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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안락사 현장에 다녀왔습니다

[도서] 스위스 안락사 현장에 다녀왔습니다

신아연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1990년 가을에 1900년을 출생연도로 삼은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추석 연휴와 겹쳐 5일 동안 장례를 치렀다. 쌍문동에 있는 병원 장례식장이었는데, 당시의 여자 친구가 찾아왔을 때 함께 만화방에 갔다 왔다. 5일은 꽤 긴 시간이었다. 그때 아버지가 우는 장면을 처음 보았다. 군인을 직업으로 삼은 아버지가 우는 것을 그 전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아버지가 담배를 태우는 것도 그때 처음 보았다.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조력사는 안락사와 함께 인위적으로 생명을 중단하는 방법이지만, 안락사는 타인에 의한 생명 중단으로, 의사가 약물을 투여하는 적극적 안락사와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소극적 안락사로 나뉩니다. 한편 조력사는 외부의 도움을 받되 스스로 치사량의 약물을 마시거나 주사를 놓는 자살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2018년 연명의료결정법 시행 이후 소극적 안락사는 합법입니다.” (p.5)

 

  할머니의 죽음 이후 나는 바로 지금, 가장 죽음 가까이에 있다. 죽음을 직감, 같은 것이 아니라 죽음을 실감, 한다고 보는 것이 맞다. 아버지는 4월 초 코로나에 걸렸고, 그때 이후 급전직하로 건강이 나빠졌다. 이미 3년 전부터 폐암을 앓고 있었지만 기적에 가깝게 관리가 되고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 이후 현저한 인지기능저하가 발생하고 말았다. 아기의 울음처럼 많아진 아버지의 울음을 겪어내는 중이다. 

 

  “이 세상에 오래도록 머무르고 싶다거나 극적으로 증상이 호전되는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라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하루빨리 떠나고 싶지도 않습니다. 불안하거나 두렵지도 않습니다. 저 같은 중환자들은 의료진의 말 한마디, 검사 결과에 생사가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따라서 환자 대부분은 긴장, 초조, 그리고 두려움 속에서 결과를 기다리게 되는데 어느 순간부터 저는 의외로 담담했습니다...” (pp.13~14)

 

  인지기능저하와 함께 여러 신체기능저하도 뒤따랐다. 애초에 기능이 많이 떨어져 있던 신장이 나빠진 이후 회복되지 못하였다. 지지난 주부터 투석이 시작되었다. 폐가 아닌 다른 곳을 발원지로 하는, 피부암의 일종인 메르켈세포암이 생겼다. 예후가 좋지 않은 휘귀암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이것 또한 지지난 주의 일이다. 콧잔등에 도드라진 종양을 없애는 방사선 치료가 10회차를 넘어섰다.

 

  “거기까지 간 사람 중에서 막상 닥쳐서는 마음을 바꾸고 다시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고 해요. 70%는 마음을 돌린다지요? 우리가 잘 설득해서 한국으로 모시고 옵시다. 한국에서 치료받도록 잘 말씀드려 보지요. 의료의 질적 면에서, 특히 암 환자 치료는 한국이 호주보다 앞서 있다고 봐야죠.” (p.48)

 

  죽음에 가까이 있는 동안 죽음과 관련한 책을 읽으며 마음을 다스리고자 하였다. 《스위스 안락사 현장에 다녀왔습니다》는 ‘조력자살 한국인과 동행한 4박5일’이 부제가 붙어 있다. 부제 그대로이다. 몇 년 전, 까페 여름의 선배와 안락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선배는 생각보다 안락사 비용이 크게 들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대신 그쪽에 보낼 편지를 영문으로 작성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고도 하였다.

 

  『“마음의 준비가 되면 밸브를 손수 돌리세요. 그러면 수 초 안에 편안히 잠드실 겁니다.”

  설명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분이 밸브를 돌렸습니다. 순식간의 일이었습니다. 설명을 하던 남자도 흠칫 놀랐고 우리의 입에서도 짧은 탄식이 나왔습니다.

  “아 졸리다...”

  그 말을 끝으로 5~8초 남짓한 사이에 고개가 옆으로 떨어졌고, 입가에는 희미하게 미소가 떠올랐습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스스로 밸브를 돌려 약물을 주입, 삶과 죽음의 경계를 찰나로 넘던 그 순간, 저는 그분의 발이 식어갈 때까지 잡고 있었던 사실조차 의식하지 못했습니다...』 (p.97~98)

 

  오래전 젊은 시절 묘비명을 생각해본 적이 있다. 태어날 때는 내 의지가 아니었으나, 죽을 때는 내 의지대로 간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대충 이런 요지의 문장을 떠올렸다. 죽음이 가까이 있으니 죽음에 관한 책이 잘 읽힌다. 지금부터 우에노 지즈코라는 일본의 사회학자가 쓴 《집에서 혼자 죽기를 권한다》라는 책을 읽을 생각이다. 아내와 나는 자식을 두지 않기로 작정하였고 그렇게 했다. 아버지의 죽음 가까이에서 내 죽음을 함께 생각한다. 


신아연 / 스위스 안락사 현장에 다녀왔습니다 / 책과나무 / 174쪽 /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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