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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의 영화 언어

[도서] 봉준호의 영화 언어

이상용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봉준호의 영화 언어

이상용

난다/2021.2.22.

sanbaram

 

우리나라 영화 역사는 길다고는 하기 어렵지만 결코 짧지도 않다. 그동안 수많은 영화가 만들어져 관객들에게 소개 되었고, 관객들은 울고 웃으며 영화를 관람해왔다. 그러나 우리 영화가 해외에 까지 알려지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라 할 수 있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유럽과 미국의 영화제에서 우수한 작품으로 인정받으며 우리 영화가 세계에 크게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봉준호의 영화 언어>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중심으로 그가 만든 영화 ‘<플란다스의 개>, <살인의 추억>, <괴물>, <마더>, <설국열차>, <옥자>, <기생충>’ 7편을 9개의 주제에 따라 집중적으로 분석해보는 책이다. 저자 이상용은 1977<씨네21>2회 신인평론상을 수상하며 영화 비평을 시작했다. 부산국제영화제와 진주 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를 역임했으며, 지은 책으로 <영화가 허락한 모든 것>, <안나 카라리나>, 공저로 <씨네상떼>, <30금 쌍담>등이 있다.

 

<봉준호의 영화 언어>부치지 않은 편지에서 이 책은 봉준호가 쓴 영화라는 편지를 상세히 읽는 작업이다. 때로는 편지의 전체 양식을, 때로는 인용되는 편지의 내용들을, 때로는 문장 하나를, 때로는 잉크의 종류를 판별해가면서 필름 위에 눌러쓴 봉준호의 언어를 읽고자 한다.(p.46)”고 저자는 말한다. 봉준호의 영화는 영화 속 이야기뿐만 아니라 일곱 편의 장편을 반복적으로 써내려오면서 이야기를 분리하고, 우회하고, 새롭게 쓸 수 있는 방식들을 스스로 보여준다. 그는 끔찍한 화성의 연쇄살인사건도 다루지만, 한강의 연쇄살인 사건 이야기를 괴물의 유화로 들려주기도 한다. 그것은 더 많은 상상을 가능케 하면서 관객들을 깊은 심연으로 안내한다. 이야기의 본성에 따라 독자는 들려오는 이야기를 마음대로 해석하기 마련이다. 불쾌하기도, 유쾌하기도, 즐겁기도, 괴롭기도 한 이야기의 형식을 따라가면서 관객들은 다양한 생각을 취한다고 그는 말한다.

 

아버지에게 편지는 결코 전달되지 못한다. 그래서 진정한 수신자는 자신의 계획을 알아봐줄 환상 속의 상대자다. 편지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고, 제대로 가치평가를 해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편지를 읽지도 못하는 아버지도 아니고, 죽은 사람들도 아니다. 대타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리에 앉아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이다.(p.45)” 이처럼 봉준호의 영화는 자주 관객들을 향해 시선을 던져왔다. <살인의 추억>의 마지막 장면은 1986년 살인사건이 일어난 때로부터 17년의 시간이 흐른 후인 2003(영화가 개봉된 해)의 시점에서 출발한다. 영업사원이 된 전직 형사 박두만은 사건이 일어난 현장을 지나가다 멈춰 선다. 시체가 발견되었던 하수도 수로를 응시하는 박두만을 향해 길을 지나던 한 소녀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묻는다. 소녀는 얼마 전에도 어떤 아저씨가 똑같은 행동을 했다고 말한다. 용의자가 아직 살아 있음을 시사하는 소녀의 증언과 박두만의 물음이 오가고 마지막 순간에 박두만은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본다. 주인공의 시선은 관객을 향해 있다. 그것은 마치 나는 당신들 중에 범인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라고 말하는 것 같다. 혹은 당신이 범인이지?’라고 묻는 것 같다.

