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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도서]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저/박은정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4점

  전쟁에 대한 안개 낀 감상을 흩어버리고 뚜렷한 실체를 마주하게끔 하는 책. 전쟁에는 단순히 영웅과 승리, 그리고 포로와 패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전부 안다고 생각하는 전쟁의 생태계는 그 속을 겪어본 사람들의 내밀한 고백이 아니면 실제로 이해할 수 없다. 특히, 국방의 의무에서 배제된 여자들은 전쟁과 관련한 총기나 작전, 훈련 등과 친밀해질 기회를 얻기 어렵기 때문에, 전쟁의 고통에 대해 이해하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그렇기에 실제로 전쟁에 참전하여 찬란한 젊은 날을 바치고 사그라들어버린 여자 군인들이 숨기고 싶었던, 혹은 숨겨야 했던 자신들의 이야기를 허심탄회 내려놓은 이 책은 전쟁의 참상이 사람들에게 어떤 고통을 주었는지, 특히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제 한 몸 바쳐 싸움터에 뛰어든 여자들에게 어떤 슬픔을 주었는지를 가감 없이 전달하여, 이해하기 어려운 경험에 조금이나마 진실한 공감을 나눌 수 있도록 한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의 군인으로써 참전한 여성들의 실제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글의 형식이 소설과도 같아서 전혀 지루하지 않고 흡입력이 좋다. 미디어에서 전쟁의 밑바닥을 고발하기 이전에는 먼저 나서서 입을 열 수도 없던 여자들의 이야기가 기회를 잡아 물밀듯이 쏟아져 나온다. 약자로서 몸에 익혔던 포용과 이해, 그리고 양보라는 미덕이 한순간에 산산조각 나는 경험을 할 수밖에 없던 전쟁터의 기억이 서로 다른 수많은 여자들의 입을 통해, 비슷한 결로 기록되는 것을 보면 참 힘들다. 각자가 겪은 실제의 사건은 상이하더라도 그 깊은 고통은 하나의 뿌리에서 나왔음이 눈에 뻔히 보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다 보면, 삶의 모든 것이 전쟁이라는 상황에 적응한 것처럼 전쟁 속에 전쟁 이전의 일상이 전부 녹아있음을 깨닫게 되는데, 그 순간 뼈저리게 느껴지는 전쟁의 무게와 그 파괴적인 영향이란.

 

 

  특히 전쟁은 한 성별에게 더욱, 지나치게 파괴적이다. 바닥이라 생각했던 것이 끝없이 확장되는 공포를 실제로 맞닥뜨려야 했던 삶은 상상하고 싶지 않다. 죽을 때 예쁘게 죽고 싶었다는 여자들의 말은 마음이 아렸고, 부상을 당해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와중에도 가슴을 보여달라 지껄인 병사는 제정신인가 싶었고, 전쟁 중에 바람을 피워놓고 아이에 대한 책임을 미룬 채 부인에게 돌아간 남자는... 이러한 비참함은 소련이 독일과의 전쟁에서 승리해 독일 땅에 들어섰을 때 독일 여자들을 집단 강간한 러시아 남자 군인들의 일화에서 최정상을 찍었다(이것이 가축이 아니고 무엇인가). 이 책은 전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여자들의 이야기도 담고 있지만, 여러 방면에서 전쟁의 부수적인 피해를 입은 여자들의 이야기도 들려준다. 그러한 끔찍한 현실에서도 잡초처럼 질긴 생명력으로 세상을 살아나가는 여자들의 이야기는 너무나 안타까웠다. 그 강인함이 전쟁터를 비껴나가 다른 곳에서 다른 모습으로 발아했다면 그 사람은 얼마나 다채로운 삶을 살고 있었을까.

 

  전쟁터가 삶이었고 전부였던 여자들의 목소리가 시간의 흐름에 묻히지 않고 발굴되어 정말 다행이다. 그들이 전쟁을 겪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혹은 전쟁으로 상처받은 사람들(그 자신을 포함해서)을 위해 끔찍한 기억을 헤집는 고통을 감내하고, 말할 권리를 포기하지 않아주어 너무나 고맙다. 그 고통과 의지를 잊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여자의 얼굴을 한 전쟁을 알아야 할 의무가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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