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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통감 4

[도서] 자치통감 4

사마광 저/신동준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자치통감 4

사마광/신동준

인간사랑/2022.10.20.

sanbaram

 

<자치통감 4>후한시대 130여 년간 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왕망시대가 끝나고 광무제가 즉위하면서 후한시대가 되었다. 여러 군벌의 저항을 누르고 국정의 안정을 위해 힘쓰며 30여 년간 집권하는 동안 피폐해진 국력을 안정시키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광무제에 이어 30세에 등극한 한명제에 들어서 나라를 안정 시켰지만 계속되는 천재지변으로 안정을 계속 유지하기는 힘들었다. 이후에 외척의 내정간섭과 외적의 침입, 그리고 이어지는 어린 황제의 등극을 틈타 권신들과 황후나 외척, 유모, 환관에 이르기까지 사리사욕에 사로잡힌 인간들에게 국정이 혼란스럽게 된다. 결국 지방의 세력들의 반란과 외족의 침입 등이 겹치면서 다시 혼란의 시대를 맞게 되고 외척 양기가 권력을 잡고 20여 년간 국정을 농단하니 결국 국력이 쇠하고 종말을 향해가는 역사가 이루어지게 되는 내용이다. 저자 사마광은 송나라 진종 때 사람으로 20세 때 진사에 급제하였으나 왕안석의 신법이 채택되자 관직을 사퇴한 뒤 <자치통감>저술에 몰두 했다. 그의 나이 48세 때인 1066년에 시작해 66세 때인 1084년에 마무리 했다. 역저자 신동준은 고전연구가이자 평론가로 <삼국지 통치학>, <전국책>, <중국 문명의 기원>, <공자의 군자학>, <맹자론> <장자>, <한비자> 100여권에 달하는 책을 출간했다.

 

왕망시대의 마지막 군벌이라 할 수 있는 공손술을 토벌하면서 광무제는 비로소 후한시대를 열게 된다. 그러면서 고구려왕 대무신왕 고무휼이 사자를 보내 조공하자 변방을 안정시키기 위해 왕망 때 고구려후로 폄하된 고구려왕의 왕호를 광무제가 회복시켜 주었다. 그러나 공신들의 세력이 커지자 국정의 안정을 위해 점차 공신들을 국정에서 배제시킨다. 한편 변방의 여러 국가나 종족들에게 화해의 손짓을 보냈지만 흉노의 세력은 수시로 변방을 침입하고 노략질 하는 가장 큰 골칫거리였다. 심심하면 국경을 침범하였기에 흉노 선우의 변동사항 등을 꼼꼼하게 기록 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여러 지방 세력의 반란 및 진압, 선비족, 강족, 맥인 요동 침략, 만족의 침략 등도 누누히 기록되어 있다. 아울러 천재지변이라 할 수 있는 일식, 월식, 패성 출현 등의 기록을 여러 군데서 볼 수 있다, 그리고 지진, 가뭄, 홍수, 대수, 폭우, 황충의 재해 등이 빈번하여 나라의 안정이 쉽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광무제 붕어하고 황태자 유장이 30세의 나이로 보위에 오르니 한명제다. 선왕의 유지를 받들어 나라의 안정을 위해 힘썼으며 비교적 태평한 시대를 지낼 수 있었으나 18년 재위 하고 48세의 나이로 붕어했다. 그리고 한 장제가 즉위하면서 반초가 서역을 열어 국력을 키워 국정을 안정시켰으나 재위 10여년 만에 31세의 젊은 나이에 죽게 된다. 이틈을 타 두씨의 외척 세력이 권력을 쥐게 되며 국력을 약화시키기 시작했다. 두씨 외척은 10세 된 태자 유제를 한화제로 등극시켰다. 이로써 외척의 발호는 점점 심해질 수밖에 없었다. 화제가 18세가 되자 귀인 음씨를 황후로 삼았다. 그러나 음황후는 투기가 많아 황제의 총애가 점차 쇠퇴했다. 무고를 행하여 결국 폐위를 했다. 서기 105년 한화제 17년 봄에 고구려의 태조왕 고궁에 요동의 변세로 들어와 6개현을 구략했다. 그해 1222일 황제가 정덕전전에서 27새의 나이로 붕어했다. 이때 등황후가 태어난지 100여일 밖에 안 된 유륭을 보위에 즉위시켰다. 그가 한 상제이나 2세의 나이로 죽었다. 그리자 유소를 한안제로 등극시켰다.

