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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하지 않는다

[도서] 작별하지 않는다

한강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2014년 6월에 이 책의 첫 두 페이지를 썼다. 2018년 세밑에야 그다음을 이어 쓰기 시작했으니, 이 소설과 내 삶이 묶여 있던 시간을 칠 년이라고 해야 할지 삼 년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p.328, <작가의 말> 중)


  작가가 <작가의 말>에서 말하는 2014년 6월은 광주를 다룬 작가의 장편 《소년이 온다》가 출간되고 두 달여가 지난 시점이다. 그간의 광주를 다룬 많은 소설들보다 한참 뒤늦게 도착하였지만 《소년이 온다》는 가장 서슬 퍼렇게 광주를 보여주었다고 의심치 않는다. 리얼리즘을 뛰어넘는 한강의 작법에 많은 이들이 감동을 받았다. 우리가 그 감동의 자장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을 때 작가는 《작별하지 않는다》의 첫 두 페이지를 쓴 것이다.


  “엄마가 어렸을 때 군경이 마을 사람들을 모두 죽였는데, 그때 초등학교 졸업반이던 엄마랑 열일곱 살 이모만 당숙네에 심부름을 가 있어서 그 일을 피했다고 엄마는 말했어. 다음날 소식을 들은 자매 둘이 마을로 돌아와, 오후 내내 초등학교 운동장을 헤매다녔대. 아버지와 어머니, 오빠와 여덟 살 여동생 시신을 찾으려고 여기저기 포개지고 쓰러진 사람들을 확인하는데, 간밤부터 내린 눈이 얼굴마다 얇게 덮여서 얼어 있었대. 눈 때문에 얼굴을 알아볼 수 없으니까, 이모가 차마 맨손으론 못하고 손수건으로 일일이 눈송이를 닦아내 확인을 했대. 내가 닦을 테니까 너는 잘 봐, 라고 이모가 말했다고 했어. 죽은 얼굴들을 만지는 걸 동생한테 시키지 않으려고 그랬을 텐데, 잘 보라는 그 말이 이상하게 무서워서 엄마는 이모 소맷자락을 붙잡고, 질끈 눈을 감고서 매달리다시피 걸었대. 보라고, 네가 잘 보고 얘기해주라고 이모가 말할 때마다 눈을 뜨고 억지로 봤대. 그날 똑똑히 알았다는 거야. 죽으면 사람의 몸이 차가워진다는 걸. 맨뺨에 눈이 쌓이고 피 어린 살얼음이 낀다는 걸.” (p.84)


  《작별하지 않는다》는 《소년이 온다》로부터 더 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작가는 1980년 광주에서 그치지 않고 내처 1948년의 제주로 나아가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첫 두 페이지 이후 사 년을 멈칫하였다. 그리고 다시 삼 년이 지나 이 소설이 만들어졌다. 그러니까 여태 4·3 사건이라 불리우는 제주의 민중항쟁, 그 한 가운데에서 살아남은 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바로 이것이다.


  “수술은 잘됐대... 이제부터 중요한 건 피가 멈추지 않게 하는 거야... 봉합 부위에 딱지가 앉으면 안 된대. 계속 피가 흐르고 내가 통증을 느껴야 한 대. 안 그러면 잘린 신경 위쪽이 죽어버린다고 했어... 그렇게 안 되도록 삼 분에 한 번씩 이걸 하는 거야. 이십사 시간동안 간병인이 곁에서. 삼 분에 한 번? ... 얼마나 오래 이렇게 해야 해? 앞으로 삼 주 정도...” (pp.40~41)


  작가가 이 주제를 다루는 것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으리라고 짐작된다. 소설의 얼개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작가는 작가 자신을 소설의 내부로 끌어들인다. ‘경하’라는 이름의 주인공은 광주에 대한 소설을 끝내고 꿈을 꾼다. 그리고 그 꿈을 하나의 영화로 만들고자 하였던 친구 인선이 손가락을 잘리는 사고를 당한다. 이제 경하는 인선의 집에 남겨진 앵무새를 구하기 위한 여정에 나선다. 


