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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 기둥

[도서] 소금 기둥

레오폴도 루고네스 저/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기획/조구호 역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그러고보니 보르헤스는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는 거의 유일한 아르헨티나 작가였다. 뒤져보니 세계의 젊은 작가들의 단편들 묶음집에 실린 마르셀로 비르마헤르라는 작가의 작품을 읽은 적은 있지만... 그러니 레오폴도 루고네스는 내가 접한 세 번째 아르헨티나 작가가 되지 않을까... 책에는 여섯 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는데 작가의 약력을 살펴보니 소설 보다는 오히려 시와 평론 분야에서 더욱 많은 책을 남겼다.


“아르헨티나 문학의 전 과정을 단 한 사람으로 축소해야 한다면 그 사람은 분명 레오폴도 루고네스가 될 것이다. 우리는 그의 작품에서 우리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아마 내일까지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이수르」.
“원숭이는 이런저런 이유로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게 된 인간이다. 인간이 말을 하지 않게 되자 발성기관과 뇌의 언어 중추가 쇠퇴했다...”(p.22) 이 정도의 발상이라면 보르헤스로부터 공상과학 장르의 문을 열었다는 소리를 들을 만하다. 이 정도면 혹성탈출의 맹아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말을 하지 못하게 된, 이 아니라 말을 하지 않게 된, 이라는 지점이 흥미롭다.


「불비」.
현대판 소돔과 고모라... 이러한 성서의 내용이나 고전의 재해석은 이 작가 소설의 주요한 특징들 가운데 하나라고 보여진다. 하늘에서 놋쇠비가 내리고 이를 피해 달아나는 인간 군상들에 대한 표현이 정밀하다. 여섯 개의 작품들 중 「줄리엣 같은 할머니」와 함께 가장 흥미롭게 읽었다.


「소금 기둥」.
뒤를 돌아보았다가 그대로 굳어버린 여인... 성경에서 차용한 이야기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참을 수 없는 호기심을 건드린다.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그 여인이 사실은 굳은 채로 살아 있다는 설정, 그 여인의 이야기를 듣고 그녀를 찾아가는 수사, 그리고 그녀에게 굳어버리기 직전에 본 것을 말해 달라 애원하는 상황이 그 자체로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


「압데라의 말」.
어떤 은유일 것이라고 짐작되지만 파악은 힘들다. 동물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가 무미건조하게 거론되다가 느닷없이 말들의 공격이 시작된다. 물론 그 후에 사자를 통하여 이 한쪽으로 치우친 전쟁이 평정되는 것도 급작스럽기는 마찬가지... 「이수르」와는 또다른 분위기의 동물 등장이다.


「설명이 불가능한 현상」.
“... 그 원숭이는 내 그림자처럼 검은색이고, 한 남자 곁에 음울한 모습으로 있어요... 보통 키에 얼굴은 다른 원숭이들과 비슷해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닮았다는 느낌이 들어요...” (p.108) 인간이 항상 달고 다니는 그림자, 그 그림자에 대한 탐구의 이야기이다. 유체이탈을 통하여 자신과 자신의 그림자를 볼 수 있게 된 자의 이런저런 한탄이 어느 순간 그림자의 윤곽선을 따라 그려낸 한 장의 그림으로 밝혀지는 순간...


「프란체스카」.
시동생 파올로와 사랑에 빠진 프란체스카의 이야기로 만들었단다. 단테 또한 <신곡>에서 이 이야기를 다루었다고 하는데... “그녀의 어린 나이로 인한 반항심이 체념의 눈[雪]에 덮이지 못한 채 표출되는 격정의 봄에, 파올로는 시든 새싹을 기억하는 유일한 태양빛이었다.” (p.122) 세익스피어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다루고 있는 비극을 차용한 듯 두 사람의 사랑, 그리고 이를 지켜보는 남편이자 형의 잔인함이 극명하게 비교된다.


「줄리엣 같은 할머니」.
“두 사람은 서로 상당히 분명하게 동의했음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내심만은 밝히지 않은 채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자신들의 취미를 바꾸어 갔다. 대화가 끝나면 음악을 듣고, 음악을 듣고 나서는 체스를 두었다. 그렇게 해서 두 사람은 서로의 생각과 취향을 공유하게 되었다. 함께 보낸 지 사십 년이 지난 어느 날...” (pp.138~139) 그리하여 고모인 올리비아는 이제 일흔 살이 되었고, 조카 에밀리오는 쉰 살이 되었다. 잠깐 떨어진 시절이 있었지만 이 긴 시간을 두 사람은 함께 했다. 사람들과 섞이기를 싫어하는 조카 에밀리오와 우울함으로 가득한 올리비아는 두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였던 것일까... 세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폭발하듯 짧은 사랑의 이야기라면 이 소설은 그 몸통이 완전히 타버릴 때가지 뜨겁게 눈물 흘린 양초 같은 사랑 이야기라고나 할까...


레오폴도 루고네스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기획 / 조구호 역 / 보르헤스 세계문학 컬렉션 바벨의 도서관 - 04 소금 기둥 / 바다출판사 / 246쪽 / 2010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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