준은 정하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 (p.43) ‘영화 보는 사람들’이라는 동호회와 ‘자물쇠를 열어’라는 동호회를 중심으로 미은 K와 Y와 E, 그리고 E가 가입한 습작 동호회를 매개로 하여 만나게 된 w, 그리고 w의 집에는 w의 아버지가 있다.


  「탐정과 오소리의 사건 일지 ―봄, 여름」
  “오소리는 현실적인 사람이었다. 나는 오소리의 이런 면을 보고 채용했다. 이런 면이라는 것으로 말할 것 같으면 오소리를 면접할 때의 일이었다. 왜 이 사무실에 이력서를 넣었냐고 묻자 오소리는 이렇게 대답했던 것이다.
  ―아무래도 이 사무실은 영, 우영이 안 될 것 같았거든요. 일은 적게 하면서 정기적인 수입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 좋았어요.
  일을 적게 하는 대신 월급도 적을 것이라는 내 말에는 이렇게 대답했다.
  ―최저시급 주면 그만큼 대충 일할게요. 고작 이딴 사무실에 미래를 거는 게 아니니까요.
  나는 살짝 감동했고, 다음 날 그녀에게 채용되었다는 메일을 보냈다...” (pp.68~69) 오소리 채용과 관련한 탐장의 정리가 요령 있다. 말도 안 되는 설득력, 같은 것이 ‘탐정과 오소리의 사건 일지’ 연작에 담겨져 있다.

  
  「좀비 아빠의 김치찌개 조리법」
  “병원의 진단에 따르면 아버지는 사망한 상태였다. 아버지 앞으로는 사망보험이 들어 있었고, 나는 약간의 기대감과 또 그만큼의 상실감으로 멍하니 병원 복도에 앉아 있었다. 그때 간호사가 짧은 탄성을 질렀다. 아버지가 몸을 일으키고는 집에 가겠다고 한 것이다. 예정일도 아닌데 생리가 터져, 나는 간호사에게 생리대를 하나 얻었다. 간호사는 좀비를 처음 보아조금 놀랐다고 수줍게 말했다...” (p.86) 좀비도 풍년이라더니, 여기 재미있는 좀비의 상황 하나 추가해도 좋은 소설이다. 좀비가 되어서도 일을 해야 하는 아버지의 설정이 현실감 있다. 그 아버지가 김치찌개 끓이기에 집착하는 것은 비현실적이지만.


  「탐정과 오소리의 사건 일지 ―밤을 무서워하지 않는 아이, 가을」
  “소년의 어머니는 원래도 아주 흐릿한 사람이었다. 몸체도 흐릿하지만 그림자도 매우 흐려서 낮에 함께 놀이터에 가면 다른 어머니들의 그림자와 확연한 차이가 났다. 바람이 훅 불면 마치 그림자가 흔들리는 것처럼 보였다고 말했다. 그것 때문에 자신을 잘 안아주지 않았고,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다고도 덧붙였다. 아버지는 온갖 한약을 지어서 어머니에게 먹였는데, 그래도 소용이 없었다. 소년의 어머니는 어느 날 소년에게, 어떤 것은 영원히 빈 채로 남는 거란다,라는 이야기를 해주었다고 한다...” (p.117) 어머니에 대한 소년과 소년의 아버지의 이야기가 조금 다른데, 거기에서 슬픔이 발생한다. 소설의 시작과 끝에 등장하는 고양이는 일종의 덤인데, 거기에서 어떤 안도가 발생한다.


  「흔한, 가정식 백반」
  “엄마의 이야기는, 너무 많이 들어선지 그 모습이 사진처럼 펼쳐진다. 엄마의 엄마에게 업힌 어린 엄마, 다시 동생을 업은 국민학생의 엄마, 다시 나를 업은 이십대의 엄마······ 엄마는 늘 누군가를 업거나 누군가에게 업힌 채였다. 엄마를 업거나 엄마에게 업힌 것이 남자는 아니었다.” (pp.152~153) 고목 이모와 103호 이모와 엄마와 함께 내가 금색 차를 몰고 떠나는 여행이 재미있다. 여성 서사라면 여성 서사이고, 103호 이모의 남편을 고리로 한 103호 이모와 외국 처자의 만남도 나름 획기적이다. 


  「구석기 식단의 유행이 돌아올 때」 
  “그렇다. 뒤마의 말대로 이사의 피곤함과 연애의 비극은 비슷한 부분이 있었다. 나는 자연스레 봉규를 만나기 전에 사귀었던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중 하나는 주변에 사람이 많은, 밝은 성격의 남자였다. 늘 긍정적으로 살라는 것이 그의 말버릇이었고, 나는 속으로 그를 조금 바보 취급하곤 했다. 그럼에도 그는 나를 많이 좋아해주었다. 내가 당시 만나고 있던 사람과 헤어졌다는 사실을 알고, 위로를 대신하여 나를 안아주었다. 그때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는데, 그동안 껴안았던 연인의 몸과는 너무나도 다른 질감과 두께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내가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품에 안기거나 촉감이 다른 손을 잡게 될지 상상할 수밖에 없었고, 모든 게 까마득했으므로 피곤해졌던 기억이 있다.” (pp.171~172) 문장을 구사할 때 끈기가 있다.


  「탐정과 오소리의 사건 일지 ―의뢰가 없는 탐정, 겨울」
  “다음 날 사무실에 출근하여 창가에 놓인 화분에 손가락을 넣어보았다. 건조했다. 오소리에게 분무기가 어디 있냐고 물으려 했는데, 오소리는 그날 연락도 없이 출근하지 않았다.” (p.191) 이런 탐정, 같으니라고. “봄날에 나는 오소리에게 물었다. ―오소리, 재밌어? ―재미가 있겠어요? 그냥 숨 쉬듯이 하는 거죠, 뭐.” (p.202) 이런 오소리, 같으니라고. 부제에 ‘의뢰가 없는 탐정’이라고 되어 있는데, 그래서 좀 억지로 만든 이야기 같달까...


  「펑크록 스타일 빨대 디자인에 관한 연구」 
  “잘 산다는 건 어쩌면 더 완벽히 지겨워지기 위한 걸지도 몰라.” (p.215) 그러니까 왕년의 펑크 키드들이 다시 모이고, 그중 회사원 펑크 키드가 한 말이다. ‘잘 산다는 건 어쩌면 더 완벽히 지겨워지기 위한 걸지도 몰라’ 라니. 고작 이십대의 이들이지만 펑크 키드라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오직 여전한 것은 빨대맨 뿐이고...

 


송지현 / 이를테면 에필로그의 방식으로 / 문학과지성사 / 263쪽 / 2019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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