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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선비 최익현

[도서] 마지막 선비 최익현

이승하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마지막 선비 최익현

이승하

나남/2016.5.18.

sanbaram

 

19대 국회는 식물국회라는 오명을 쓰고 마감 했지만, 20대 국회 역시 처음부터 부질없는 자리싸움으로 국회의 운영이 오리무중이라 마음이 답답하다. 국민들의 염원으로 당선된 국회의원이지만 선거가 끝난 후 그들은 슈퍼 갑이 되었다. 그 잘난 갑질에 여념이 없는 정치권을 보면서 국민들은 정치에 대한 혐오감을 키우게 된다. 군국주의 부활을 안팎으로 천명하며 우리를 위협하는 일본과, 핵을 어린아이 장난감 갖고 놀 듯 하는 북한, 대국굴기를 외치며 새로운 패자로 떠오르는 중국에 맞서 어려운 경제 살리기에 앞장서야할 정치권은 언제 제 정신을 차리고 자기들의 할 일을 할 것인지 참으로 한심한 것이 현재 우리의 상황이다.

 

조선 말기에 태어나 개화기를 살다간 최익현 선생의 이야기 <마지막 선비 최익현>은 자기의 소신을 굽히지 않은 선비정신을 온몸으로 실천하며 살다가 가셨기에 기대를 갖고 읽게 되었다. <마지막 선비 최익현>은 현재 중앙대학교 문학창작학과 교수이자 한국문예창작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승하 교수가 집필하였다. 그는 1984<중앙일보>신춘문예에 시가, 1989<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소설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대한민국 문학상 신인상등 여러 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인간의 마을에 밤이 온다>, <천상의 바람, 지상의 길> 등이 있고 소설집으로 <길 위에서의 죽음>이 있다.

 

최익현의 아버지는 포천에서 단양으로 다시 경기도 양근 땅 후곡으로 최익현을 공부시키기 위해 이사를 했다. 14세 때 대쪽 같은 선비 이항로의 제자가 되어 19세까지 스승의 사랑을 받으며 수학했다. 22세에 성균관에 입학하고 23세에 명경과에 급제하여 벼슬에 오르게 된다. 그 뒤에 36세 때 사헌부 장령(4)등의 벼슬을 하기까지 매년 승차하다시피 했다. 그 후로도 여러 번 벼슬길에 올랐다 사직하기를 반복 했다. 흥선 대원군의 잘못을 지적하는 시무4책의 상소를 시작으로 50여 년 동안 많은 상소를 올리고 답신을 받기도 하며, 두 번의 유배생활을 하기도 하였다. 모두 상소로 인하여 생긴 일이다. 단발령이 내려지자 내 머리를 자르려거든 목을 먼저 자르라는 말을 하고 버티기도 하였다. 일본에 국권을 빼앗기는 조약을 맺자 74세 때 의병을 일으켰다. 준비가 미흡한 의병이 실패하여 대마도에서 옥살이 하던 중 일본에서 나는 것을 먹을 수 없다고 단식하다 순국하였다.

 

그는 원칙에 입각하여 정사에 임하는 관리였다. 26세 때는 예조판서를 등에 업은 이가 순강원에 묘를 쓴 것을 탄핵하여 옮기게 하였다. 31세 때에는 충남 신창현감으로 있었는데, 충청감사 유장환이 사채를 빌려주고 갚지 않는다고 벌을 주자 유장환을 찾아가 큰소리로 따지면서 백성들을 변호 했다. 충청감사가 거짓보고로 고과점수를 깎는 비겁한 짓을 하자 사직서를 내고 고향으로 내려가 버렸다. 최익현은 186836세 때 사헌부 장령으로 임명되었다. 이 때 첫 번째 상소문 시페4를 올렸다. “시폐4조에는 당시 정책의 모순점 4가지가 적혀 있었는데 모두 대원군이 주도한 것이었다. 첫째, 대규모 토목공사를 중지해야 한다. 둘째, 대원군은 취렴정치를 하지 말아야 한다. 셋째, 당백전을 쓰지 말라고 적었다. 넷째, 4대문 통행세를 받지 말라는 것이었다.(p.65)”이렇게 대원군과 마찰을 일으키며 그가 정계에서 물러나게 하는데 앞장섰다.

