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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도서]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도종환 시/송필용 그림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도종환 시/송필용 그림

알에이치코리아/2015.1.16.

sanbaram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는 시인이 그동안 펴낸 아홉 권의 시집 중에서 아끼고 좋아하는 시 예닐곱 편씩을 골라 시선집으로 묶은 것이라고 한다. 전체를 5부로 나누어 싣고 있다. 마음에 드는 시를 고르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치열하지 않으면 시가 아니라고 생각했고, 절절하지 않으면, 가슴을 후벼 파는 것이 아니면, 울컥 치솟는 것이 아니면 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가장 뜨거운 순간이 담겨있지 않으면, 간절한 사랑과 아픈 소망이 아니면 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그러기에 시인의 시에 대한 기대가 클 수밖에 없었다. 또한 시인은 시가 앵두꽃, 자두꽃, 산벚꽃 같기를 바랐으며, 크고 화려한 꽃이 아니라 작고 소박하고 은은한 꽃이기를 바랐다고 한다. 사월에 돋아나는 새순의 연둣빛이기를 소망하듯 산골짝에 피어있거나 변두리에 피어 있어도 그것 때문에 주눅 들지 않고 그저 아름답게 피었다가 가는 꽃이기를 바란다고 한다. 이 시집이 목마른 이에게 건네는 맑은 물 한 잔이기를 바라고, 상처받은 이들에게 격려의 악수가 되기를 바란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이에게 다가가는 한 장의 엽서이기를 바라며, 머리로 이해하기 보다는 가슴으로 다가가는 시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과연 시인의 바람대로 여러분의 마음에 와 닿는지 몇 편의 시를 감상할 수 있도록 옮겨 본다.

 

 

      단풍 드는 날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제 삶의 이유였던 것

제 몸의 전부였던 것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

 

방하착

제가 키워온,

그러나 이제는 무거워진

제 몸 하나씩 내려놓으면서

 

가장 황홀한 빛깔로

우리도 물이 드는 날 p.14

 

 

      꽃잎

 

처음부터 끝까지 외로운 게

인생이라고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지금 내가

외로워서가 아니다

 

피었다 저 혼자 지는

오늘 흙에 누운

저 꽃잎 때문도 아니다

 

형언할 수 없는

형언할 수 없는

 

시작도 알지 못할 곳에서 와서

끝 모르게 흘러가는

존재의 저 외로운 나부낌

 

아득하고

아득하여 p.21

 

 

      처음 가는 길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은 없다

다만 내가 처음 가는 길일 뿐이다

누구도 앞서 가지 않은 길은 없다

오랫동안 가지 않은 길이 있을 뿐이다

두려워 마라 두려워하였지만

많은 이들이 결국 이 길을 갔다

죽음에 이르는 길조차도

자기 전 생애를 끌고 넘은 이들이 있다

순탄하기만 한 길은 길 아니다

낯설고 절박한 세계에 닿아서 길인 것이다 p.26

 

 

      산경

 

하루 종일 아무 말도 안 했다

산도 똑같이 아무 말을 안 했다

말없이 산 옆에 있는 게 싫지 않았다

산도 내가 있는 걸 싫어하지 않았다

하늘은 하루 종일 티 없이 맑았다

가끔 구름이 떠오고 새 날아왔지만

잠시 머물다 곧 지나가버렸다

내개 온 꽃잎과 바람도 잠시 머물다 갔다

골짜기 물에 호미를 씻는 동안

손에 묻은 흙은 저절로 씻겨 내려갔다

앞산 뒷산에 큰 도움은 못되었지만

하늘 아래 허물없이 하루가 갔다 p.45

 

 

      초저녁

 

혼자서 바라보는 하늘에 초저녁별이 하나

혼자서 걸어가는 길이 멀어 끝없는 바람

살아서 꼭 한 번은 만날 것 같은

해거름에 떠오르는 먼 옛날 울며 헤진 그리운 사람 하나 p.73

 

 

이 세상에는

 

이 세상에는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외로움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아무와도 나누어 가질 수 없는 아픔이 있습니다