 

한안제가, AD10916세의 황제 유소가 성년식을 한 뒤 천하에 사면령을 내렸다. 그러나 부여왕이 낙랑을 침구했다. 고구려 태조왕인 고궁이 예맥과 함께 현도를 침구했다. 또한 해적인 장백로가 다시 동래를 침구했으나 청주자사 법웅이 격파했다는 기록이 있다. 어린 황제를 빌미로 외척과 권신이 국정을 농단하고 사리사욕을 채우는 사이 국정이 문란한 틈을 타 곳곳에서 반란과 도적이 창궐했으며, 천재지변 또한 적지 않았다. 이 틈을 타 유모까지 정사에 개입하는 일이 벌어지면서 한안제 5년 여름 6월 고구려와 예맥이 현도를 침구했다. 선비가 변경일대를 침구했다. 군국 14곳에서 지진이 났다. 여름 4월 패국과 발해에 대풍과 우박이 있었다. 가뭄과 한재가 있었다. 북흉노가 침구했다. 12월에 개기일식이 있었다. 군국 8곳에 지진이 났다. 고구려가 다시 선비족과 함께 요동을 침구했다. 황제의 유모 황성은 태후가 오랫동안 정사를 돌려주지 않는 것을 보고는 황제를 폐하고 다른 사람을 추대할까 우려했다. 고구려왕 고궁이 사망하고 동생 고수성이 고구려의 차대왕으로 즉위했다. 사자를 보내 조문했다. 고구려 차대왕 고수성이 한인 가운데 살아 있는 자인 생구를 돌려보내고, 현도에 오아서 항복했다. 이후 예맥이 따라서 항복했다. 군국 27곳에 지진이 났다. 선비족이 현도를 침구했다.

 

한안제 18, 38일 황제가 붕어했다. 나이 32, 염태후는 국정을 전횡하고자 어린아이를 옹립하고자 했다. 328일 북향후 유의가 소제로 즉위했다. 다음해에 황태후 염씨가 붕어했다. 그리고 그 다음해 2월 요동에 사는 선비족이 요동과 현도를 노략했다. 한순제는 영화로 개원한 뒤 천하에 사면령을 내렸다. 양주에서 9월 이래 180여 차례 지진이 났다. 한순제 86일 황제가 향년 30세로 붕어했다. 태자가 즉위할 때 나이는 2세였다. 황후를 태후로 높였다. 한충제 원년 AD145년에 즉위 5달 만에 3세의 어린 황제인 충제가 붕어했다. 선비족이 대군을 침구했다. 각 지역에서 도적이 일어나 칭제했다.

 

한질제 원년인 AD146년 황제가 먹는 떡에 독을 넣어 어린 황제를 독살했다. 그리고 한환제가 등극했다. AD 148년 환제가 17세가 되어 관례를 뜻하는 원복을 입었다. 2년 후 양태후가 붕어했다. 양기가 병정을 한 지 거의 20년이 다 되자 안팎으로 위세를 크게 떨치게 됐다. 천자는 팔짱을 끼는 공수의 모습만 보인 채 정사에 직접 참여할 수가 없었다. “AD151년 군신들이 조회한 가운데 대장군 양기가 칼을 찬 채 궁궐로 들어왔다.((p.757)” 그러자 신하들은 모두 양기를 처형해야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주청했다. 황제가 이를 듣고 양기를 주살하니 20여 년간 누리던 권세의 말로가 비참했다. 그런 후 천하에 사면령을 내리고 연호를 바꾸었다. 이후 옛날에 알던 사람이 고구와 사사롭게 은혜를 베푼 사람인 은사 대부분이 봉작을 받았다. 황후의 부친인 등향을 거기장군으로 추증하고, 안향후에 추봉했다. 다시 황후의 모친인 선을 곤양군으로 삼고, 오라비의 아들인 등강과 등병을 모두 열후에 봉했다. 나라의 곳곳에서는 산이 무너지고 반란이 일어났으며, 각지역 도적이 창궐하면서 환관이 권력을 흔들기도 하였다. 천재지변인 화재, 역병 발생, 우박, 산이 갈라짐, 가뭄으로 인한 기우제를 지내는 등 여러 가지를 행했지만 국가의 운명은 점차 위태롭게 변해갔다.

 

나라를 세우는 창업을 하는 것은 말할 수 없이 힘든 일이지만 수성 또한 그에 못지않게 힘든 일이다. 광무제가 왕망시대를 끝내며 후한 시대를 열고 국정의 안정을 위해 동분서주한 결과 30여년 만에 나라가 비교적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 왕위에 오른 명제가 국정을 안정시키는데 성공하는 듯 했다. 그러나 그 이후에 외척의 득세로 인해 어린 황제가 등극을 하고, 권력다툼에 희생양이 되면서 국정은 혼란스럽게 변했다. 그 중심에는 20여년간 권력을 쥐고 흔들었던 외척 양기가 있다. 거기에 더하여 지진이나 가뭄, 홍수, 역병 등 천재지변이 잇따르면서 지방의 군벌세력이 반란을 일으키고 나라의 변방에서는 흉노를 비롯한 여러 종족과 고구려 등의 세력들이 혼란을 틈타 침공하면서 국력이 급격히 쇠퇴하면서 나라의 종말을 향해 달려가는 형국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국익보다 사리사욕에 눈먼 정치인들이 권력을 휘두를 때 나라는 급격히 힘을 잃고 백성은 힘들어 지는 것이라 생각 된다. 이 책을 읽으며 지금 우리나라의 정치행태를 볼 때 우리 국민들이 정신 차리지 않으면 정당이나 개인의 이익을 앞세우는 정치인들의 치졸한 정치 행태로 인해 우리의 삶이 피폐해 지리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후한시대 역사를 기술한 <자치통감 4>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할 수 있다.

 

(인간사랑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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