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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라보예 지젝

[도서] 슬라보예 지젝

김현강 저/안스가 로렌츠 그림/신성엽 역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슬라보예 지젝

입문자를 위한 철학

김현강

인간사랑/2022.10.31.

sanbaram

 

지젝은 정신분석학의 범위를 개인에서 사회와 문화로 확장한다. 그러므로 지젝에게 철학은 사회에 급진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실천 형식인 것이다.(p.11)”라고 저자는 말한다. 지젝에 의하면 사회는 근본적 적대관계, 즉 근원적 충돌을 기반으로 한다는 것이다. 이 적대관계는 계급투쟁, 성 차이, 인종차별주의로 이루어진다. 그는 이러한 사상을 풀어내기 위해 철학과 라캉의 정선분석학 뿐만 아니라 영화, 음악, 문학, 대중문화, 정치, 종교, 오페라와 양자물리학 등을 다루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주제로 책을 쓰기에 1년에 한 권 이상을 출판하며 그렇기 때문에 폭넓은 독자층을 확보하고 대중에게 영향을 행사한다. <슬라보예 지젝>의 저자 김현강은 2004년 독일의 본 대학교 독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뒤셀도르프 대학의 페터 베렌스 예술대학 디자인 철학 및 미학교수이다. 미학, 모더니즘 철학, 현대철학, 매체철학 및 디자인 이론에 대한 다수의 저작물이 있다.

 

<슬라보예 지젝>입문자를 위한 철학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철학에 대해 언급한다. 물론 지젝이 다루는 주제가 다양하고 그의 성향이 독특하다보니 그의 철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주변의 철학이나 철학자들에 대해 언급 하게 된다. 그에게 특별히 중요한 영향을 미쳤거나 그의 철학을 이해하기 위해 알아야할 사람이나 철학 또는 사상에 대해서는 보론이라는 란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은 철학개론이 아니기 때문에 지젝이 언급하거나 주장한 여러 가지 철학적 사유나 생각들을 간단간단하게 정리하여 마치 짧은 에서이집처럼 정리되어 있다. 그렇다보니 잡다한 사유를 받아들여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기는 하지만 좀 더 지젝의 생각을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된다. 그럼에도 철학에 대한 지식이 많지 않은 초보자가 읽기에는 쉽지 않은 책이라 생각되었다. 거기에다 글씨가 너무 작아 읽는데 힘들었다. 다행인 것은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다양한 삽화를 함께 볼 수 있어 나름대로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실천으로서의 철학을 강조한 지젝의 몇 가지 사상이나 철학 또는 생각들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라캉의 정신분석학은 상상계, 상징계, 실재계라는 삼원론적 모델을 기반으로 한다. 이 모델은 인간 주체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존재의 세 가지 질서를 설명한다.(p.22)”고 한다. 상상계가 이미지의 형태로, 상징계가 언어의 형태로 나타나는데 반해, 실재계는 상상적이지도 않고 상징적이지도 않은 것, 상징화에서 벗어나며 그렇기 때문에 언어질서에서 배제된 것과 관계가 있다. 예를 들어 공포와 트라우마가 실재계에 해당된다. 이러한 실재계 범주는 지젝 철학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설명한다. 지젝은 욕망을 잃어버린 대상에 대한 동경으로 보는 반면, 충동은 손실 자체를 즉시 보상받으려는 직접적 갈망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라캉에 따르면 충동은 특정 대상을 목표로 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대상의 주변을 맴돈다.(p.27)” 충동의 목표는 직접적 욕구충족이 아니라, 영원한 순환인 것이다. 이러한 충동의 순환은 쾌락원리를 넘어서고자 하는 주체에게 주어진 유일한 가능성이라는 것이다.

 

미셀 푸코의 권력이론은 저항이 권력에 내재적이라고 본다, , 권력이 있는 곳에 권력에 대한 저항 역시 생겨난다는 것이다.(p.47)” 그러나 지젝은 권력에 대한 저항이 권력구조에 내재적이라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모든 저항이 권력에 의해 미리 규정된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다고 본다. 지젝은 푸코의 권력이론에서 중대한 문제를 인식하는데, 그것은 바로 저항의 가능성 그 자체가 권력관계의 일부라는 점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윤리에 대해서도 지젝에게 십계명의 선포는 가장 순수한 형태의 윤리적 폭력이다.(p.63)”라고 한다. 십계명은 모두에게 유용한 절대적 규칙으로 확정한 유대 기독교 교리와는 달리, 뉴에이지 윤리는 개체의 자아실현을 목표로 한다. 유대 기독교 윤리는 구원이 항상 외부로부터, 즉 신의 자비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따라서 구원은 인간 주체의 세력이 미치는 범위 외부에 위치한다. 이와 달리 뉴에이지 윤리는 자기초월에의 가능성이 모든 개체들에게 처음부터 주어져 있다고 가정한다. 모든 개체들은 이러한 가능성을 실현할 과제를 지닌다는 것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지젝에 따르면 글로벌 자본주의의 유토피아는 두 번 죽었다. 자본주의의 첫 죽음은 2001911일 뉴욕 세계무역센터 공격 시에, 그리고 두 번째 죽음은 2008년 금융위기 때 일어났다.(p.71)” 그로써 오늘날 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로서 자유민주주의의 환상은 죽었다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는 빈부 격차를 더 크게 만들었고, 테러의 확산과 금융위기에 대한 주요 원인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유민주주의를 대체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지젝은 그것은 좌파 사회주의도 우파 포퓰리즘도 아니고 공산주의라고 답한다. 지젝은 민주주의가 자본주의와 분리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민주주의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한다. 그러므로 민주주의에 대한 유일한 대안은 공산주의, 즉 계급 없는 사회로의 이행을 뜻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라는 것이다.(p.75)”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는 마르크스주의의 개념이며 사회주의 혁명 후 노동자 계급의 정치적 지배를 뜻한다. 이는 다수의 이익을 위한 다수의 지배에 해당한다. 마르크스는 계급투쟁이 필연적으로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로 나아간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는 단지 모든 계급의 지양 및 계급 없는 사회로의 이행을 뜻할 뿐이다.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는 단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간의 이행형식에 불과하기 때문에 반드시 완전한 공산주의로 이행되어야 한다. 그것은 항간에서 행해지는 독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반대가가 아니라 오히려 민주주의의 근본적인 기능방식으로 이해될 수 있다고 한다.

