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블로그 전체검색

  1966년 이만희 감독의 만추에 이어, 육체의 약속이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된 김기영 감독의 만추, 그리고 1981년 김수용 감독에 의한 만추를 지나 2011년 김태용 감독의 만추라... (물론 이전의 만추를 본 기억은 없다.) 춘향전이나 연산군 등 몇몇 리메이크 혹은 같은 원작으로 하는 영화들이야 없지 않았지만 현대물이면서 네 차례나 리메이크 된 영화라면 그만큼 원작이 가지는 아우라의 내공이 상당하는 이야기일 터이다.


  간략하게 줄거리를 살펴 보자면 이야기가 가지는 힘이 이러한 쏠림을 조장했으리라 여기기에 충분하다. 교도소에 수감 중인 여자가 수십 시간의 자유를 허락받아 세상으로 나온다. 그렇게 나온 세상에서 한 남자를 만난다. 처음 그 남자를 밀어내던 여자도 어느 순간 그 남자를 받아들인다. 그리고 교도소에서 느끼지 못했던 세상의 온기, 또 다른 자유 혹은 욕망에 흠칫 놀라게 한다. 하지만 그녀는 다시 교도소로 돌아가야 할 운명이다. 짧은 순간 서로를 채웠던 남녀는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지만 아무래도 그것이 가능하리라 보여지지는 않는다. 완전한 구속의 상태도 아니고 온전한 자유의 상태도 아닌 이 시한부의 사랑에 몰입하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이제 2011년의 만추는 국내를 벗어나 훌쩍 미국의 시애틀로 자리를 옮긴다. 감옥에서 나오는 여자 애나의 역으로 (색계의 그 라이브한 섹스신으로 유명한) 탕웨이가 나오고, 그러한 애나와 함께 버스를 타는 남자 훈의 역할을 현빈이 맡는다. 현대화되고 글러벌한 만추는 또한 <가족의 탄생>을 연출하였던 김태용 감독에 의해 들들 끓는 외로움의 도가니 안으로 왠지 씁쓸하고 엷디 엷은 웃음의 코드까지 슬쩍 들이민다.


  온 몸에 피를 묻힌 여인 애나가 허겁지겁 집으로 돌아가 어떤 사진을 씹어 먹는 장면으로 시작되는 영화는 곧이어 버스에서 훈과 애나가 만나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어머니의 죽음에, 남은 가족의 보석금 덕분에 삼일의 자유를 얻은 애나는 출발하는 차를 세워 올라탄 훈에게 돈을 빌려주고 대신 시계를 받는다. 그렇게 시애틀에서의 부여받은 자유, 그 삼일 동안의 짧고도 추적추적한 두 사람의 시간이 시작된다.


  애나가 어머니의 장례식을 준비하는 동안 훈은 자신의 본업인 지골로의 역할을 해내고, 장례식을 앞두고 떠나려 하던 애나와 몸을 피하려던 훈은 다시 만난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애나와 누구에게든 마음을 열 준비가 되어 있는 훈은 그렇게 얼마 되지 않은 시간 속으로 서로를 밀어넣는다. 시계를 빌려 주고 그 시계를 주고자 하고 시계는 돈으로 치환되고 또 그 돈이 시간의 대가가 되기도 하는 우여 곡절 속에서도 두 사람은 서로를 조금씩 알아가게 된다.


  처음으로 그녀가 입을 열게 되는 공원의 장면, 다투는 듯한 남자의 입모양에 맞춰 대사를 읊조리는 훈이 잠시 멈칫하는 틈을 타고 애나가 그녀의 입모양에 맞춰 자신을 발설한다. 그리고 다음 날 애나의 어머니의 장례식에 나타난 훈은 그녀에게 상처를 입힌 남자를 향하여 포크를 빌미로 카운트를 날리고, 그녀는 어쩌면 그 카운트 펀치를 통하여 자신의 오래전 외로움을 상쇄시킬 수 있는 힘을 갖게 될지도 모르겠다.


  이제 삼일간의 일정은 끝이 나고 두 사람은 헤어짐을 유예하면서 함께 버스를 탄다. 이들의 헤어짐을 유예시키려고 거드는 듯 안개 또한 짙게 낀다. 버스에서 내린 두 사람이 나누는 문제의 그 길고도 긴 키스신은 그렇게 탄생한다. 하지만 여자를 배려하였으되 그 여자의 남편으로 인해 누명을 쓰게 된 훈은 사랑하는 남자를 배려하였으되 그 남자의 아내를 통하여 자신의 흘려보낸 시간을 쓰게 삼켜야 했던 애나를 남겨 두고 사라질 수밖에 없다.


  아무리 가을이 깊다 한들 솟구쳐 봄으로 진입할 수는 없다. 그러니 이 두 사람에게는 아직 침잠의 계절 겨울이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교도소에서 나온 애나가 휴게소 식당에서 알듯 모를 듯 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창밖에는 그렇게 아직 더디기만 한 그와 그녀의 봄을 향하여 보내는 안타까움이 잔뜩 도사리고 있다. 삼일이라는 시간 동안 판도라의 상자는 열렸지만 희망은 쉽사리 상자 바깥으로 나올 수 없는 법이리라.



 
취소

댓글쓰기

저장
덧글 작성
0/1,000

댓글 수 0

댓글쓰기
첫 댓글을 작성해주세요.

PRID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