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어린시절 같은 고아원에서 지내면서 서로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후 재민이 부잣집에 입양을 가면서 인생 역전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포함해서) 그녀는 그런 재민이 싫다. 자신과는 전혀 다른 부자, 무엇 하나 아쉬울 것 없는 재민이 자신을 향해 보내오는 사랑이 부담도 되고, 허위인 것 같아 믿을 수도 없다. 그리고 얼마 지나 그녀가 일하는 공장에서는 대량 해고의 칼바람이 분다. 악화된 경영 환경의 개선을 위해 노동자들을 무더기로 잘라내는 것... 그녀는 주변의 친구들이 우수수 잘리는 것을 보며 분개했고, 그녀 자신도 직장을 읽을 위기에 처한다. 그런데 웬걸, 공장의 칼바람의 중심에 재민이 서있다. 그리고 재민은 그녀를 발견하고 그녀의 해고를 철회하지만, 그럴수록 그녀는 더 차가와져서 공장을 박차고 나간다.
직장을 그만두고 야학마저 소흘히 하던 그녀는 고아원의 선배인 언니를 통해 결국 호스티스 자리를 소개받는다. 반반한 얼굴의 그녀는 이제 돈에 독이 올라 닥치는대로 남자들을 상대한다. 그런 그녀를 뒤쫓아온 재민은 그녀의 사랑을 갈구하며 룸싸롱 어깨들에게 구타를 당하고, 그녀에게 모욕에 가까운 언사를 당하면서도 자신의 사랑을 멈추지 못한다. 그리고 드디어 그녀가 재민에게 마음을 연다. 그녀는 룸싸롱 동료들의 축하를 받으며 호스티스를 그만두고 자신의 작은 방에서 재민과 행복한 시간을 갖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부잣집 도련님 재민은 사실 그녀의 사랑을 갈구하는 동안, 약혼까지 마친 상태였다. 두 사람이 행복한 사랑을 나누고 있는 동안에도 재민의 일탈에 대해 알고 있는 부잣집 마나님은 결혼을 밀어붙이려 하고, 약혼녀는 재민의 호스티스 애인에 대해 알지 못한다. 결국 부모님의 압력에 굴복한 재민은 그녀와의 연락을 끊고, 그녀는 재민과 만나려고 시도하지만 여의치 않다. 그리고 결혼식을 앞둔 며칠 전, 결국 그녀는 재민의 회사에 찾아가고, 부모와 약혼녀를 대동한 재민은 그녀를 모른 척 하고 지나간다. 하지만 그 엇갈림의 순간이 끝난 후 결국 재민은 좀전의 그녀가 실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놀란 표정의 약혼녀와 부모를 놔둔채 그녀를 향해 달려간다.
자, 여기까지... 얼핏보면 과거 7~80년대의 호스티스 영화를 빼닮은 위의 줄거리에서 그녀를 수민이라는 이름으로 바꾸어 놓고, 성별을 여자에서 남자로 바꾸고, 호스티스라는 직업을 게이 호스트라는 직업으로 바꾸어 놓는다면, 그대로 최근 영화판에서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는 《후회하지 않아》의 줄거리가 된다. 물론 뒷얘기가 조금 파격적이기는 하지만, 그 정도의 차별화 포인트야 여느 호스티스 영화들에서도 존재하고 있던 것이니...
지난 주말 독립 영화이며 장편 퀴어 영화인(《왕의 남자》나 《브로크백 마운틴》과는 태생이 다른), 여러가지 악조건 속에서도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매니아에 가까운 (야오이 소설의 동인녀들이 중요 고객이라는 설이 있음.) 지지층을 형성하고 있는 《후회하지 않아》를 봤다. 마침 감독과 주연배우의 무대인사가 있었는데, “대부분 이미 뵌 분들이네요. 아, 처음 뵙는 분들도 몇 분 계시군요.”라고 운을 뗄 정도이니 그들의 지지가 어느 정도인지 대충 짐작이 간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로서는 《후회하지 않아》를 향하여 보내는 무조건적인 지지에 동의하기 힘들다. 호스티스 영화를 게이 버전으로 바꾸었을 뿐 참신함과는 거리가 먼 줄거리, 멜로의 요소를 가미한 퀴어 영화라는 수식에도 불구하고 여느 트렌드 드라마의 계층(혹은 계급)간 연애 공식을 그대로 차용한(그것도 매우 올드한...) 관계 설정, “우리는 아직 이름도 모르잖아요. 안녕하세요 수민씨.”류의 식상하고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듯한 대사와 상황 설정 등이 영화를 보는내내 거슬렸다.
남자가 다른 남자의 ‘자지’를 빠네 마네 하는 대사도, 무수하게 등장하는 남자와 남자의 딥키스와 아날 섹스도, 남성에 의한 남성의 매매춘 공간을 바라봐야 하는 점이 거슬리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영화가 정보 컨텐츠가 아닌 바에야, 그동안 모르고 있거나 접하기 힘들었던 새로운 사실 정보를 영상으로 전달받거나 확인하는 것 이상의 느낌이 없다면 그건 문제가 아닐까. 《왕의 남자》나 《브로크백 마운틴》을 보며 체험한 (이성애자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참을 수 없었던, 그렇게 여성과 남성에게 부여된 성적 아젠다를 뛰어넘는) 감정의 기복을 《후회하지 않아》로부터 느낄 수는 없었고, 그것이 영화의 규모의 문제라고 보여지지는 않는다.
사실 영화에 대한 대중의 열광(이라고 해도 극소수일 뿐)은 이성애자임에도 공공연하게 남성 동성애에 지지를 보낼 수 있게 된 (이것 또한 《왕의 남자》와 《브로크백 마운틴》의 공이겠지) 여성층의 확대로부터 기인한 현상 아닐까... 그러니 소설의 하위 장르로서 야오이가 존재하고 그걸 즐기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우리에게 존재하지 않았던 동성애 코드로 무장된 대중적인 멜로 영화가 추가되고 이러한 컨텐츠를 즐길 준비가 되어 있는 계층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해줬다는 것 정도가 《후회하지 않아》라는 영화의 존재 의미가 아닐까. 나는 동성애의 표현이 불편한 것이 아니라, 그저 평범한 동성애 장르 영화 한 편이 보편적으로 좋은 영화의 지위에 오르는 현상을 바라보는 것이, 오히려 불편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