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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불안한가

[도서] 나는 왜 불안한가

주응식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나는 왜 불안한가

주응식

인간사랑/2021/7.30

sanbaram

 

미술품을 감상하는 방법은 감상하는 사람에 따라 제각각 관점이 다를 수 있다. 그렇기에 같은 그림을 보면서도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 서로 다르다. ‘그림을 감상하는 시각을 철학자의 눈으로 본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갖고 그림을 감상해 보겠다는 것이 <나는 왜 불안한가>의 저자 생각이다. 그는 열 명의 미술가인 뵈클린, 고흐, 뭉크, 카라바조, 키르히너, 클림트, 루소, 쿠르베, 고갱, 사전트 등의 그림을 세 명의 철학자 하이데거, 라캉, 니체의 시각을 통해 살펴보고 있다. 우리의 삶과 미술은 어떻게 연결되고 있으며 그 또한 어떤 철학과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산부인과 전문의 시선으로 풀어가고 있는 것이다. 저자 주응식은 경북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 산부인과 전문의로 울산에서 17년째 의원 운영 중으로 철학과 미술에 관한 공부를 좋아해 10년 정도 지역에서 공부 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고흐는 우울과 망상에 시달리며 왕성한 창작욕으로 이 시기에 약 200여 점의 그림을 그렸다. 예술가에게 우울 혹은 광기는 위대한 작품을 탄생시키는 동력으로 작용한다.(p.42)”고 말하는 저자는 그들이 고통에 시달리던 때에 그린 그림들을 보며 우리는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림을 볼 때는 감탄하면서도 예술가들에게는 좀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한다. 고전적인 예술의 기능은 그리고자 하는 대상이나 사물을 어떻게 잘 모방해서 그리는(재현하는)가에 달려 있었다. 그러나 하이데거는 사물의 표면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의 진리드러나게하는 것이 예술의 본질이라고 한다.

 

에로티시즘, 불안, 사랑, 슬픔 등의 강렬한 감정을 밀도 있게 표현한 그의 그림은 우리를 죽음과 삶의 갈림길로 인도하며, 그것을 통해 망망한 세계에 아무 이유 없이 던져져 불안에 가득 찬 실존의 얼굴을 만날 수 있다.(p.57)” 뭉크의 예술은 극적이고, 강렬하며, 역동적이다. ‘지옥에서의 자화상이라는 제목이 붙은 이 그림의 배경은 주황과 검은색으로 두껍게 그려져 있어 인물을 집어삼키려는 듯 보인다. 옷을 벗은 남자는 우두커니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데 얼굴은 형태도 불분명하고 색은 배경과 비슷하게 어두운 톤으로 그려졌다. 지옥 앞에 선 인간은 그 이후를 짐작조차 할 수 없고,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공포에 사로잡혀 있다. 하이데거는 이런 비본래적 삶을 부정적으로 보고 철저히 걷어내어야 할 그러한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하지만 또한 비본래적 삶에 빠져 불안감없이 사는 이들을 그들 속에 빠져 사는 사람이라고 했다. 본래성이 옳고 비본래성이 틀린 것이 아니다. 그러나 비본래성에 지나치게 매몰된 삶은 불행하다는 것이다. 하이데거는 오히려 불안을 인간이 본래적인 삶으로 진입하는 통로로 보았다. ‘내가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하는 자각이 오는 그 순간은 더 나은 삶을 위한 변곡점이 되는 인생의 중요한 지점이다. 그 지점을 무시하고 억압할 때 우리는 평생 돈 버는 기계로 살다 삶을 마칠 수 있다.

 