 

할리우드와 일본의 괴수 장르가 일정한 규모를 가진 자본력을 요구하는데 반해, 한국의 블록버스터 영화는 거대한 괴물이 아니라 괴물적인 인간을 통해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p.88)” <괴물>은 봉준호에게 처음으로 천만 관객을 안겨준 영화다. 할리우드 CG팀 오퍼나지와 뉴질랜드의 웨타가 괴물의 캐릭터 작업에 참여하였고, 한강을 배경으로 가족의 추격전을 다룬다. 할리우드 괴물 장르의 관습을 따라가면서도, 한국형 블록버스터에 등장하는 희생당한 주인공들을 보여줌으로써 두 종류의 괴물을 종합한다. 그 이접 속에 이 영화의 특징이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괴수가 등장하지만 그들은 감히 영웅의 반열에 오르거나 괴물 자체로 전락하지 않는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괴물은 천천히 등장한다. 이상한 자연현상이나 지진과 같은 전조들이 일어나면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흔히 괴물을 쫓는 영웅이나 과학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지만 이 장르의 진정한 주인공은 괴물 자체다. 봉준호의 <괴물>에서는 시작과 함께 괴물이 등장한다. 괴물을 탐구하는 과학자도 없고, 괴물을 추적하는 근사한 영웅도 없다. 느닷없이 등장한 괴물이 한강 둔치를 휩쓸고 지나간 후에도 괴물을 둘러싼 연구는 등장하지 않는다. 영화는 괴물의 등장 이후 다른 이야기로 관객을 안내한다. 바이러스 운운하는 가짜 뉴스들, 재대로 통제되지 않는 한강의 검역 시스템, 그리고 에이전트 옐로우 살포를 결정한 무능한 정부와 미국의 정치적 결탁은 괴물이 사라진 후 등장하는 것들이다. 사람들은 마스크를 쓰고 다니고, 바이러스를 찾기 위해 괴물과 접촉한 이들의 몸을 해부한다. 그 행동이야말로 괴물이 사라진 자리를 채우는 진짜 괴물이라는 것이다.

 

거대한 괴물을 제외하고, 봉준호의 영화에 등장하는 현실적인 괴물들은 매우 평범한 인간들이다. 그들은 근세처럼 평범한 인간들임에도 불구하고 끝내 괴물로 오인을 받거나 <살인의 추억>의 범인처럼 결코 등장하지 않는 존재다.(p.93)” <실미도><태극기 휘날리며>의 괴물적 인간들이 가공할 만한 위협으로 직접 등장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플란다스의 개>에서 개를 납치하여 살해하는 고윤주 역시 나중에 교수가 되는 보통의 속물적 인간이며, 아들을 위해 노인을 살해한 <마더>의 엄마 역시 평범함 그 자체다. 그들이 벌인 행위에 비해 인간 자체는 평범하다는 사실은 봉준호의 영화가 지닌 핵심 중 하나다. 봉준호의 영화에 등장하는 진짜 괴물은 이와 같은 착각과 오인의 결과다. 말해도 듣지 않고, 보아도 보지 못하는 인간의 맹목성이야말로 현실을 가려버리는 괴물의 무서운 어둠이다. 그리하여 봉준호의 영화는 마지막 대목에서 어둠을 응시하자고 제안한다. 한강 둔치를 바라보는 <괴물>의 마지막 장면처럼, 하수구를 응시하는 <살인의 추억>처럼 그곳에 여전히 진짜 괴물이 살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봉준호 감독은 최대한 환상의 비전과 현실의 풍경을 좁혀서 겹쳐놓는다. 봉준호 영화의 시각적 변증법은 대립하는 두 세계를 하나의 프레임 안에 둠으로써 일어나는 착시 효과인 동시에 각성을 일으키는 비전이 된다.(p.147)” 그 시각적 형상은 입체파의 그림처럼 완전히 왜곡되어 있지는 않을지라도, 현실을 비틀어 그 틈새로 들여다보게 하는 인식의 공간을 만들어낸다. <설국열차>는 기차야말로 유일하게 생존할 수 있는 유토피아라고 믿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커티스는 이러한 유토피아의 신념에 따라 꼬리 칸에서 엔진실로 진출하면 모든 것이 달라질 수 있다고 믿는 환상을 지녔다. 그는 향락에 취한 앞칸의 이질적인 장소들을 보았으면서도 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 하지만 남궁민수는 이 세계의 가장 이질적인 장소인 열차 바깥이야말로 진정한 문 너머의 세계이며, 자신이 크로놀을 모은 것은 엔진실을 날려버릴 폭탄의 원료로 쓰기 위함이었음을 토로한다. 남궁민수는 질서 잡혀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 기관차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새로운 장소로 나아가야 함을 역설한다.

