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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미제라블

[영화] 레미제라블

개봉일 : 2012년 12월

톰 후퍼

영국 / 드라마 / 12세이상관람가

2012제작 / 20121218 개봉

출연 : 휴 잭맨,러셀 크로우,앤 해서웨이,아만다 사이프리드,헬레나 본햄 카터,에디 레드메인,사챠 바론 코헨,사만다 바크스

내용 평점 4점

작년 12월 대선이 있은 이후 며칠 뒤 영화를 봤다. 다른 모든 이들처럼 붕괴에 이른 멘탈을 추스를 필요가 있었고, 그사이 <레미제라블>을 관람한 많은 이들이 힐링에 도움이 된다며 입소문을 내기 시작한 뒤였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낙담의 정서를 다독이고 패배의 이성을 돌려세우는데 더없이 좋은 영화였다. 물론 그 후에도 지금도 티비 뉴스를 볼 수가 없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지만 말이다. (사실 조금씩 포털의 뉴스들은 읽기 시작하였다.)


사실 프랑스에서는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렸다는 소설 《레미제라블》을 모르는 이는 별로 없을 것이다. 아마도 대부분 축약본으로들 읽었을 이 고전은 인간의 윤리적인 측면에 대한 종교적인 경애로 가득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인간의 윤리가 그것만으로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계급적인 측면과 매우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에 대해서는 (아마도 대부분 축약본으로 읽은 통에) 간과한 측면이 있었다.


“사회에는 법률과 풍습으로 말미암은 처벌이 존재하여 그것(그 처벌)이 문명 속에 인위적으로 지옥을 만들어내어 신성한 운명을 불행으로 뒤얽히게 하는 한, 그리고 이 시대의 세 가지 문제, 프롤레타리아 탓으로 남자가 낙오되고, 굶주림으로 여자가 타락하고, 어둠 때문에 아이들이 비뚤어지는 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또 어떤 지역에서 사회의 질식상태가 생길 가능성이 있는 한, 다시 말해 좀 더 넓게 보아 이 지상에 무지와 비참이 있는 한, 이러한 책들이 쓸모없지는 않을 것이다.” - 빅트로 위고의 《레미제라블》 서문


빅트로 위고의 서문에서도 드러나듯 개개인이 겪는 불행을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러한 불행으로 뒤얽히게 만드는 법률과 풍습이라는 낡은 사회적 시스템을 이야기하는 것이 바로 《레미제라블》이다. 레 미제라블, 미천한 자들의 윤리적인 각성의 다른 한 켠에서 사회계급적인 각성이라는 보다 큰 수레바퀴가 굴러가고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레미제라블》은 19세기 프랑스 사회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모순과 그 해결의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레미제라블》에서 이 모순의 참혹함은 이루 말할 수 없고 그 모순의 해결은 어렵기만 하다.


이번 대선에서 박을 지지할 수 없었던 많은 이들이 이 영화를 통하여 위로를 받는 것은 바로 이 부분일 것이다. 이번의 패배가 모든 것의 끝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프랑스 혁명 이후 영화에 드러난 완정으로의 복귀와 또 다른 혁명으로 이어지는 지난한 과정을 통하여 우리의 민주주의는 보다 나은 곳을 향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그리고 지금 박이 당선됨으로써 우리 사회가 뒷걸음질을 치는 것으로 보일지라도 결국 우리들의 마음 속에 있는 인간에 대한 사랑 그리고 진실에 대한 갈망을 담아낼 사회로의 진전을 가로막을 수 없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우리는 스스로를 다독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영화 속의 혁명은 결국 실패하였지만 역사는 그들을 잊지 않았다. 우리 또한 1960년 4월 혁명과 1980년 5월의 광주항쟁 그리고 1987년 6월의 민주화 투쟁이라는 역사를 통하여 현재에 이르렀다. 당장 우리의 눈과 귀를 막고, 바리케이드의 이쪽과 저쪽을 나눠 놓을 수 있지만 결국 역사는 순방향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 독재는 끝이 날 수밖에 없고, 당선자 박이 입에 달고 사는 것처럼 결국은 역사에 의하여 모든 것은 평가를 받게 된다.


“민중의 노랫소리가 들리는가? 성난 사람들의 노래가. 그것은 또다시 노에가 되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음악이다. 너의 심장소리가 북소리가 되어 울릴 때, 내일이 오면 시작되려는 삶이 있다. 너는 우리의 십자군에 동참하려는가. 누가 강한 의지로 내 옆에 서겠는가? 저 바리케이드 너머 어딘가에 우리가 보고 싶은 세상이 있을까? 그럼 이 싸움에 동참하라. 이 싸움이 네게 자유로울 권리를 주리라.”


문재인을 지지한 나와 같은 많은 이들은 영화 속 패배한 혁명세력의 모습을 보며 피가 끓었을 것이고, 거대한 바리케이드 위의 등장인물들이 함께 노래를 부를 때 벅차오르는 심장의 박동을 느꼈을 것이다. 사회적 약자이면서도 박을 지지한, 대한민국의 51%중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이들에게 혐오감을 보낸 것과 마찬가지로, 영화 속에서 숨죽이고 있는 민중에게 짜증을 느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오랜만에 차분한 진중권이 씨네21에 실린 칼럼 <우리가 잃어버린 것 레미제라블과 혁명과 사랑>을 통하여 말하듯, 바리케이드 이쪽과 저쪽의 민중이 연대하지 않으면 우리가 꿈꾸는 것을 이루지 못할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진중권은 ‘혁명 없는 사랑은 공허하고, 사랑 없는 혁명은 맹목이다.’라는 말로 자신의 칼럼을 마무리하였다. 영화 속의 장발장은 자신의 죄를 감싸주었던 신부를 통한 윤리적 각성을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이어갔으며, 그 인간에 대한 사랑을 품고 있었기에 저도 모르는 사이에 혁명 세력의 사이로 스며들 수 있었다. 더불어 자베르 경감의 영혼을 흔든 힘 또한 인간 전체에 대한 장발장의 인간에 대한 애정으로부터 기인한 것이리라.


결국 우리가 이번 대선을 통하여 이루고 싶었던 자유와 평등에 기반한 민주주의라는 가치 또한 인간에 대한 애정으로 뒷받침되었을 때만 의미있는 무엇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레미제라블》속 장발장이 구현하는 인간에 대한 애정이 시대를 뛰어넘는 아우라를 획득하며 지금 우리에게 영향력을 행세하듯, 우리가 품었던 이번의 선한 열망 또한 언젠가는 진실을 자양분 삼아 꽃피우게 되지 않을까. 그러니 우리는 이번의 패배를 헛된 증오나 방향감 상실한 분노가 아니라 사랑을 통해서만 설욕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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