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블로그 전체검색
공간이 만든 공간

[도서] 공간이 만든 공간

유현준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공간이 만든 공간

유헌준

을유문화사/2020.5.20.

sanbaram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고 13,000년 전에 해수면 상승이 멈추면서 인류는 1차 산업혁명으로 불리는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기후에 따라서 비가 적은 유럽에서는 밀이, 비가 많이 오는 동아시아에서는 벼가 재배되었다. 농작물은 사람들의 문화까지 바꿔 놓았다. 밀재배를 위주로 하는 서양에서는 개인주의가 발달하고, 벼를 재배하는 동아시아에서는 관계를 중시하는 문화가 발달하게 되었다. 건축 역시 서양에는 벽을 중심으로 하여 실내장식에 치중하는 건축이 발달하게 되었고, 많은 비로 인해 지반이 약한 동아시아에서는 자연과 교감할 수 있는 관계를 이룰 수 있도록 기둥을 중심으로 하는 건축이 발전했다. 그러던 중 삼각돛의 발명으로 항해가 자유로워지자 지리발견의 시대가 되었다. 식민지 개척활동과 동서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두 가지 건축양식의 절충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교통수단이 발달하면서 지리적 제약이 해소되었고 건축양식 또한 국제적 건축양식이 등장했다. 동서양 공통의 철근콘크리트와 유리를 활용하는 현대식 고층건물이 발달하게 되었다는 건축의 발달 역사를 <공간이 만든 공간>에서는 9개의 장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저자 유헌준은 건축으로 세상을 조망하고 사유하는 인문 건축가로 홍익대학교 건축대학 교수 및 유헌준건축사무소 대표건축사. 저서로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어디서 살 것인가> 등이 있다.

 

벼농사 지역의 사람들은 집단의식이 강하고 밀농사 지역은 개인주의가 강하게 나타난다. 이러한 문화적 특징의 차이는 알파벳과 한자 같은 문자나, 체스와 바둑 같은 게임 문화에서도 나타난다. 그리고 강수량이라는 기후적 차이는 건축 디자인의 차이도 만들었다.(p.10)” 강수량은 땅의 단단한 정도를 결정한다. 비가 적게 오는 서양의 땅은 단단하다. 그래서 서양인들은 돌이나 벽돌 같은 무겁지만 단단한 건축 재료를 이용해서 벽으로 지붕을 받치는 벽 중심의 건축을 했다. 반면 비가 많이 오는 지역인 동양은 장마철에 땅이 물러지기 때문에 무거운 재로로 만든 벽은 쓰러진다. 따라서 가벼운 건축 재료인 나무를 사용하였고, 자연스럽게 나무 기둥으로 지붕을 받치는 기둥 중심의 건축을 하게 되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서양 문화권의 공간은 벽으로 구획된 기하학적인 모양의 빈 공간을 가지고 있는 반면, 동아시아 문화권의 공간은 기둥으로 만들어져서 빈 공간의 내부와 외부의 경계가 모호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각각의 문화는 독특한 빈 공간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인류가 식용으로 가장 많이 사용하는 곡물은 벼와 밀인데, 둘 중에 어느 품종을 재배할 것이냐는 강수량이 결정한다. 벼는 밀보다 재배하는 데 더 많은 물이 필요한 품종이다. 그래서 일 년에 비가 1천 밀리미터 이상 내리면 벼를, 1천 밀리미터 이하 내리면 밀을 재배한다.(p.61)” 벽을 중심으로 건축하는 서양은 안에서 밖을 볼 수 없으니 건축 디자인을 할 때에도 밖에서 건물을 바라보는 시점에 더 중점을 두고 디자인하게 된다. 이것이 서양 건축의 입면 디자인이 화려하게 된 이유다. 창문의 비율도 중요하고, 각종 조각으로 건축의 입면을 꾸몄다. 실내에 들어가서도 바라볼 경치가 없기 때문에 그림과 조각으로 실내를 과도하게 꾸몄다. 그에 반해 전통적인 동양의 건축은 입면을 디자인할 때 서양만큼 신경 쓰지 않았다. 동양의 건축물을 보면 건물의 입면을 차지하는 대부분의 요소가 지붕이다. 동양은 서양에 비해서 비가 많이 내리는 지역이기 때문에 방수를 하는 지붕이 가장 중요한 건축 요소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벼농사를 지으면서 집단행동이 필요해져 사람 간의 관계에 무게를 두는 가치관이 형성됐다면, 건축을 통해서는 사람과 건축과 주변 자연환경과의 관계(풍수지리)에 무게를 두는 디자인관이 발전하게 된 것이다.(p.77)” 강수량의 차이는 농업 품종의 차이를 만들고, 품종의 차이는 농사 방식의 차이를 만들고, 농사방식의 차이는 가치관의 차이를 만들었다. 마찬가지로 건축에서 동서양의 강수량 차이는 건축 디자인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발전시켰고, 건축 공간은 행동 방식에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행동방식은 궁극적으로 사람의 생각에도 영향을 미쳤다. 서양 밀농사의 혼자 농사하는 방식에 따라 개인주의 성향이 커졌고, 외부와 단절하는 창문 없는 벽 중심의 건축으로 바깥과 교류가 적은 성격의 공간으로 발전했다. 반면 벼농사는 집단 농사 방식으로 사람 간의 관계가 중요한 가치였으며, 많은 강수량 때문에 사용하게 된 재료인 목재를 이용한 기둥 중심의 동양건축 양식은 외부 자연 환경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생활양식으로 발전되었다고 한다.