라캉은 거울에 비친 나의 이미지를 나로 받아들이는 것과 비슷하게, 이미지적인 것을 나와 동일시하여 나라고 믿는 그러한 것을 상상적인(이미지적인) 이라고 하며 이것이 인간의 자아의 형성에 핵심적이라고 말했다.(p.80)” 예를 들자면 엄마의 얼굴을 보고 엄마를 자신과 동일시하며 하나의 몸이라 믿는다든가, 사랑하는 이의 얼굴을 보며 내가 사랑하는 것과 똑같이 사랑하는 이도 나를 사랑할 것이라고 믿는 것이라고 한다. 상징계는 상상계와는 다른, 세상의 언어적인 질서이다. 상상계가 그림이나 사진에 가깝다면, 상징계는 언어나 글에 해당한다. 언어를 통해 구축된 기존 질서를 내가 동일시함으로써 세상에서 다른 이들과 같이 살아갈 수 있는 주체가 형성된다. 아마 아리스토텔레스의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경구 속에 담긴 사회화과정을 말하는 것이라고 이해하면 거의 비슷할 것 같다. 인간은 다양한 형태로 상징적인 질서를 배우고 따르며 깊게 내면화한다. 라캉의 상상계와 상징계는 인간의 창의와 주체를 구성하는 중요하고도 큰 두 축이다. 인간은 태어나서 먼저 상상적인 것(이미지적인 것, 태어나서 바로는 물론 엄마의 얼굴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과의 동일시를 통해 자아를 형성하고, 더 자라면서 법 혹은 세상의 질서, 규범을 총칭하는 상징적인 것을 내면으로 받아들여 주체를 형성한다. 물론 상징적인 질서가 인간의 기본적인 주체를 대부분 형성하지만, 이미지적인 상상계 역시 나라는 존재의 형성에 지대한 역할을 하게 된다.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도 마찬가지다. 3개의 창과 4개의 무리를 이룬 열두 제자와 각 제자의 손짓과 표정에 관해 이해하려면 신약성경을 모두 읽어보아야 한다. 르네상스의 회화는 이렇게 등장인물도 많고 인물들 각자의 스토리가 따로 있다. 이러한 길고 산만한 이야기들을 한 화면에 넣기 위하여 균형과 비례를 강조해서 그림에 안정감을 부여한다.(p.90)” 바로크양식의 그림은 주제가 되는 이야기 중 가장 강렬한 장면 하나만 골라 전면에 내보이고 나머지는 과감하게 모두 생략해버린다. 바로크의 선구자인 카라바조의 그림의 배경은 어둡고 배경 속의 인물들은 어둡게 생략되어 처리됨으로써 주인공이 처한 극적인 순간을 더 생동감 있게 만들어준다. 이런 회화의 전통은 이후의 바로크 화가들에게 계속 이어진다. 즉 르네상스의 회화가 상징계에 조금 더 가깝다면 바로크 회화는 상상계에 조금 더 가깝다고 설명한다.

 

상징을 도상이라 하고 영어로는 아이콘이라고 한다. 우리가 흔히 쓰는 아이콘이라는 단어의 유래이다. 즉 백합은 순결의 아이콘이고 강아지는 충직의 아이콘이다. 이 그림에는 주인공이 누구인지 말해주는 아이콘이 두 개 있다. 수레바퀴와 칼이다. 특히 수레바퀴가 여성과 함께 있는 그림을 본다면 - 타리나군!’이라고 큰소리로 이야기해도 괜찮다.(p.103)” 카타리나는 성녀이다. 그래서 라파엘로핀투리키오 등 화가들의 그림을 보면 카타리나는 온화하고 순결한 이미지로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카라바조의 카타리나는 성인이라기보다 세상과 계속 전투중인 전사이다. 끝없는 전투 중 잠깐 수레바퀴 옆에서 몸을 숨기고 숨을 고르는 듯하면서, 곧 다음 전투에 가서 긴 칼을 휘두르며 세상의 편견과 억압에 맞서 싸움을 시작할 것 같은 눈빛으로 그녀는 편안히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무의식은 질서나 규범을 잘 따르지 않는다. 라캉에 의하면 무의식은 충족되지 못하는 충동 덩어리이다. 언어적인 법과 규범의 질서가 빈 곳을 대신 채워주고는 있지만, 완전히 충족시키지 못한다. 그러한 결여의 틈으로 욕망이 생성된다.(p.109)” 분명 욕망은 대상이 있지만 그 대상이 충족되더라도 욕망은 사라지지 않고 또 다른 대상을 향한다. 즉 욕망은 대상을 손에 넣으려 하지만 그 어떤 대상도 욕망을 영원히 충족시킬 수 없다.

 

중세의 회화에는 세 가지가 없다고 한다. 화가의 이름이 없고 인물의 표정이 없으며, 원근법이 없다. 이 시기의 그림을 예술로 봐야 할 것인지에 대한 이견이 있을 것이다. 벽화의 내용은 신을 찬양하는 내용이나 성서의 내용을 재현한 것들로서 교회 벽화를 만드는 이들은 아마 작가라기보다는 기능공에 가까운 대접을 받았을 것이다.(p.130)” 중세의 미술을 두 단어로 환원하면 평면성색채로 압축된다. 중세건축의 완결인 성당에 들어가 보라. 온통 금빛으로 뒤덮인 벽화 밑에서 색채의 위용에 압도되거나(비잔틴이나 로마네스크 건축양식) 혹은 스테인글라스을 통해 내려오는 빛에 둘러싸여(고딕건축양식)자신도 모르게 절대자를 향한 경언심이 가슴속 가득 차오름을 경험할 것이다.

