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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교

[영화] 은교

개봉일 : 2012년 04월

정지우

한국 / 드라마 / 청소년 관람불가

2012제작 / 20120425 개봉

출연 : 박해일,김무열,김고은

내용 평점 3점

소설 『은교』를 읽고 2년의 시간이 흘렀다. 나는 그렇게 2년만큼 더 늙었다. 영화 속 예순 아홉 시인 이적요의 나이에 조금 더 가까워졌고, 열일곱 어린 소녀 한은교로부터 그만큼 더 멀어졌다. 물론 서지우로부터도... 사실 소설을 읽을 때 꽤 불편해 했던 기억이 어렴풋하게 남아 있어 영화를 보아야 할지 조금 망설였다. 그런데 아직은 소녀 한은교의 나이에 가까운 여직원들의 꾐에 넘어갔다. 영화 개봉 첫날 상영관을 찾은 것도 오랜만이다. 나이가 들면 이리 급해지는 것일까. 그러고보니 소설 속에서 이적요는 이렇게 말했다.


“... 주저할 틈이 어디 있는가. 잠든 너를 들여다보는 순간에도 내게 허용된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 샤샥샤샥, 바람보다 빨리 흘러가는 소리가 환히 들렸다. 폭풍 같은 슬픔이 나를 후려치고 지나갔다...”


큰 줄거리에서 영화는 소설과 다르지 않다. 작가로서 명예와 권위의 정점에 서 있는 것으로 보이는 시인 이적요는 스승에 대한 강한 존경심을 가지고 있는 소설가 서지우를 제자로 삼아 한적한 곳에서 조용히 늙어가는 중이다. 그러던 어느 날 이러한 이적요 앞에 열일곱의 여고생 한은교가 불쑥 나타난다. 그리고 이제 이적요는 바로 그 한은교를 통하여 잊은 줄 알았던 젊은 시절의 어떤 기운을 기억할 수 있게 되어 감정적으로 환호하며, 그 환호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여 소녀의 이름을 제목으로 삼은 소설을 쓰기에 이른다.


하지만 이러한 감정적 환호의 이면에는 자신의 육체적인 현재, 제어하기 힘든 늙음의 속도 앞에 널부러진 자신을 직시해야 하는 고통 또한 도사리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숭앙하는 위치에 있지만, 재능 없는 제자를 대신하여 베스트셀러 소설을 낼만큼 다양한 능력을 지니고 있지만, 그 베스트셀러 소설을 쓴 손으로 작품성을 인정받는 순수문학 한 편을 뚝딱 써낼 정신적 풍요로움을 자랑할 수는 있지만 이적요는 늙었고 또한 앞으로도 그렇게 늙어갈 수밖에 없다.


“너희 젊음이 너희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이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그러니 그는 자신이 이룩한 것들을 (비록 그것이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되지 않았다고 하여도) 앞에 두고 이렇게, 자신이 이룬 성과물들과는 전혀 상관없이 젊음과 늙음에 대해 호소하고 있을 뿐이다. 그의 이러한 호소가 틀린 말은 아니나, 자신의 작품을 자신의 작품이라고 말할 수 없는, 모든 내막을 아는 우리들로서는 안쓰러울 수밖에 없다. 세상으로부터 어떤 추앙을 받고 있어도, 자신이 누리는 어떤 권위나 명예에도 불구하고 복구되지 않는 시간의 속절없음은 그렇게 관객석의 어떤 사람들로 하여금 씁쓸하게 또는 쓸쓸한 감정에 휩쓸리도록 만들고 만다.


 “은교. 아, 한은교. 불멸의 내 ‘젊은 신부’이고 내 영원한 ‘처녀’이며, 생애의 마지막에 홀연히 나타나 애처롭게 발밑을 밝혀주었던, 나의 등롱 같은 누이여.”


다시 슬쩍 소설로 우회하자면 이적요에게 한은교가 어떤 존재였는지는 애매하다. (물론 영화 속에서도 확연하지는 않다.) 이성애의 대상이라고 하기에도, 그렇다고 그러한 이성애를 뛰어넘은 어떤 대상이라고 부르기도 어렵다. 굳이 정의하자면, 이성애의 대상이어야 했으나 너무 늦게 도착하여 아쉬울 수밖에 없는 어떤 존재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러니 이적요에게도 한은교에게도 그 만남은 애처로울 수밖에...


어떤 이는 이들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하여, 그러니까 칠십을 앞둔 노인과 이십이 안 된 소녀의 관계를 추하다고 여길 것이다. 하지만 시인 이적요가 강의실의 서지우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별을 아름다움의 상징으로만 생각하는 것이 잘못이듯, 일반적이지 않은 사랑을 추한 것으로 여기는 것 또한 오류이다. 더불어 우리가 미의 대상으로 삼는 영역 안에서는 아름다움도 추함도 똑같이 하나의 오브제로 존재할 뿐, 어느 것을 취하면서 다른 하나를 버려야 할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처럼 이성적으로 영화 속 내용을 이해는 하되 그 표현방식, 그리고 소설의 각색 스타일과 몇몇 디테일한 설정에 대해서는 불만이 생긴다. 영화 속의 한은교가 보여주는 헤어누드의 묘사에도 불구하고, 소설 속의 한은교에 비하여 팜므파탈의 매력은 다소 떨어진다. 이적요의 생활을 독점함으로써 그의 재능을 넘겨받고자 하였던 서지우, 그에게 흡수됨으로써 그의 탄탄하게 구축된 영혼을 넘겨받고자 하였던 한은교가 어찌하다 서로 몸을 섞어야 했는지에 대한 개연성도 부족하다. 한은교와 이적요 사이를 질시하는 서지우에 비하여 서지우와 이적요 사이를 질투하는 한은교에 대한 설명이 희미해 보인다. 더불어 느리고 리얼하게 편집된 서지우의 차사고 장면대신 (근래 보기 드문 좋은 장면이었으나 액션 영화가 아니잖은가...), 이리저리 기웃거리며 섹스 장면을 정확하게 포착하려고 노력을 기울이는 이적요의 장면대신, 소설 속 이적요가 서지우에게 고용된 남자에게 당하는 장면을 삽입하는 것이 어땠을까. 또한 소설에서 사용되었던 미스터리 형식을 포기하는 대신 영화는 인물들의 감정선을 따라가는데 주력하였지만 마지막 장면 한은교가 계간지를 들추다가 소설 <은교>의 진짜 지은이를 알아차리고 이적요를 방문한다는 전개는 너무 안이한 각색 방식이었다.


그렇지만 쇠락하는 늙음 안에 존재하는 청춘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젊은 배우 박해일에게 8시간을 투여하여 늙음을 입힌 것은 나쁘지 않은 작전이었다. 소설 속에서 이야기하는 바, 다자이 오사무는 ‘여름은 샹들리에, 가을은 등롱 燈籠’이라고 말했다던가. 주름 잡힌 이적요에게서 시간의 주름을 활짝 피고 그 여름 샹들리에 빛과도 같은 청년 박해일을 불러낼 수 있었으니 말이다. 아쉽기는 하지만 복잡하고도 이견 분분할 수 있는 작품 속의 관계들을, 2시간이라는 분량 안에 담을 수 있는 방식으로는 이만하면 나름의 선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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