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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와의 키스

[도서] 조이와의 키스

배수연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나는 요즘 눈으로 숨을 쉰다. 오랜 지병이 다시 봉기하였고 그로 인한 병증에 잠식당한 채로 2주 정도의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병에 있어 원인불명은 완치의 반대어이다. 원인불명인 병은 완치될 수 없다. 그저 병증을 잠재울 수 있고, 이렇게 영원히 병증이 잠들어 있는 상황을 관해라는 아름으로 부른다. 관해의 상태가 계속된다는 보장은 없다. 관해는 언제든 부서질 수 있는 유리병 속의 조각배 같은 것이다.

 

  “나는 밤새 장마를 받아 적어 / 아무리 크게 읽어도 / 너는 빗소리밖에 듣질 못하고” - <여름의 집> 중

 

  시각 정보의 산만한 접근은 내 병의 크나큰 권리다. 복시는 두 개의 화면인 세상을 한꺼번에 살아가야 하는 운명을 자아낸다. 중심선을 구십 도로 두고 있는 하나의 세상, 중심선을 칠십 도로 두고 있는 또 하나의 세상이 공존한다. 고개를 왼쪽으로 기울이면 하나의 세상이 더 기울어져 복시가 심해진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기울이면 두 개의 세상의 기울기가 비슷해진다. 오른쪽으로 살짝 고개를 기울인 채 걷는다.

 

  “분명 키스를 아껴 두었을 조이 / 조이의 첫 키스는 아치 위로 핀 장미 꽃잎을 모두 떨어뜨릴 것이다 / 그 날이 다가오면 나는 빨랫줄에서 내려와 무척 하얄 것이고 조금은 지쳐 있을 것이다 / 우리의 키스는 조이가 매일 쏟았던 홍차의 테두리를 더 진하게, 진하게 그려 줄 것이다 // 조이와는 틀림없이 그럴 것이다.” - <조이와의 키스> 중

 

  나는 블로그에 병약관화라는 항목을 만들어 놓고 병증이 생기면 일기처럼 적곤 하였다. 2022년에 나타난 지금의 병증이 마지막으로 들고 일어선 것은 2015년이었다. 해묵은 일기장을 꺼내 읽는 것처럼 오래된 카테고리의 글들을 읽었다.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병원에 연락을 하였고 나이 든 선생님과 면담하였다. 원인불명이어서 완치가 없으니 복용량을 조절하여 다시 병증을 조절하기로 하였다.

 

   살아 있는 생강

  너희는 내 생강이 궁금할 거다
  내 살아 있는 생강에 관해 이야기해 주지

  그것은 저몄을 때 코끝을 잡고 비트는 진하고 날카로운 냄새, 하나의 묵직한 빗이다
  그 빗으로 얼룩 고양이의 몸을 빗겨 주면 녀석은 천 일 밤낮을 자지 않고 지나는 길마다 달빛이 생강의 속살처럼 반짝이며 흐르는 강을 파 놓을 거다
  살아 있는 생강? 그것은 춤추는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다
  젖가슴과 엉덩이가 전부인 구석기 여자의 몸에 떨어진 풀잎은 태고의 리듬이다 생강의 주름들은 그루브다
  그렇지, 살아 있는 생강은 11센티미티의 이형 성기다
  의사가 고래를 잡으려고 달려들었다가 간호사들이 지르는 비명에 고막이 찢어져 오른쪽 왼쪽 모두 스무 바늘을 꿰매었다고 한다 그러나 간호사들은 곧 생강의 유쾌함에 빠져들었다
  살아 있는 생강,
  나는 그것으로 공작새와 코뿔소를 잡을 거대한 엿을 만들었다
  공작새와 코뿔소는 생강엿을 핥다가 그 속에 부리도 집어넣고 뿔도 집어넣고 깃과 살까지 넣은 채로 아름다운 빙하가 될 거다
  그 빙하는 9만 년 뒤에 다시 나타나 투명한 몸을 녹일테고
  여전히 고양이와 간호사와 코뿔소와 너희는 내 생강을 사랑할 것이다

 

  다양한 피사체를 바라봐야 할 때, 발생하는 심도에 의해 나의 복시는 강력해진다. 평면으로 이루어진 세상과 눈을 맞추고 있을 때 복시는 약화된다. 노트북의 모니터를 보며 일하고 텔레비전 모니터를 보며 쉰다. 왼쪽 눈동자의 나사가 풀린 것 같다. 나는 한 번씩 얼굴의 왼쪽 근육을 찡그려 풀린 나사를 죈다. 위험을 두 손으로 붙잡고 운전을 한다. 나는 돌이킬 수 없는 한때를 살았다. 여태 그 시절을 사는 것 같다.

 

  “밤마다 / 우주 끝에서 보내온 답장을 해독하러 / 침대 주머니 안으로 잘라 넣은 너의 / 예민하고 우아한 잠” - <주머니 없는 외투> 중

 

  우울함에 잠식당하지 않기 위하여 주말 동안 집에 머물렀다. 나의 병과 나의 육체가 맞닥뜨린 지점이 왜 눈일까 생각했다. 그렇다면 왜 나의 병과 나의 육체는 맞닥뜨리게 되었나 생각하려다 그만두었다. 원인불명은 많은 병의 알리바이가 되어 준다. 나는 그 알리바이를 의심하지 않기로 하였다. 시집을 읽던 토요일 오후 병증의 강도는 가장 높은 지점에 있었다. 그 이후 나아지고 있다,고 여겨진다.


배수연 / 조이와의 키스 / 민음사 / 130쪽 / 2018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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