 

플라톤은 이데아 같은 이상향을 설정함으로써 신이 존재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았고 아르스토텔레스는 자연과 세계 곳곳에 신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은 기독교를 국교로 삼은 로마 시대에도 살아남을 수 있었고, 이후 서양 사상의 근간이 되었다.(p.88)” “동양에서는 서양의 절대적이고 이분법적인 사고가 아닌 상대적 관계를 기본으로 한 가지 체계가 만들어졌다.(p.100)” 서양의 종교 건축이나 왕궁 등을 보면 좌우 대칭성을 가지고서 한 방향의 축을 따라 배치되는 경향이 있다. ‘판테온’, ‘하기아소피아 성당’, ‘성베드로 대성당’, ‘노트르담 대성당’, ‘베르사유 궁전모두 좌우대칭에 가운데 축이 있다. 반면 동양에서는 많은 경우 주변 환경에 맞추어서 좌우 대칭성을 가지고 자연발생적인 형태로 증식하듯 평면이 구성된다. ‘경복궁과 일본의 각종 성들이 그렇다. 이렇듯 일방향성과 다방향성은 두 건축 문화가 각기 가지고 있는 다른 특징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이는 서양 문화는 세상을 절대자가 만든 수학적 규칙의 조합으로 보고, 동양은 세상을 관계의 집합으로 보는 시각 차이에서 나온 것이라 여겨진다고 저자는 말한다.

 

서양에서는 기하학적으로 구성된 공간 안에 조각, 스테인글라스, 그림 등의 상징적 이미지를 추가함으로써 종교적인 공간을 만드는 반면, 동양에서는 비우는 행위를 통해서 종교적 의미의 공간은 만든다.(p.142)” 우리나라 사찰에서 불상이나 불화 같은 조각이나 그림으로 공간을 장식하기도 한다. 하지만 불교의 불상은 그리스 조각상이 알렉산더 대왕의 인도 정복과 함께 전파되면서 전이된 양식이다. 엄밀하게 말해서 태생적으로 불상이라는 양식은 그리스 조각상의 후예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절에 가면 마당에서 볼 수 있는 탑도 불교가 생기기 전부터 있었던, 화장을 한 후 만드는 인도의 전통 무덤이 전파된 것이다. ‘유골을 봉안해 흑이나 돌로 높이 쌓아 올린 분묘라는 뜻을 가진 고대 인도의 범어인 스투파’, ‘투파라는 말을 음역해서 탑파가 되었고, 탑파가 줄어서 탑이 된 것이다.

 

“15세기에 삼각돛을 단 범선의 등장으로 공간이 더 압축되면서 유라시아 대륙의 양 극단에 위치했던 서양과 동양의 문화가 유전적으로 섞이기 시작했다.(p.209)” 16세기 중국산 도자기가 유럽에 대량으로 수입되었고, 17세기에는 동양 철학 책들이 유럽에서 번역되어 출판되었고, 18세기에는 조경 디자인이 바뀌었고, 19세기에는 이 변화가 미술로 전파되었고, 20세기에 들어서는 건축에서 문화적 이종 교배의 증거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인간 사고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순서를 작고하신 한태동 교수(연세대학교)의 논지로 풀면, 가장 먼저 미술에서 변화가 생겨나고, 음악, 철학, 건축의 순서로 일어난다고 설명한다.

 

천 년간 서양은 돌이나 벽돌을, 동양은 목조를 주재료로 사용하였고, 상하 이동은 두 문화 모두 계단만 사용하였다. 그러다가 20세기 들어서 나타난 강철, 콘크리트, 엘리베이터는 인류의 수천 년 건물 역사에 처음으로 나타나는 재료와 기술에 있어서 혁명 같은 변화였다. (p.211)” 근대 건축의 5원칙과 동양 건축의 다른 점이라면 나무 기둥에서 철근콘크리트 기둥으로 바뀐 것이고, 창호지 창문 대신에 유리창을 넣은 정도다. 또 하나의 차이점을 굳이 찾는다면 동양의 건축물들은 창문을 기둥과 기둥 사이에 두었다면, 르 코르뷔지에의 창문은 기둥보다 조금 앞으로 나와서 조금 더 자유로워졌다는 정도일 것이라고 말한다. 르 코르뷔지에 근대 건축의 5원칙과 동양 건축의 공통점은 다음과 같다.

1. 필로티 : 건물이 위로 들려 있고, 그 아랫부분을 주차장으로 쓰는 경우와 원두막 등

2. 옥상 정원 : 평평한 옥상을 정원처럼 사용하는 것.

3. 자유로운 평면 : 평면도의 벽들은 자유롭게 각층마다 다른 곡선으로 만들 수 있다.

4. 자유로운 입면 : 건물의 입면 벽체를 마음대로 뚫거나 휘게 디자인할 수 있다.

5. 리본 수평창 : 창문을 가로를 길게 만들 수 있다. (p.240)

 

콜럼버스의 업적은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보다는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을 두 달 만에 연결시켰다는 공간의 압축에 있다. 이 사건은 식민지 시대를 열었고, 문화적 융합에 가속을 가져왔다.(p.367)” 지리적인 발견이 더 이상 불가능한 시대가 되자 인간은 새로운 대륙을 만들었다. 새로운 대륙은 현실 속 공간이 아닌 컴퓨터 네트워크 속 가상의 공간이다. 20세기 후반에 발명된 인터넷은 인터넷 가상공간이라는 인류 역사에 없던 공간을 창조해 냈다. 앞으로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 시스템을 만드는 자가 전 세계의 자본과 창의적인 두뇌를 흡수하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 책을 통해 많은 독자가 건축과 인류문화의 발달과정을 이해하고 좀 더 복잡하고 빠르게 변하는 현대의 공간 활동에 활용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취소

댓글쓰기

저장
덧글 작성
0/1,000

댓글 수 0

댓글쓰기
첫 댓글을 작성해주세요.

PRID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