 

공산당 선언(1848)에서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지금까지 존재한 모든 사회들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p.76)” 자본주의 사회에서 계급투쟁은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 사이에 계급투쟁이 발생한다. 노동자계급의 혁명은 모든 계급 차이를 폐지함으로써 계급지배를 종식시켜야 한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의하면 계급투쟁은 역사의 동력, 즉 역사적 발전의 추동력이다. 마르크스는 혁명은 세계사의 기관차라고 말한다. 그러나 사실은 이와 완전히 다를 수 있다. 아마도 혁명은 이 열차를 타고 여행하는 인류가 거머쥐는 비상브레이크 손잡이일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렇다면 현대에는 무엇을 해야 하나? 현대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책이나 이론에 적힌 완성된 도식대로 투쟁을 수행하지 않는다. 현대의 노동자 투쟁은 역사의 한 조각, 사회발전의 한 조각이며, 우리는 역사의 한 가운데, 발전의 한 가운데, 투쟁의 한 가운데에서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를 배운다고 말한다.

 

지젝의 변증법적 유물론은 현실이 불완전하다는 인식에 기반한다. 현실은 흔들림 없이 견고한 것이 아니라 틈새와 해석 여지를 포함한다.(p.81)” 지젝에 의하면 현실의 불완전성이 주체의 자유를 가능하게 한다. 상징적으로 구성된 현실에서 벗어나는 무언가가 항상 존재한다. 이 잉여의 이름이 자유의 행위자로 기능하는 주체이다. 지젝은 의식 밖의 영역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 영역은 상징적이거나 이데올로기적으로 구성되지 않는 자유의 영역을 나타낸다. 그래서 여기에서는 예견치 않은 무엇인가가 일어날 수 있다. 이 영역의 이름이 실재이다. 실재는 지젝에게 자유의 기반이다. 실재가 존재하므로, 현실은 불완전하며 변형에 대해 열려 있다고 한다.

 

지젝의 철학에서는 마르크스주의와 정신분석학이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왜 그는 이 둘을 연관시키는가? 이 둘은 물질세계를 변화시키려는 공동의 목표를 지니기 때문이다.(p.82)” 마르크스주의는 사회를 변화시키려 하고 정신분석학은 주체를 변화시키고자 한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에는 개인에 대한 이론이, 정신분석학에는 사회분석이 결여되어 있다. 그래서 지젝은 마르크스주의를 정신분석학의 주체모델을 통해 보충하는 동시에 정신분석학을 사회이론으로 확정시킨다. 그러므로 그의 철학은 사회에 대한 정신분석인 동시에 혁명적 주체에 관한 이론이다. 지젝의 관점에서 볼 때 유토피아적 미래상을 설계하기란 결코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믿는 것처럼 역사상 모든 것을 포괄하는 계획도, 예측 가능한 역사 발전단계도 없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지젝은 마르크스주의와 거리를 두고, 대타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 라캉을 따른다. 미래는 항상 부정적이고 사유 불가능한 것으로 머문다. 결국 지젝의 철학은 투쟁하는 주체들이 있는 한 진리는 발생한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인간사랑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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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타블로거 추억책방

    철학 분야의 문외한이라 오늘 산바람님 리뷰로 처음 접하게 된 철학자네요. 다방면에 관심이 많은 대중 철학자인가 봅니다. 글씨체가 작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것을 책 속에 담으려고 한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독서에는 불편했겠지만요.
    제게는 조금 어렵게 느껴지는 책입니다. 그래도 산바람님 리뷰로 간접 경험합니다.
    오늘도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산바람님.

    2022.11.20 06:23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산바람

      철학책은 대부분 난해한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작은 판본에다 짤막한 글들로 이루어져 있음에도 쉽지 않았습니다. 추억책방님, 주말 편안한 시간 되세요.

      2022.11.20 06:58

PRID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