 

<기생충>에서는 시각만큼이나 중요하게 등장하는 것이 후각이다. 비록 박사장은 지하실의 존재를 보지 못하는 눈먼 자처럼 보이지만 그의 후각은 지하에 머무는 존재들을 예민하게 지각한다.(p.212)” 그러나 박사장과는 달리 기택의 가족은 아내 연교에게 냄새 운운하는 박사장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나서야 자신들의 냄새를 맡아본다. 하지만 냄새의 정체를 쉽게 파악하지는 못한다. <기생충>에서 구현된 계급의 문제는, 대만 카스텔라라는 경제적 기표로 출발하여 냄새라는 감각으로 계급 내의 연대와 계급 차이의 불안을 오간다. 이는 오늘날 자본주의에서 중요하게 떠오르는 것이 경제적 차이가 아니며, 냄새라는 신체 감각이야말로 실존적으로 예민하게 다가오는 차이임을 보여준다고 설명한다.

 

기택은 어째서 박사장을 찔렀는가? 박사장은 이번 사태와는 무관한 인물처럼 보인다. 박사장은 기절한 막내를 안고 나가려고 기택에게 자동차 열쇠를 던지라고 고함을 지른다. 한참을 머뭇거리며 던진 열쇠는 근세의 몸 아래에 깔리고, 박사장은 냄새를 의식하며 코를 쥐고 열쇠를 집어 올린다. 박사장의 변함없는 이 몸짓은 기택의 본능을 자극한다.(p.246)” 집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못 가진 자와 더 못 가진 자, 축하를 위해 온 손님 등이 뒤엉켜 있는 하나의 세계다. 이 집에는 보이지 않는 구역이 있고, 각각의 구역은 선을 유지하면서 서로를 구별 짓는다. 하지만 아내의 죽음으로 이성을 잃은 근세가 선을 넘어 정원에 들어서는 순간 집의 선들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박사장은 기정의 상처를 지혈하는 기택의 상황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권리만을 말한다. 무엇보다 근세에게서 흘러나오는 선을 넘는 냄새에 대한 불쾌함을 드러내면서 자신의 선을 강조한다. 그 모습이 기택을 자극한다. 지하실에서 나온 근세가 선의 경계를 넘었다면, 기택의 행동은 선을 넘어 들어간다. <기생충>의 내부와 외부, 지상과 지하를 구별 짓는 선들이 무너지며 일어나는 낯선 두려움의 혼란, 집의 질서가 해체되는 순간이라고 한다.

 

골든 글로브 시상식의 수상 인터뷰에서 봉준호 감독은 우리는 단 하나의 언어를 쓴다. 그 언어는 영화다.”라는 인상적인 말을 남겼다. ‘단 하나의 언어인 영화 안에는 수많은 작가의 언어가 있고, 그 언어들 가운데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드물다. 그것은 상업적인 성공이나 명성과는 다른, 고유한 목소리를 내는 일이다. 이 책에서는 봉준호 감독의 독특한 목소리를 분석하여 독자가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한국영화, 특히 봉준호 감독 영화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게 강력하게 일독을 권하고 싶은 책이다.

 

(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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