 

갑오개혁은 18947월부터 다음해 8월까지 갑오농민전쟁, 즉 동학혁명을 평정한다는 핑계로 우리나라에 침입한 일본이 군대를 동원하여 강압적으로 행한 정치 개혁이다. 최익현은 단발령이 내려지는 것과 때를 맞춰 공조판서 벼슬자리를 내놓고 고향 포천에 가 있었다. 그러나 일부 개혁론자들은 최익현의 머리를 자르게 하면 전국의 유생들도 머리를 자를 것이라 생각하여 최익현을 서울로 압송하였다.

최익현은 몇 달간 서울에서 감옥 생활을 하면서 회유와 협박을 당할 때마다 이렇게 말했다.

내 상투를 자르려거든 차라리 내 목을 쳐라!”

내 목을 자를지언정 상투는 자를 수 없다!”(p.167)

이 일화는 유명하다. 그로 인해 단발령의 강제 시행을 강행하지 못하기도 하였다.

 

일본의 대륙 진출 꿈은 임진왜란을 일으킨 이유 중 하나였다. “최근 집단자위권법의 통과 역시 이러한 역사적 흐름의 결과로 보인다. 일본은 자위대를 없애고 동맹국에 군사를 보내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로 바뀌었다.(p.157)” 이런 상황에서도 국회는 자신들의 밥그릇 챙기기에만 여념이 없고, 정부는 당사자인 위안부 할머니들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은 채 위안부 문제를 정치적으로 덮으려하여 반발을 사고 있다.

 

이 시대에 최익현과 같은 원칙주의자가 필요한 때다. 그러나 누구하나 국익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려는 지도자가 없어 힘없는 서민들의 한숨만 크게 만든다. 지금이라도 양심 있는 선비 정신을 가진 지도자가 나오길 학수고대하며 면암선생의 옹고집이 그리워진다. 이 책을 통해 최익현 선생을 이해하고 자기의 소신을 지키려는 사람이 많아지길 기대한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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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블로그 책찾사

    최익현에 대한 평가도 다분하지만, 확실한 것은 오늘날 보수라는 이름하에 부당한 짓을 저지르는 세력과는 달리 나라를 위한 충정으로 가득한 진정한 보수의 대명사가 아닐까 싶습니다. 최익현과 같은 확고한 나름의 원칙과 애국충정으로 무장된 건전한 보수 세력이 오늘날 보수라고 자처하는 무리들의 자리를 대신하였으면 좋겠습니다.
    가물가물해진 최익현 선생에 대한 기억을 리뷰를 통하여 다시금 끄집어낼 수 있고, 오늘날의 보수에 대한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네요...^^

    2016.06.03 22:07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산바람

      현실에선 진정한 보수도, 진정한 진보도 없이
      그저 무늬만 보수고 진보인 사이비만 설치고 있을 뿐입니다.

      2016.06.03 22:24
  • 문학소녀

    너무 고지식한 것도 문제이긴 하지만, 때로는 자신의 굳은 신념에 목숨을 거는 순수한 원칙주의자도 필요한 것 같아요. 그깟 상투에 목숨까지 걸다니...라고 생각하면 어리석기 짝이 없는데... 신념을 쉽게 꺾어버리는 정치인, 법조인, 일반인도 마찬가지로 많은 시대라서 이런 분이 새삼 대단해 보이기도 하네요. 목숨이 가장 귀하다고 하지만, 신념을 그 위에 놓는 사람... 참 드문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네요. ^^;;

    2016.06.04 08:55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산바람

      물질이 부족한 시대엔 물질이 중요하였지만 생존에 필요한 물질이 해결되면
      신념과 사상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해야 맞지 않을까요?

      2016.06.04 10:30
  • 등대

    산바람님의 리뷰는 언제나 깊고 진지하고 성찰함이 남 다르십니다
    잘 배우고 갑니다

    2016.06.04 11:45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산바람

      긍정적으로 평가해 주어 감사합니다.

      2016.06.04 13:44

PRID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