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벽증에 걸린 사내를 본 적이 있다. 사내는 출근길 엘리베이터 없는 오 층짜리 주공 아파트 열 집이 함께 이용하는 현관 바닥에 조심스럽게 신문지를 펼쳤다. 신문지와 최대한 멀리 떨어져서 팔을 곧게 뻗고 다시 엄지와 검지를 이용하여 최소한의 접촉만으로 페이지를 넘겼다. 마지막 페이지에 도달한 사내는 신문을 집어 쓰레기통에 버렸다. 사내는 손바닥으로 머리를 쓸어내리고, 손등으로 어깨부터 발끝까지 털어낸 다음 길을 나섰다.
허밍
내 꿈은 죽은 새
아니 텅 빈 새장
가득한 구름
당신이 피 흘릴 때
그 피로 짠 양탄자 거실
건너편
영원한 창문
내 꿈은 숲
내가 자른 꼬리가 만드는 그늘
그 아래 파리하게 누워
썩어가는 열매의 무덤
내 꿈은
시계, 내가 사라져야 움직이는 벽시계
시간은 첫 울음 전으로 달려가
안 보이는 문 너머에서 나와 함께 죽고
모든 색깔은 검정 아니면 하양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조립과 해체를 견디는 삶에게‘ ’안녕‘이라고 하였다. 그것이 만남의 인사인지 헤어짐의 표시인지, 그것이 만남의 인사라면 일종의 통성명인지 아니면 매너리즘에 빠진 인사일 뿐인지, 그것이 헤어짐의 표시라면 영원한 이별의 의미인지 아니면 우리 잠시 안녕을 의미하는 것인지, 오래전 결벽증 사내가 신문을 펼쳐 읽듯이 조심스럽게 각각의 경우의 수를 가늠하였다.
“구름은 나를 지나 그대 뜰에 가서 죽을 것이다 // 이웃은 말하고 나는 입술을 천천히 오므린다 / 처음 배우는 이국어를 따라하듯이 / 일부러 틀리게 진심으로” - <흰 밤 구름> 중
불면증에 시달리던 무렵 나는 부속품을 빠뜨린 로봇처럼 자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하였다. 그러다 그만 두었는데, 부속품을 빠뜨린 로봇에 대한 생각을 거듭하다 그만 로봇이 되어버릴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조립이 되기를 거부한 로봇과 해체의 연기를 선언한 박사라는 두 개의 캐릭터 사이를 왔다갔다 하다보면 아침이 밝아오곤 하였다. 나는 그런 아침이면 불을 지르고 싶어졌는데, 그 생각에서 화약 냄새가 나곤 하였다.
“몇 개의 어쩔 줄 모르는 나뭇잎을 떨어뜨리고 / 여름을 생각하면 삶은 아름답고 근사하게 사라진다 / 노을―피멍 든 여자가 하늘가에서 불타오르고 / 기억은 아이의 긴 울음처럼, 라일락 그늘 아래 피어난 연한 초록처럼, 맹렬히 뽑힌다” - <상속> 중
나는 냄새로부터 달아나기 위하여 눈을 질끈 감은 채 허우적거리곤 하였다. 손에 걸리는 것이 무엇이든 꼬옥 쥐고는 절대 놓지 않았다. 주변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는데, 그 바람에 연애도 시작하게 되었다. 연애는 시작은 있지만 끝은 없는 무한 루프를 닮아 있어서 영원히 현재 진행형일 수밖에 없었다. 반복이 곧 장애가 되어버리는 새로운 세기가 시작되기 직전에 나는 결혼하였다.
“나의 혁명은 검게 빛나는 밤의 서랍 바깥으로 한 발짝 도망치기 / 그러나 오늘 아침 서랍에선 / 그림자와 꼭 포개진 채 그대로 발견되었지” - <눈을 뜨고 모든 밤> 중
해체보다는 분열을 선호한다. 해체가 외부의 힘에 기인한다면 분열은 내부의 힘으로만 가능하다. 콕콕 찌르는 모서리를 선연하게 느끼면서도 버틴 것은 그래서였다. 깨어나면 어리둥절해지는 청순한 밤은 더 이상 없다. 어둠이 짙어질수록 밝음도 요란해지고 말았다. 나는 조급하게 흔들렸고 밋밋하게 멈추었다. 후회하느냐는 집요한 물음도 자취를 감추었다. 나는 이제 세월을 쓰다듬는 중이다, 결벽증 사내가 제 몸을 털어내던 제스처로.
김경인 / 일부러 틀리게 진심으로 / 문학동네 / 160쪽 / 2020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