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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러드차일드

[도서] 블러드차일드

옥타비아 버틀러 저/이수현 역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어쩌다 이 책을 알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는데, 아마도 한국 여성 작가들의 SF를 흡수하고 제미신의  [부서진 대지] 시리즈를 완독하고 나서, 알고리즘은 [블러드차일드]가 내 취향에 맞는 책이라 확신했던 것 같다. [블러드차일드]는 옥타비아 버틀러의 단편과 에세이 몇 편을 묶은 책으로, 책의 제목은 제일 처음에 등장하는 단편의 제목을 따왔다. 현재는 SF 장르가 전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한국 내에서 인기 있는 여러 SF 작품은 여성 작가들의 이름이 쓰여 있다. 그래서 더욱, 버틀러가 혼자 투쟁해야 했을 시기가 쉽사리 떠오르지 않지만, 흑인 여성으로서 남성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영역으로 발을 내딛고 뿌리박는 것은 범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닐 것이다. 한편으로는 SF가 남성의 놀이터이던 시절 태어나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한다. 그 시절의 SF가 어떤 특징을 갖고 어떤 주제를 이야기했는지 알 수 없지만, 아마 그때 처음 SF를 접했다면 이야기를 읽는 주체로서 편입되지 못하고 튕겨져 나와 다른 장르를 기웃거렸을지도 모른다.

 

 

 

  [블러드차일드]는 여러 이야기를 담고 있는 만큼, 그 호흡이 짧은 것도, 긴 것도, 그 주제가 끔찍한 것도, 온화한 것도 전부 제각기 다르다. 그러나 책에 실린 이야기 전부, 결말이 고해지고 나서도 쉽사리 벗어날 수 없는 잔상을 남긴다. 이야기가 제시한 질문거리, 가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스스로가 납득할 만한 이야기의 진짜 결말을 찾아 헤매는 것이다. 특히 '저녁과 아침과 밤'과, '마사의 책'이 그렇다. 이야기 속에서 언뜻 최선의 방향이 제시되는 듯하지만, 독자는 이야기의 관성에 끌려 계속해 질문하게 된다. 이 방법이 최선일까?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이 있지 않을까?

 

  또는 기가 막히게 관계성을 뒤집어버린 작가의 천재성에 감탄하면서도, 그 해괴함에 눈을 질끈 감게 된다. '블러드 차일드'가 그러한 이야기였고, 납득할 수밖에 없는 치밀한 설정과 묘사의 잔인함에 이야기를 덮고 나서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버틀러는 이 이야기가 어떤 방면에서는 외계 생명과 인간의 만남의 방향성이라 설명했는데, SF 장르에 매료된 작가들이 외계 생명과 인류의 접점을 한 번씩 생각해 본다는 것도 흥미롭다. 이 이야기를 읽고 나니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는 참으로 온건한 만남이었으리라.

 

  여기서, 또 다른 외계 문명과의 만남을 묘사한 '특사' 이야기도 재미있다. 이 이야기는 김초엽의 [행성어 서점]에 수록된 '우리 집 코코'랑 비슷한 외형을 가진 외계 생명을 다룬다. 비록 코코는 작고 무해하게 보이고, 커뮤니티는 거대하고 위협적인 존재이지만. 두 이야기 전부 갑작스레 지구로 이주하게 된 외계 생명체에 대해 말하고, 그것이 지닌 잠재적인 위험에 대해 경계하지만, 이야기에서 인간이 능동적 위치에 있는지 수동적 위치에 있는지가 달라 전개가 색다르다. 개인적으로 [블러드차일드]에서 '특사'가 가장 혼란스러운 이야기였다. 아마 두 종족의 관계를 지구상의 사람-동물의 관계에 쉽게 투영할 수 있지만, 사람이 동물의 위치에 서서 이야기에 몰입해야 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틀 만에 다 읽을 수 있는, 짧은 호흡으로 이어진 이야기들이었지만 그들이 남긴 의미는 결코 단순하지 않았다. 단편 하나를 읽고 오래 곱씹다 다음 단편으로, 아껴서 넘어가는 것을 추천한다. 버틀러의 단편은 스스로를 아름답게 꾸미려 들지 않는다. 그래서 읽기에 거북할 수도 있고, 계속되는 낡고 암울한 이야기에 지칠지도 모른다. 그것이 현실과 닮아있기에 더욱. 그래도 그의 다른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것은,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더 나은 삶의 방식을 찾아내고 싶어서일 테다. 의문에 의문을 덧대게 하는 이야기는 드물고 소중하다. 겨우 찾아낸 보석 같은 작가를 놓치고 싶지 않아, 그의 단편이 준 충격이 흐릿해질 즈음 장편을 골라 읽어보려 한다. 집요하게, 그의 모든 이야기를 흡수할 때까지 집요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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