 

존재를 한마디로 정의 내린다면 변화와 생성이다. 존재의 본질은 플라톤의 말처럼 이데아의 모사품도 아니고,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특별한 목적을 위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기독교의 교리처럼 신에 대해 창조되지도 않았고, 데카르트의 말처럼 사유하기 때문에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영국 경험주의 철학자인 버클리 주교의 말처럼 눈에 보이지 않으면 사라져 버리는 존재도 아니며 헤겔의 말처럼 절대정신의 일부분이 물화된 것도 아니다. (p.213)”라고 저자는 말한다. 근대까지의 철학은 존재를 고정된 것으로 파악하며 존재의 어떤 변하지 않는 측면을 강조하며 정의했다. 그러나 세상 만물은 한순간도 고정되어 있지 않다. 우리 몸의 세포 속에는 지금도 세상의 탄생과 몰락에 버금가는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으며, 이 책을 읽고 있는 중에도 나의 사고는 책에서 읽은 내용과의 상호작용으로 인해 계속 변하고 있다. 생성은 존재의 한 특징이나 속성이 아닌 본질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은 기본으로 욕망의 존재이다. 욕망은 여러 형태로 나타나서 긍정적인 큰 흐름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부정적인 흐름은 간혹 다른 이를 해치거나 지배하려는 욕망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신은 그런 불완전한 인간을 보충해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다.(p.227)” 그런 이유로 나는 신을 믿는다고 저자는 말한다. 니체는 신을 고발한다. 첫 번째 죽어야 할 신은 교회이고 성직자들이다. 두 번째로 그는 연민의 신도 고발한다. 세 번째로 그는 시기와 질투에 빠진, 유일신만을 인정하는 신을 고발한다. 마지막으로 니체가 고발하는 신은 고대 그리스 시기부터 서구의 지성을 이끌어오던 형이상학의 신이다. 그러나 전지전능한 신을 설정해두고 신의 목소리를 도용하여 인간의 긍정적인 욕망을 가로막거나 다양한 욕망의 흐름을 단일성으로 포획하려는 시도에는 반대한다. 직접적으로 신을 지칭하지 않지만 그러한 포획은 국가, 학교, 군대, 회사, 교회를 기반으로 이루어진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도덕은 인간의 삶의 조건에 따라 조건 지어지고 변화하는 상대적인 것이며, 삶의 필요에 따라 요청되는 것이지 시공을 초월하는 초월적인 도덕을 내세우는 것은 옳지 않다.(p.237)” 이런 도덕에 이라는 이름을 부여하여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불합리하며 오히려 인간의 삶을 왜곡시키거나 퇴락시킬 수 있다고 본다. 그렇게 가치를 기록해둔 서판은 민족마다 다를 수밖에 없고 민족마다 스스로찾아낸 가치의 기록이라는 이야기다. 그래서 선악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고 그것의 가치를 영구적인 기준으로 만들어버리는 기존 전통 철학의 형이상학적 이분법’(예를 들어 천국과 지옥, 선인과 악인, 천사와 악마)에 대한 전면적인 비판을 니체는 감행한다고 설명한다.

 

춤은 환각효과 때문에 가끔 통증을 잊게 하는 마취제의 역할도 하는데, 군에서 고공 점프 직전에 체조를 하거나 원시 부족들이 불 위를 걸을 때 집단으로 춤을 추는 것이 그러한 예이다.(p.247)” 음악과 춤이 예술의 장르에 속하는 것은 무의식에의 접근을 통해 우리에게 일상의 억압과 고통을 해소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같은 이유로 춤은 경박하고 저급한 문화로 인식되기도 한다. 근대의 이성 중심의 사유는 의식이 사라진 상태의 해방감이나 카타르시스의 상태를 혼돈이나 질 낮은 쾌락으로 간주하여 배척하고 무시했다. 이러한 시각은 꽤 오랜 기간 서구의 지성을 지배했으며 물론 지금까지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사전트<엘 할레오>는 회화적인 아름다움은 물론이고 음악이 주는 해방감까지 뛰어난 솜씨로 관람자에게 전달한다. 공감각적 체험은 이런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간은 사랑이라는 비정상적인 상황에 던져졌을 때이다. 아름다운 음악을 들을 때 우리는 의식을 멀리 밀어놓는다.(p.252)” 라캉에 의하면 우리는 자신의 욕망에 온전히 다다를 수 없다. 그런 완전한 인간은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어느 정도 다른 이들보다 가까이 갈 수는 있다. 사람은 태어난 후 타인의 욕망을 따름으로써 우리는 비로소 사회의 일원이 된다. 타인의 욕망을 따르는 것은 꼭 필요한 과정이다. 그렇게 우리는 타인의 욕망을 나의 것으로 내면화시켜 따라하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어느 것이 타인의 욕망인지 어느 것이 고유한 나의 것인지 구별하기가 매우 어렵다. 타인은 지옥이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 꼭 필요한 지옥이다. 단독적인 삶이란 그 지옥에서 아주 조금씩이나마 빠져나오는 삶이다. 심우도를 떠올려보자. 어렵겠지만 소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아는 것부터가 시작이 될 수 있을 것이다.(p.253)”라고 저자는 말한다. 인간은 나의 것이 아닌 욕망을 나의 것으로 오인하고 살아간다는 라캉의 생각처럼 우리는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간다. 이 책에서는 철학적 시각으로 미술을 감상하는 방법을 설명한다. 이제부터라도 나를 중심으로 세계를 볼 수 있는 안목을 기르는데 이 책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사랑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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