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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수사 1

[도서] 재수사 1

장강명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4점

  근래에 내노라하는 한국 소설 작가들의 작품이 다수 출간되었다. 오래전부터 읽어 오던 이들이라 관성처럼 읽었다. 관성처럼 읽었으니 그만큼 집중을 안 한 내 탓일 수도 있겠으나 그 작품들도 나만큼이나 관성처럼 완성된 것 같아 실망스러웠다. 앞으로도 관성처럼 읽게 될까, 의구심을 갖게 되었다. 그에 비한다면 장강명의 소설을 읽으면서는 꽤나 공이 들어가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형사라면 다 폭력에 끌려. 그리고 다른 사람을 공격할 수 없을 때 자기를 공격하게 되지. 자신을 향해 폭력을 휘두르는 거야. 지혜도 그렇게 되지 않도록 조심해.” (2권, 191쪽)

 

  소설은 《재수사》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22년만에 재개된 미제 사건 수사를 소재로 하고 있다. 어쩌면 뻔한 소재일 수도 있겠으나 소설의 전개 방식이 독특하다. 소설은 짭은 챕터 100개로 되어 있는데, 첫 번재 챕터인 1번 챕터 이후 홀수 챕터는 22년 전 사건의 진범이 맡고 있고, 짝수 챕터인 2번 챕터 이후 마지막 100번 챕터는 사건을 수사하는 연지혜 형사가 맡고 있다.

 

  “내 안의 스타브로긴은 금기로 가득한 시대가 올지 모른다고 냉소적으로 내다본다. ‘감수성 운동’은 타인에게 고통을 주지 않는 것을 중요시한다. 인간은 비윤리적인 행위로도 고통받지만 무례함으로도 상처를 받는다.
  그래서 감수성 운동은 윤리와 예의를 구분하지 않는다. 한 부족에서 어떤 단어가 대단히 무례한 것으로 지정된다면, 별다른 윤리적 근거가 없더라도 주변 부족이 그 금기를 받아들이게 된다. 그것이 전체 공동체로 확산된다.
  각 부족들이 지닌 금기의 합집합이 다음 세상의 새로운 윤리가 될 가능성에 스타브로긴은 전율한다. 그곳에서는 상대에게 전날 축구 경기의 결과를 묻는 것도 손가락질받을 일일지 모른다.” (1권, pp.216~217)

 

  연지혜 형사가 동료 형사들과 함께 몸으로 증거를 수집하며 사건의 진범을 향해 나아가는 동안 진범은 자신에게 할당된 챕터를 통하여 자신이 저지른 살인을 합리화하는 데에 주력한다.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인 《죄와 별》, 《지하로부터의 수기》, 《악령》에서 라스콜니코프, 지하인, 스타브로긴을 수시로 호출하고, 그 소설 속 주인공들을 도구로 삼아 자신의 살인 행위를 교묘하게 항변한다.

 

  “... 나는 계몽주의에 시작부터 근원적인 결함이 있었다고 본다. 그러므로 그 보완은 사실상 재설계에 가까운 작업이 된다. 내가 만들어내려는 것에는 ‘계몽주의 2.0’보다는 ‘신(新)계몽주의’라는 이름이 더 어울린다.” (1권, 331쪽)

 

  물론 진범이 토해내는 그럴싸해 보일 수도 있는 궤변의 향연이 마냥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다. 더 나아가 계몽주의라는 근대 사회의 근간을 향한 뒤늦은 수정 작업이라 할 수 있는 ‘신계몽주의’ 철학 설파에 이르면 머리가 지끈거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문학적 철학적인 궤변은 연지혜가 주도하는 챕터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을 범인으로 유추하도록 만드는 재미를 제공함으로써 또 다른 역할을 한다.

 

  “하지만 원고 대부분은 장황한 변명이었다. 계몽주의니 도스토옙스키니 하는 거창한 단어들이 들어 있기는 했다. 하지만 머리 나쁜 미결수들이 구치소에서 매일 한 장씩 써대는 뻔한 반성문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았다. 나도 잘못한 건 있지만, 상대도 잘못했다. 그놈, 혹은 그년이 그렇게 내 화를 돋우지 않았다면, 나를 유혹하지 않았다면, 내 요청에 순순히 응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거다. 나도 피해자다.” (2권, p.394)

 

  이 모든 작업이 전2권, 합하여 800여 페이지에 걸쳐서 진행되고 있다. 자칫 한눈을 팔면 공든 탑이 무너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작가가 잘 버텨냈다고 생각한다. 사실 아직도 나는 소설을 읽을 때마다 동아일보 기자 출신이라는 작가의 이력을 떠올리고는 한다. 소설 속 살인범이 내뱉는 궤변을 읽어내면서 몇 차례 얼굴을 찡그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만에 재미있는 독서였다.

 


장강명 / 재수사 / 은행나무 / 전2권 (1권409쪽, 2권405쪽) /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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