  “... 물은 언제까지나 사라지지 않고 순환하지 않나. 그렇다면 인선이 맞으며 자란 눈송이가 지금 내 얼굴에 떨어지는 눈송이가 아니란 법이 없다. 인선의 어머니가 보았다던 학교 운동장의 사람들이 이어 떠올라 나는 무릎을 안고 있던 팔을 푼다. 무딘 콧날과 눈꺼풀에 쌓인 눈을 닦아낸다. 그들의 얼굴에 쌓였던 눈과 지금 내 손에 묻은 눈이 같은 것이 아니란 법이 없다.” (p.133)


  폭설이 내리는 인선의 집을 찾아가는 동안 경하는 죽음에 가까이 다가선다. 엄청난 눈으로 길이 막히고 드물게 다니는 버스를 겨우 타게 되지만 마을의 길은 사라지고 어둠은 금세 모든 것을 집어 삼킨다. 그곳에서 겨우 빛을 찾아 들어간 인선의 집에 남겨진 것은 죽은 앵무새이고 경하는 앵무새를 묻고 돌아오지만 바로 그 죽은 앵무새의 소리를 듣고 인선을 통하여 4·3의 기간 동안 그녀의 부모가 겪은 이야기를 듣게 된다.


  “집담과 밭담들, 돌로 된 집들의 벽체들만 남기고 모든 것이 불타고 있었어. 아버지가 집에 들어서자 마당 가득 붉은 게 흩어져 있어서 놀랐는데, 달아오른 고추장 장독이 터진 거였어. 집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 총소리가 들렸던 팽나무 아래로 달려가보니 일곱 명이 죽어 있었대. 그중 한 사람이 할아버지였어. 가호마다 주민 명부를 대조한 군인들이, 집에 없는 남자는 무장대에 들어간 걸로 간주하고 남은 가족을 대살代殺한 거야.” (p.218)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이야기들로 가득한 소설이지만 등장인물은 한정되어 있다. 소설 속의 이야기는 등장인물에게 기대어 진행되는 대신, 이제는 죽은 자들이 죽기 전에 구술한 내용에 의존하는 형식을 띠고 있다. 작가 자신이 주로 채집된 이야기들을 통해 역사를 바라보았음을 고백하는 것만 같다. 어쨌든 아직 내게 4·3은 김석범의 《화산도》로 기억하게 될 것 같다. 소설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4·3은 여태 사건이다.


  “그 겨울 삼만 명의 사람들이 이 섬에서 살해되고, 이듬해 여름 육지에서 이십만 명이 살해된 건 우연의 연속이 아니야. 이 섬에서는 삼십만 명을 다 죽여서라도 공산화를 막으라는 미군정의 명령이 있었고, 그걸 실현할 의지와 원한이 장전된 이북 출신 극우 청년단원들이 이 주간의 훈련을 마친 뒤 경찰복과 군복을 입고 섬으로 들어왔고, 해안이 봉쇄되었고, 언론이 통제되었고, 갓난아기의 머리에 총을 겨누는 광기가 허락되었고 오히려 포상되었고, 그렇게 죽은 열 살 미만 아이들이 천오백 명이었고, 그 전례에 피가 마르기 전에 전쟁이 터졌고, 이 섬에서 했던 그대로 모든 도시와 마을에서 추려낸 이십만 명이 트럭으로 운반되었고, 수용되고 총살돼 암매장되었고, 누구도 유해를 수습하는 게 허락되지 않았어. 전쟁은 끝난 게 아니라 휴전된 것뿐이었으니까. 휴전선 너머에 여전히 적이 있었으니까. 낙인찍힌 유족들도, 입을 떼는 순간 적의 편으로 낙인찍힐 다른 모든 사람들도 침묵했으니까. 골짜기와 광산과 활주로 아래에서 구슬 무더기와 구멍 뚫린 조그만 두개골들이 발굴될 때까지 그렇게 수십 년이 흘렀고, 아직도 뼈와 뼈들이 뒤섞인 채 묻혀 있어... 그 아이들... 절멸을 위해 죽인 아이들.” (pp.317~318)

 

한강 / 작별하지 않는다 / 문학동네 / 329쪽 / 202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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