마음 하나 버리지 못해

이 세상에는 지워지지 않는 그리움이 있습니다

당신은 그 외로움을 알고 있습니다

당신은 그 아픔 그 그리움을 알고 있습니다

다만 먼 곳에 계신 당신을 생각하며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기다림으로 살아가는 세월이 있습니다 p.90

 

 

      흔들리며 피는 꽃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며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p.112

 

 

      먼 길

 

하늘엔 별도 없고

대추나무 잎마다 달빛만 흩어지는데

끝도 없이 먼 어둠을 건너는 구름

밤을 새워 풀 그늘에 벌레는 울고

이 땅의 길들도 모두 저물어

저마다 쓰러져 깊게 누운 날

걸어온 길도 걸아 갈 길도

어쩌면 어쩌면 이리 아득해

몇 번이고 홀로 불을 켜고 앉아서

꺼지고 넘어지는 불씨를 안고

고요히 불러보는 그리운 이름

함께 먼 길 가자던 그리운 사람 p.115

 

 

      나무

 

퍼붓는 빗발을 끝까지 다 맞고 난 나무들은 아름답다

밤새 제 눈물로 제 몸을 씻고

해 뜨는 쪽으로 조용히 고개를 드는 사람처럼

슬픔 속에 고요하다

바람과 눈보라를 안고 서있는 나무들은 아름답다

고통으로 제 살에 다가오는 것들을

아름답게 바꿀 줄 아는 지혜를 지녔다

잔가지만큼 넓게 넓게 뿌리를 내린 나무들은 아름답다

허욕과 먼지 많은 세상을

간결히 지키고 서있어 더욱 빛난다

무성한 이파리와 어여뿐 꽃을 가졌던

겨울나무는 아름답다

모든 것을 버리고 나도

결코 가난하지 않은 지혜를 그는 안다

그런 나무들이 모여 이룬 숲은 아름답다

오랜 세월 인간들이

그런 세상을 만들지 못해 아름답다 p.121

 

 

      산맥과 파도

 

능선이 험할수록 산은 아름답다

능선이 눈발 뿌려 얼어붙을수록

산은 더욱 꼿꼿하게 아름답다

눈보라 치는 날들을 아름다움으로 바꾸어놓은

외설악의 저 산맥 보이는가

모질고 험한 삶을 살아온 당신은

그 삶의 능선을 얼마나 아름답게

바꾸어놓았는가

 

험한 바위 만날수록 파도는 아름답다

세찬 바람 등 몰아칠수록

파도는 더욱 힘차게 소멸한다

보이는가 파도치는 날들을 안개꽃의

터져오르는 박수로 바꾸어놓은 겨울 동해바다

암초와 격랑이 많았던 당신의 삶을

당신은 얼마나 아름다운 파도로

바꾸어놓았는가 p.122

 

 

      강

 

가장 낮은 곳을 택하여 우리는 간다

가장 더러운 것들을 싸안고 우리는 간다

너희는 우리를 천하다 하겠느냐

너희는 우리를 더럽다 하겠느냐

우리가 지나간 어느 기슭에 몰래 손을 씻는 사람들아

언제나 당신들보다 낮은 곳을 택하여 우리는 흐른다 p.133

 

 

도종환 시인은 충북 청주에서 태어났다. 그동안 <고두미 마을에서>, <접시꽃 당신>, <당신은 누구십니까>, <부드러운 직선>, <슬픔의 뿌리>, <흔들리며 피는 꽃>, <해인으로 가는 길>,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등의 시집과 <사람은 누구나 꽃이다>,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 <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 <너 없이 어찌 내게 향기 있으랴> 등의 산문집을 냈다. 신동엽창작상, 정지용문학상, 윤동주문학부문대상, 백석문학상, 공초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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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타블로거 문학소녀

    도종환 시인에 대해 많은 시들을
    올려주시니
    잘 감상하며 저녁 시간을 보냅니다.^^
    편안한 저녁시간 보내세요~산바람님^~^

    2022.04.22 21:35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산바람

      감사합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2022.04.22 22:07

PRID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